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89)

음몽과 악몽

그것은 악몽이었다. 정말로 별 것 아닌데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

땀을 뻘뻘 흘리며 오밤중에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곁에서 새근새근 잠든 소년의 얼굴을 감상하며 숨을 골랐다.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마지막으로 한 번 찾아 보겠다며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던 소년.

10시까지 돌아온다고 했는데 11시가 넘어서도 집에 오지 않는 소년.

처음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도망 친 걸까?

침대에서 사랑한다고 속삭인 건 다 거짓말이었나?

그 것도 아니라면 어떤 일에 휘말린 게 아닐까. 학생들이 많다는 게 안전하다는 건 아닌데.

심란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오자 점차 소란스러워지는 3구역의 경계선이 느껴진다.

하수구로부터 도망쳐 나와 기숙사에 침입하려다 잡혀가는 부랑자.

무언가에 잔뜩 할퀴어져 얕은 상처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그 추레한 모습.

겁에 질려 횡설수설하던 부랑자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며 경찰에 끌려갔다.

-하, 하수구에 식인 괴물이 있어!

평소라면 약물에 찌들어 헛것을 봤다고 치부했겠지. 2구역 슬럼가의 하수도는 약품 찌꺼기가 흘러 유독성 가스로 가득한 곳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소년의 냄새가 그 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냄새라니, 진짜 개도 아니고.’

심호흡 하듯 크게 숨을 들이쉬자 서늘한 소년의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그래, 서늘한 냄새.

열정적이고 뜨거운 밤을 보내도 언제나 소년의 체향은 차가운 냄새가 났다.

무슨 나무 향인지, 허브 향인지도 모를 그냥 차가운 냄새.

차가운 냄새를 따라 하수구를 달렸다. 콘크리트 벽에 발자국이 찍히고 합금 철판이 우그러질 정도로 달렸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남성의 울부짖음과 여성의 헉헉거리는 소리.

만약 소년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거기로 달려갔겠지.

누구를 구해야 한다는 고민 따위 없이 나는 소년에게 달려갔다.

기괴한 괴물들에게 둘러 쌓여 마치 고문을 당하듯 잡아 당겨지는 그 곳으로.

좀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에 시야가 분노로 흐릿하게 변했다.

어떻게 괴물들을 물리쳤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시야가 검게 변했다고 생각했을 때, 소년을 제외한 괴물들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형태도 알아볼 수 없었으니까.

박살난 살점들을 녹이는 유해 물질의 흐름을 보고 아무런 감정 따윈 들지 않았다.

다만 병원은 가지 않아도 된다며 기절한 소년의 가슴에 몇 번이고 뺨을 대 심장소리와 호흡을 확인하며 집으로 달려 들어 왔으니까.

그 뒤로부터 나는 악몽을 꾼다.

별 것 아닌 악몽.

어느 날은 소년이 가족을 찾았다며 떠나가고

어느 날은 소년이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또 어느 날은 집에 돌아왔더니 괴물들이 소년을 잡아먹고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싸늘하게 식은 소년의 시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작게 웅크리고 잠든 소년의 모습이 정말 달빛에 녹아 사라질 것 같아 그녀는 소년을 품에 안았다.

꿈지럭대며 가슴으로 기어오는 소년. 무언가 웅얼거리며 달싹이는 그 입술에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댄다.

운동할 때에는 불편하기만 했던 가슴을.

“후후훗, 정말 아기 같네…”

그녀는 소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뒤틀렸음을 자각한다.

평생을 함께 할 남편으로도 보고, 다정 다감하게 가정적인 새신랑으로도 보며, 반드시 지켜줘야 할 아들 처럼 본다는 사실 까지.

손도 대지 않고 보호해야 할 대상을 상대로 성욕과 모성애를 동시에 느낀다니.

누군가 듣는다면 손가락질 하며 욕할 것이다. 세상 모두가 그러겠지.

“그래 그래, 내 곁에 있으렴.”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소년이 그녀를 사랑해주는데.

달이 뜨고 져 햇빛이 베란다를 넘어와 소년을 괴롭힐 때 까지.

가슴 끝에서 느껴지는 쾌락 때문에 소년을 깨울지 말지 고민하던 히어로는 소년 단 하나만을 지킬 것을 속으로 되뇌었다.

아직까지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고 품에 안겨오는 그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소년을.

스탯창이 없다는 것은, 그러니까 게임 모드가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그 쪽 데이터에 한 번 빠진 리얼 월드 유저는 쭉 게임창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거든.

물론 스탯창이나 개인 정보 창 같은 모드를 싫어하는 고객이 더 많아 나는 그냥 플레이 하지만.

‘최하급으로는 안 되려나, 아니면 경험치가 아니라 업적 시스템인가?’

구울을 가지고 벌인 자작극의 날 이후 전소희가 변한 게 느껴진다.

문제가 있다면 ‘뭐가’ 변한 건지 모르겠다는 소리.

게임 스탯창도 없는데

어제에 비해 내 악력이 0.087kg 늘었어!

같은 걸 몸으로 아는 사람이있을 리 없다.

‘아 씨, 뭔가 강해지긴 강해졌는데…’

흡혈귀의 본능은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고 지잉지잉 울리는데…

문제가 있다면 저게 A급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레벨이 올라서 감지력이 더 높아진건지 모르겠다.

구울한테 습격 당하는 자작극은 한 번밖에 못하니까 기숙사를 대규모로 침공해야 하는데…

‘일주일치를 한 번에 박살낸 것을 보면 너무 오래 걸려.’

나름 무법지대인 슬럼가인지라, 굴라 두 마리가 습격해서 최하급 구울을 양산하는 것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

가끔 몰려다니던 구울 무리가 C급 빌런한테 걸려서 박살나는 경우도 있고.

자그마한 패거리 하나를 박살내도 10명 남짓.

일주일 걸려 만든 오십마리의 구울은 전소희의 발차기 한 번에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굴라를 대규모로 만들면 꼬리가 잡힐텐데…’

지금이야 고작 오백, 천명 죽었으니 꼬리가 안 잡히는 거지.

굴라가 된 여고생 두 명이 정신 관련된 초능력자 수사관에게 잡히면 일이 귀찮게 된다.

한 동네에서 천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하는데 그걸 ‘고작’으로 치부하는 걸 봐선 좀 많이 디스토피아에 가깝긴 한 것 같고.

‘음… 각을 봐서 아예 대규모로 터트려야겠다.’

일주일치 모은 구울이 발차기 한 번에 박살나는 걸 봐선 경험치 게이지가 있었더라도 1%도 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전소희의 휴대폰으로 닭볶음탕 만드는 법을 읽으며 요리를 한다.

“그, 내일 휴대폰 사러 갈래?”

“으음… 괜찮을까요? 저… 등록 말소 된 것 같은데.”

슬금슬금 주방으로 다가온 전소희가 말한 말에 반사적으로 대꾸한다. 생각해보니 골목에 던져진 꼴인데, 나 주민등록은 되어 있나?

농담삼아 정한 설정이긴 하지만 등록이 안 되어 있다면 거의 불법 체류자나 2구역 슬럼가 빌런이랑 다를 게 없는 신세인데.

“괜찮아, 이래뵈도 나 B급 히어로야.”

불안해 하는 것으로 보였을까,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주던 그녀가 과장스럽게 알통을 보여준다.

울끈불끈, 까지는 아니고 잘 짜여진 말근육 같은 팔뚝이 주방 전등 빛을 받아 요사스럽게 반들거린다.

그 모습에

웃으며 알통에 입을 맞췄다.

“네… 믿을게요.”

그나저나 요즘 자주 가까워 지는데.

이제 이 쑥맥이 드디어 남성의 몸에 익숙해 졌다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다.

처음에는 와이셔츠만 입고 요리를 하는데 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식탁에 앉았을 때도 눈동자를 필사적으로 돌려서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가.

“그래, 그래, 누나만 믿어. 그러니까 맥주 좀 가져갈게.”

이제는 드디어 스킨쉽이 익숙해졌는지 팔뚝에 입을 맞추자 마주 웃으며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은근 슬쩍 냉동실에서 맥주를 들고 도망친다.

판매용 데이터에서는 여성의 반응 하나 하나를 이렇게 세심하게 관찰한 적 없어 신선하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 맛에 한 우물만 파는 애들이 있는 건가?’

가끔 데이터를 팔지 않고 자랑만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신부 자랑하는 씹뜨억 새끼들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독하다 싶을 정도로 자랑하는 새끼들.

황제가 되어서 황후 하나만 맺고 처첩 없이 생활하다 귀족들한테 칼 맞을 뻔 하고.

정치 경영물에서 순애보로 데이트하느라 성접대 안 받아서 밉보여 뒷통수 맞을뻔 하고.

‘나는 절대 그런 짓 못하겠지만.’

물론 지금의 자신이 그런 순애보 데이터를 만드냐고 묻는다면 무슨 개소리냐고 되묻겠지.

능력의 종류에 따라 효능이 어떻게 다른가 알아보기 위해 면간중인 윗집 C급 히어로에, 경험치 도시락 만들라고 잡아 둔 여고생이 둘이다.

굴라가 된 여고생 둘의 속살은 차가우면서도 단단하게 조여오는 맛이 좋은데다

간혹 슬럼가에 있는 미녀를 덤으로 먹고 빠르게 치울 수 있어서 장 보러 가는 김에 자주 들리는 군것질 거리다.

그리고 전소희가 야근을 하는 날 밤에는 안개로 변해 윗집으로 파고든다.

꿈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 문 틈에 이쑤시개를 껴 놓거나,

십자가를 걸어 두는 둥 귀여운 짓거리를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매혹 능력을 피할 수 있을 리 없고.

나머지 시간에는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보며 전소희에게 얹혀 사는게 전부.

세상 물정을 좀 알아보려는 데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와서 드세요.”

‘신분증… 뭐 인맥으로 해결하려는 건가? 인터넷에는 A급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은데… 나도 히어로나 할까.’

벙어리 장갑을 끼고 닭볶음탕 냄비를 들려 하자, 어느새 소파에 있던 그녀가 바람마냥 다가와 등 뒤에서부터 냄비를 빼앗아 간다.

그 모습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뭐, 다른 남자랑 붙어 먹으려 들면 죽이면 되겠지.’

[작품후기]

라스트 오리진이라고 젖탱이 모바일 게임이 있는데

메카닉 디자인이 더 멋져서 여캐 다 버리고 로봇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갈색 피부 + 식스팩 + 탱크탑 거유 + 쫄바지인 캐릭터가 있어

잠궈두고 감상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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