소설리스트

26화 (26/189)

두 집 살이

3구역 학생들에게 소문으로만 들려오는 지하 도시. 반쯤은 학교 괴담과 비슷한 맥락이다. 저기 2구역으

로 넘어가는 길 슬럼가에서 어느 특별한 하수구로 들어가면, 범죄자들이 모여 사는 거대한 6번째 구역이

있다는 소문.

슬럼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납치해 남자는 팔 다리 힘줄을 끊어 창관에 보내고 여자는 정육점의 인육

이 되어 갈고리에 걸린다는 도시 괴담이었다. 물론 그것은 반쯤 맞고 반은 틀렸다. 그런 개판인 동네가 오

랫동안 덩치를 불릴 수 없으니까.

범죄자들이 모여 산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범죄자보단 노숙자에 가깝다. 구역과 계급

으로 나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낙오자들. 범죄자 소굴이라 해도 좀도둑들이 경찰을 피

해 모인 동네에 가깝다고 보면 좋다.

은신 능력으로 남탕에 몰래 들어갔던 성범죄자, 금속을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으로 금고를 털고 다닌 빈

집 털이범. 미약한 전이 능력으로 지갑을 훔친 소매치기. 지은 범죄는 별 것 없지만 초능력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가중 처벌되는게 무서워 도망친 오합지졸들. 그러다 결국 B급 빌런의 아래에서 자신들만의 법을

지키기 시작하는 도망자들.

‘생각해보니 어째서 그렇게까지 초능력자를 인류에 녹아 들게 만드는가 했더니… 몬스터가 있어서 그런

건가.’

초능력자 범죄자인 빌런들로 인해 히어로까지 공포의 대상으로 볼 까 두려워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는 수

십 배의 가중 처벌을 받는다. 단순 절도만 해도 거의 20년가량의 징역. 상해 사건이라도 잘못 일어나면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 갈 수 있다. 이상할 정도로 초능력자를 억제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괴물과 몰

래 싸우는 중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인류가 괴물과의 전쟁을 치룰 때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초능력자니까. 물론 전쟁이라 부르기엔 너무 정

보 통제가 잘 되어 있었다. 몬스터가 소규모인 걸까?

‘그 씨발놈의 정보 통제 진짜. B급 히어로 단말기로도 접근 권한이 없다니. 히어로 협회에서 A급 하나 세

뇌시켜야 정보를 좀 볼 수 있겠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감은 눈을 뜨자 재물을 차지하기 위한 혼란에 빠진 지하 도시에서 아직 고요한

구석의 아지트로 시야가 돌아온다.

“그… 건 대체 뭐였나요?”

예비용 아지트여서 그런지 전의 것 보다 좁다. 유일하게 넓은 건 이 두 명이 심심할 때 사용하는 커다란 침

대뿐. 그 위에 걸터 앉아 있자 안절부절한 두 명의 모습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지. 흡혈귀가 대상을 죽

여 종속시킬 생각으로 주는 쾌락은 마약보다 위험하니까.

“너희들이 맛 봤던거.”

손바닥을 들어 올린다. 흉터 자국 없이 매끈해진 손과 팔뚝에 붉은 빛을 띄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올라온

다. 창고 안 몬스터들을 불태웠더니 레벨 업이라도 했나. 혈액에 대한 제어 능력이 조금 더 올라갔네.

“아… 그건.”

“으, 극…!”

침대 위로 홀린 듯 기어올라오는 김세민과 입술을 짓씹으며 바라보는 이소정. 그 성매매 조직을 발견한

것과, 창고의 몬스터를 본 것과, 전쟁에 앞서 C급 빌런의 반격에 대비해 아지트를 비워 둔 것 전부 김세민

이기에 먼저 포상을 받을 권리를 얻은 것이니까.

‘이걸 업계 포상이라 부르던가.’

SM에 나오는 여왕님처럼 발을 핥아지는 취미는 없었기에 손에 핏방울을 맺는다. 물론 평범한 피는 아니

다. 인터넷에서 흡혈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 보게 된 고전 만화를 따라 만든 특별한 피다. 배드 블러드

였나, 뭐였더라. 흡혈귀 피로 마약을 만드는 내용을 봤는데.

침대 위에서 네발로 기어온 김세민이 새빨간 혀를 내밀어 손등을 핥는다. 손 등에서 손가락으로, 이내 혓

바닥만이 아니라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인간의 것 보다 길어진 그 서늘하고 축축한 혓바닥이 나의

손 구석구석을 핥아낸다.

어설픈, 하지만 정중한 몸짓.

그녀들이 이제껏 겪어 왔던 성적 경험은 별 것 없었다. 내게 피를 빨리고 인형처럼 멍하니 누워서 쾌락에

정신을 잃어가거나, 혹은 자신들이 흡혈한 남성들을 생체 딜도처럼 사용하며 멋대로 놀거나. 하지만 지

금 상황은 달랐다.

“하아, 하아악…”

혀가 손가락을 휘감는다. 혀 끝으로 손가락 마디 마디를 핥은 김세민은 제 이빨이 자그마한 상처라도 낼

까 겁먹은 상태로 내 손을 자신의 양 손으로 붙잡았다. 창백한 굴라의 피부에 열기가 맴돌며 마치 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뱀파이어의 사역마 중 언데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쾌락.

사라진 감각이 살아날 거고,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이 들 거다.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고 시야는 흐릿하게

변하겠지. 네 발로 엎드려 내 손을 핥는 그녀의 몸이 점차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양 팔로 몸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처럼.

침대에 기대 누워 손등을 이불 위에 올렸다. 손바닥 위에 샘솟는 혈액을 마치 개처럼 핥아먹는 김세민. 목

마른 개가 물그릇에 머리를 박는 모양새로 수그리자 매끈해진 등 라인과 그 너머의 탄탄한 엉덩이가 보인

다.

“이소정, 너도 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침대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이소정이 정말 개처럼 달려들었다. 침대가 출렁이고

그 여파로 높게 솟은 김세민의 엉덩이가 옆으로 넘어졌지만, 그녀는 자신의 자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

고 내 손바닥을 물고 빨았다.

그녀들은 굴라, 언데드다. 스켈레톤처럼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살아있는 사람보다 둔감한

건 어쩔 수 없다. 피부는 두꺼워지고, 손톱은 날카로워진다. 미각은 점차 자극적이지 않은 것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겠지.

하지만 자신들의 주인인 내 피가 들어가면 이야기가 다르다. 피 안에 가득 담긴 마력과 생명력. 그녀들에

게 다시 한 번 삶을 허락하는 양분들. 몸은 달아오를 것이고,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온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예민하게 증폭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쾌락이 되어 그녀들을 덮치겠지.

이제 고개를 처박은 이소정과 달리, 충분하게 흡입한 김세민의 엉덩이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아름다운

각선미를 보여주는 스키니진이 습기를 머금고 딱 달라붙는다. 손가락을 움직여 혀를 잡아본다. 서늘하고

축축하던 감촉에 열기가 깃든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마음대로 해도 좋아.”

두 명에게 먹인 강화석을 제외하고도 건진 게 많다. 3억가량 되는 현금과 나의 레벨 업. 그리고 도시의 혼

란. 내 말을 듣자 마자 황급히 스키니진을 벗어버린다. 습기에 젖어 달라붙는 옷을 강화된 근력으로 벗어

버리는 김세민.

고개를 다시 반대쪽으로 돌려보니 아직 이소정은 피를 들이켜고 있었다. 혈액은 충분했다고 느껴 분비를

멈춘다. 남은 것은 오직 몸에 깃든 색향뿐. 하지만 감각이 예민해진 두 명의 굴라에게는 그것 만으로도 충

분했다.

온 몸을 핥아가는 뜨듯 미지근한 혓바닥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미술품을 들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놈. 손바닥 만한 조각상을 품에 넣고 뒷골목에 숨어 들어간 년. 그리

고 아직까지 몇몇 재물을 놓고 피 튀기며 싸우는 녀석들. 고작해야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소란은 점차 외

각의 자그마한 아지트에서 도시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세상에는 저주받은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이 있다. 저주받은 다이아몬드는 현실에서 소유한 사람을 불운

에 빠트려 죽이는 녀석이지만, 리얼 월드에서는 달랐다. 되려 소유자에게 어마어마한 축복을 내려준다.

다이아몬드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조각상, 미술품, 금괴나 보석. 흡혈귀의 저주를 받은 보물들은 소유자

에게 영광을 내려준다.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건강해지고 젊음을 되찾으며 몸에 활력이 넘친다. 이성에

게 매력적으로 보이며 아름답고 잘생기게 변화한다. 마치 흡혈귀처럼.

하지만 이런 장점만 있었다면 저주받았다고 이름 붙이지 않았겠지. 저주는 단 하나.

“하아, 주인님… 제발.”

“더 기다릴까요?”

극한의 중독성. 마약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의존성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고작 잠깐의 쾌락을 환각과 보여주는 마약 따위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뒤룩뒤

룩 찐 살이 1주일만에 식스팩 복근으로 변하고, 내일이면 죽을 중환자가 목걸이 하나로 20대의 젊음을

되찾는데. 흡혈귀의 피가 깃든 물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알리며 외친다.

나를 차지하라고.

골목길에서 액자를 품고 달리던 남성의 개털 같은 머리카락이 윤기 있는 생머리로 변한다. 굽었던 등이

퍼지고 검버섯 핀 피부가 하얗게 변하려는 찰나 담벼락을 넘어온 여성이 망치로 머리통을 부숴버리고 액

자를 차지한다. 바닥에 미동도 없이 쓰러진 남성의 피부에 다시 검버섯이 피어오른다.

품 안에 조각상을 숨기고 길을 가던 여성의 절뚝이던 다리가 곧게 펴진다. 절름발이가 제 발로 걷는 기적

을 겪고 품 안의 조각상을 소중이 어루만지지만, 그녀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한 어린 소년이 옆구리를

식칼로 쑤시고 조각상을 빼앗아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옆구리를 움켜 쥐고 골목을 벗어나려

던 그녀지만 다시 뒤틀린 다리는 그녀가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내 그녀는 피 웅덩이에 머리를 박

고 쓰러진다.

“제발, 주인님… 포상을.”

간질간질한 느낌에 다시 눈을 뜨자, 어느새 내 바지를 벗긴 두 명이 나의 성기에 뜨거운 입김을 훅훅 불고

있었다. 허락받지 못해 감히 혀 끝도 대지 못하고, 다만 반쯤 발기된 나의 성기가 마약이라도 되는 것처

럼.

시스템이 보정하는 복종 스탯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도 흡혈귀를 배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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