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89)

여학생 기숙사

검은 생머리의 소녀가 금발로 물들인 양아치로 보이는 소녀에게 대차게 욕을 먹고 있었다.

과도할 정도로 굽신거리는 소녀. 그 모습만 보면 마치 돈이라도 뺏기는 모습이지만, 상황을 알고 보면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아니, 씨발아! 처녀 새끼가 정력만 존나게 좋아서 진짜!”

“아오… 미안하다니까! 나도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지.”

검은 머리의 소녀, 김세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축축한 침대가 싫다고 뽀송한 룸메이트의 침대에 누워, 이불 한 겹만 덮고 유혹하는 미소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건 맞으니까.

남의 침대에서 질펀하게 섹스를 하다 시트를 다 망쳐 놓다니.

“나처럼 좀 밖에서 치던가! 하다 못해 바닥에서 치던가, 씨발 침대 두개를 다 이 지랄로 만들면 밤에 어디서 자게!

처녀 딱지 뗀 건 축하하는데 씨발, 환기도 안 시키고 진짜.”

“미안, 진짜 미안. 냄새에 익숙해져서 몰랐지.”

“오징어 찌는 냄새로 미치겠는데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오래 붙어 먹은 건데?”

뱀파이어 미소년을 스스로의 힘으로 사정시켰다. 그 고양감에 들뜬 것도 잠시. 그대로 뒤집혀 깔린 상태로 어젯밤처럼 보내다 기절.

그렇게 눈을 뜬 게 오후 3시쯤이었다.

부랴부랴 시트를 세탁기에 처박고, 방과 욕실 바닥을 닦아내지만 학교도 땡땡이 친 룸메이트가 돌아와 버려서 그대로 들킨 것이다.

“씨발 진짜… 처녀새끼가 어디서 절륜한 남자 하나 꿰차고 오더니 진짜… 부럽게 씨발.”

“거기서 부럽다가 나오는 거야?”

“그럼 안 부럽겠냐? 시트 두개를 작살 낸 것도 모자라서 욕실도 더럽히고. 몇 번을 세운거야?”

공용 세탁기까지 시트를 들고 가는 건 아직 다른 녀석들이 하교하지 않아 성공한 상황.

젖지는 않았지만 찝찝하다는 이유로 햇빛 닿는 창가에 매트리스 두 개를 세워 어두컴컴해진 방 안에서 캔커피를 따며 금발의 여학생,

이소정이 김세민에게 묻는다.

“그래서, 좋았냐? 아니, 사진 있냐?”

“사진, 있지…”

사진, 무슨 사진을 찍어줬더라. 괜히 또 꿈이었나? 같은 멍청한 반응 하지 말라고 사진 몇 개 찍긴 했는데.

어깨동무하고 같이 이불 덮은 사진이랑, 김세민 가랑이 사이에 들어가서 혀로 핥는 사진이랑 또…

부럽다는 둥 괴성을 지르는 소리와 찰진 피격음에, 저 찰진 허벅지가 로우킥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까지만 알아차리고 나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염력 사거리 10m짜리, 연약한 흡혈귀에게는 많은 양의 혈액이 필요했다. 섹스와 흡혈을 동시에 한다면 효율이 조금 더 좋은 것 같았지만,

그냥 흡혈만 해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욕실에서 김세민의 허벅지를 깨물었을 때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지금은 룸메이트에게 계속해서 구박받다 툭탁거리는 김세민이 아니라, 근처의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갔다.

건물은 총 5층이고 계단식, 한 층에 10호실. 50개의 방이니 100명의 여학생이 이 건물에서 지낸다는 소리였다.

최면 능력도 매혹 능력도 없이 그림자에 기어 들어가는 방식으로 누구를 습격할 수 있을까,

밖에 나가 어제 그 슬럼가로 갈까 생각했지만 기숙사를 돌다 술 냄새가 나는 방으로 기어들었다.

“아오… 머리 아파.”

“그러게 누가 그렇게 오기를 부리래?”

흐트러진 차림의 여학생 둘이 퀭한 안색으로 드러 누워 있었다.

하나는 침대 위에 엎어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 앉은 상황.

바닥에 주저 앉아 있던 녀석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뱃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내장을 뽑아내는 듯한 구토 소리.

“씨발년, 그렇게 게워내고도 아직까지도 남아 있나…”

솔직하게 말해서 보기 좋은 외모는 아니었다. 미남 미녀의 비율은 건드리지 않은 것인지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외모인 여학생들이었으니까.

술에 쩔어 초췌해진 얼굴은 그닥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 첫 상대인 김세민과 그 룸메이트인 이소정이라는 여학생의 외모가 뛰어난 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고3 학생이 몸매를 완벽하게 가꾸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고.

외모만 보면 둘 다 피부 트러블도 없고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하게 잘 모여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아오, 시끄러! 머리 울리니까 나 잔다!”

“그러던, 오웨에에엑!”

고작해야 오후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술에 취한 두 명에게는 시간 따위는 전혀 상관 없어보였다.

한 명은 화장실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그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듯 이불에 머리를 처박았으니까.

‘…잘 먹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에서 토하는 여자애를 어찌 할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이불로 얼굴을 가린 여자애의 얼굴을 염동력으로 짓눌렀다.

“뭐, 뭐야 씨발! 누구야!”

뭔가 외치지만 계절에 비해 두꺼운 보급형 이불에 가로막혀 화장실 안 까지는 닿지 않는다.

일어나려고바둥거리지만 실패. 아무리 하급이라 하지만, 초능력자도 아닌 민간인이 술에 찌든 열악한 육체로 염동력을 이겨낼 리 없다.

‘애당초 하급 흡혈귀 염동력이 술 취한 고삐리한테 통하지 않으면 흡혈귀가 멸종했지.’

상체를 일으키려는 노력을 하지만 다리만 바둥거린다. 멋을 부리느라 차려 입은 미니스커트가 뒤집히고 버클이 커다란 벨트가 덜걱거리며 밀려난다.

피야 어디에서든 빨 수 있으니까 한 쪽 다리를 마저 붙잡는다.

야시시하게 차려 입은 레이스 달린 팬티에 눈이 간다.

‘외모가 조금 떨어져도, 이런 모습을 보면 뭔가 성욕이 솟는단 말이지.’

“이, 개새끼가, 너 누구야 씨발! 죽여버린다! 풀어 씹쌔꺄!”

얼굴은 화장이 진해 눈살이 찌푸려지는 편이고, 몸매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다 입은 걸레를 문 양아치지만.

뒤집혀 올라간 미니스커트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야시시한 레이스 속옷 너머로 살짝 비치는 모양새는 보기 좋으니까.

‘물론 여기서 할 시간은 없지만.’

이를 세워 그대로 종아리를 깨문다. 염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멈추는 반대쪽 다리.

유일하게 팔딱이던 오른쪽 다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이불 위로 축 늘어진다.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흡혈을 그만 두고 다시 침대 아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우왁, 미친. 침대 위에다 싸지르고 쳐 자고 있네. 냄새나 미친년아!”

흡혈을 하면, 입 안에 달콤함이 퍼진다.

분명 피 라는 것을 알고, 쇠 냄새 비슷한 피비릿내라는 걸 알면서도 혓바닥은 꿀이나 초콜릿을 먹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마치 혓바닥에 닿으면 사라지거나, 향기만 들이 마시는 것 처럼.

분명히 피는 마셨는데.

“사, 살려줘…”

흡혈 한계 없음, 성장치 낮아지지 않음.

이거 그냥 섹스 말고 흡혈만 죽자고 하는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결국 기숙사에서 2구역 슬럼가까지 그림자를 타고 나온 나의 실험 결과였다.

‘별 씨발, 경비원 주제에 뭐 그리 강해?’

여학생 기숙사의 경비원은 30대의 여성이었다. 커다란 가슴에 쭉 빠진 다리, 택배를 옮길 때 슬쩍 보인복근까지 몸매도 외모도 완벽한 여성.

당장이라도 이를 박아 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100명 중 술에 꼴은 3명의 피를 흡혈하고 나서, 그림자를 통해 복도로 나오자 마자 그녀가 벽을 타고 뛰쳐 올라왔기 때문.

도망치는 것 자체는 들키지 않았지만,통금 시간 이후에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는 이유로

짧은 곤봉을 들고 4층을 도움닫기도 없이 뛰어 올라오는 괴물과 육탄전을 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다.

“너, 너 뭐야 씨발”!

“닥쳐 이 새꺄! 자극하지 말라고!”

두 명이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약간의 데쟈뷰를 느낀다.

그때 그 중년 여성도 그렇고, 이 양아치 5인방도 그렇고 여기는 무릎 꿇는게 되게 익숙한 모양이다.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나?

“그, 조직에서… 등급 높은 빌런이랑 엮이면 위험하니까 바로 꿇으라고 교육시켜서…”

“와, 그런 교육도 해? 머리 좋네.”

한 명이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저분한 피부는 문신으로 가득하다. 아마 저 더러운 나시티를 벗기면 몸도 저렇게 문신으로 덮혀 있겠지.

얼굴은 물론 팔 다리의 피부도 지저분하다. 여학생들은 깨끗한 피부라도 있지, 얘들은 뭐 끔찍한 수준.

“좀 씨발, 씻고 다녀라. 먹기 존나 불편하네 진짜.”

이미 세 명은 피 한 방울 없이 말라 비틀어진 상황. 사람 피가 몇 L더라? 4.5? 세 명이면 거의 15L를 마신건데 배가 부르지는 않다니.

아니, 애초에 흡혈귀가 되니 생리 현상이 멈췄다고 봐야겠네.

“살려줘! 하지마 이 괴물아!”

“괴물 맞으니까 아가리 닫아, 똥내 난다 씨발년아.”

콰득, 염동력으로 벅벅 긁어 때 묻은 피부를 최대한 긁어내고 팔뚝을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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