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06화 (30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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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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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사람의 삶과 같다.

봄에 새싹이 터오르면.

여름엔 싱그로이 피어나고.

가을이 되면 서서히 저물어가더니.

마지막, 겨울엔 모든 것이 쓸쓸히 무너져내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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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에게있어서 12월이란 무엇인가. 수능을 치고나서, 가장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 대학생이 되가기에 앞서서 쉬어가는 기간. 알바도 하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성인의 자유를 만끽 누릴 수 있게되는 시작의 시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12월은 그저 흘러가는 한 달에 불과하다. 졸업식 2월 때까지, 누군가에겐 자유라는 허울된 이름으로 얼룩진 무의미한 기간이겠고,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험난을 대비한 방비의 기간이라 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을. 나는 그저 흘러가듯, 보내어버릴 뿐이었다.

수능을 대부분 망쳤다고 애들은 벌써 재수준비에 들어간다. 그래서 또 1년이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 동안에 열심히 준비하였던 놈들은, 이제 in 서울 대학 들어가서 신나게놀 준비나 되어있겠지.

술도 마시고, 클럽에 가서 여자들이랑 놀고.

"그딴 거. 다 아무 것도 아니잖아?"

남들은 다 부러워하는데, 유일하게 나만 전혀 부러움이 섞이지않은 눈길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차피 친구따위 없을 나에게, 이 대학이란 것도 악몽의 시간에 불과할 테니까 말이다.

아니...일생이 이러하겠지. 가족을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폐쇄된 공간안에 갇혀서 오로지 혼자. 사회라는 바깥생활도 적응못하고 겉돌아버리겠지.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에게조차도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한 내가, 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좌절? 절망? 이딴 게 아니었다.

'포기'였다.

"아 존나 심심하네 씨발!"

"단축수업 왜 안해?"

"그러니까. 존내 x같다…"

기말고사기간이어도 탱자탱자 노는 대학합격생들이 있는 반면에, 수시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는 놈들이 섞여 이루어지는 우리 반이라는 곳에선, 나 혼자 쿨쿨 잠만 잘 뿐이었다. 기말고사기간이었어도 절대 4교시 단축수업을 시키지않아 애들의 원성이 자자하였어도, 선생들은 콧방귀만 낄 뿐, 아무런 행동도하지않는다. 뭐 교칙이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변명이 되는 이유만을 늘여세울 뿐.

일상이란 뱅글뱅글 똑같이 반복된다. 무슨 돌림노래라도 되는 듯, 똑같이. 똑같이. 맨날 자다가, 민정이랑 점심 먹고, 또 자다가 종례 끝나면 민정이랑 귀가. 질릴 만도 하지만 그렇다고 바뀌어지지도않는 나날들.

여전히 그 녀석이랑은 냉랭하다. 이 녀석도 유명한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예정이 확실시 되고있어서 인터넷에선 이미 난리 of 난리였다.

그것이 이젠..나하고는 전혀 동 떨어져버린 일이 되었지만서도 말이다. 그저 하나의 연예계 가십거리에 불과하였다.

"세희야. 학교 끝나고 같이 영화나 보러가자"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고 해야되나. 학교나 사회나 다들 친한 사람들끼리 무리지어서 행동하지, 절대 다른 사람들이랑 교류를 하지않는다. 오히려 호박씨나 안 까고 있는 게 다행이라 할 정도로. 일진이란 놈들은 일진들끼리 놀고, 평범한 애들끼리 놀고, 여자면 여자. 남자면 남자. 동성끼리 놀고. 몇몇 연인들이야 있기야했으나 대학들어가면 어차피 깨지게 되어있고. 소위 말하는 '오덕팸'도 무리지어서 활동하고.

나 같은 아웃사이더야...여전히 혼자고.

고2애들이 나았다면 나았지 고3애들이랑은 절대로 친해질 수 없었던 나였다. 지들 공부하기 바쁘고 따로 노는 애들이 있는데 나랑 놀 것 같나. 절대 아니다. 새로 들어온 내 동생 민정이한테 흑심을 품고서 나한테 접근해오는 놈들을 제외하면 그냥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나마 이쁜 여동생이 있어서 내 이름이라도 불릴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투명인간이니까.

민정이 이 녀석이야 워낙에 활달해서 이미 1학년의 여신으로 자리잡아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하지만 이 녀석은 그러건 말건 나랑 어울린다. 아니, '어울려준다'가 맞는 표현이려나.

세희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랑 맞는 다른 여자애들이랑 모여 어울려지낸다. 고2때 내 수련회생활을 아주 상큼하게 해준 장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예전 이 녀석들이랑도 친구라 부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말은 주고 받았던 사이였는데 세희와 내 사이가 틀어지고나선 역시나 없는 사람취급하고 있었다.

민정이가 없는 시간이면, 난 항상 외딴 섬이 되어버리고 만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인가. 아니. 절대 아니야. 이미 고독이란 것이 '무감각'해져버린 나이기에 이러한 쓸쓸함은 아무 것도 아니야.

.....자기 스스로의 처지를 인정하고. 알며. 바꾸려고 하지않는다. 나에겐 오직 '가족들'만이 소중할 뿐. 다른 건..심지어 내 목숨조차도 한낱 길가에 굴러다니는 10원짜리 동전에 불과하다고 여기니까.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고서, 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번 주번은 누구입니까? 에…한성태까지 했으니…박정우! 그리고…여자는…연세희!"

"…"

월요일. 신의 장난이자 괴롭힘인지 이번 주번엔 나랑 연세희가 당첨되었다. 연세희는 힐끗 나를 쳐다보고 바로 고개를 휙하니 처돌리고는 시종일관 냉랭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생님"

"왜 그러냐?"

이 녀석은 '절대 박정우랑 하기 싫어!'라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마땅히 이렇게 해줘야지.

"제가 2주 주번을 할 테니까 다른 사람으로 바꿔주면 안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

내가..'연세희'라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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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오랜만....이죠..?

혼돈과 카오스의 '회색빛 세계와 검은동물들'. Another episode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냥 간략간략하게 되어있어서 양은 굉장히 짧습니다...

그리고..만약 보시게 되면...

'이..이거 뭐임?'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될 겁니다. 그만큼 정줄놓고 썼어요...일단 미리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사실 요새 술집알바하느라 굉장히 피곤합니다..소설쓰기위한 집중력과 체력이 사라져버린지 오래예요..

그러니..이해해주세요.

P.S : 어나더스토리 완성되었으니 쪽지로 메일주소 알려주세요. 오로지 팬픽을 그려주신 님들께만 제공됩니다...텍본배포는 2차 배포를 끝으로 마무리하오니, 다시한번 이해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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