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301화 (301/318)

0301 / 0318 ----------------------------------------------

사계(四季)

=========================================================

[1년 후]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반장?"

"차렷. 경례"

"안녕히가세요!"

시간은 흘렀다.

"야 이번 모의고사 어땠냐?"

"아 망했어. 지금 막 ebs에서 다 나와서 걱정이다 아주"

"컷 존나 높아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수능도 이러면 완전 x되는데 말이야"

하루가. 하루가 흘러가면 흘러갈 수록 이들의 조바심은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름 파란만장하였던 고2 생활이 끝나고, 반을 옮겨 새로운 이들과 맞이하게 되는 고3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 덧 6개월.

그 기나긴 뜨거웠던 여름도 이제 서서히 지쳐가는 9월이었다.

2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3주 째. 머지않아 10월이 다가온다. 이제 11월, 수능이 머지않은 것이었다.

"어이 시체"

"엉?"

"밖에 누가 널 찾는데?"

"설마…"

"설마…"

"오빠!"

"으아악 여동생님이다!!!"

"새로운 여신!"

"여신!"

점심시간. 매일같이. 일상처럼 되어가는 난리법석. 이 한국고에 여신으로 군림하던 지현누나는 수능을 무사히 끝마치고 이 학교를 졸업해 최상위권 대학에 들어가 지금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중3이었던 민정이도 중학교에서 졸업. 나와 같은 한국고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점심시간만 되면 나와 함께 도시락을 까먹는다. 급식이야 있었지만, 원체 급식을 잘 먹지않던 나였고 더군다나 이 녀석도 급식비도 안내고서 나랑 같이 먹겠다며 생떼를 쓰는 바람에 또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동안의 1년. 나는 여전히 똑같았지만 민정이는 전혀 틀렸다. 중3 때의 그 갈색단발은 어디가고 이제 찰랑찰랑한 기나긴 갈색머리를 지니고서 페로몬을 줄줄 남정네들한테 분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청순가련 도도형이었던 지현누나와는 달리 청순가련도 있었지만 묘하게 색기를 풍기고 있어서 은근히 남자애들한테 음담패설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덕분에, 내가 그 녀석들을 모두 조져버리는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일 덕분인지 애들이 나를 대놓고 까지는않는다. 아니, 그러한 욕들조차도 내 앞에서 꺼낼 엄두를 하지도않았다. 한 마디로 이번에 확실히 싸움실력을 알았으니 알아서 기는 행태랄까.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에휴…"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은 정말이지 출석도장을 찍는 듯이 매일매일 이 곳에 온다. 등교도, 하교도 같이 하는데 말이다. 즉 수업시간과 쉬는시간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이 녀석과 같이 있는다..이 소리였다.

"왜 이리 굼벵이처럼 움직여 빨리 가자니까 오빠? 이러다 5교시 못 맞추겠어"

이 녀석은 이젠 '오타쿠'라는 소리를 꺼내지않는다. 꼬박꼬박 '오빠'라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살가운 태도로, 환하게 웃음지으며 나를 대하고 있던 그녀였다. '그러한 일' 있는 것치고는 민정이는 꽤나 나를 좋게좋게 대하는 것 같았다.

1년 전. 이 녀석은 나한테 고백을 했으니까 말이지...

"헤헷♡"

게다가 심지어는, 팔짱까지 끼는 행각까지 한다. 이러한 행동 덕에 물론 '그렇고 그런 사이', '근친' 막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했으니..이렇게 살갑게 구는 것도 좋기야하겠지만 너무 대놓고 그러면 좀 골치 아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녀석과 팔짱을 낄 때면..푹신푹신한 감촉이 느껴져 꽤나 당황스럽다. 이 녀석 요 1년 동안 무척이나 성장한 탓에, 몰캉몰캉한 감촉. 금방 남자라면 당황할 법한 감촉을 느끼게끔 하였다.

'서…성장했구나 민정아'

이러한 소리를 입 밖에 냈다가는 얻어터질 것이 분명하기에(민정이 특유의 스크류펀치는 이제 나를 한방에 기절시킬 정도다) 가만히 죽닥치고 있는 형편인 나였다.

"히힛! 어디서 먹을까?"

"그냥 벤치에서 먹지 뭐"

모든 사람들의 주위 시선을 받으며, 나는 민정이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꽤나 한적한 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내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냠냠 먹었다. 민정이는 자기 가방에 넣지않고서 매일 '오빠 가방에 내 껏도 넣어줘~'라고 말하는 바람에 이렇게 매일 같이 점심시간만 되면 먹는 것도 있기야하겠다.

"수능 준비는 잘 되어가?"

"글쎄다…"

성적이야 그저 그런 수준으로 유지야 되고 있었다. 문제는 영어콤플렉스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않고 있다는 것. 나머진 그럭저럭 할 만한데 영어 덕에 그 성적을 다 까먹고 있는 나여서 저녁만 되면 지현누나와 민정이. 심지어 서현누나에게까지 모두 영어과외를 받는 와중이었다.

서현누나와 지현누나는 그렇다쳐도, 민정이가 왜 영어를 잘하냐고? 이 녀석..알고보면 영어특기생이다. 그래서 이미 텝스며 토플이며 모두 거의 만점 대의 성적을 자랑하고 있는 데다가 회화도 꽤나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아서 가족영어과외에 선생님으로 나름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정말이지 우월 of 우월 유전자에 내가 못하는 것은 모조리 다 잘하는 가족들이다. 진짜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구분조차 가지않을 정도로 완벽함을 자랑하는 이들에게 내심 자멸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마 요리를 서현누나 빼고서 두 자매가! (강조한다. 두 자매가!다)못하는 덕에 내가 그들의 밥을 여전히 책임지고야 있지만 요새 민정이의 요리실력이 부쩍 성장하였다. '오므라이스'를 혼자서 만들어 낼 정도면, 무척이나 성장하지않았는가.

지현누나야 여전히 달걀을 몇 번 태워먹고나서야 달걀 후라이를 만들 수 있지만 말이다. 뭐, 그 정도의 일상이었다.

밥을 먹고나면 남는 시간은 조금이야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이라 아이스크림과 음료수가 불티나게 매점에서 팔려나간다. 나와 민정이는 시원한 음료수를 두 개 사고서 다시 한적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있었다.

"어여 반 가야지"

"헤헹~싫네요~"

나와는 다르게 민정이는 친구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나마 이 네 남매 중에서 활달한 성격을 가졌던 그녀였기에 주변엔 친구가 넘치고도 넘쳤다. 물론 그녀에게 흑심을 가지고 접근을 한 남정네들이야 배는 더 많았지만 말이지..

그래서 점심시간만 되면 그들이랑 함께 먹어야 되는 것이 정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녀석은 고집을 부리며 나와 같이 먹겠다고 하였다. 나는 '네네 그러세요…'하고 넘기기야 했다만은..의문점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라고 볼 수 있었다.

턱.

그리고, 내 어깨에 차근히 기대는 민정이.

"어이…"

"헤헤…기분 좋아…"

남들이 본다면 너무나도 다정한 연인으로 볼 수도 있겠다만은 아쉽게도 우린 친남매 사이.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며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이것도 당연한 일과였다. 약 20~30분간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다. 게다가 어쩌다가 한 번 너무 깊게 잠들어서 도무지 일어나지않으면 나는 그녀를 업고서 그녀의 반까지 가는 쪽팔림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자매이긴 자매인가하는지 서현누나고 지현누나고(특히!) 민정이고 이제는 민정이가 지현누나를 완벽하게 따라가겠다는 듯 똑같이 잠탱이짓을 하고있으니..에휴. 꼭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한숨은 한번 이상은 쉬곤 한다.

"쿠우…쿠우…"

너무나도 새근새근 잘 자는 그녀. 나는 그녀의 갈색머릿결을 쓰다듬어주며, 점심시간을 끝낸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는 너무 깊이 잠이 들어서 내가 그녀의 반까지 업어줘야하였다.

사각사각사각...

방과 후의 일상. 집에서 돌아온 나는 저녁만 먹고서 다시 공부모드였다. 그리고 그 주변엔 자매들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는다.

매일같이하는 영어과외. 문법이 너무나도 후달렸던 나는 오늘도 민정이와 서현누나에게 타박을 받는다.

"여기는 of가 아니고 on을 써야되잖아. 그리고 단어! 여기는 discourage가 아니고 courage잖아"

그랬다. 나는 너무 영어를 못한다. 그러한 내가 안쓰러운지 지현누나가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 정우'라고 말하고 있지만 서현누나가 이 때 또 태클을 건다.

"지현아! 그렇게 오냐오냐 키우면(?!) 안된다구!"

"하지만…"

"정우를 위해선 확실히 해줘야되는 거야!"

내가 1년 전엔 도무지 상상할 수 조차도 없던 일상. 드디어 진정으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일상. 나는 그 일상을 맛보고 있다. 이 10년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있는 일상.

나는 그 일상에, 서서히 적응이 되어가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번에도 76…? 그래도 히힛! 잘했어 정우야!"

서현누나는 나를 가르칠 때면 꽤나 엄하게 대하지만 그래도 후엔 '참 잘했어요~'하면서 머리쓰다듬을 나에게 시전을 하며 다정히 대해준다. 1년 전에 돌아와서 아직까지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고 자신도 바쁜 와중에 그래도 틈틈히 나를 위해서 시간을 쪼개어줘서 공부과외를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현누나. 캠퍼스 생활을 하면 보통 막 밤까지 놀러다니고 뭐 그러는데 그 클럽이라던가 소개팅자리를 모두 다 고사하고서 나를 위해서 공부과외를 하러 와준다. 대학교에서도 인기폭발인데다가 인터넷에서도 이미 전국구 여신으로 공인받아 여전히 연예계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던 와중이다. 그녀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기야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정말이지 참 좋은 누나들이 아닐 수 없었다.

민정이 역시..마찬가지다. 그녀도 친구들과 놀지않고(물론 자주 놀 때가 많지만) 이렇게 틈틈히 와주니..이 세 자매에겐 미안함과 고마움. 그러한 감정들 밖에 존재하지않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이나 한번 할까?"

"응!"

"그럼 피자먹자 피자!"

그렇게 오늘도, 단란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주말. 학교를 가지않는 참이라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잠시 목이 말라서 바깥으로 나오는데, 거실에선 tv를 보면서 하하하고 웃고 있던 세 자매가 있었다.

[최고의 아이돌그룹 'MUSA'가 최고의 음악차트인 빌보드차트에서 top 랭킹 안에 들었습니다. 지난 달 오리콘차트에서 새로이 발매한 앨범 전곡이 모두 1위를 포함해 top 10안에 드는 기염을 토하는 데에 이어 이번에 빌보드 차트까지 석권을 해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k-pop이 뜨고있는 요즘, 'MUSA'가 그 선두에 서고 있습니다. XXX뉴스. 박대기입니다]

"헤에…요새 MUSA가 대세이긴 대세구나"

"히힛 노래도 좋다구!"

TV를 살짝 보는데 어쩐지 눈에 익은 소녀들이 화면에 나왔다. 그리고서 유독 보이는 한 소녀의 모습. 역시나..잘 하고 있구나.

"오빠"

"응?"

"세희언니…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

"…그래"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1년 전, 난 친구인 그녀를 잃었다. 끊임없이 나에게 붙잡아달라고 마음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끝끝내 그것을 눈치채지못하고서 뒤늦게 후회하였다.

설령 그 마음을 알았다고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붙잡지않았을 것이다. 비상하려하는 소녀의 꿈을, 나는 절대로 붙잡을 수가 없었기에. 이러한 나따위에게, 발목을 붙잡혀서는 안되기에 말이다.

이 1년 동안, 그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소식은 익히 들어알고 있었다. 물론 내가 틈틈히 챙겨보는 것도 있었다. 딱히 아이돌이라던가 현실세계에 관심이 없었던 나였으나, 유독 그녀의 소식만은 보고 챙겨보는 것이었다.

글쎄..아직도 남아있는 미련에서 였을까. 아시아투어도 무사히 끝내고서 이젠 세계 정상급 가수들이 한다는 미국과 유럽투어를 한다는데..그것도 잘 되어서 세계 최정상급의 아이돌그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특히나 나를 좋아해주었던, 한 소녀의 행복을.

나는 더더욱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부우! 지금 정우 무슨 생각하는 거얏!"

"어…어?"

"정우…왜 멍 때리고 있었어?"

"…혹시…"

아아. 순간 멍 때리고 있었나보다. 세 자매가 내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것을 듣지도 못했을 정도로.

"아아. 미안. 잠깐 딴 생각 하느라"

"부우!!!"

"미안 서현누나. 아하하…"

주말도, 그렇게 평화롭게 보내고서. 다시 돌아온 월요일. 나는 오늘도 민정이와 함께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럼 이따 봐 오빠"

"그래. 들어가"

민정이와 헤어지고서, 나는 지현누나의 반이었던 3-A반의 뒷문을 열었다. 1학년이고 2학년이고 3학년이고 나는 항상 맨 뒷자리였는지라 이젠 공식지정석이 되어서 맨 뒷자리 커튼이 쳐져있는 그 곳에서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착석을 하였다.

아이들이 한 20분간 시끄럽게 떠들다 선생님이 아침조회를 하자 급조용. 고3의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의 시작을 알리는 침묵이기도 하였다.

"반장?"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오늘. 전학생이 왔다"

"에?"

"전학생?"

담임의 전학생 소리에 웅성웅성.

"정확히는, 복학하는 거지만 말이다"

"복학?"

"설마…"

아이들의 '설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이 고2학년 때, 학교를 잠시 휴학한 사람이라고는 '단 한사람'에 불과하였기에 말이다. 나도 지금 '에이 설마…'하는 눈치로 있었지만 말이다.

"믿지못하는 군. 일단 들어와라"

드르륵...

"!!!!!!!!!!!!!!!!!!!!!!!!!!!!!!!!!!!!!!!!!!!!!!!!!!!!!!!!!!!!!!!!!"

======================================================================

============================ 작품 후기 ============================

세희 외전. 사계(四季)의 시작입니다.

많은 수의 리플들이 달려서 꽤나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도 300화에 적힌 메일들로 모두(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회색빛~' 텍본을 보냈으니,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뭐..PART 1~PART 3의 주 감상포인트는 '지현 모에!'라고 할 수 있겠군요..

역시나 일러스트는 안그려주시는 매너. 그래도 흑흑..그려주실 분 구해봐요..ㅠ.ㅠ

그럼 302화에서 뵙도록 약속하면서. 이상 허접작가 Scribbler였습니다(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