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09화 (30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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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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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게 걷고있었던 나와 그녀의 길을 가로막은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와 같은 그룹 멤버이자 나 역시 아는 사람이기도 하였던 수아였다.

세희는 그녀의 등장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은 눈치였다. 더군다나, 왜 그녀가 이 곳에 왔는지 대충 눈치를 챈 듯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지..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수아는 나와 세희의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한적한 곳으로 우리들을 이끌었다.

학교를 가야되는 이 시점에서, 그녀는 무엇인가 중요한 얘기를 말하려고하는 듯 심호흡을 길게 내쉬더니, 천천히 닫혀있던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언니, 오빠랑 헤어져야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난 머리가 띵해져왔다. 왜? 어째서? 라고 느낀 순간 난 눈치챌 수가 있었다. 무척이나 당연한 이유이지않은가. 굳이 수아까지 와야될 정도였다면,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자, 어찌보면..무조건 부딪혀야 할 난관이었다.

"역시…그런거였니?"

"네 언니…솔직히 저도 언니랑 오빠가 알콩달콩연애하는 것을 응원하고 있는 입장이지만…아시잖아요. 우리는 '아이돌'이라는 거"

"그래. 우리 망할 회사는 그렇지"

"그거 알아요? 언니랑 오빠가 사귄다는 거 몇 시간만에 인터넷에 일파만파로 퍼졌다는 거? 인터넷에서도 난리났고…"

그렇다. 연예인은 '공인'이다. 이러한 스캔들 하나에도 천당과 지옥을 왔다리갔다리하는 것이 바로 이 연예인이다. 그리고 기자들은 옳다쿠나하고 물어뜯으려고 난리부리고, 그리고 그 기자들이 미친 듯이 올린 것들이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이 보고 '세뇌'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 우리나라의 연예계라고...그녀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나야 연예계의 명과 암을 모르니 그저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다가오니 나로서도 씁쓸한 웃음만이 밀려올 수 밖에 없었다.

"알아. 그래서 일부러 안봤어"

"요새 공개연애도 많아지고 했다지만…특히나 회사가 워낙에 보수적이고…게다가 저희는 한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잖아요? 그러니 더욱 더…"

"그래서 수아 네가 그들을 대신해서 온 거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요 언니. 하지만…전 두 분을 언제나 응원하고 싶어요. 다만…당분간은 거리를 좀 두라는 얘기예요. 어차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식을 테니까"

"만약에 싫으면?"

"그러면…멤버 탈퇴도 생각해보셔야해요…요새 멤버를 교체한다느니 뭐라느니 소리가 많아요…그리고 계약 불이행에 관한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얼마든지 하라고 해"

"세희야!"

"하지만 언니!"

나는 그녀의 단호한 말에 깜짝놀라 외쳤다. 나랑 사귀고 있는 문제로 그녀의 연예계 생활에 절대 지장을 주고싶지않았다. 게다가 소송까지 가고, 멤버까지 교체된다는 소리는...쫓겨난다는 소리이지않은가.

"왜? 수아야. 나 알잖아. 난 연세희야. 그런 걸로 절대 굴하지않아. 내가 왜 굴해야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연애 제대로 해보겠다는데. 왜 그걸 막으려고하는건데? 그리고 나도 충분히 그걸 각오하고 정우를 만나는거야"

"…연세희…"

그녀는...그것까지도 감수할 만큼 날 사랑하고 있었나...

그녀가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있다면...

'나 역시, 이 마음에 보답해야되지않겠어?'

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더욱 꼬옥하니 잡아주었다. 그것에 연세희는 흠칫하고 놀라하면서 날 쳐다보았지만, 머지않아 그 아름다운 미소를 나에게 피워주며, 함께 웃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한다면, 나 역시 이렇게해야 되겠지.

난 그녀의 남자.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을 여자친구로 둔 행운아라고.

그녀가 말했었다.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없다고. 그래, 여전히 나에겐 자격지심이란 게 존재한다. 나따위가 그녀에게 어울릴까하고.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도리어 큰 상처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것을 철저히 억누르고서, 난 이 시련에 맞서싸워보려한다.

"나 역시 포기하지않아. 난, 연세희의 연인이야. 1년만에 겨우겨우 다시 잡은 이 손을, 내가 쉬이 놓칠 순 없어"

그것에 수아는 잠시금 멍하니있더니 곧 도리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연인되시더니 아주 염장질을 제대로 하시네요. 저도 겨우 이따위 협박으로 두 분이 물러나시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않았어요. 다만. 정우오빠가 왠지 변한 것 같아서 놀랐다고해야될까"

"그래 변했지. 내 옆에 있는 사람때문에 말이야. 변해야하기도 하고"

"'그' 연세희의 남자이기때문인가요?"

"그래? 최소한만큼이라도 그녀와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위해"

"우리 정우…나 살짝 감동했어?"

"더욱 더 감동해야지. 네 남자잖아?"

"후훗. 감동했어요 박정우"

세희는 나의 뺨에 살짝 쪽,하고 뽀뽀를 하고서 팔짱을 끼고 나의 어깨에 기대었다.

"참, 생난리를 쳐요 난리를…"

그것에 수아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리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러브러브모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건데요 언니?"

"어떻게하긴 어떻해? 제대로 그들 뒷통수를 후려갈겨야지. 마침 딱 시기가 좋지않아?"

음흉한 웃음을 짓고있던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난 바로 이 네 글자를 떠올렸다.

'마녀강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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