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02화 (30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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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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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그 진실을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하는 것일까.

"안녕하세요 연세희입니다. 수능이 얼마남지않은 기간에 복학을 하게 되었는데 두루두루 모두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모두들 잘 부탁드려요"

"우와아아아아!!!!"

민정이보다 더 짙은 갈색의 머릿결에 방송이나 무대에서 보여주던 환한 미소. 그리고 1년전에 내가 공항에서 놓쳐버렸던..연세희. 그 본인이 맞긴 맞는 것일까. 나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가려진 시야 사이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말, 그녀가 맞다. 연세희. 나의 친구. 아니 이젠 친구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한 그녀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칠판 앞쪽에 서 있는 그녀의 눈과 내 눈이 순간 맞딱드렸다. 순간의 눈 마주침. 하지만 그 눈 마주침은 아주 잠깐이었고 그녀는 바로 딴 곳을 쳐다본다. 아는 척도 해주지않는 것일까. 하기야 내가 그녀에게 전과가 있는 만큼 그럴 인사도 받을 수 있는 가치가 내게 있으려나마는.

"빈 자리가…아. 박정우의 옆자리가 비었구나. 거기 가서 앉아라"

게다가 1년 전 그녀가 이 학교에 홀연히 찾아와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이 똑같이 반복이 되었다. 그녀는 주위 남자들의 황홀한 시선을 받으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애써서 그녀를 보고있지않으려 딴 곳을 두리번거렸고, 책가방을 뒤적였다.

드르륵.

시끄러운 의자소리가 들려오고, 무척이나 조신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녀. 나는 힐긋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나에게 이젠 시선조차도 주지않는다.

'뭐. 자업자득이려나'

나는 씁쓸하다는 웃음을 짓고서, 난 그녀에게 신경쓰지말자고 생각하였다. 신경쓰는 것 자체가 프라블럼(problem)이었다. 1년 전의 그러한 일들도 모두 한 편의 잊혀진 추억이 되어 사라진 것이었다.

그래. 1년 전에 원래 이랬어야 되었다. 그녀는 모든 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 반면에 나는 모든 이에게 외면을 받는 왕따이자 오타쿠.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더 피해를 주지않으려 책상을 더 측면쪽으로 밀착시켰고, 시선 일체를 그녀에게 주지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그녀에게 쉴새없이 질문공세를 하는 것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고, 만약에 그러려고 하면 난 애써 고개를 돌린다.

그녀와 난 완벽한 남남. 이젠 친구사이도 뭣도 아니다. 이렇게 차라리 생까고 지내는 것이 그녀에게 이득이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몰랐으니까.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그리고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버렸으니까.

사실은 1년 전, 난 마음 속 한켠에서 '혹시나…?'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가 날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하고서. 그런데 헛된 생각이라며 이런 왕따이자 오타쿠를 누가 좋아해주겠냐며 나는 고개를 도리질쳤었다. 그녀와 친구사이인 것도 나에겐 너무나 영광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반면에 난 요 모양 요 꼴이었으니. 그녀가 실망하는 것도 당연했고, 화내는 것도 당연했고, 날 원망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그래 원래 이랬어야됬는거야.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조용히 수능공부에 열중하였다.

점심시간, 어김없이 우리 반으로 찾아온 민정이가 예상 외의 인물을 보고서 깜짝 놀라한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세희…언니?"

'정말일까'하는 표정으로 민정이는 조심스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어 민정아!"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그녀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니 여기선 세희언니라고 부르지 말아야…"

"뭘 그런 것을 따져! 정말 오랜만이야 민정아! 예전엔 엄청 귀여웠는데 지금은 엄청 예뻐졌네? 너도 고등학교를 이 곳으로 온 거구나! 정말정말 반가워! 잘 지냈어?"

세희는 민정이의 두 손을 잡고 정말로 반갑다는 듯이 붕붕 손을 흔들었다. 예상 외의 상황에 민정이도, 사람들도 모두 당황스러운 것은 뻔하였다.

"예…잘 지냈어요. 언니 소식 tv 통해서 많이 들었어요"

"아 그건 그렇고 정말 오랜만인데 둘이서 점심 같이 먹으면서 얘기라도 할래?"

"아니 저는 오빠때문에…"

"오빠?"

민정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미리 민정이의 도시락을 가방에서 가져와 손 안에 가지고 있었다.

"여기 민정아"

"하지만 오빠는…"

민정이는 나와 세희를 번갈아보면서 여전히 우물쭈물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두어번 가로젓고는 그녀의 손에 도시락을 강제로 챙겨주면서 떠밀었다.

"밥 잘 먹어"

나는 그러고서 잠깐 화장실로 자리를 떴다. 민정이는 얼떨결에 도시락을 받았고, 세희랑 뭐 그간 얘기나 나누면 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민정이랑은 잘 지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어디야하며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름날도 이젠 머지않았다. 아직까지 무척이나 햇빛이 따가워 더웠으나 머지않았다. 서서히 가을과 겨울로 접어들겠지. 그녀를 떠나보냈던...그 계절을 향해서 말이다.

뭔가 만감이 교차한다.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당황. 반가움. 슬픔. 미안함. 여러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얽매여졌었다. 지금와서 반가운 척해봤자 뭐가 되겠는가. 지금와서 미안해해봤자 뭐가 되겠는가. 결국엔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지내면 되는 거야"

여전히 난 아웃사이더다. 여전히 고등학교에선 난 겉도는 존재. 가족들과는 화목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학교는 전혀 틀렸다. 나는 학교에서의 생활은 수업시간 아니면 민정이와 함께 있는 시간. 딱 두가지 밖에 존재하지않았다.

'친구'라던가. 그러한 것은 나에겐 존재하지않는다.

나는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인사하고, 뭐 그러한 용기같은 것은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늘 먼저 다가갔으나 그들이 날 외면했다는 것에서 나는 좌절과 절망을 느꼈다.

몸이 약했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외톨이였고. 회색눈동자를 가진 이방인이라서.

초중고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랬다. 그러고서 나는 이 사회와의 소통을 단절했다. 어차피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으니까.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으니 고독했다.

이까짓 것 고독쯤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난 혼자야. 이렇게. 매일 자위하면서.

이러한 고독을 함께 해줄, 어루만져줄 사람따윈 기대조차도 하지않았다. 어둠이라는 것에 빠져서, 나는 그것에 헤어나오지않았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이랬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고독해서. 너무나 고독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울며. 마음을 다 잡고 나는 누구와도 소통하지않겠어라고 마음 먹어도, 단지. 외로워서.

만약 '가족'이라는 나의 기둥이 없었다면, 11년 전이고 지금이고 똑같았다면. 나는 이 곳에 이미 존재하지않았겠지.

처음으로 사귄 친구. '연세희'라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 없게되어서. 무시하듯 스쳐지나가서. 나는 그것에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친구가 생까고서 서로 연락조차도 하지않고 그렇게 차차 잊고 살아가는 거. 이 세계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데.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던 그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나타나서 완전히 무시하고 지내는 것은, 나로서도 바로 적응하기가 힘든 과제였다.

괜찮다. 난 배운 것이다. 어렸을 때 배워야 했을 것을, 나는 이제서야 배우는 것이었다. 친구라는 것에 대해. 인연에 대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나, 그 인연을 붙잡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고, 나는 그 인연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게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나인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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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넵 짧습니다. 너무 졸려서요..

안녕하세요 허접작가 Scribbler입니다.

처음으로, 팬아트를 받아봤습니다. 아..너무 기뻐서 말도 제대로 안나와요...

소설 연재 고2 10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ㅜㅜ..

제 뜰에 그림을 올려주신 블랙티커님. 리사군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일단 보답으로 선물이라고 부르기조차도 부끄러운 조그마한 성의를 드릴까해서 현재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 Another Story(가제)'를 특별제작 중에 있습니다.

여태까지 나오지않았던 이야기들. 뭐..part 9에서의 워터파크 뒷이야기라던가. 각 히로인들의 하루를 담은 외전. 그리고...'Epilogue' 이후의 이야기를 수록해서 만들고 있기야한데..님들께서 만족해주실 진 모르겠네요 ㅎ.ㅎ...완성되서 알리고나면 차후에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신다면 보내드릴게요...

블랙티커님께서 히로인 외양묘사가 어떤지 물어오셨는데..아하하 글쎄요. 제가 필력이 후달려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외양묘사는 잘 안하게 되더라구요 아하하..그냥 기본적인 모습만 대충 묘사하는 게...그래도 만약에 더 그려주신다면야 저로서는 정말로 감사감사감사감사한 일이겠지요. 정우 그림그려주신 것까지도 영광인데 ㅜㅜ..

아무튼, 팬아트로 너무나 들떠서 감사인사를 올린 허접작가 Scribbler였습니다(__)

다시한번, 이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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