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끈적거리는 뒷덜미를 괜히 손으로 쓸어본다. 손에 묻어 으스러지는 미트볼 파편들. 고소하면서 달짝지근
한 냄새가 후각을 간지럽힌다. 급식 질이 좋네.
“아, 넌 또 뭐냐.”
“이야, 몸매 좋네. 역시 격투반?”
회생이 불가능한 와이셔츠를 벗어 뒷덜미와 손을 씻어낸다. 위에 걸친 건 이제 미트볼 소스로 얼룩진 얇
은 반팔 티 하나. 몸매에 딱 달라붙은 셔츠에 음탕한 시선들이 집중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둘.
하나는 공중에 10cm정도 떠 있는 남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손에 이상한 장갑을 낀 여학생이었다. 둘 다
지원과인가, 아님 하나는 사격과고 다른 하나는 지원과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선배한테 소스 좀 맞았다고 꼽냐?”
“응, 존나게 이 씨발럼아.”
생긋 웃으며 대답하자 장갑을 낀 여학생이 어벙한 표정을 짓는다. 내 명찰은 노란색, 이 새끼들 명찰은 빨
간색. 명찰 색이 다른 게 과가 아니라 학년이 다르다는 뜻이구나. 무슨 상관이람.
“이 새끼가 선배한-“
여학생이 장갑을 낀 손을 내게 겨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위기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위
기감을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이 느릿한 그 모습에 한 숨이 쉬어진다.
‘피 빠는 모습은 보여 놨고. 내숭이고 지랄이고 어차피 전소희도 나 2구역 슬럼가에서 온 거 알아.’
지금 내가 들이 받으면 캐릭터 메이킹이 깨지는가?
답은 아니오.
익숙하게 자세를 잡는다. 앞으로 내딛는 왼발. 오른 어깨를 뒤로 돌리며 왼 어깨를 앞으로 쭉 민다. 상체
가 앞으로 휙 꺾이며 기이잉 소리를 내는 장갑이 내 오른 뺨을 스쳐 지나간다.
“뒤져, 이 개새꺄.”
뒤로 갔던 오른 팔꿈치에 힘을 준다. 근육이 꿈틀거리고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던 흡혈귀의 마력이 온 몸
을 빠르게 휘감는다. 바닥을 찍은 왼 발바닥에서 회전하는 허리로, 허리에서 뒤에서 앞으로 튕겨 나가는
오른 팔로.
콰직! 내 욕설에 고요해졌던 식당에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주먹의 감촉.
생각해보니 맨 손으로 사람을 패는 것도 오랬만이네. 지난 데이터는 육체 능력이 없이 구울만 키웠고, 여
기 와서는 나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염동력만 사용했다.
“끄으윽… 히 캐새키갸…”
바닥을 나뒹구는 여학생의 뺨을 와이셔츠를 뭉쳐 찰싹찰싹 두드린다. 이빨이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바람
새는 소리로 뭔가 중얼거리지만 무시했다. 와이셔츠가 점차 그녀의 입에서 흐른 피에 젖는다.
“자, 자모해써… 그마해…”
“아냐, 존나 잘했어요 우리 선배님. 진짜 첫 날부터 이 지랄이 날 줄 나도 몰랐지.”
찰팍찰팍 장난스럽던 소리가 점차 물에 젖은 채찍 소리로 변한다. 촤악 핏방울이 내 뺨에 튄다. 와이셔츠
를 잡지 않은 왼 손으로 흝어 혀에 가져다 대니 단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초능력 없음. 일반인 중 히어로
장비 만드는 쪽 녀석인가.
“근데 우리 선배님, 여기는 요즘 후배 뒤통수에 먹을 걸 던지고 노나봐. 2구역 슬럼가는 씨발 미트볼 캔
하나 때문에 살인도 일어나는데.”
까닥이던 손목이 팔꿈치까지 움직이게 되고, 이내 와이셔츠로 채찍처럼 위 아래로 내리친다. 짝짝 소리
와 함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자니 가학적인 쾌감이 느껴진다. 씨발, 너무 오래 참았어.
“이렇게 보니까 우리 선배님 얼굴 얼마나 이뻐. 하수구에 던져두면 쥐새끼가 물어 가기 전에 아저씨들이
채 가겠네. 같이 가 볼까? 어?!”
덜컥, 누군가 내 팔목을 잡는다. 강정태인가 조희정인가. 짜증이 나 뒤를 돌아보니 허공에 붕 떠있는 남학
생이 보인다.
“그, 그만해. 아무리 그래도 선배한테.”
팔목을 붙잡은 그 모습에 짜증이 올라온다. 그러고보니 원흉은 하나가 아니라 둘. 공중에 떠 있는데 몸에
서 단 냄새가 난다. 염동력의 일종인가? 어쩐지 위로 치솟은 와이셔츠가 중력을 거스르고 허공에 붕 떠있
는다.
“선배님.”
“어, 그래… 이제 그만 하자.”
숨을 고르고 존칭으로 부르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
“너는 씨발, 왜 안 맞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대로 멈추지 않은 왼 손을 휘둘렀다. 다시 한 번 울리는 콰직 소리. 허공에 치솟은 와이셔츠가 내려와
내 등을 적신다. 핏방울에 미트볼에 잔뜩 더러워지니 짜증이 치솟는다. 정화 마법 한 번이면 끝인데 사용
을 못 하니까 더 짜증나.
“아니 씨발, 둘이서 지랄하다 나한테 튀겨놓고 왜 너는 제 3자인척 나를 말리냐고!”
코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그의 명치를 발 끝으로 걷어차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기분이 든다. 자연
스럽게 일어나려는 마력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숨을 고른다. 두들겨 팬지 고작 3분인데. 반응 참 빠르네.
시선이 빙글 돌고 기묘한 감각과 함께 눈 앞이 변한다. 겁에 질린, 그러면서도 끝까지 걱정해주는 모습으
로 나를 바라보던 두 명이 사라지고 세상이 휘저어진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축축하면서 단단한 타일.
“샤워실… 서비스 좋네.”
아마 이사장의 짓이겠지. 나는 주저 없이 더러워진 교복을 바구니에 집어넣고 샤워실 안으로 향한다. 거
의 50개는 되어 보이는 샤워기가 오와 열을 맞춰 벽에 세워져 있었다. 합반 훈련이라도 하는 걸까.
씨발, 군대 생각나네.
※
흔치 않은 남자 전학생. 고작해야 그 정도라면 정치판에서도 구르고 굴렀던 그녀의 머리가 이토록 아프
지 않을 것이다. 온갖 이권이 얽혀 정, 재계 인사가 주목하는 능력자 육성 기관의 총 책임자가 된 이후로
이토록 머리가 아픈 적이 있었던가. 전희민은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샤워실로 강제 전이된 그 소년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곧바로 샤워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흥
얼거리며 샤워를 하며 소스와 피를 닦아내는 소년. 분명 감시하는 시선을 알아 차렸을 텐데 되려 거품까
지 내며 천천히 몸을 닦는다. 마치 과시하듯. 이 학교의 어떤 여성이라도 저 모습을 보면 넘어가버리겠지.
그 느긋하면서도 에로틱한 모습과 다르게 B급 육체 강화 능력자가 정확한 자세로 스트레이트를 박아버
린 두 명은 양호실로 전이시켜 부러진 코뼈와 턱뼈를 맞추고 있었다.
이하늘, 신분증과 능력자 증명을 받은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B급 루키.
그리고 손녀 집에 얹혀서 동거하는 중.
‘그 녀석이 뭐가 좋다고.’
젊어서나 늙어서나 남자 마음은 읽기 어렵다. 정치판에서 속에 능구렁이를 수백 마리를 삼킨 노파나 꼬
리 숨긴 여우 같은 노인보다 사춘기 소년의 마음은 더 읽기 어렵다.
‘대체 왜… 뭘 보고. 애가 밤 일을 잘하나?’
그녀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외모도 평범해, 성실하지도 유머러스 하지도 않다. 볼 거라곤 꾸준한 운동과
B급 능력으로 인해 쭉 빠진 몸매뿐. 그런 손녀에게 동거하는 10살 어린 미소년이 생기다니.
눈에 차는 구석이 없어 근처에 두고 감시할 목적으로 사고나 치지 말라고 여자 고등학생 기숙사 경비에
처박아 놨더니 갑자기 옆 구역 슬럼가에서 새파랗게 어린 남자애를 구해 왔다. 한창 젊은 청춘 둘이 한 침
대에서 자면 어디까지 갔겠는가.
더군다나 무슨 짓을 했는지 저런 흉폭한 남자애가 집에서는 앞치마를 두르고 가정 주부 마냥 얌전하게 지
낸다. 깔끔하게 내뻗어진 팔, 구경하던 학생들이 감히 선도부나 교사를 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
는 퍼포먼스.
턱주가리를 얻어 맞은 여학생은 아래 턱이 박살 나고 이가 뽑혀 초능력 시술 이전에 외과 수술이 필수적
인 상황이고 코뼈를 맞은 여학생은 뼈가 주저앉는 게 아니라 완전히 바스러져 뼛가루를 제거하는 중이
다.
‘그건… 조절한 거겠지. 정확하게.’
심지어 그 소년의 육체 능력은 한정적 B급. C급만 하더라도 사람 두개골을 악력으로 으깰 수 있는데 B급
이 고작 뼈가 박살나는 수준에서 멈췄다? 그가 정확하게 조절한 것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겠지.
‘참 대단한 남학생인데… 집에서는 저러니 원. 정말 아랫도리로 남자를 휘어잡은 건가.’
눈을 감자 흐릿한 영상이 보인다. 칠칠 맞은 손녀가 인중을 헤벌쭉 늘리고 있었고 소년은 옆에 곱게 무릎
으로 앉아 맥주를 따라주고 있었다. 몇 번이고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저 소년이 5시간 뒤에 자신에게
급식을 던졌다는 이유로 두 선배의 얼굴을 박살을 내서 수술실에 처박는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
목한 모습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으스러트리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는 잔혹함. 초능력으로 강화된 육체가 어느 정도면 사
람을 ‘죽이지만’ 않는지 아는 냉정함. 아래턱이 으스러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을 자신의 와이셔
츠로 채찍질하며 윽박지르는 그 흉폭함.
퇴근 3시간 전에 미리 맥주를 냉동실에 컵과 함께 얼려 두는 배려심. 반찬에 젓가락이 얼마나 자주 가는
지 봐 뒀다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추는 세심함. 콧노래를 부르며 못난 손녀보다 일찍 일어내 새로 지은 밥으
로 도시락을 싸주는 그 자상함.
굳게 닫은 두 눈에 두 개의 영상이 어지럽게 비춰진다. 정말 같은 인물인가?
[작품후기]
개강해서 아침에 집을 나서니 공기가 뿌옇습니다.
분명 우리 아파트는 하얀 페인트를 칠했는데 왜 옆 동이 회색으로 보이나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