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07화 (30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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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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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

연세희를 위하여 용기있게 말하였던 나의 말은 쉽게 씹혀지고, 결국 나와 그녀는 주번 일을 하게 되었다. 연예인이라고 예외를 두지않겠다는 듯, 담임은 그녀와 날 균등히 주번 일을 나눠주었지만, 나는 그녀가 해야될 일도 왠만해서는 혼자 처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친구들과 놀든지 말든지, 나는 묵묵히 혼자서 주번 일을 수행하고 있었고,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이러한 날 보라며 눈치를 주기도 했었지만...그녀는 그것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번 일을 시작한 지 이틀 째밖에 안되었는데도, 나머지 4일을 어떻게 버텨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교실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와중, 창문을 통해 하얀 눈꽃들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청소를 하던 손길도 멈춘 채, 나는 창문을 통해 보이는 회색의 공허한 하늘과 도시에 하얗게 칠하려는 듯 하나하나, 반주에 맞춰 왈츠를 추는 듯, 떨어져가는 눈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왠지, 자연스레 눈물이 떨어져내릴 것만 같은 감정의 북받침을 느낀다.

"…정우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나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보니, 주번 일을 하지않고 짼 줄 알았던 그녀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단 둘 밖에 없는 교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왜 온 거야?"

나는 그녀가 째든 말든 상관하지않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막 성질내고 욕하고 그랬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녀가 계속 주번을 하는 일주일 내내 일도 하지않고, 그냥 내가 혼자서 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했었다.

"…내가 여기 오면 안돼? 나도 주번이잖아"

"바쁠 거 아냐. 그냥 가도 되니까"

"…박정우"

"왜?"

"넌 끝까지 바보구나"

"…"

"네가 이런다고 해서…내가 좋아할 것 같아?"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아"

"그러면 왜!!!!!"

"…너한텐 항상 미안하니까"

"…"

그녀가 날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지만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려서.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이 너무나 죄스러워, 나는 그녀를 볼 면목조차 없었기에.

"공항에서 널 놓쳤을 때, 너무나도 미안하고. 미안했어. 다시 돌아온 네가 나한테 이렇게 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야"

다시한번 그녀에게 말한다. 그래...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미안한 감정 밖에 존재하지않는다.

그래서, 날 싫어하고 있음을 알기에. 난 그녀를 위해 어떻게해서든지 그녀의 앞에 내가 보이지않도록,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일이 될 테니까라는 생각에서 그녀를 피해다녔다. 이젠 친구도 뭣도 아닌 남남. 그녀는 연예인. 나는 그냥저냥 굴러다니는 일반인. 애초부터 격이 달랐다.

"근데 사실은 한편으로 바라고 있었는 지 몰라…네가 날 용서해주길. 네가 날…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해주길…"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감정을 떠나서, 난 미안하다고.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용기가 모자른 탓에, 나에 대한 그녀의 원망이 심한 탓에. 그래서 나와 그녀의 사이는 이렇게까지 뒤틀어져버린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고 싶다. 그것을 고치고 싶다. 그러한 마음이 있었어도...

"…박정우"

"…?"

"그러면 똑바로 내 앞에서 말해.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미안해"

"더 가까이와서 얘기해"

나는 그녀의 말대로 따랐다.

"미안해"

"더 가까이"

"미안해"

"더 가까이!"

어느샌가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얼마 되지않았고, 나는 이제 되었다 싶어서,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꺼낸다.

"정말로 미안해. 세희야"

그러니 이러한 날 용서해줘.

너의 마음을 찢어버린 나를. 용서해줘.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오면서.

그녀는 나의 가슴에 안겨온다.

"이 바보…!!!"

그리고,

그녀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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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아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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