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전소희는 이상하다. 물론 전소희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겠지.
거의 한 달을 이름도 말해주지 않고 동거를 했으니까.
이상한 괴물들한테 잡아 찢길 뻔 했는데 멀쩡한 것은 2구역 슬럼가에서 지낸 덕이라고 쳐도.
‘저거 공익이 공익이 아닌데.’
남성 히어로들은 대부분 사무직으로 간다. 현장을 뛰는 히어로들의 서포터나 의료 지원반으로.
육체 강화 히어로도 보급을 옮기는 일을 하지 직접 전투를 시키지는 않는다.
히어로와 빌런은 서로 주고 받고 비등비등한 상황인데 남성이 당하면 귀찮아지니까.
‘B급 히어로가 고작해야 여자 고등학생 기숙사 경비라고? 말이 안 되는데.’
일단은 경비 공익이라는 점에서 수상하고 어디서 신분증을 덜렁 들고 온 것도 더욱 수상하다.
초능력과 SF가 버무려진 미래 세계관에서 당사자도 없이 임시라지만 신분증을 덜렁 들고 오다니.
“엉, 왜?”
물론 당사자는 쉬는 날이라고 소파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저 모습만 보면 또 평범한 것 같고.
아침부터 졸음에 취해서 소파에 늘어진 모습은 히어로라기 보단 청년 백수의 모습이니까.
‘빽이 있는 것 같은데. 되게 든든한걸로.’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27살이 공익 활동을 하면서 신분증을 뚝딱 만들어 오는건 이상하다.
뭐 내게 해가 될 일은 아니니 넘어가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교복을 챙겨 입는다.
노란색 명찰, 안에 박혀 있는 이하늘이라는 이름.
“다녀올게요.”
“저기… 그래서 이름은 맘에 드는 거야?”
“점심은 반찬 다 준비해 놨으니까 돌려 먹고~”
뒤에서 들려오는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오랬만에 아침부터 집을 나선다. 한자 이름을 지어줄 자신이 없어
이쁜 한글 이름을 검색해서 주장한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늘이라… 뭐 미들 네임이 네 다섯개인 이름
보다 간편해서 좋다.
전소희의 직장인 여자 기숙사 반대편으로 향하자 드문드문 남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주 구역에서
아예 남녀 구분을 해버린 편성.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무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다. 약간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그건 익숙하지 않은 얼굴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저런 애도 있었어?’
‘몰라, 전학생인가.’
‘전학? 1구역에서 왔으려나.’
나란히 걷는 학생들의 속닥거림이 들려온다. 어딜 가나 학생들 말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게 정조가 역전
된 세상일지라도. 느긋하게 같은 교복의 등을 따라가니 거대한 교문이 보인다. 교문 보다는 대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거대한 쇠문과 그 옆에 붙어 있는 빛나는 명패.
대한능력자 고등학교.
물론 어떻게 한자를 사용하려는 저 촌스러운 명패는 모두들 무시하고 학생들 대부분은 히어로 아카데미
라 부른다. 몇몇 교사들 또한. 애당초 영웅과 악당보단 히어로와 빌런이라는 이름이 세상 사람들 입에 오
르락 내리락 하니까.
“거기, 3분 뒤면 지각이다! 빨리 뛰어!”
빨간 츄리닝을 걸친 여교사가 죽도를 탁탁 두드리며 말하자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간다. 엉망진창으로 흩
날리는 치마들과 흙먼지. 나는 반대로 걷는 속도를 늦춰 느긋하게 교문으로 향한다. 탕! 소리와 함께 눈
앞에 내리쳐지는 죽도.
“너부터 지각!”
“아, 쌤! 좀만 봐 줘요!”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뿜는 여학생 몇 명이 말을 걸지만 죽도를 들어 올리며 어깨를 휘휘 돌리는 그
과장스러운 모습에 다들 한 숨을 내쉬고 교문 옆으로 들어가 흙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넌 왜 안…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네, 전학생입니다.”
학생이 꽤 많아보이는 커다란 학교인데 학생 얼굴을 전부 외운건가. 전학생이란 단어에 순서대로 무릎을
꿇던 지각생들의 시선이 모인다. 물론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 학년에 500명은 되겠네.’
대문의 크기 만큼 커다란 학교. 눈 앞에 있는 건물만 10층은 되어보이는 높다란 빌딩 수준인데, 저 뒤로
두 세개의 건물이 더 보인다. 하기야 초능력자를 모아두는 특수 학교니 인원이 많을 수 밖에 없겠지.
잔디가 시퍼렇게 자란 운동장이 둘레가 km단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함을 자랑하며 잘 깔린 8줄짜리 트랙
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호령.
“선도부, 문 닫고 얘들 다섯 바퀴 돌리고, 육체 강화 애들은 20바퀴! 난 전학생 데리고 간다!”
하얀 티셔츠 위에 지퍼를 잠그지 않은 빨간 츄리닝, 그리고 목도를 가지고 있는 체육 선생. 선도부 명찰을
차고 지각생들의 이름표를 보며 명단을 작성하는 선도부 학생들. 잔뜩 찡그린 얼굴로 거대한 운동장 트
랙 위에 서는 지각생들.
‘이쪽은 또 고전 학원물이네?’
세계관 설정은 은근히 디스토피아인데, 곳곳에 달짝지근한 청춘물이 뒤섞여 있으니 기묘한 기분이다. 하
기야 데이터를 팔기 위해 하나만 죽자고 파 왔으니 이토록 여러 장르가 뒤섞이는 건 처음이기도 하고.
“전학생이라 봐 주지만 내일부터 지각하면 너도 저 운동장 도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잘 한다.”
생긋 웃으며 대답하자 낄낄거리던 여교사가 죽도로 어깨를 안마하며 손가락으로 어느 건물을 가리킨다.
새파란 유리로 깔끔하게 도배된 거대한 건물.
“저기가 본관이고, 교무실은 본관 7층이다. 가서 전학생이라 하면 담당자가 나올거야.”
교무실까지 같이 가는 것 처럼 말하더니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안주머니로부터 담배
와 라이터를 꺼내는 모습에 알겠다고 말하고 건물로 향한다. 유리창 너머로 느껴지는 시선들. 나 또한 건
물을 한 번 감각으로 흝어본다.
눈에 가장 띄는 것은 둘. 여학생 하나, 남학생 하나. 무심하게 밖을 쳐다보던 남학생에게 시선을 보내자
눈웃음을 살짝 짓더니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올려 여학생을 바라보자 반대로 시선을 뗄 생각도 없이 빤
히 노려본다. 그 열렬한 시선에 내가 먼저 고개를 돌리고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학생인데 B급 근처인가.’
건물을 스캔하듯 뿌려진 감각을 알아차린 두 명. 아파트에서는 C급 히어로는 감지하지 못 했다. 오직 전
소희만이 퇴근하고 나서야 아파트 단지에 뭘 했냐고 물어봐서 탐지라고 대충 알려줬으니…
‘저 둘이 쎈 거야, 전소희가 약한거야?’
전소희는 고등학교 기숙사 경비나 해서 전투감각이 없는 것 같은데, 발차기로 공기를 후려쳐 나를 제외
한 구울만 때려 부수는 그 섬세한 컨트롤은 초보자가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만약 전소희가 힘에
휘둘리는 멍청이었다면 그 때 나도 같이 걷어차였겠지.
‘하긴, 감만 발달한 걸지도 모르지.’
여기가 무협지처럼 무공 고수가 있거나 판타지 세상이라 소드마스터 같은 괴물이 있는게 아니니까. 감만
특출나게 좋은 녀석일지도 모른다. 수사관 지망생 같은 부류로. 그러면 더 귀찮은데?
학교 엘리베이터보다 어디 백화점 엘리베이터처럼 거대한 엘리베이터에 탄다. 앞으로 타서 뒤로 내리는
방식으로 7층에서 내리니 무슨 대학교처럼 교수 개인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건물 중앙으로 향하자
보이는 거대한 교무실.
“실례합니다.”
똑똑 노크를 하자 나무 문이 저절로 열린다. 문고리를 밀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파티션으로 나뉘어진
삭막한 공간이 아닌 고풍스러운 원목 가구들이 즐비한 집무실. 현대 배경의 교무실보단 판타지 세상의
영주 집무실 같이 생겼다.
“음… 네가 전학생이니?”
인자한 얼굴의 노파가 커다란 원목 책상 뒤에서 나를 맞이한다. 새하얀 머리카락, 얼굴에 가득한 부드럽
게 휘어진 주름살. 눈이 마주치자 마자 드는 생각은 인상이 좋다는 감상.
“네, 안녕하세요?”
원목 책상 위 명패에 눈이 간다. 대한능력자고등학교 이사장 전희민. 자개가 박힌 찬란한 명패와 이사장
이라는 직책. 교무실이 아니라 왜 이사장실이 나온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곱게 웃어보이는 그녀.
“전학생이 오는 건 드문 일이여서 얼굴 좀 보려고 했어요. 늙은이가 호기심에 시간을 잡아먹었네요.”
입가의 주름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하희탈처럼 웃는 상의 왜소한 노파. 하지만 오싹하고 등줄기를 간질
이는 느낌은 눈 앞의 상대가 매우 위험하다는 걸 알려오고 있었다.
“미색도 고운데 눈치도 빠르고 능력도 출중하고… 호호, 늙은이가 이리 말하면 희롱이 되려나. 뒤로 나가
면 될 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본능이 시키는대로 탐색따윈 하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려 문 밖으로 나간다. 아까와 같은 복도. 다시 등을
돌리자 교무실 문이 눈 앞에 있었다. 스스로 멍청하게 느껴지지만 다시 한 번 나왔던 문을 노크해 들어간
다.
“실례합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다시 문을 연다. 보이는 것은 뻔하디 뻔한 교무실. 넓직하고 깔끔하
지만 파티션으로 각 교사별 책상이 나뉘어 있었다. 저 멀리 국어라고 써 있는 팻말 아래에서 한 남성이 일
어나 내 쪽으로 다가온다.
“네가 전학생이니? 교무실까지 잘 찾아 왔구나. 음… 초여름이라 에어컨이 좀 춥니?”
‘… 학교에서는 뭐 하지 말아야 겠다.’
진정되지 않는 오싹거림을 감추고 담임이 될 거라는 국어 교사를 따라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어째
서인지 귓가에 늙은 노파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작품후기]
개강... 나는 강해졌다... 개강함...
남녀역전 하면 남창밖에 없던데
그냥 전소희 밀어주는 꽁냥물로 갑니다
물론 주인공 기준 꽁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