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94화 (29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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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Stay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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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다 잊었다고. 이미 옛사랑이라며, 잊었다고.

하지만 애써 잊은 척하는 것일 뿐, 실상은 전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장소에 가면, 자꾸만 그 사람과의 추억이 떠오르기에..그러기에 잊지못합니다.

'추억'이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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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부터, 나의 평범한 일상은 조금쯤은 바뀌어있었다. 고2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도중, 급작스레 생기게 된 조그마한 일과. 그것은 점심시간마다 담임과 밥을 같이 먹는 것이었다. 그냥 교사전용 급식실에서 드시면 될 것 아니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녀가 정작 어울리지 못한 까닭에 이렇게 나와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나나 그녀나, 서로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서툴기때문이었다.

항상 침묵만이 가득한 점심시간. 내가 그녀에게, 혹은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그다지 많지않다. 그냥저냥 점심을 같이 먹고,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갖출 뿐이었다. 보통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하는, 그러한 것은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서먹서먹하면서도 당연한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나의 밥을 챙겨온다. 정말로, 맨날 매점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대신하는 내가 가여워서그런지 꼬박꼬박 알차게 챙겨와서 어째 내가 먹는 날이 많아질 수록 점점 그녀에게 미안해진다.

뭐라도 보답이라도 해야하건만..난 어떤 보답을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녀가 챙겨주는 밥을 계속 넙죽넙죽 받아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것. 난 언제부터인지 그녀와 항상 교문을 같이 나선다. 이게 내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가 앞으로 같이 가자고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 나는 그녀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그녀가 교무실에서 빠져나오면 같이 나오는 것이었다.

집 방향도 같아서 같이 걸어가다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진다. 이것이 나와 그녀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룰이 되어가고 있던 요즘이었다.

"흠…"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매일 나를 위해 도시락을 챙겨오는 그녀를 위해서 무엇인가 보답이라도 해야된다는 그러한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서인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 자신이 받아먹기만 하는 후안무치가 되기는 싫다. 그래서 무엇인가라도 보답을 해야 내 마음이 풀릴 것 같아서, 컴퓨터 앞에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는 것이다. 늘상 미연시를 하기 위해 쓰여지던 이 컴퓨터도 이제 제대로 된 용도로 쓰이는 것이랄까.

그런데 알다시피, 나는 바보다. 정말로 바보다. 내가 늘상 혼자 살아서 그런지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아무 것도 모른다. 이럴 때에 민정이나 지현누나, 서현누나에게 물어보고야 싶었다만 뭔가 창피해서 물어보기도 껄끄럽다.

그렇다. 그래서 지금 인터넷을 뒤져서 무엇인가 여성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보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다들 고백할 때 하는 선물이니 뭐니 하면서 그냥 순수한 목적으로 주는 선물에 대한 내용은 아무리 뒤적뒤적했어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찾아보았어도 대충 다 이런 식이다.

'정성이 들어간 선물을 주면 누구나 좋아할 거야'

정성..? 무엇인가 정말로 막연한 대답이지않은가? 차라리 명품백을 선물한다는 게 더 현실적인 대답이다. 뭐, 그렇다고해서 내가 명품백을 산다는 그러한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부자였으나 왠만하면 집돈엔 손대지않는다는 것이 내 철칙이었다)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라…"

그런 것을 생각하니 더 머리가 꼬이고 꼬인다. 그냥 여자들이 좋아하는 화장품을 사주면 될 것인가..? 그것이 지금 나에게 있어선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뭐랄까...그녀가 그다지 화장품을 좋아하는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 여자들이라 하면 자기 치장하고 꾸미느라 바쁜데, 그녀는 그냥 수수하다. 교사라서 화장이야 당연히했지만 다른 여선생들에 비해서 극도로 차이가 날 정도로 거의 맨얼굴이다. 맨얼굴이라쳐도 우리학교에서는 가장 미녀인 그녀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그녀가 화장품을 좋아할까..? 일반론에서 보면 yes겠지만 어쩐지 뭔가 좀 그랬다.

"이거 어쩐다냐…?"

스윽...

"…?"

주위엔 아무도 없는 조용한 벤치. 여기저기 나무만 있을 뿐이었고, 새소리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빼고는 한적한 이 벤치가 나와 그녀의 식사장소였다.

나는 고심하고 고심하던 끝에 고른 선물을 그녀에게 스윽하니 내밀었다. 이걸로 그녀가 좋아나해줄까싶다만, 그래도 보답은 해야되었기에 말이다.

"여기요"

정말 나도 대책없는 놈이다. 보답이랖시고 그냥 건네주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이거는…뭐야?"

그냥 뜬금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녀.

"그냥…매일 도시락챙겨주고 막 그러시니까…보답이라도 할까 해서요"

나는 머리를 긁적긁적 거리며 그녀에게 '해바라기 화분'을 내밀었다. 이것말고는 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나는 몇 시간이고 여자들을 위한 선물을 검색해보았으나 내가 만족할 만한 것은 나오지않고서 그냥 불현듯이 그녀가 여태까지 줄곧 해바라기를 바라봤다는 것을 깨닫고서 무작정 꽃집에서 구입해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그것도 포장도 안하고서.

"화분…?"

"해바라기 화분이예요"

"…"

'해바라기 화분'이라는 말에 그녀의 무표정이 더욱 더 무표정이 되었다. 어째 내가 잘못 선물을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물이 싫으시면 그냥 저한테 돌려주셔도 되요. 그냥 선생님이 맨날 도시락 챙겨와주셔서 보답으로 이거를 골랐었는데, 맘에 들지 않으셨나보네요"

"아니"

그녀는 무표정으로 해바라기화분을 바라보다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보았던 그 아름다운 미소가 다시금 보여졌지만, 조금은 씁쓸함이 담긴 미소. 그렇지만서도..어쩐지 기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맘에 들어. 고마워 정우. 나를 위해서 이런 것까지 사와주고"

"에…뭐…"

"잘 키울게. 그리고 꽃을 피우면, 그 때 너에게도 보여줄게"

정말로 잘 준건가..? 싶으면서도 그녀가 그렇게 말해주었으면 되었지 뭐..라고 생각해버린 나였다. 그녀가 만족하면 된 것이다. 나는 그것만 바라고서 이것을 산 거니까.

그녀와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지고나서 나는 5교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제 10월도 다 가고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려하던 시점이었다.

"어이 시체"

"응?"

"너, 요새 선생이랑 이상하더라?"

"으응?"

"맞아! 그러고보니까 맨날 선생이랑 같이 다니고!"

"에엑?!! 설마 시체 너 설마 담탱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였어?!!!"

"헉 설마!!!! 우리의 혜연쌤이!!!!!!!!!!!!"

"아악 이 놈한테는 얼마나 많은 미소녀가 꼬이고 꼬이는 거야!!!"

"끄아아악!!!! 저 녀석은 진짜 죽여야대!!!!"

'어이어이…죽여야된다는 소리까지 내가 꼭 들어야겠냐…?'

그런데 나와 그녀 사이에 대한 묘한~소문은 파다하게 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확실히 그런 소문이 퍼질만도 했다. 둘이서 밥을 먹는데다가 둘이서 같이 퇴근을 하고..그냥 평범한 제자와 선생관계에서 더 친한 정도? 그런 관계라 정의를 내릴 수 있었는데 어째 소문은 나와 그녀를 '사귀고 있다'라고 만들고 있던 와중이었다.

"크윽!! 선생과 제자의 금단의 사랑이라니!!!!"

"부럽다!! 부러워!! 그런 미녀선생이랑!!!!!!!!"

'에고고고…'

나는 오해로 점철된 인생을 꾸준히 살아가고 있구나..이런 인생 아마 못 벗어날 듯 싶다고 할 정도로 오해는 쌓여만간다. 하기야..내가 제대로 된 인간이었어도 이런 오해는 안 쌓였겠지만서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거, 그냥 소문으로만 생각하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정작 나와 그녀 사이에서 아무런 썸씽도 없었기에 그냥 자기 자신한테도 당당하다. 뭐 오해의 소지를 남겨둔 거는 사실이어서 감수를 해야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반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그렇게 쭈욱 수업시간에서 잠을 잤다. 나야 맨날 학교에서 잠을 자니까. 그리고 선생이 종례시간에 깨울 때까지, 자다가 학교건물 1층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하아…"

그러고보니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그녀를 기다리게 된 거더라..? 기억도 나지않고, 이유조차도 생각나지않는다.

"가자"

그런데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것도 잠시, 그녀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 이것이 일상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나와 그녀 사이에선 말이 없다. 그냥 서로 앞만 보고서 걸어갈 뿐이다. 일정한 보폭. 같은 속도로 천천히 걸으면서 나와 그녀는 이렇게 학교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15분쯤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그 버스정류장에서 오늘도 헤어지게 되겠지.

그냥 걷다보면 금방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멈춰선 그녀에게 꾸벅 '안녕히가세요'하고 인사하고, 나는 더 25분 간 집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와중, 그녀의 말에 우뚝 멈춰섰다.

"정우야"

"…네?"

"잠깐…우리 집으로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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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으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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