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89)

두 집 살이

왜 하필 치유 능력일까.

전투 능력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히어로 공익 근무지와 집에서 몇 번이고 번복되는 생각들. 강희민은 욕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생각이 바

뀌는 걸 보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남자의 마음은 갈대 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이 흔들리는 수준은 갈대를

넘어서 거의 강아지풀 수준이 아닌가.

초능력자들은 거의 모두 건강하다. 자신의 능력의 대가가 건강과 수명이 아닌 이상. 하지만 그 건강함은

당연히 능력이 다양한 만큼 차이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여서 무시하고 넘어갔던 이야기.

대부분의 육체 강화 능력자들은 육체가 인간의 것을 초월함과 동시에 능력을 쓰기에 적합하게 변화한다.

속도에 대한 능력이면 지구력과 관련된 근육이, 근력에 대한 능력이면 순간적인 파워를 늘려주는 근육

이. 마치 축구선수와 야구선수의 근육이 다른 것처럼.

그 당연함에서 그녀의 고민은 시작된다.

‘어휴, 이 뱃살 진짜… 어떻게 안 되나.’

거울 앞에 설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손에 살짝 잡히는 뱃살. 모든 치유 능력자들의 고민거리다. 전투

가 아닌 회복과 지원에 치중된 능력자들의 신체는 오직 지구력 하나만을 바라보며 진화하니까.

인상이 후덕해지고, 몸에 적당히 살이 찐다. 아슬아슬하게 비만이 아닌 선으로. 그녀가 운동을 해서 몸매

를 관리해 왔다면 모를까, 평범하게 야자에 찌든 고등학생으로 인생을 보내다 초능력이 개화되어 버린

상황.

‘죽자고 뛰어도 뭐 어떻게 되지를 않으니.’

거울 속 새하얀 나신은 마치 마시멜로우 덩어리 같았다. 남자가 이런 몸매였다면 애교살이라 좋아할 여

성이 많았겠지. 하지만 몸매를 가꾸고 싶은 그녀에게 있어 이 몸은 일종의 족쇄와 같았다.

근육을 늘린답시고 닭 가슴살과 두부, 단백질 보충제만 먹으며 한 달에 150만원짜리 히어로 전용 PT까

지 받았다. 거기 강사가 시작할 때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지만 으레 겁

을 준다고 생각했지.

근육통으로 몸져 누울 정도로, 일반인을 벗어난 운동량을 달성해도 이 지긋지긋한 몸은 변화가 없었다.

되려 그 어떤 운동을 해도 체력만 늘어나는 기이한 사태. 복근 운동을 하던 허리 코어 근육을 잡던 지구력

만 증가하는 것이다.

‘진짜… 하필 힐러라서.’

만약 다른 능력이었다면 운동을 한 그대로 근육이 잡혔겠지.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가 만들고 싶어하

는 근육들을 치유에 불필요한 요소로 보고 즉시 치유해버린다. 근육이 단련되기도 전에 능력으로 원상복

구되어버리는 것.

‘운동이 효과가 없는데… 그냥 때려 칠까.’

더군다나 몸을 혹사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가끔씩 아랫집 남자애를 떠올리며 꾸는 그 음몽. 가끔 마

주치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모습과는 다르게 음란하게 허리를 흔들어 여성에게 쾌락을 주는 그런 꿈.

‘몸매도 그대로고, 성욕 발산도 안 되고.’

성매매 업소까지 가서 아랫도리가 뻐근하다 싶을 정도로 봉사를 받았지만 꿈을 꾸는 건 멈추지 않는다.

되려 그 꿈에서 마치 남자처럼 깔아뭉개져 범해지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아 무서울 지경. 이러다가 이상

성욕에 눈을 떠서 어디 SM클럽의 왕자님에게 돈을 바치러 가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내 성적 취향이 사실 마조히즘이다, 아니면 사실 성 정체성이 남성에 가

까워 성관계를 주도하는 것 보다 당하는 게 좋다고 상담을 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사회적으로 매

장당할 것이다.

결국 속으로 앓으면서 더욱 격렬한 운동을 하는데 몸을 격렬히 써서 침대에 픽 쓰러져 곤히 잠들면 그 음

몽을 다시 꾼다. 그녀로서는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는 몸매 때문에 운동을 하는지,

그 꿈을 꾸기 위해 운동을 하는지 고민까지 되는 상황.

오늘도 격렬한 운동을 하고 뜨거운 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드러 누운 그녀는 시들어버린 파김치 마냥 추

욱 늘어져 어제와 똑같은 고민을 시작했다.

일반인이라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뛰어나갈 온도의 뜨거운 물이지만 체력과 함께 몸뚱아리가 튼튼

해진 그녀에게는 딱 좋은 온도일 뿐이었다. 늘어나라는 근육은 안 늘어나고 피부만 질기고 두꺼워지더

니. 당췌 능력자의 몸뚱아리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뜨거움이 혹사당한 근육을 노곤노곤하게 풀어주고, 욕조에서 피어오른 뜨거운 증

기가 그녀의 얼굴까지 감싼다. 기분 좋은 탈력감과 뜨끈한 공기에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녀의 등을 껴안기 전까지.

‘…아 씨, 이제는 욕실에서도 꿈을 꾸네.’

늘 느껴지던 신기한 향기. 자신이 사용하는 해초향 샴푸도, 아랫집 히어로와 그 소년이 사용하던 샴푸와

도 다른 향기가 욕실의 수증기를 대신해 자리를 잡는다. 말랑말랑한 그녀의 몸을 마치 장난감 주무르듯

이리 저리 쥐고 흔들고 당겨보는 부드러운 손.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그 탈력감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겼다. 어차피 깨려고 해

도 깰 수 없는 대단한 음몽이었으니까. 점차 손길이 대담하게 변한다.

등 뒤에서부터 양 팔로 껴안아 옆구리와 뱃살을 조물딱 거리던 두 개의 손이 커다란 가슴 아래로 파고 든

다. 70 C컵이라는 상위권의 크기임에도 육체 강화 능력자와 다르게 부드럽게 흔들거리는 거추장스러운

가슴. 달릴 때마다 짜증만 나는 커다란 가슴을 마치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꾹꾹 눌러대는 그 손길에 웃음

이 나온다.

이래서야 음몽을 꾸게 하는 인큐버스보단, 고양이가 제 어미 젖을 나오게 하려는 모양새 같지 않은가. 가

슴을 들어 올렸다 놔서 그 큰 가슴이 욕조의 수면을 때려 물방울이 튀어 올라 얼굴을 적셔도 그녀는 가만

히 있었다. 이 것은 꿈이니까.

‘이 욕조 뒤에 누가 서 있다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분명 등을 욕조 벽에 기대고 있는데, 엉덩이는 욕조 끝자락

에 닿아 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껴안고 내 겨드랑이 아래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는다? 모양새가 팔만 있

는 귀신 아닌가. 호기심에 뒤 돌아 봤다간 이 나른한 쾌감이 사라질까 참지만 그녀의 머리는 의문으로 가

득 찼다.

‘진짜 이상 성욕인가.’

침대 위에서 요망하게 자신을 범하는 소년의 꿈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드니까 정

말 소년의 손만 꿈에서 나온 건가. 몸은 없고 팔만 나와서 애무를 한다니. 껴안은 자세 대로라면 엉덩이나

등 쪽에 소년의 부드러운 몸이 느껴져야 하는데 없다.

‘아 씨… 정신과는 기록이 안 남아도 찝찝한데. 그냥 갈까.’

찰방 찰방. 경이롭기까지 한 소리였다. 전소희의 가슴보단 작지만 충분히 커다랗고 부드러운, 그러면서

아래로 살짝 늘어진 새하얀 가슴. 그 가슴을 들었다 올리니 마치 물 위에 떨어진 공처럼 물방울을 튀기더

니 둥실 떠오른다.

‘온 몸이 부드럽네.’

전소희의 몸은 극도로 단련된 체육인의 것이다. 가슴은 위로 오똑 솟아 아름다운 모양새를 그리고 온 몸

은 탄탄해서 껴안으면 최고급 죽부인을 껴안은 기분이 든다. 뜨거운 죽부인. 하지만 이 윗집 여성은 정 반

대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그냥 찹쌀떡인데.’

커다란 가슴은 살짝 늘어졌지만 보기 흉하다기 보단 좀 더 가슴을 크게 보이게 만든다. 서 있을 때는 배가

나오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앉아서 허리를 접으면 배꼽을 기준으로 배가 살며시 접혀 한 손에 겨우 잡

힐 정도의 미약한 뱃살을 보여준다.

팔에는 힘을 줘도 알통 따위 없이 보들보들하고, 허벅지는 피둥하게 살이 올라 쫙 달라붙는 스타킹이나

바지를 입을 경우 살이 삐져 나오는 게 살짝 보이는 정도. 온 몸으로 껴안으면 파묻히는 기분이 든다.

전소희가 탄탄한 고무 기둥이라면 그녀는 갓 뽑은 가래떡 같았다. 온 몸으로 밀착해 주무르면 정말 그녀

의 품 속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질 정도. 그녀의 털털하고 남성다운, 아니 여성다운 성격만 아니었다면 스

타킹이라도 신겨 보는 건데.

‘원래 검은 스타킹은 그 맛에 보는 건데 아쉽네.’

적당한 살집을 손으로 쥐어 본다. 피부가 늘어지는 건 아니고 말캉하게 들어가는 정도를 보니 스타킹을

신기면 정말 예쁘게 허벅지의 절대 영역에 살이 살짝 밀려 나와 이쁜 곡선을 그릴 텐데.

락 음악의 팬에 근육을 키우려고 운동에 열중하다 보니 옷을 언제나 러프하게 입고 다닌다. 청바지에 셔

츠 차림 말고는 딱히 본 적 없을 정도. 남녀의 역이 바뀌었다 해도 화장이나 치마 등 꾸미는 방식은 같은

세상인데 너무나도 아쉽다.

온 몸을 안개화 한 상태에서 양 팔만 만들어 그녀의 온 몸을 주물럭거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이 것

을 꿈이라 생각하는지, 혹은 꿈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는지 허공에 둥실 떠오른 내 두팔에 온 몸을 맡기

고 눈을 감았다.

[작품후기]

전에 절대 영역 관련된 그라비아 화보집을 봤는데 스타킹과 허벅지가 일직선인 사진 보다 스타킹이 허벅

지를 눌러줘서 스타킹에서 허벅지가 시작되는 곳에 살이 살포시 눌리는게 더 야릇하고 아름다워 보이더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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