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89)

두 집 살이

사람 피부를 벌겋게 만들 욕조의 물이 차갑게 식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열기로 가득 찼다. 온 몸

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쾌감. 이래서야 자신의 성적 취향이 마조히즘이나 레즈비언의 수비 역할보다

더 마이너하게… 이종간이네 촉수간 쪽으로 갈 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할 정도로.

내가 왜 그걸 알고 있는가 하면 당연히 흡혈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잘 때 몰래 덮치는 것을

자신이 원해서 꾸는 꿈이라고 착각했고, 그로 인해 웃지 못할 망상까지 하는 것이었다. 꿈이라고 최면을

걸었으니 전소희와는 다르게 내 마음대로 섹스를 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네.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침대에 눕혀 놓고 찍어 누르거나, 정조 역전 세계 답게 여성 상위의 성 행위 때

문에 아무도 하지 않는 후배위를 즐기거나 했다. 특히 후배위는 전소희는커녕 굴라가 된 2인조 여고생들

도 그 절대적인 복종심에도 불구하고 꺼려하는 행위였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기분 나쁠 것 같아.’

남성의 입장으로만 생각하면 후배위는 엉덩이부터 곱게 휘는 등 라인을 보며, 여성을 깔아 뭉갠다는 정

복자로서의 쾌감을 잔뜩 주는 체위. 더군다나 거유의 여성일 경우 등을 찍어 눌렀는데도 가슴이 옆으로

밀려 나오는 눈 호강까지 있지만…

이 쪽 세상에서의 인식을 읽어 보면 딱 그 수준이었다. 원래 세상의 아기 플레이. 너무 수준 높은 변태의

성행위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하기야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여성이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당하다니.

‘엎드린 상태로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여자가 뒤에서 껴안고 물건만 대딸 해주면… 진짜 이상한 기분이

긴 하겠네. 아기 플레이가 아니라 착정 플레이라 하던가? 뭐 어때.’

한 시간정도 온 몸을 내게 맡긴 그녀는 혼절한 상황. 내 몸 위에 축 늘어진 그 부드러운 육체에 웃음이 나

온다. 처음 덮치러 왔을 때에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깨어나려고 들었다. 자기 뺨을 때리거나 집 밖으로 뛰

쳐나가던가.

물론 최면을 통해 뺨을 때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고, 환각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해도

안방으로 뛰어들어가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입장에선 쾌락 이외의 모든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현관을

열고 뛰어나갔더니 아파트 복도가 아니라 자신의 침대가 나오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젠 다 포기했구나.’

온 몸을 주무르고 가슴을 툭툭 건드려 흔들리는 모습을 감상해도 그녀는 그저 욕실에 늘어져 있었다. 깨

어 있는 건 알지만 이렇게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잠든 여성을 범한다는 배덕감에 등골이 오싹

해지는 것 같다.

“흐으으으…”

소희로부터 오늘 못 들어올 것 같다고 문자가 온 상황. 아마 이사장 할머니와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설정상 나이가 딱 10살 차이니까… 와 10살 어린 미성년자랑 할아버지의 직장에서 야외 섹

스하다 할아버지한테 걸린 거 아닌가. 오늘 못 올만 하네. 대화를 하다 들은 바로는 부모님도 할머니도 전

부 엄격해서 숨이 막힌다고 했는데.

어떻게 혼나고 있을까? 식탁에 앉아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잔소리라도 들을까. 아버지에게 등짝을 맞고

대문 밖으로 쫓겨날까. 연상의 누나라는 것을 매우 신경 쓰는 그녀의 평소 모습 때문에 웃음이 새어 나오

는 와중.

‘…이건 또 뭐야.’

들려서는 안될 소리가 들려왔다.

각종 장식품이 인테리어 따위 상관하지 않고 널브러진 호사스러운 방. 졸부의 방 같은 곳에서 두 여성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것 상관하지 않고 즐길 걸 즐겼어야 할 텐데. 겁에 질려서 울

부짖는 밖의 비명 따위는 무시하고 그녀들은 애타게 주인님을 찾았다.

“이게 뭐냐 대체…”

“난들 아냐, 보고부터 해야지 뭐.”

어느 날 밤 뒷골목 아저씨들에게 강간당할 뻔한 김세민을 구해준 아름다운 흡혈귀 소년은 그녀의 피를 남

김없이 빨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게 된 김세민은 자신의 주인이 내린

명령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소정을 자신과 똑같은 꼴이 되도록 자신

의 주인에게 추천했다.

그 아름다운 주인님이 원하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머물던 기숙사 옆 슬럼가를

정복 하라니. 지하 도시의 규모가 거대하다는 걸 알고 적당히 세력을 꾸려 두라고 명령이 바뀌긴 했지만.

그래서 두 명은 전력으로 날뛰었다. C급 육체 강화 히어로에 맞먹는 육체, 뒷골목 부랑배들이 습격을 준

비하면 느껴지는 약간의 예지 능력. 거기에 손톱 끝과 입과 성기에서 나오는 체액은 마비, 부식, 발정 등

원하는 성분의 독액으로 변경할 수 있었으니.

여자는 감염시켜 괴물로 만들고 남자는 잡아들여 강간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더라도 하수구의 지하

도시에서 1달의 시간을 보내면 정상적인 도덕심 따위는 사라지니까. 인공 장기의 사이에 어제 사라진 노

숙자의 장기가 섞여 있고 뒷골목 포주가 납치한 남학생들의 팔다리 힘줄을 끊어 공급하는 게 이 곳의 일

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게 적응한 두 명에게 있어 눈 앞의 광경은 당황스럽기 그

지없었다. 차라리 이 창고 안에 쌓여 있는 것이 토막 난 사람의 시체 거나 1g에 수백만원 하는 하얀 가루

라면 덜 당황했을 텐데.

“이거… 그 뭐냐? 게임에 나오는 거 닮지 않았냐.”

“그건 그런데… 그렇게 치면 우리도 이상하긴 하지.”

창고 안에 가득 쌓여 있는 시체들. 아니 시체처럼 보이는 것들. 자세히 보면 자신들이 만든 구울과도 닮아

있었다. 검과 방패를 든 해골. 초록색 피부의 뚱뚱한 괴물. 인간 보다는 거인을 닮은 거대한 괴물.

“이거 씨발… 살아 있지?”

굴라가 되어 심장이 멈춘 이후 살아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둘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여기에 있

는 것들은 단순한 모형 따위가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생물들이라고. 이상한 일은 그 하나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걸 여기에 넣으면… 우린 뒤지겠지?”

“괜히 건드리지도 마라. 또 이상한 일 벌어 질라.”

창고 안의 괴물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치 고전 영화 중 유명했던 아이언 걸이 생

각날 정도로 커다랗게. 그리고 옆 창고에 그 구멍에 넣을 수 있어 보이는 새파란 보석이 잔뜩. 파란색 광

채에 홀려 하나씩 꿍쳐두려고 집어 든 그녀들은 이내 손바닥으로 녹아 사라지는 보석의 모습에 화들짝 놀

라 창고 밖으로 도망쳤다.

“연락 어쩌지? 전화는 안 받는데.”

“그 막, 우리 귓가에 목소리 보내는 거 일방통행이지? 우리가 목소리를 전할 순 없나?”

일전에 일을 안 한다고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던 두 명이다. 그래서 그냥 근처에서 가장 큰 조직을 삼켜버

리면 될 줄 알았는데. 머리 좀 쓰는 김세민의 말대로 감염시킨 남자들을 싸그리 바치고 들어와 내부부터

때려부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 작전은 성공했다. 창남으로 변장한 40의 구울과, C급의 초능력을 여러가지 가진 굴라 두 명이 접대

용 보호 거점에서 집단 섹스중에 덮쳐버리는 걸 성공했으니까. 꽁씹이라고 좋아하던 조직원들은 다들 반

항조차 하지 못하고 구울에게 목덜미가 뜯겨 죽었다.

“아 씨바, 느낌이 안 좋다. 진짜 안 좋아.”

“정신 사나우니까 좀 닥쳐봐.”

그녀들은 몰랐다. 그녀들이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끙끙거리며 연락할 방도를 찾는 동안 자신들의 주인에

게 열심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푸른색 보석을 흡수하고 나서 떠든 대화와 눈에 담은 모든 것

들.

그리고 그녀들이 승급했다는 것 또한.

끙끙거리며 이도 저도 못하는 그녀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정렬한 구울이 된 40의 남자들. 조

직에 고용되어 술이나 따르러 온 남자들은 그 모습에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

다.

자신의 옆에서 같이 술을 따르던 남자들이 일제히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 뜯어 동시에 마흔의 머리통이 떨

어지는 모습은 뒷골목에서도 그렇게 흔하지는 않은 풍경이니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일상인 동네지만

술 따르던 남자가 목덜미를 물어 뜯어 잡아 먹는 건 흔한 광경이 아니다.

김세민은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주인님의 숙소로 뛰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같은 고등학생이니 알고 지

내던 사이라고 거짓말을 하면 될 텐데. 그런데 내 얼굴 뉴스에도 실렸는데 알아보면 어쩌지? 조금 예뻐졌

지만 얼굴을 아는 사이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돈데.

이소정 또한 고민했다. 괜히 보석 하나 숨겨두려다 몸에 흡수된 상태. 괴물 가슴에 구멍 뚫린 모양을 봐선

일종의 배터리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주인이 화가 나서 지난번처럼 다시 고문을 해 버리면?

그런 고뇌의 끝이 보이기도 전에, 구울들의 한 가운데에서 안개가 휘몰아치더니 소년의 모습이 나타났

다.

[작품후기]

첫 주부터 칼럼을 쓰고 있읍니다.

한유총과 관련된 정치 기사를 읽으며 정리하다 보니 이 쪽 글이 잘 안써지네요.

그래도 과제 하나는 끝냈으니 최대한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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