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89)

여학생 기숙사

24배, 48배, 그리고 100배. 내가 리얼 월드에서 불법으로 조절한 시간의 배율이다. 내가 리얼 월드를 하며 데이터 팔이를 한 시간이 3년인데,

그 중 1년 2개월을 24배로, 1년 10개월을 48배로 지내왔다.

나는 리얼 월드 속에서 116년을 살았다는 소리가 된다.

내가 이 데이터 팔이를 하며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억 단위. 한 달에 데이터 하나 거하게 뽑으면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기에 많은 녀석들이 달려든다.

그 결과?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직행해서 독방에 감금 엔딩이다.

괜히 불법이 불법이겠는가. 이 짓거리로 돈도 벌면서 제 정신 유지하는 것 또한 재능이다.

진짜 제정신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어쩌면 지금 이 상황도 로그아웃 기능을 활용하지 않고 데이터를 팔아 치우기 위해 내 스스로 암시를 건 걸지도 모르고.

1년 2개월, 14개월을 24배로 해서 336개월

1년 10개월, 22개월을 48배로 해서 1,056개월

그리고 불법 배율을 사용하기 전에도 보냈던 몇 년의 시간.

10평짜리 독방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가던 청년이, 살인과 학살에 익숙해지다 못해 지루해져서 그만 두게될 정도의 기나긴 시간이란 소리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일에 감흥이 생기지는 않는다.

기숙사의 여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야, 뉴스 봤냐? 이번에도 저기 2구역에서 시체 존나 발견 되었다던데.”

“벌써 백 명 넘겼나? 그런데도 남아 있어?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누군가는 그 더러운 범죄자의 골목의 몰락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확실히 B급 이상의 히어로가 범죄자 싫어해서 저지른 원한 범죄라니까!”

“B급 이상이면 연봉이 억대를 넘어서 월봉이 억대인데 뭐 하러 그딴 짓을 하냐?”

“그러니까 원한이지 이 병신아!”

누군가는 이 일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떠들었으며

“저거, 다 넘어오는 건 아니겠지? 요즘 소란스럽다 던데.”

“그래도 히어로 협회가 파견 오겠지. 여기 3구역이야, 3구역.”

몇몇 사려 깊은 아이들은 범죄자들이 사방 팔방 흩어질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이 모든 일의 주범이 자신들의 침대 밑에 숨어 살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그 시체는 내 작품이고, 나는 아직도 기숙사에 숨어 살고 있었다.

‘저 경비원년, 어떻게 따먹지. 존나 무섭네 진짜.’

슬럼가와 기숙사를 돌며 실험한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덕에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기 때문에 학생 그림자 속에 들어가면 발각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통금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밤 늦게 담을 넘으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붙잡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

‘진짜 씨발, 혼자 모드가 달라요.’

민간인은 C급 히어로도 보기 힘든데, 이 C급 히어로는 인간보다 조금 뛰어난 정도다.

경차를 혼자 들어올리거나, 우사인 볼트보다 3초 정도 빨리 달리던가. 의학과 과학이 지정한 ‘인간의 한계’를 넘은 것이 C급 히어로다.

그 위로는 B급 히어로. 대표적으로 저 경비원. 아파트 4층 높이를 도약 한 번으로 뛰어오르고,

100m 넘게 떨어진 곳에서 담을 넘는 학생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포착해 100m를 2초안에 달려서 도착하는 괴물.

나는 지금 백 단위를 죽이고 흡혈해 겨우 염동력이 50m범위가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저 미친년은 권풍으로 50m 범위 내의 범죄자의 명치를 후려 친다.

다른 버전에서라면 약해빠진 머저리겠지만, 이쪽 버전에서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인류의 1%짜리.

대체 왜 인류의 상위 1%짜리 괴물이 고작해야 고등학생 기숙사를 지키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무튼 여기 있는데. 저걸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돌며 관찰하다 그녀의 혼잣말을 듣고 드디어 깨달았다.

“아오… 이딴데 처박혀서 진짜, 애인도 없고 외롭다아아.”

경비실에 처박혀, 기지개를 피며 책상에 엎어지자 풍만한 가슴이 찌부러지며 쿠션처럼 그녀를 받쳐준다.

책상 모서리에 눌리는 가슴이 조금 아파 보이지만, B랭크 히어로의 육체는 고작 그딴 것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까 씨바, 여기 남녀 역전이지?’

그냥 미인계를 쓰면 되는구나.

2구역 슬럼가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공업지구인 2구역이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3구역에서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한 가출 청소년부터 소매치기나 좀도둑, 위로는 살인범이나 C급 빌런까지.

온갖 인간 군상들이 소란없이 숨어사는 복마전과도 같은 곳.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기에 매우 좋은 사냥터가 된다는 소리였다.

“…누구냐? 음, 남학생?”

날카로운 눈초리가 가슴쪽을 슬쩍 흩어본다. 교복에 달린 이하루라는 명찰에 시선이 잠시 왔다가,

풀어헤쳐진 와이셔츠 단추에 머문다. 역시 초인, 몸매 스캔도 순식간이네.

“도와주세요…”

밑단이 헤진 교복 바지, 뜯겨진 벨트에 풀어헤쳐진 와이셔츠와 낡은 마이.

가출청소년 패거리를 통째로 먹고 비슷한 체형의 교복만 뺏어 입었다.

흡혈을 하고 얻은 기억으로는, 슬럼가로 가출한지 꽤 되어서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 처리가 되었으니 사진이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니?”

“그게 그… 이상한 괴물한테, 전부 죽어서…”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소매를 쥐었다. 고개를 내리 깔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하지만 예민해진 감각에는 이제 그녀가 내 가슴팍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져 온다.

슬쩍,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하고 고개를 다시 든다.

“기숙사 경비, 경비원 맞죠? 경비원이 B급이라고 들었어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초인은 초인인 걸까, 고개를 들기 위해 목 근육을 움찔거린 순간 가슴에 머무르던 시선이 순식간에 눈을 맞춰온다.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고 당황했는지 다시 한 번 똑같이 물어온다.

“그, 무슨 일인지 설명할 수 있겠니? 경찰 불러 줄까?”

아직은 여학생들이 기숙사에 없을 시간.

그리고 곧 그녀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무리 초인인 B급 히어로라지만, 24시간 내내 경비실에 처박아 두면 인권 문제로 난리가 난다.

아니, 인권위가 들고 일어나기 전에 히어로 눈이 돌아가면 더 큰일이 되니까.

‘얘가 공익이라고 상상도 못했지.’

100m를 2초에 달리고 아파트 4층을 한번에 뛰는 신체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를, 의무라는 이름으로 여고 공익으로 처박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한 세상이었다.

물론 이 행위가 초능력자와 민간인의 거리감을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 또한 안다.

그게 히어로들이 불만이 생기더라도 참는 이유겠지.

“저, 경찰은 안되요. 제발, 다 설명할 테니까 저 좀 지켜주세요.”

“아니, 설명을 해 줘야…”

“집 좀 빌려주세요. 동거하게 해 주시면 다 설명드릴게요.”

“뭐?!”

건장한 체형에 쭉 뻗은 팔 다리에 살짝 탄 갈색 피부.

외모만 보면 유부녀 물에 나올 것 같이 생긴 우아한 외모인데,

경비실에서 제복 갈아 입는 걸 훔쳐봤을 땐 무슨 식스팩 헬스장 회원이라는 야동 제목이 떠올랐을 정도.

“어, 아니 남자애가…”

소매를 놓고 몸을 돌린다. 물론 다른 곳으로 떠날 이유는 없다.

이런 꼴릿한 대상이 눈 앞에 있는데 어느 세월에 이 넓은 구역을 다 돌아다니겠는가.

사역마로 쓸 박쥐나 쥐새끼 하나 불러내지 못하는 연약한 몸으로.

“윽… 싫으면, 다른 곳…?”

하지만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속도로 손목을 잡혔다. 힘 조절에는 자신이 있는지 부러진다던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무서운 것은 감각에도 잡히지 않는 그 속도.

흡혈귀의 직감으로 뒷골목에서 권총도 피했는데.

‘미친년이, 권총보다 주먹질이 빠르다고?’

오싹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이 진짜 한 방울 또르르 흐른다. 아니 밸런스를 짤 때 좀 생각을 하고 짜야지.

B급부터 이러면 S는 어쩌려고 이런 모드를 만든거지?

하지만 흐르는 눈물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는 망설이면서도 나를 끌고 간다.

“알았어, 알겠으니까… 집에 가면 꼭 설명해 주는 거다?”

손목을 잡고 나를 끌고 가는 그 뒷모습이 그렇게 박력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리얼 월드에 찌든 뇌는 제복 차림의 여성에게 끌려간다는 상황 만으로도 가슴을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계획한 건데 왜 이리 불안한지.

교대 인원이 오기 전이라 집 주소를 메모장에 써 준 그녀였지만,

먼저 가 있으면 뭔가 그림이 이상할 것 같아 기숙사 옆 골목에 쪽지를 쥐고 숨어 있었다.

연극을 하려면 확실한 게 좋겠지. 내 감각에도 그녀가 경비실에 있는게 느껴지니, 반대로 그녀 또한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골목에 기대 눈을 감고 계획을 짠다.

여고딩보다 더 능력 좋고 취향인 물주를 찾았으니 캐릭터 메이킹을바꿔야지.

하늘에서 내려온 뱀파이어 미소년은 하룻 밤의 추억으로 남겨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짜내는 것이다.

[작품후기]

갈색 피부, 식스팩, 거유에게 리드당함 ㅗㅜㅑ

에이펙스 레전드가 매우 재미있는데요

하루 한 편은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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