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89)

히어로의 자택

그것은 꽤나 기분 나쁜 소문이었다. 2구역 슬럼가 깊숙한 곳, 미로처럼 얽혀 있는 하수도에 돌아다니는 괴물의 이야기.

히어로가 도시를 지키고 빌런이 시민을 습격하는 초능력자의 세상에서도 귀신과 괴물의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 있었으니까.

“야 들었냐, 너네 구역이랑 별로 안 떨어져 있는데.”

“아니 무슨, 300m도 아니고 3km에요. 말 같잖은 소리를 해야지.”

“어, 못하냐? 할 줄 알았는데.”

“1km 내의 움직임 파악이면 몰라도 3km 넘는 걸 분류까지 하는 건 무리죠.”

그 말을 마치고 맥주를 들이킨다. 분명 생맥주, 집에 있는 캔맥주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맥주인데 어째서인지 맛이 없다.

그 생각에 중증이다 싶어 쓴웃음이 나온다.

그녀에게 몰려드는 몇 개의 시선.

“하도 무식한 몸뚱이라 가능할 줄 알았지.”

“아니, 1km 움직임 감지부터 이상한 거 아니야?”

“내가 무슨 레이더 탐지기도 아니고…”

젓가락을 뻗어 붉은 횟감을 입에 넣는다. 비싼 참치라고 들었지만 그냥 물컹거리는 살덩이 같다.

근육질의 몸과 다르게 어린애 입맛인 전소희에게는 그닥 매력적인 안주가 아니었다.

아마 육체 강화 능력이 없었다면 똥배가 불룩하지 않았을까.

‘그거 생각해보면 다행이기도 하고.’

그랬다면 집에서 기다릴 소년이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상관없다는 듯 어루만졌을까?

불룩 튀어나온 물컹한 비계 뱃살을?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드디어 깨달았다.

그 어떤 생각을 해도, 결국 그 소년의 생각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아 맞다, 잔업 잔업. 저 먼저 갈게요.”

“뭔 잔업이야, 경비 공익 새끼가. 어 진짜 가냐? 야! 야야!”

“뿜빠이 돈은 보냈습니다~”

B급 히어로 동기가 급하게 부르지만 이미 그녀는 옷걸이의 경비 자켓을 손에 들고 구두를 신은 상태.

B급답게 빠르다는 동기의 중얼거림조차 등 뒤로 흘러가는 바람으로 쓸어버린 그녀가 밤거리를 빠르게 걸었다.

걷는다, 라는 표현을 하기에는 거의 마을 버스와 비슷한 속력의 그녀의 이동.

날 밝은 낮이었다면 심보 꼬인 사람들이 민원을 넣을 정도로 빠른 걸음 걸이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괜히 저녁밥 먹고 온다고 말해 뒀다고 후회하면서.

‘… 뭐지?’

그렇기에 그녀는 집으로 가는 길 옆의 하수도에서 느껴지는 수상한 인기척을 애써 무시했다.

‘내 구역도 아니잖아. 나는 여자 기숙사 경비라고. 없어진 애도 몰래 2구역 뚫다 당한 거고.’

그녀가 담당하던 기숙사에 살던 여학생 하나가 지금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서 죽었다는 사실도,

기운이 느껴지는 게 요즘 기숙사 애들이 떠드는 도시 괴담처럼 하수구 아래에서 느껴진 다는 것 또한.

‘그래, 나는 육체 강화 인걸. 탐지 계열 쪽 히어로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 구역도 아니고 옆 구역에 함부로 끼어들다가 골치 아프지.’

자기합리화를 위해 그녀는 술자리 안주로 쓰였단 기사들을 떠올렸다.

히어로, 혹은 정의로운 시민들이 넘치는 정의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타인을 도왔다가 오히려 덤터기가 씌워지는 뉴스 기사들.

자기합리화에 몰두하는 그녀는 몰랐다.

그녀의 선택이 그녀가 계속해서 떠올리는 소년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구울, Ghoul.

게임에서 걸어 다니는 시체 괴물로 좀비와 스켈레톤을 섞어 둔 괴물로 잘 나오는 녀석들.

원래대로는 살아 있는 식인 괴물인데 게임과 소설과 만화 등 각종 매체에 자주 나오다 보니 얼떨결에 언데드 속성을 얻어버린 녀석들.

수컷 구울과 암컷 굴라로 나뉘어서 번식도 하고,

인간은 대항하지 못할 초능력을 지닌 데다 회복력과 불사성까지 가진 반 정령,

반 악마의 강력한 존재였지만 게임과 애니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까 흡혈귀 따까리나 된 불쌍한 새끼들.

“그게 너야.”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리얼 월드는 그 방대한 용량에 맞게 독특한 방식으로 맵을 만든다.

우리가 모드라고 불리는 기본 설정을 집어넣으면 개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머지 공백을 전부 채우는 것이다.

다중 모드를 사용할 때 충돌이 나서 에러가 뜨지 않도록.

야겜 기반으로 짜인 세상이여서 그런지 굴라가 된 김세민은 창백한 미녀의 모습이었다.

심장 박동이 없고 혈색이 어두우며 손톱 끝에서 독액이 생성되는 것 빼고.

“그래도 되살려 줬잖아?”

“아니, 그게 무슨…”

당장이라도 보라색 액체가 뚝뚝 흐르는 손톱을 휘두를 것 같이 격양된 그녀였지만 금세 잠잠해진다.

생각한 것처럼 이 세상은 야겜 기반이니까. 그녀는 나와 섹스를 했고, 흡혈을 당해 사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플레이어의 ‘병력’인데.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시스템은 그녀가 내게 반항하는 걸 허용할 리 없었다.

죽었다 살아난지 고작해야 5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 그녀의 뇌는 이전의 것과 완벽히 바뀌어 있었다.

인간 김세민에서 굴라 김세민으로. 나는 그녀의 어머니… 아니다 아버지 같은 존재다.

상위종이자 주인이자 삶을 내려준 창조주.

어지간한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밥이 쌀밥이 아니라 오곡밥이라는 사소한 이유로 밥상 차려준 어머니를 살해하겠는가.

그녀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정상적인’ 굴라였고, 그녀는 고작해야 사소한 죽음 따위로 나를 공격할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될까? 여기 2구역 하수구라며? 뭐가 있어?”

“쥐새끼가, 아주 많지.”

슬슬 밖에도 나가본다는 핑계로 장보러 다니며 많은 것을 파악했다.

2구역 슬럼가가 왜 이렇게 거대한가에 대하여.

그 덕에 먹게 된 숫자가 거의 5백에 달하지만,

1주일 연속으로 흡혈한 전소희의 피의 발 끝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효능이기에 그냥 어느 순간부터 죽이기만 했다.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의 세상이었다. 조금 잡아당긴 모양의 한반도.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가 있어야 할 곳이 1구역이다.

히어로 연구 기관과 거대 기업들의 빌딩이 가득한 콘크리트의 숲.

2구역 강원도는 해안을 따라서 공장이 가득했고 그 아래인 4구역은 부산을 중심으로 5구역인 제주도와 상업지구와 무역지구가 중심이었고,

경기도 쪽인 3구역은 한반도의 학생이 전부 모이는 학업 지구였다.

무슨 소리냐면

“그래서 너를 이 하수구에 풀어 둔거고.”

1구역은 주거지가 거의 없다.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때문. 빌런이 초능력 테러를 하는 세상에서 히어로 본부 옆집보다 비싼 땅이 어디 있겠어.

2구역은 아예 공장만 있어서 주택가가 없다.

3구역 학업지구는 학생과 학생을 위한 편의성 장사를 하는 사람만 머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소희 같은 경비나 교사, 문방구 주인이나 교복 상인 등.

그렇기에 평범한 시민들은 대부분 4구역과 3구역 경계선 쪽에 산다.

물건 파는 가게도 많지, 번화한 유흥가도 많지. 땅값도 적당히 싸지, 교통도 꽤 좋지. 자식 생기면 바로 옆 구역이라 보러 가기 편하지.

그런데 왜 2구역 슬럼가에서 하수구에 처박혀 3구역을 깔짝댈까.

있는 거라곤 공장과 유독물질과 매연 밖에 없는 2구역에서 왜?

왜긴 왜야.

평범한 시민이 아니니까.

“다 물어. 죽여도 되고 강간해도 좋아. 따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따먹어. 니 마음대로 해.

C급까지는 이길 수 있을 거고, B급 만나면… 뭐, 유언 남기고 죽어. 부활시켜 줄게.”

오백을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괴담’ 수준으로 끝난다. 한반도 인구는 3억을 넘었고, 지구는 사용하지 않는 땅이 없는 상황.

초능력도 없었다면 아포칼립스였다, 진짜로.

그러니까 넘쳐나는 인구들, 우리 소희 경험치로 만들어야지.

그녀의 쫄깃한 살결이 생각난다. 딴딴, 딱딱 보다는 쫄깃이라는 단어가 더 입에 찰싹 달라붙으니까.

술 마실 때 슬쩍 희롱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도, 침대 위에서는 어떻게든 리드하려고 체력으로 버티는 그녀가 떠오른다.

“…알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그녀가 사라진다. 10분 정도,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기다리니 남성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시작부터 하나 따먹고 시작하려는 건가. 독성 체액을 지닌 보지로 내리 찍으면 평범한 남자는 까무러칠 텐데.

뭐 어때.

중요한 건 전소희였다. ‘나의’ 전소희.

첫 섹스를 했던 여학생도 죽여 하수구에 던져 괴물로 만들었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비명소리만 들려오는 NPC 남성 따위 동정심도 들지 않는다.

이걸로 동정심이 들었다면 폭군 데이터는 팔아먹지도 못했을 거다.

소수 민족 탄압한다고 한 10만명 묻었는데. 허공에 피를 뭉쳐 날려보낸다.

그래도 첫 부하인데 허망하게 죽지 말라고 혈액에 강화 버프를 덕지덕지 발라서.

그리고 마력으로 온 몸을 씻어낸다.

하수구 냄새나 피 냄새가 나면 안 되니까.

미리 쇼핑한 장바구니를 하수구 밖에서 집어 들고 숙소로 향한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노래,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엘리베이터에서 윗 집 히어로를 만나 인사를 한다. 세희가 야간 근무를 설 때 몰래 가서 피를 빠는 대상이다.

C급 히어로지만 치료와 복구에 특화된 여성이라 먹기 좋았다.

야밤에 몰래 들어가 약한 매혹을 걸고 피를 빨았으니, 그녀는 나를 보고 음몽을 꾼다고 생각하는지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에, 예, 예. 좋아하는 밴드라…”

난잡한 그래피티가 새겨진 락 밴드 티셔츠와는 다르게 예의 바른 아가씨라 그런지 가슴골을 몰래 본다던가,

고간을 노려보는 일 따위는 없는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내게 고개를 다시 꾸벅 숙여 보인다.

우스꽝스럽게 벌렁이는 콧구멍이 보인다.

오늘 밤 저녁을 먹은 소희는 야간 근무를 갈 것이고

‘오늘은 어떤 반응을 보여주려나.’

그녀는 야밤에 방문한 나로 인해 자신이 엘리베이터에서 소년의 냄새를 맡았다고 병신 마냥 야한 꿈을 꾸는 걸 자괴감에 몸부림치겠지.

도마 위에서 대파를 썰며 콧노래를 부른다. 전소희가 오고 있고, 김세민은 열심히 죽이고 있었으며 윗 집에서는 발정의 향이 풍기기 시작한다.

정말로 좋은 하루였다.

[작품후기]

앗... 아앗 3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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