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97화 (29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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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Stay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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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심장이 떨려서 정말로 미칠 것만 같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내 집이 아니라 여선생의 집에 있어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선생도 아니다. 무려 여선생이다. 그것도 엄청난 미인에. 심지어 담임선생.

"이거"

"…?"

"추리닝이야. 늘리면 아마도 맞을 거야"

늘였다 줄였다할 수 있는 추리닝을 나에게 주고서, 그녀는 정말로 나를 여기서 재우려는 듯 이불을 깔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옷차림으로 잘 거야?"

그렇다. 나는 지금 아직도 교복차림이다. 춘추복을 입고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아 네…네…'하는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며 춘추복과 넥타이. 와이셔츠를 벗는다. 그렇다고 와이셔츠를 벗었다고해서 맨 몸이나 런닝셔츠가 보일 정도로 무개념은 아니었다.

그냥 검은 반팔티. 산 지 2년? 3년 정도 된 꽤나 오래 입은 티였다. 그 옷과 그녀가 준 추리닝을 들고서 나는 화장실로 향하였다. 화장실에서 교복바지를 벗고, 그녀가 준 긴 추리닝으로 갈아입으니 정말로 잠옷이 되었다.

"나 잠깐 씻고 있을게. 뭐 tv라도 보고 있어"

이봐요 선생양반. 지금 새벽이 2시인데 tv를 볼 수가 있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쿨하게 화장실로 들어가서 내가 뭐라 말할 수도 없었기에 휴우..할 수 없지하고 tv를 틀었다. 아니나다를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하얀색과 검정색이 점철된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

딸칵. 딸칵.

역시나 몇 번 딸칵딸칵하여도 똑같기만 하다. 근데 한번 더 딸칵하고 누르니, 무엇인가가 나온다.

"허억…허억…"

아니요 잠깐만. 왜 딸칵하자마자 바로 나오는 게 이거인데? 오른쪽 화면 위에 (19)라고 써져있었고 맨 몸의 남녀가 서로 뒤엉켜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놔..새벽시간대다 보니까 이런 것 밖에 안 나오는 건가..

나는 바로 딸칵하고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더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나도 남자다) 그치만 이 곳이 내 집이 아니었으니 바로 틀어주어야하였다. 딸칵하고 버튼을 누르니 또 (19)라고 나온 채 무엇인가가 나온다.

"헉헉…"

"아응…"

......이제 할 말이 안 나온다.

나는 버튼을 끄고, 그냥 멍하니 있었다. tv를 틀어도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정작 보고 싶은 것도(...) 보지도 못하니, 그냥 끄고 있는 것이 더 나았다. 그녀의 집 천장만을 바라보고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여태까지 외박을 해보았자 다 바깥이었다. 그냥 공원에 있는 벤치. 주차장. 뭐 이런 곳에서 잠을 청하곤 했었다. 수 많은 가출시도와 자살시도 덕에 집 안에 있는 날보다 바깥에 있는 나날들이 훨씬 더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가 다들 방황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날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외진 공원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할 때마다, 울음은 꼭 나오곤 하였다.

울지말자. 울지말자. 나 따위가 울어봤자 뭐한다고..나는 울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하면서 울음을 삼키며, 별이 보이지않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마득한 검은 하늘을 가리는 아파트빌딩과 건물빌딩들. 나는 그런 것이 너무나 싫었었다. 무엇인가가 다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따뜻한 곳에서 자게 되는 것이다. 뭐..이거 나름대로 좋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걱정해주려나..서현누나..지현누나..민정이..

"…이런 놈 걱정해줘봤자 뭐한다고…"

그냥 나 신경쓰지말고 조용히 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마 날 걱정해줄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아니 그러지 말아야겠지. 나는 걱정받을 정도로 가족한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니까 말이다.

끼익...

"후아…"

"…!!!!!!!!!!"

내가 한창 생각에 잠겨있었을 때, 굳게 닫혀져있던 화장실문이 끼익하고 열리고서, 그녀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옷차림.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나머지 한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 하필 아까 전에 '19'영상을 보아서 한창 흥분해있을 나인데..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순간 아찔해졌다.

여태까지 가리고 있어서 몰랐는데..그녀..되게 정말로, 몸매가 좋다. 지현누나급이 아니다. 서현누나급이다...정말로 장난아니게 나이스바디. 나의 누나들이 초사기급 외모와 몸매를 지녔다고 하지만 이 사람도 만만치가 않았다.

"…왜?"

"…"

도무지 할 말이 없다. 이봐요..지금 당신 복장이나 보고얘기하지그래요?

"아……"

그녀도 지금 자신이 무슨 상태에 있는 지를 알고서, 당황해했다. 얼굴이 무척이나 붉어지면서,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 참..어디에서건 철두철미할 그녀인 줄 알았는데 묘한 곳에서 맹하다.

그러다 잠시 후..끼익하고 그녀의 방문이 열리더니 반팔 티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다 말려지지않은 머리와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자한테 창피하게…미안. 못볼 꼴 보여서"

전혀 못볼 꼴이 아닙니다만. 오히려 눈 호강(?!) 했습니다만. 안구정화했습니다만.

다시 한번...보고 싶습니다만.

"아하하…아니예요"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아니라며 얘기하였다. 정말로 진심으로 얘기한 것이다. 진심으로.

털석하고 그녀는 나의 옆에 앉았다. 새벽 2시 30분. 야밤에 남녀 둘이서 뭐하고 있는 것인지..게다가 제자와 선생의 관계인데 말이다.

"정우야"

"예"

"새벽 좋아하니?"

"예. 좋아합니다"

"왜?"

"…감상적이게 되거든요"

그래..나는 밤을 좋아한다. 나는 '빛'이 아니기에. 나는 '어둠'이기에. 절대로 빛의 세계에서 한 줄기 빛조차 쐴 수가 없는..나는 그러한 존재이기에, 나는 밤을 좋아한다. 그리고 밤보다, 오히려 더 깊고 싶은 새벽을 좋아한다.

새벽이 되면. 누구나가 다 감상적이게 된다. 나 역시 감상적이게 된다. 몽환적이게, 깊고도 깊은 어둠에 빠져있는 것을 좋아한다. 한창 깊고도 깊은 어둠에 빠질 때면, 난 혼자임을 자각한다.

혼자. 고독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이것이 나라는 인간이야..라면서. 내 존재를 이렇게라도 정의시켜주는 계기가 되어준다. 그렇게라도 하지않는다면, 난 쉽게 부서져내릴 것만 같으니까.

나는 어둠. 슬픔도. 증오도. 분노도 모든 것이 쇠락해져 이제는 '공허'밖에 존재하지 않는 어둠이었다. 그 어둠이..나를 여태까지 지탱해주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였다.

"너…부정주의자야?"

"예. 부정주의자예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부정하는…제 자신조차도 부정하는 부정주의자예요"

"…왜 자신을 부정하는 건데?"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일까라고 다시금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내가 부정주의자임을 안 것인지. 심지어 내가 부정주의자라고 인정해버려서 그녀가 질문하는 것에 내가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뭐 이러한 생각에 그러한 돌이킬 겨를 조차도 없어보였다.

"못난 제 모습에. 한없이 무기력한 저의 모습에.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는 저의 모습에…저는 이러한 제 자신이 싫어지게 된 것이니까요"

"싫다 싫다하여도 너는 너야. 네 자신조차도 사랑하지않으면, 대체 누가 널 사랑해줄 건지 생각은 해 보았어?"

"없어요. 존재하지않죠"

"근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저는…그러한 사람이니까요"

자기회의. 자기부정. 자기증오. 자기비하. 그러한 감정만을 안고서 여태껏 살아온 나다. 그렇기에 그것이 적응이 되어서 고쳐지기도 힘들었다. 나와 그녀. 비슷한 '혼자'라서 이렇게 동질감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은..나와 그녀의 차이는 바로 이거였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똑똑하다. 그녀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착하다. 그래서 고독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자기부정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자기부정까지도 있다. 그래서 늘 우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그러한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도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은…있는 거니?"

"없어요"

"이성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있는 거야?"

"없어요"

"기쁜 일이라거나…추억은?"

"없어요"

"그렇다면…소중한 사람은…?"

"……있어요"

"그래…"

나에겐 소중한 사람이야 있다. 내가 이런 인간이기야 했지만 나에겐 소중한 가족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환하게 빛날 때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해악이 되는 존재라서 괴로웠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그들은 더 행복해했을 텐데하는 생각이 많았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사랑을 그들은 받고 나는 받지 못하였을 때, 나는 그들을 미워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생각을 고쳐야했다.

내가 이러니까..나는 사랑을 받지못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나는 이 세 자매와 부모님의 틈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끼어들지도 않아야했다. 나라는 존재가 이 가정에 있어서 '옥의 티'였다. 있어서는 안 될..그러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난 존재이유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들이 환하게 빛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뒤를 받쳐주는 그림자라도 되자..라고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젠가 나라는 사람없이도 더 환하게 빛날 때..나는 미련없이 사라지자. 라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울었다.

기뻐해야 할 나인데..울음이 나온다.

즐거워해야 할 나인데..울음이 나온다.

눈물이 끝없이 흘러넘쳐서..너무나도 울었던 탓에 눈물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펑펑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 이유를 찾는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만약 그렇게하고나면 나에겐 무엇이 남을까. 나에겐 아무 것도 존재하지않을텐데. 곁엔 아무도 없을텐데.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서..이 죽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갈텐데..

포옥.

"…!"

그녀가 날 갑자기 껴안는다. 왜 껴안았을까. 라고 자기 자신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쉽게 나온다. 아아..

나 또..울었잖아...정말 꼴사납게.

"자기 자신을 그렇게 학대하고나면…대체 무엇이 남는거야?"

"…"

"그래야 네 맘이 편해? 그래야 네가 살아갈 수가 있어?"

날 껴안아주며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박정우…넌 이런 아이였어?"

"…"

"나를 바꿔준 넌…정작 이런 사람이었냐고…대답해…박정우…대체 너는…"

"…"

그녀의 눈물이 나의 옷에 촉촉히 묻는다. 아아..빌어먹을...

또...눈물이 나오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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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아니 독자님들은 죄다 왜 섹드립으로 갈 거라고 예상하셨지..?

정답: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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