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웅성거리는 소란을 애써 진정시키는 남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학년 A반. ABCDE의 기준이라면 가
장 우수한 반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성적 상관없이 섞어 둔 반일까.
“조용 조용! 전학생 언제까지 세워 두려고!”
“남학생? 설마 여학생이에요, 쌤?”
“와 전학생! 잘생겼어요?”
탕탕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복도까지 들려오던 소란이 가라앉는다. 과하게 활기찬 반응을 보자 학
교 생활이 벌써부터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정식적인 신분을 얻어 정보를 뽑아 먹으려는 계획의 첫 발부
터 삐걱이는 느낌.
‘이사장은 괴물이고, 반은 소란스럽고. 좆같네 진짜.’
“이제 들어오렴.”
실기로 월반을 할 수 있다면 그냥 바로 실전 투입하러 가야겠다. 그런 다짐을 하며 국어 교사의 부름에 앞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곧바로 모이는 스무개의 시선.
‘건물이 존나 큰 이유가 있었네.’
한 반에 20명이라니. 학교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천 단위에서 노는데 40평은 넘어 보이는 이 넓은 교실에
20명의 학생만이 있었다. 개인용 책상에 개인 홀로그램 PC. 넓직넓직하게 앉아 있는 남녀 혼성의 무리.
“와 잘생겼어!”
“A반에 온 걸 봐선 쟤도? 근육은 없어 보이는데.”
“속도쪽일수도 있지 병신아.”
“조용히 하라니까!”
웅성대는 학생들을 눈으로 흝어보았다. 남학생도 여학생도 어느 정도 달콤한 향을 풍긴다. C급 언저리
정도. 잘 생긴 녀석부터 못생긴 년까지 외모 편차가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다들 몸이 탄탄하다
는 것.
치마와 스타킹 사이로 보이는 허벅지살 너머로 꿈틀거리는 단련된 근육이 보인다. 피부 노출이 싫다는
듯 더운 날씨에도 긴 팔 긴 바지로 꽁꽁 싸맨 남학생의 호흡이 정갈하게 육체를 가다듬는 게 느껴진다.
‘전원 육체 강화 계열이네. 최대한 세세하게 나눠서 반을 구분한 건가.’
하기야 교무실에 일반 과목 선생들이 모여 있고, 초능력자 교수들은 개인실을 가지고 있다면 능력별로
묶는 게 낫겠지. 육체 강화랑 염동력을 동시에 지도할 수 없으니까.
“자기 소개하고 저 뒷자리에 앉으면 된다.”
“한정적 육체 강화 B급 이하늘, 잘 부탁해.”
학생들이 열렬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관찰하고 있자니 반가운 말을 해
주는 담임 선생. 냉큼 들어가려고 대충 소개하자 반이 고요해진다. 학생들 사이에서 B급은 희귀한 존재
인가.
“진, 진짜 B급이야?”
“턱걸이지만.”
옆 자리의 여학생이 속닥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편하게 자른 단발머리의 여성. 치열이 고르지 않아 외모
가 썩 좋지는 않다. 고요해진 교실. 학생들과 담임까지 내 입에 집중하는 게 느껴져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 벌써부터 귀찮은 예감이 들어온다.
“와, 육체 강화 B급… 한정적이지만 육체 강화는 처음이네.”
“그러게, 이제 우리도 원딜 애들한테 비벼볼 만 하겠다.”
“수업 준비는 끝내 두고 떠들어라! 그리고 하늘이는 오늘 첫 날인 거 말해둘테니 수업시간에 개인 단말기
에 있는 파일 다 읽어 두고. 반장은 하늘이 챙기고.”
탕탕, 출석부로 책상을 두드린 담임이 사라진다. 그러고보니 담임 이름도 못 들었네. 옆 자리 여학생이 어
떻게 말을 걸까 고민하기에 깔끔히 무시하고 파일을 열어본다. 나열되어 있는 수업 방식과 학교에 대한
기초 사항들.
학생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초능력자와 비 초능력자. 초능력자들은 세 분류로 나눠 근접전 교육을
받는 격투반, 원거리 교전법을 배우는 사격반, 그리고 탐색과 치유 등 지원법을 배우는 지원반이 있다고
한다.
‘실전 전투법에 다른 분류인가.’
초능력이 하도 다양하다 보니 전투법으로 나눈 모양이다. 예를 들어 화염을 다루지만 범위가 좁은 녀석
은 당연히 격투반. 반대로 동체시력과 순발력쪽이 강화되어 총을 다루는 녀석은 사격반.
‘애들은 근딜 원딜이라고 부르나 보네.’
반 대항전 같은 행사가 많은지 속닥이는 학생들의 일부는 ‘원딜’ 녀석들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질 않는다.
아마 사격반에 대한 이야기겠지. 시간표를 보자 다음 시간은 한국사. 오전은 평범한 교과 과정이고, 식사
후 오후가 초능력 수업이었다.
“2044년 한반도는-“
앞에서 웅얼거리듯 수업하는 교사의 목소리를 최대한 무시하며 학사요람 파일을 읽는다. 현실에서도 리
얼 월드 연예인물이나 학원물에서도 왜 역사 교수들은 저렇게 웅얼거리듯 자장가 같은 목소리로 수업을
할까?
뱀파이어조차 잠들게 하는 목소리라니. 그 치명적인 자장가를 막기 위해 귓구멍에 마력을 둘러 소리를
차단한다. 그 즉시 두 명 정도의 시선이 날아온다. 날카로운 눈매의 남학생과, 나처럼 귓구멍을 막아 둔
게 느껴지는 검은 생머리의 여학생.
두 명이 나를 보며 잘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나 또한 귓가를 톡톡 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전학온지 30분도 되지 않아 공감대를 형성한 우리 세 명은 귀를 막고 개인 단말기로 딴 짓을 열심히 했다.
남은 열 여덟의 학생이 수마와 싸우는 동안.
※
오전 수업 내내 귓가에 마력으로 소리를 차단해 두었다. 몇몇 교사들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반응을 하지
못했는데 그걸 캐치한 귀마개 동료 두 명이 전학생이라고 커버를 쳐 줬다. 정상적인 수업을 듣는 건 너무
오랬만이라 실수가 잦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첫 날부터 잘도 알아차렸네! 나는 조희정이야. 얘는 강정.”
“강정태다. 강정이 아니라.”
옆 자리 단발머리가 점심시간에 무언가 말하려 들 때, 그 사이에 끼어든 귀마개 동료가 말을 걸어온다. 장
난기 가득하고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조희정. 그리고 그 소꿉 친구라는 강정태. 남학생인 강정태는
육체 강화라는 걸 알 수 있게 육체가 근육이 꽤 있는 상태지만 조희정은 키도 가슴도 작았다.
“나는 하체만 강화라 육상 쪽이고, 강정은 전체적으로 강화야. 너는 한정적이라던데 조건이 뭐야?”
심란한 표정으로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옆자리 여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열심히 나불거린다.
고개를 내려 다리를 쳐다보자 잘 단련된 하체가 보인다. 빈약한 팔뚝과 가슴과는 다르게 탄탄하게 잘 빠
진 각선미와 근육이 보기 좋게 붙은 종아리.
“미안하다, 이게 나이는 먹어도 철이 덜 들어서.”
“아 왜? 어차피 점심 먹고 다 밝혀질 텐데. 놔라 진짜, 야!”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거 그거잖아. 남녀 역전을 하면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은
소년과, 몸매 좋고 어른스러운 여자 소꿉친구. 물론 남녀가 바뀌었기에 장난 많은 여동생을 돌보는 오빠
가 되어버렸지만.
‘이거 넷에서 봤던 고전 만화 같은데.’
“일단 밥부터 먹는게 좋겠군. 식당으로 가는 길이 복잡하니 같이 가려고 온 거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정태가 뒷문을 열고 나가기에 뒤따라간다. 입을 멈추지 않는 조희정이 한 걸음에 교
실 절반을 가로질러 따라붙는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찡그려지는 강정태의 미간.
“니가 이러니까 육체 강화 계열이 싸잡아 욕을 먹지!”
따아악- 명쾌한 소리가 복도를 울려 퍼진다. 주먹으로 뒤통수를 꽤나 큰 소리가 나게 후려쳤는데 지나가
며 놀라는 학생이 없었다. 몇몇만이 시선을 잠시 줬을 뿐이고, 나머지는 익숙하다는 듯 제 할 일을 한다.
“아아악, 아파! 내 머리는 너처럼 돌이 아니라고!”
식당으로 발을 옮기는 10분의 시간동안 쉬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마치 만화를 보듯 구경했다. 복도에
서부터 식당에서 식권으로 적당히 돈까스를 골라 와 앉을 때까지 입을 멈추지 않는 조희정과 뒤통수를 때
리다 식판을 양 손으로 들자 정강이를 걷어차는 강정태.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다들 그러려니 넘어가네.’
하다 못해 아침의 교문에서 지각생을 잡던 선도부 여학생들도 이 둘을 무시하고 지나쳐 간다. 식당에서
밥을 배식 하는 게 아줌마가 아니라 아저씨라는 것을 제외하면 꽤나 평범한 모습이었다.
“이 씨발 날파리 새끼가!”
“뭐래, 돼지 새끼가.”
콰앙-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서 끝없이 떠들던 조희정과, 밥 먹을 때는 입을 제발 닫으라고
핀잔을 주던 강정태가 둘 다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음, 치고 받고 싸우는 욕설의
소리.
그리고 머리카락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뜨끈하고 끈적끈적한 액체. 강화된 후각은 내 목덜미를 타고 와
이셔츠 안을 더럽히는 끈적한 액체가 미트볼 소스라는 걸 알려준다.
“하하, 하하하.”
“그… 하늘아 괜찮아?”
“야, 이 새끼들아 나가서 싸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내 목덜미를 닦아내려는 강정태. 당황한 얼굴로 삿대질을 하며 욕을
내뱉는 조희정.
“정태야, 미안한데 피 좀 빨자.”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잠시나마 식힌다. 지금 그냥 날뛰면 귀찮아지니까.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니까.
전소희와 알콩달콩 할 생각은 있지만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송곳니를 세워 내 뺨을 닦던
강정태의 손목을 문다.
입에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혈액. C급에서 B로 넘어가기 직전인가. 흐읏, 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주저
앉은 강정태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몸매에 맞게 실한 물건을 지녔는지 바짓가랑이가 우
뚝 솟은 게 보인다. 양 손으로 가리자 옆에서 흘긋 본 조희정이 다시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욕을 내뱉
는다.
“왜 식당에서 지랄이야!”
“끼지 마, 땅꼬마 새꺄!”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욕설. 지금 여기 떨어진 지 한달 하고 몇 일이 지났지?
“아, 씨발 존나 오래도 참았네.”
[작품후기]
어제 안 올린거 연참으로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