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04화 (30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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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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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오늘도 민정이와 학교에 등교 중인 가운데, 어김없이 화려한 밴을 타고 오는 한 소녀가 있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고, 그 시선에 아랑곳없이 교복을 입고서 내리는 그녀. 화려한 아이돌이자 여기 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연세희였다.

"…"

어떤 말을 해야될 지, 나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다. 어떻게 해야될까. 어떻게 해야될까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녀는 날 외면하고 있는데. 내가 왜 먼저 말을 걸어야되는지. 이것이 맞는데. 이것이 옳은데. 하지만 나의 옆에서 옆구리를 쿡쿡 쑤시며 민정이가 신호를 준다.

하아..

한숨을 조그맣게 내쉬고는, 나는 교실로 향했다. 뒷문을 드르륵하니 문을 열어보니 일상처럼 그녀는 남정네에 둘러싸여있다. 말을 걸 틈도 없었다. 아니, 말을 걸 틈이 없었다고 자기변명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어이 연세희'하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겠다.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잠을 청하였다. 반 아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담임의 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실 그녀가 도무지 신경쓰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민정이가 찾아온다. 그리고 나와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는..

"언니. 오빠 모두 와"

나와 연세희, 모두를 어디론가 끌고간다. 사람들 눈에 띄지않는 곳을 찾았지만 연세희와 박민정. 둘 모두가 눈에 띄이는 사람이었는지라 나는 옥상 그 둘을 옥상으로 데려갈 수 밖에 없었다.

"…"

침묵 뿐인 세 사람. 민정이느 '둘이 얘기해봐 난 갈 테니까' 하고서 아주 상큼히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단 둘. 어색했던 분위기는 더더욱 어색해져만갔다.

"…할 말 없으면 갈게"

연세희가 처음으로 나에게 해준 말. 하지만 그 말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단 1년만에 우리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난 그녀를 붙잡고싶지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말 없이 계속 고3이 끝날 때까지 있는 것도 그랬다.

"연세희"

"…왜?"

그녀는 돌아서려하였다. 그래. 난 그녀를 붙잡았다.

"……오랜만이야"

난 처음으로 그녀에게 인사하였다. 그래..그녀를 보자마자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녀가 우리 반 앞에 다시 나타난 순간,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기고 싶었다. 이것이 위선이고, 모순된 행동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난 그녀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왜 이제서야 하는 건데? 몇 번이고 얼굴을 봤잖아. 근데 왜 이제서야…"

"너의 얼굴을…볼 수 없었어. 너를 볼 면목이 없었어"

"…"

될 대로 되라.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하려 하였다. 이러한 말이라도 해야지, 나의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그녀가 나를 앞으로도 무시해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서…내가 너무 바보같아서. 그래서 뒤늦게 쫓아가보았지만…널 만날 수 없었어. 차라리 너의 얼굴을 보고서 미안해라고 얘기했어야하는 건데. 네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채서 정말로 미안해라고 얘기했어야하는 건데. 너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난 1년을 보냈어. 그래서…정말이지 너에게 뭐라 말 해야 될 지도 모르겠어. 지금도 솔직히 말해서 뭐라고 말해야 될 지 모르겠어. 난 너무나 할 말이 없어.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렇게 말 없이 고3을 함께 보낼 수는 없다고…그렇게 마음먹었어"

"어리석네"

"…!!"

너무나도 냉정한 그녀의 얼굴. 차라리 분노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다.

"정말이지 바보같이 어리석어 너. 네가 날 그 때 붙잡는다고해서, 달라질 것이 있었어? 아니 오히려 널 보지않은 게 나에겐 낳았어. 그리고 1년 동안, 난 미친 듯이 공연했고, 이렇게 유명해졌어. 그리고 수능은 쳐야겠다는 생각에 복학했지. 그런데 우연찮게도 네가 있더라? 그리고 나의 눈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숙인 네가…"

"…"

"정말로 꼴사나웠어"

"…그러냐"

"그리고 착각하지마. 1년 전에 나는 널 좋아하지않았어. 그래…친구라고는 솔직히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젠 아냐. 너와 나. 친구도 아니고 뭣도 아니야. 그러니까…지금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짓 하지마. 알았어 박정우? 나는 그간의 옛정을 생각해서 이렇게 충고해주는 거야"

"…"

"할 말 다 끝났지? 나 간다. 그리고…왠만하면 나한테 말 걸지 말았음 좋겠어"

그녀는 휙하니 돌아섰다.

"그렇군"

나는 조용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역시나였다. 역시 그녀는 날 싫어하였던 것이다. 그 1년 전의 마음도 이젠 진실로 어떠하였는지, 이젠 나도 모를 정도였다. 하기야…그녀처럼 예쁘고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이 나처럼 어두운 놈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사랑보단 미움이 익숙하기에, 나는 이것을 무덤덤히 받아넘길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나와 그녀는 뭣도 아니었다. 그저 과거의 미련에 사로잡혀 말한 것일 뿐이었다. 교실에서 돌아온 이후, 그녀는 나와 눈 마주치려하지도 않는다. 어쩌다보니 눈을 마주쳐도 너무나도 싸늘한 표정만 짓고서는 바로 눈길을 돌린다.

제대로 미움받았구나. 나란 녀석은.

하교길, 민정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데 민정이가 무슨 일 있냐고.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어왔다. 그래. 주선해준 사람은 민정이였으니까.

"…그 녀석이 나한테 말 걸지 말랜다"

나는 씨익 웃으며 민정이에게 대답하였다.

"…"

민정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역시나 그 녀석에게 미움받고 있었어. 내 예상대로야. 어차피 1년이나 떨어져지냈는데 친구사이로 남겠어? 그 녀석은 연예인이고 난 그저 일반인인데. 어차피…이렇게 지내는 것이 해야 될 일이었어"

나는 마음은 그래...솔직히 씁쓸하다. 이 씁쓸한 마음. 그 녀석에게 친구라고 여겨지고 싶은 마음. 있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같은 녀석에게 친구란 존재는 용납이 되지않는 듯, 역시나 그 녀석은 날 원망하고 있었다.

친구. 나 따위에겐 어울리지도 않는 말이었다.

"결국…둘 다 거짓말쟁이잖아…"

민정이가 걸음을 멈춰서서 말하는 것 마저도 난 귀로 흘려들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수능이 끝나고...여기저기 원서넣느라 바쁜 나날들.

그리고 드디어 고3의 마지막생활. 12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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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텍본은 배포중단..일일이 메일주소 적어가면서 보내드려도 받지않는 사람들도 많고..

참고로 '회색빛~' Another스토리는 팬픽을 그려주신 분들께만 배포해드립니다. 말 그대로 선물이예요 선물..

하아...힘드네요..정말이지 힘든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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