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5 / 0318 ----------------------------------------------
Please, Stay With Me
=============================================
쪼르르...
"마셔"
"잘 마시겠습니다"
어색하다. 정말로 어색하다. 어쩌다보니 그녀의 집으로 오게되어서 이렇게 저녁과 차를 대접받았다. 이런 걸 바라려고 이 곳에 온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내가 준 해바라기 화분을 햇빛이 들어오는 베란다 창가에 두고서, 나에게 '저녁 먹을래?'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끄덕끄덕해버렸고, 생각보다 오래 이 집에 있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집은 상당히 깨끗하다. 보통 20대 혼자사는 직장인 여성의 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달리 나쁘게 말하자면 '허전하였다'. 그녀 역시 정작 꾸미는 체질이 아닌 것 같아서 귀여운 디자인과 이미지의 가구류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짝 들여다본그녀의 방도 마찬가지. 그냥 평범하게 벽지도 하얀벽지였고 화장대가 있었으며, 옷장이 있고 침대가 있다. 그것이 다다.
한 17평 정도되는 오피스텔.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고도 충분하였지만 어딘가 외롭다는 분위가 풍겨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따라준 녹차를 마시며 주변에 있는 것들을 멍하니 둘러보고 있었다. 저녁도 무척이나 맛있었고, 녹차도 따뜻한 게 괜찮다.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저녁"
"고마워"
그녀는 거실에 있는 탁자에 내 반대편에 앉아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정색의 긴 생머리와 살짝 차가워보이는 인상과 피부. 오똑한 코. 무엇인가 날카로운 이미지를 드러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독해보이는..어쨋건 그녀의 겉모습은 이러하였다. 무엇보다도, 미인인 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는 우리학교에서 '여신'이라 불리우는 지현누나와도 비등하다는 내용의 우리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던 외모평가(?)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하여간 미인은 미인이었다.
"집에 이렇게 누군가를 들인 적은 처음이네"
"전에 보았던 '그 분'은…?"
"그 때는, 내 집이 없었을 때였으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선생이라고는 하여도 자기 혼자 사는 집에 남자를 들여놓았다. 심지어는 처음. 그것도 대상이 나라는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반의 제자였기에 더더욱 당황스럽다.
"저를…이 곳에 데려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나는 바로 그녀에게 질문하였다. 왜 나를 이 곳에 데려왔냐며. 반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외톨이인 나를 왜 이렇게 데려왔냐며. 나는 그녀에게 질문하였다.
"…외로워서. 무엇인가…적적하다고 해야할까…"
그녀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베란다 너머에 있는 바깥 광경을 바라보며 얘기하였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나와 '동류'였다. 어디서든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겉돌며, 혼자 떠돌아다니는 존재. 그녀나 나나 절대 친화력이 없는 부류들이었다.
그래서그랬을까. 나나 그녀나 서로에게 '동정'이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녀가 교직원식당에서 다른 선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식사하는 것을 수 차례 바라보았고, 게다가 교실 창문에서 그녀가 홀로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던 것도 수 차례 바라보았다.
그래, 그녀가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 하지만 단 한 순간의 오해로 커져버린 그와의 이별. 그것에 마음아파하고,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하여도 괴롭고 괴로운 기억임이 틀림이 없었다. 늘 혼자였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던 그. 한줄기 빛이, 태양이 되어주었던 '그 사람'이 그리워서...
안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서현누나에게 품었던 감정과 똑같은 감정이었다. 물론 그것이 그녀처럼 '이성의 사랑'은 아니었으나, 혼자였던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위로의 손길을 건네준다면, 그 누군가에게 겉잡을 수 없이 기댈 수 밖에 없어지게 되어버린다.
나는 그녀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위선'임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녀를 동정하였다. 그녀가 행복했던 기억을 재현시켜줌으로써, 그녀의 마음의 구멍을 채워넣었다. 그녀의 안에서 늘 그리워하고 있던 '닭'을 없애고서...나는 그녀를 '구원'하였다.
"한번 쯤, 누군가를 꼭 이 곳에 데려오고 싶었어. 집 자랑이라던가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
"내가 괜히…널 데려온 걸까?"
"……아닙니다"
고개를 내저으며 미소지었다. 그만큼 그녀가 날 '믿고 있다'는 증거기에, 나는 이것이 기쁘다면 기쁘지 절대 화내거나 감흥이 없거나 뭐 그러한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품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여태까지 난 '어른'이란 족속들을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나이만 처먹고서, 자기도 다 그러한 경험을 했다고. 어린 사람들에게 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위세를 떨었던 그러한 망할 족속들이 난 너무나 증오스러웠다.
우리들을 위해서 해준 것도 없는 주제에. 우리들을 위한다며 별 지랄을 다 떠는 그러한 위선적인 놈들이 싫었기에, 난 그들과의 접촉을 애초부터 끊어버렸다. 그 이유 덕에 난 지금까지 선생들과 아주 살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고 말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서..나의 인식은 조금이나마 바뀌었다. 어른도 사람이라는 것을..나는 그녀를 통해서 절실히 느꼈다. 그녀가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른이 내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는 다른..고독하고, 외롭고 차가운 분위기..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이것저것 신경써주는 모습..나를 믿어주는 모습..그러한 것을 바라보며 난 적어도 그녀만큼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그러기에 지금 그녀가 날 자기 집에 데려온 것이 잘못한 걸까라고 말하더라도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이 학생을 믿어주는 것은...
지금 이 사회에서 절대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왜?"
그녀는 물었다.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왜?'라고 말하며 다시 재차 물어보는 것이었다.
"절 믿어준다는 증거. 아껴준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선생에게는 수 십명의 학생이겠지만, 학생에게는 단 한명의 선생이다. 학생이 나중에 커서 사회생활에 나가도 여태까지 학년이 올라가면서 각각 겪어오는 선생은 단 한 명 뿐이라는 것이다.
그 선생이 학생을 안 믿어주면..학생이 선생을 안 믿어주면..대체 뭐겠는가. 무엇하러 학교에 다니겠는가. 학교는 교육의 장소다. 교과서에 적힌 공부뿐만이 아니라, 부모라는 틀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것을 배워나가는 '교육'의 장소이다. 그 교육의 장소에서 학생은 선생을 보고 배워나가며 '어른'이 되기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준비를 하는 과정 중에 트러블이 생기면 어떠하겠는가. 학생은 방황한다. 길이 똑바로 있는데도 돌아가려고 고집을 부리는 거다.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바로 선생이란 존재. 하지만 그들이 서로 신뢰관계를 쌓아나가지 못하면, 결국 이 학교라는 장소에 안 다느니만 못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여태까지 선생과 그다지 좋지않은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깨달은 바였다. 선생은 학생을 믿어줘야했다. 그리고 학생 역시 선생을 믿어줘야했다. 절대 말로만 믿어준다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용기가 필요하였다. 나같은 학생들이나. 선생들이나.
"…정우야"
"예"
"너에게 있어…나는 어떤 선생이니?"
그것에 나는 다시한번 씨익 웃으며 얘기하였다.
"저에게 있어 선생님은 여기 이 한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