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89)

두 집 살이

리얼 월드는 모드 하나로 먹고 사는 게임이다. 수많은 모드가 있고 그걸 중복 적용시키면 알아서 밸런스

가 조절되게 만드는 그 하나의 요소만으로 사람들은 엄격한 현실에서 벗어나 리얼 월드로 떠나게 만들었

다.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그 ‘모드의 밸런스 조절’ 하나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홀렸다고 볼 수 있다.

오류 하나 없는 완벽함.

화경의 무림 고수와 소드마스터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A급 초능력자와 7클래스 마법사가 싸운다면? 몬

스터와 에일리언이 싸우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밸런스 조절. 그것이 그 어떤 게임도 따라갈 수 없는

리얼 월드의 장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눈 앞에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여기에… 야이 씨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 머릿속으로 앵알대는거 닥치고.”

굴라 두 명이 앙큼한 짓을 하려고 했다. 크게 한 탕 해서 실적을 올리고 내게 포상을 받아 한 달 정도 마음

편히 질펀하게 놀려고 든 것이었다. 자신들이 꾸민 하렘에서 외모가 떨어지는 40을 골라 구울로 만들고,

완전히 구울이 되어 썩기 전에 조직에 바쳐버린다.

그러면 성매매 알선으로 몸집을 불린 조직이니 남자들이 더 많이 들어온다. 남자가 늘어나는데 이 조직

원들을 다 죽여서 구울로 만들면 혼날 일도 없다. 수백명이 모인 조직도 아니고 백명 안 되는 숫자라 너무

크게 움직여 주목을 받을 일도 아니다. 그냥 근처에서 조금 큰 홍등가 주인이 바뀐 거니까.

여기까지는 머리를 잘 굴리는 김세민과, 뒷골목에서 다져진 눈치로 지하 도시에 빠르게 적응한 이소정의

완벽한 콜라보였다. 창고 안에서 있어서는 안될 게 튀어나오기 전 까지는.

그냥 저냥 이름 좀 날리는 성매매 조직의 창고에 몬스터들이 잔뜩 있었다. 가슴에 탈착식 마정석의 홈이

파여 있는 걸 봐선 키메라 연금술사의 작품. 만들기 가장 쉬운 스켈레톤과 고블린, 오크, 그리고 오우거

한 마리.

‘아니 씨발, 히어로 vs 빌런 모드에 왜 판타지 모드가 스까 묵혀 있냐고.’

그것들은 이쪽 세상에 있을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파악한 바로는. B급 히어로한테도 정보 통제를 한

것이라면 답도 없지만. 설마 A와 S의 정보가 통제되는 건 이 이유인가? 생각해보면 빌런도 A급 S급이 보

이질 않는다. 걔들은 뭐 던전 돌면서 히어로가 아니라 헌터가 되어 있냐?

‘정보 통제를 씨발, 얼마나 하는 거야. 여기 독재 국가였나? 아 씨발 디스토피아 진짜.’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적어도 이 지하도시에 초능력자 말고 연금술사나 마법사가 한 놈 있다. 스켈레톤

은 건장한 성인 남성과 비등할 정도지만 오크는 셋 정도 모이면 C급 능력자를 잡을 수 있을 거다. 판타지

세상과 히어로 vs 빌런 모드를 동시에 해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억상으로는 그렇다.

오크는 피부가 질겨 석궁조차 잘 통하질 않는다. 죽이려면 적어도 마나를 담을 줄 아는 기사가 필요한 강

적. C급 히어로는 인간의 한계를 살짝 넘은 상대. 육체 능력으로만 보면 비슷하지만 지능의 차이가 있으

니 1:3으로 비교하는 거다. 오우거는 B급 능력자에게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C급이라면 수십을 혼

자 상대할 수 있다. 오크와 오우거 둘 다 튼튼함으로 악명 높으니까.

고작해야 굴라 두 마리로 쥐새끼마냥 야금야금 지하 도시를 먹어 치우는 와중 실수로 깨문 꼬리가 뱀의

꼬리였다. 이 정도 물건이면 주인이 눈이 돌아가서 되찾으러 오겠지.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

“…아까 그 파란 보석 있다던 창고로 안내해.”

쥐가 아니라, 뱀의 꼬리를 깨문 맹독성 거미가 되는 방법 뿐. 삼키려 들기 전에 죽인다.

그런 생각으로 옆 창고로 이동했다. 말이 옆이지 건물 자체가 좀 커다랗고 대충 지은 편이라 조금 돌아가

야 할 정도. 마나석이 여기 있다면 흡혈귀인 자신이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양이 많다면 지하 도시를

통째로 먹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며 창고 문을 열자 새파란 광채가 나를 반긴다. 조명이 없는데도 은은하게 빛나는 새파란

광채. 예술적으로 커팅한 둥그런 모양새. 선반에 나란히 전시된 그 모습에 나는 컨셉이고 캐릭터 메이킹

이고 입을 헤 벌렸다.

‘…강화석이 왜 여기서 나와?’

히어로 vs 빌런 모드에, 연금술사와 고블린 오크 오우거가 있는 판타지 모드, 거기에 RPG 모드의 강화

석. 눈을 몇 번이고 비벼봐도 마나석이 아니라 강화석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던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처

럼 복잡하게 변했지만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 육체는 생각 이전에 행동을 먼저 하게 만들었다.

“야 니들, 이거 하나씩 먹었지.”

“아 안… 네 먹었습니다.”

“그, 먹은 게 아니고 손에 닿으니까 사라졌습니다.”

나는 중급 흡혈귀다. 초능력자랑 비교하면 아슬아슬한 B. 그러니까 그 따까리인 굴라들은 C급보다 조금

높은 하급 언데드고, 이성도 없는 구울들은 C급보다 약한 최하급이다. 판타지식으로 분류하자면 고기방

패 역할인 굴라들이 마법으로 메시지를 전해오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마나석 먹고 중급 턱걸이를 한 줄 알았더니, 강화석을 처먹고 +1강이 되었 다니.’

굴라는 언데드다. 두 명의 여고생이 과거를 기억하며 생각을 하고 성욕도 존재하지만 엄연하게 시스템이

시체로 분류한다는 소리다. 초능력 말고 신성력을 쓰는 사제가 있다면 그녀들은 반항도 못 하고 재가 되

어 사라질 것이다.

거기에 판타지 모드가 그녀들에게 종족 값 언데드를 부여했다면, RPG 모드는 그녀들에게 나의 아이템이

라는 값을 부여한 것이다. 어지간해서 겹치지 않는 모드 세 개가 섞여버렸다. 시스템창이 보이지 않는 것

을 봐서는 일부만 섞인 모양인데.

혹시나 해서 손에 쥐어 보지만 강화석에는 반응이 없었다. 나는 강화되지 않는다는 소리. 눈 앞에서 혼날

준비를 하며 뻣뻣하게 굳어 있는 두 명이 보인다. 이제는 굴라가 아니라 +1 굴라가 된 두 명의 여고생.

‘생각해보니 대박을 건졌네.’

혼날 일 따위는 하지 않고, 되려 내가 뭐라도 포상을 내려야 할 상황인데 사라진 보석이 그녀들이 생각하

기에 매우 귀중한 물건처럼 보였는지 입술을 꾹 다물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머릿 속으로 제어하지

못한 사념이 살며시 흘러 들어온다.

‘씨바… 보석은 손톱만한 것도 수백만원 하지 않나? 내 얼굴 만한 크기면 거의 억인데…’

‘흡수된 거 보면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 능력 강화? 히어로 협회에서 단속하는 귀한 물건인가?’

단순한 보석이라 생각하고 캐럿당 얼마일까 고민하는 이소정과 저 보석이 왜 흡수되었는지 고민하는 김

세민. 모범생과 날라리라는 특성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큭, 뭘 그렇게 굳어 있어. 엄청 잘 했으니까 인상 풀고 여기 있는 보석에 손부터 대.”

굳어지는 얼굴이 풀리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명이 선반의 강화석에 손을 가져다 댄다. 손 끝이 닿자 마

자 푸른색 연기로 변해 사라지는 강화석들. 그 익숙한 이펙트에 한숨이 나왔다.

‘5강 이상부터 강화 실패가 있는데, 그럼 얘들도 뭐 빛나는 마법의 조각으로 깨져버리나?’

하나, 둘, 셋… 선반 위의 보석이 차례로 사라진다. 신중하게 하나씩 흡수하는 김세민과 귀찮다는 듯 양

손으로 드르륵 긁으며 흡수하는 이소정. 더 많이 흡수한 이소정의 팔에 먼저 변화가 생긴다.

“이소정, 멈춰.”

“어, 어어? 뭐야 이거?!”

팔뚝에서 우드득 소리가 들리더니 육체가 뒤틀린다. 고통은 없는지 눈동자만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몸과

나, 그리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김세민으로 시선을 바쁘게 돌린다. 키가 조금 크게 변하고, 단발에서 어

중간하게 길어져 있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쭉 자란다. 그그극 소리와 함께 변화가 끝나자 어린 티가 나

던 외형에서 성인 미녀의 모습으로 완벽히 변한 모습이 보인다.

“김세민, 왜 멈췄어. 너도 변할 때까지 해.”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레 성숙한 미인이 된 친구의 모습이 꽤나 감명 깊었는지 마찬가지로 두 손으로 강화석을 긁어 대는

김세민. 푸른 연기에 둘러싸인 김세민 또한 뼛소리를 울리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검은 생머리가 허리 아

래로 내려가고 살집이 통통하던 허벅지의 각선미가 매끈하게 쭉 빠진다.

“오, 오오… 신기하네.”

“키가 컸네? 죽고 나서는 못 크는 줄 알았는데.”

이제 두 명은 외형만 보면 고등학생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변한 외형을 보니 속이 갑갑하다. 허벅

지부터 젖살까지 남아 있던 김세민은 이제 모델처럼 매끈한 각선미의 성인 미녀가 되었고, 김세민보다

조금 작고 활발한 악동의 이미지였던 이소정은 이제 도도한 고양이상 눈매의 여배우처럼 아름다워졌다.

‘카드 시스템은 아니지? 제발… RPG아이템에 카드 게임까지 섞이면 계산이 안 되는데.’

문제가 있다면 여성 하수인을 강화했을 때 외모까지 아름다워지는 건 RPG가 아니라 카드 뽑기 계열 모

드라는 것.

[작품후기]

한유총... 버닝썬... 카톡방 몰카 공유...

교수님은 뉴스거리가 넘쳐난다고 좋아하고

학생들은 학기 초부터 죽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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