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의 자택
여자 기숙사 경비원 전소희, B급 히어로.
인류 상위 1%의 초능력자이며 26살부터 30살까지 의무적으로 사회봉사 중이며 지금은 2년차인 27살.
일 나가 있는 동안 노트북을 사용해서 검색해 본 결과 히어로 공익들을 히익이라고 놀림.
‘별 이상한 곳까지 다 구현이 되어 있네.’
의외로 전소희는 나를 덮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했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가슴과 허벅지를 애무한 것 만으로 몸을 바르르 떨던 그녀는, 갑자기 심호흡을 하더니 완전히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육체 능력이 뛰어나다 뛰어나다 했지만,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기절시켜 잠들어 버리는 것은 예상조차 하지 못한 반응.
히어로의 도덕심과 성욕 사이에서 갈팡지팡 흔들리더니 그대로 꿈 속으로 도망쳤다.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 나름 데이터 팔이의 유망주인 나다.
야한 데이터는 가격이 더 붙기에 카사노바 플레이부터 구미호마냥 나라 하나를 아랫도리로 망치는 데이터까지 전부 팔아 봤는데.
아무리 주 종목이 아닌 남녀역전의 세계라지만 고작해야 숫처녀 하나를 애무하는데, 그걸 무시당한 것이다.
‘너한테는 내가 따먹히고 만다, 씨발년.’
잠든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버릴까, 아니면 이대로 박아버릴까 고민했지만 자존심은 그 것을 거부했다.
여기서는 정말 자존심 싸움이 된 것이다.
그녀를 살펴본 결과 히어로라는 직종에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인류 상위 1% 히어로의 자부심에 뿌리를 둔 그녀의 자제심과 데이터 팔이인 나의 자존심 싸움.
“오셨어요?”
그런 실없는 생각도 잠시. 복도를 울리는 묵직한 발소리에 이어 현관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제복의 단추를 풀며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는 그녀가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신발을 밟아 벗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춘다.
“아, 어… 그러네. 오늘은 김치 찌개야?”
“네, 김치가 잘 익었던데.”
돼지 목살을 큼지막하게 썰어 푹 끓인 김치찌개에 계란 찜과 쌀밥.
물론 이 메뉴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커다란 와이셔츠를 입고, 그 위에 앞치마만 걸친 상태니까.
끓어오르는 계란 찜의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는다.
등 뒤로 날아와 꽃히는 시선. 정확히 말하자면, 와이셔츠 끝자락에 가려져 슬쩍슬쩍 드러나는 나의 허벅지 윗 부분에.
그녀는 B급 히어로에 육체 강화라 속옷 또한 특별 제작된 스포츠 속옷을 입는다.
스판 반바지 같은 팬티와, 스포츠 브라. 그 팬티는 내가 받아서 입은 상태.
그녀는 자신의 와이셔츠 아래에 내가 입은 속옷이 자신이 건넨 검은 스판 팬츠 인걸 안다.
신장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이 밑에 있는 걸 열심히 상상하는 모양이다.
“맥주, 시원하게 해 뒀어요. 드실 거죠?”
“어, 응… 고마워.”
“뭘요.”
공익이라는 이유로 히익 히익 놀림받는 그녀라 하더라도, 일단은 B급 히어로다.
경비원 숙소 주제에 32평 방 세개짜리 아파트고, TV는 벽걸이 TV에, 소파도 푹신한 가죽 소파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가구와 이불 들에는 청결 유지 기능이 첨부되어 있다고 한다.
공익인데 억대 연봉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그녀는 내 의복을 사주길 원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거절했다.
입 밖으로 꺼낸 이유는 독신녀인 B급 히어로가 남자 속옷을 사기 시작하면 의심을 받는다는 이유였고, 속으로 생각한 진짜 이유는
‘고전적인게 직빵으로 먹히기는 하네.’
그녀의 취향에 있었다.
요 몇일간은 탐색전이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10살 어린 남자 동거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슬금슬금 탐색을 했으며,
나는 그녀가 무엇에 꼴리는지 탐색을 했다.
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아 안심하고 있겠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노트북과 휴대폰에서 그녀가 봤던 자주 본 야동을 탐방한 상태.
그녀는 전형적인 체육인이었다.
여중 여고에 대학은 여초과인 체육과. 히어로로 각성하지 않았다면 저기에 군대가 더해졌겠지.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부, 고등학생 시절에는 유도부. 공부가 아닌 체육인 특채로 대학까지 간.
청춘을 구가해야 할 학창 시절은 땀내나는 여편내들과의 훈련 밖에 없었고, 남들이 데이트 다닐 때 그녀는 합숙 훈련을 다녔다.
자신이 B급 히어로가 될 것이라는 미래 예지 능력 따윈 없으니까 전력으로 선수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
“한 잔, 받으세요. 맥주는 잔에 따라 마시는게 더 맛있어요.”
“너, 학생이잖…”
“에이, 2구역이 아니더라도 맥주 한 잔 정도 하죠.”
화려한 기술 따윈 필요 없었다. 밤 중에 이불로 기어들어와 여자를 리드하는 요부도 필요 없었다.
그녀가원하는 것은 가정적인 남성.
유리컵을 기울여 맥주를 따른다.
6할까지는 벽면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2할은 맥주 캔을 들어 올려 조금 높은 위치에서 기포가 나도록.
잔에는 가게에서나 내올 법할 모습으로 맥주가 담겼다. 냉동실에서 1시간 정도 차갑게 만든 맥주와, 같이 얼려 둔 맥주잔.
그녀가 꿀꺽 침을 삼키더니 무의식에 가깝게 손을 뻗는다.
리얼 월드에서도, 현실에서도 자주 써먹던 자취생 요리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푹 빠져들었다.
‘나는 네가 가정주부물에 푹 빠진 걸 알고 있단다.’
목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맥주에 몸을 떨며 키야, 하고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는 그녀.
첫날 밤처럼 끈적하게 얽혀 오는 모습이 없자 조금씩 마음을 여는 모습이 덩치와 달리 귀엽기까지 하다.
김치찌개를 한술 푹 떠서, 쌀밥 위에 뿌려 슥슥 비비더니 크게 한 입 먹는 모습은 아가씨보단 아저씨에 가깝다.
그 뒤에 다시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계란 찜으로 입가심을 하는 것까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여기는 그런 세상인데. 다시 한 번 맥주잔에 맥주를 따른다.
‘야동의 90%가 가정주부랑 새신랑이랑 신혼물이라니, 너무 빠진 거 아닐까.’
뭐 리얼 월드를 하는 시점부터 야동 따위 보지 않으니 모르겠다.
그녀의 옆에서 조신하게 무릎 꿇고 앉아 맥주를 채우다 다 떨어져 냉동실로 새 맥주 캔을 가지려 가기 위해 일어선다.
다시, 찰랑이는 와이셔츠 밑단으로 시선이 날아와 박힌다.
‘저 쫄보를 어떻게 떨어뜨린데?’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이 상황에 너무 심각하게 만족하고 있다는 점.
정말 2구역 슬럼가에서 발정제라도 찾아와서 먹일까, 했지만 B급 히어로 상대로 불법 약물을 투여했다가 일격에 박살이 날까 두려웠다.
‘아니지, 씨바. 계속 안아주지 않는 게 무서워서 그렇다 하고 몰래 맥주에 타? 조금 약한 최음제 종류로?’
물론 두려움보단 오기가 컸다.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저 여자 하나 함락을 못 시켜.
고작해야 뒷골목 약에 의존 해야지 여자를 공략할 수 있다고?
쪽팔려서 데이터를 팔지도 못할거다.
‘저 씨발 셀프 기절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설거지를 하는 동안 옷 벗는 소리와 함께 물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생각이 나서 그릇 씻는 거야 내일 해도 되니 미뤄두고 나 또한 옷을 벗었다.
안에서 들리던 몸 씻는 소리가 멈추고 물소리만이 들려온다.
“들어 갈게요.”
“어, 왜? 왜!?”
앞치마도 속옷도 와이셔츠도, 그녀의 옷 위에 대충 던져두고 욕실 문을 연다.
그녀가 허겁지겁 문을 닫으려 하지만 나는 이미 문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상태.
초인이 내가 오는 소리를 못들을 리 있나. 그래서 손가락을 먼저 빼꼼하고 끼워 넣었다.
그녀가 문을 닫으면 내 손은 박살 나도록.
씻겨 나가지 않은 비누 거품 너머로, 그녀의 매혹적인 몸이 드러난다.
커다란 키에 맞게 높게 올려 둔 샤워기를 두고, 욕조에 주저 앉아 몸을 가리지만, 알몸인 상태로 몸을 가린다고 뭐 얼마나 가려지겠는가.
“등, 밀어드릴 게요.”
혼자서 쓰기엔 커다란 욕조 안으로 발을 내딛자, 그녀가 반쯤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닥에 떨어진 샤워 타월을 주워 든다.
반쯤 포기한 듯, 샤워기의 물을 얼굴로 맞으며 멍하니 서 있는 모습에 등 뒤에서부터 그녀를 껴안는다.
이불 속에서 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촉. 매끈한 피부 위의 비누 거품이 내 몸에 문질러진다.
주워 든 샤워 타월을 벽걸이에 걸고, 손에 비누 거품을 낸다. 꿀꺽, 그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다시 커다랗게 들린다.
조금 팔을 위로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살짝 이끈다. 그녀가 힘 없이 이끌려 와 욕조에 엉덩이를 걸치고 발을 밖으로 뻗는다.
옴폭 들어간 쇄골로 손을 뻗어 살며시 문지른다.
손바닥에서 일어난 비누 거품이 쇄골 안에 고여 그녀의 겨드랑이 선과 위로 볼록 솟은 물방울 모양의 가슴 옆으로 타고 흐른다.
마치 마사지를 하듯 어깨를 살살 주무른다.
어깨로부터 팔뚝으로, 팔뚝에서 겨드랑이로, 겨드랑이에서 그녀의 옆 가슴으로.
커다란 가슴이 푸릉하고, 거품에 미끄러진다.
고무 공처럼 탄력이 있다 보니 거품을 듬뿍 묻힌 손으로는 잘 잡히지 않는다.
손으로 잡을 생각을 포기하고 손바닥을 쭉 펴 꾹꾹 누르듯 문지른다.
“내일은… 쉬는 날, 맞죠?”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인다.
이부자리도 아니고, 욕실에서 알몸으로 잠들 수는 없을 거다.
도망칠 곳이 사라졌다면 그녀가 버틸 수 있을까.
커다란 가슴을 문지르다 점차 아래로 아래로 손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