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88화 (28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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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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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저물어간다. 서서히 지는 해 아래에서, 삐그덕거리는 그네소리만이 이 곳에 울려퍼진다. 시간이란 무심히 지나가는데, 우리 사이에선 말 한마디마저 오가지않는다.

"잘 지냈어?"

겨우 말 한마디를 꺼낸다. 그래. 잘 지냈느냐는 말. 오랜만에 보는 그녀였기에, 이 말은 먼저 했어야했건만..꽤나 오래 지나고나서야 얘기를 꺼내고야 말았다.

끄덕.

그녀는 말 한 마디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 '못 지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없을 것이다.

다시금 침묵.

"…이혼했어"

...지금 뭐라고...

"결국. 이혼했어"

이혼....부모님의 이혼이라...나야 비행기 사고로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그 이혼이란 것을 겪었을 때의 느낌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전혀 생기가 있어보이지않았기에..이 때엔 내가 위로해줘야된다라고 내 마음 속에선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심정. 분명히 착잡할 것이다. 착잡함을 넘어 복잡미묘한 심정을 가지고 있겠지.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난 그녀의 마음에 대해 판단 지을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겪지않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그녀가 아니니까.

"그래…그랬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긍하는 것일뿐. 단지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밑에 있는 모래와 자신의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아하하…"

그러다가 머지않아서 그녀의 힘없는 실소만이 흘러나왔다.

"이상하지? 정우군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닌데…왜 갑자기 널 보자마자 이런 얘기를 꺼내고…아무 것도 아닌데…아무런 관계도 아닌데…왜…"

그녀의 눈에선 눈망울이 뚝뚝 떨어져나간다. 이제서야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같았다. 어떠한 흐느낌도 없이, 그냥 눈물만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엄청나게 잘된 일이었는데…사실 우리 아빠. 정말 원망스러웠고 그것을 그저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콱 이혼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늘상 생각하고 있었는데…막상 이혼하고나니까…왜 이렇게 이상해질까 왜…"

"…"

"울었어. 아빠가 이혼서류를 척하니 내밀었을 때…엄마는 아빠가 사라지고나서 하염없이울었어…"

나는 그녀의 푸념을 그저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너무나 엄마가 안쓰러웠던 거구나...그리고 하필이면 '나'라는 인간을 이 곳에서 만나서..

아아..이렇게 되면 내버려둘 수가 없잖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떨구고서 여전히 눈물만을 흘리는 그녀의 앞에 서서 살포시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왜. 바보같이. 난 그녀를 차버리고 또 차버렸는데. 왜 난 바보같이 이러고만 있는 것일까.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 단지 이러한 모습이 난 너무나 불쌍하게 생각해서.

"정우군…정우군…"

그녀는 나의 허리를 두 손으로 꼬옥 안았다. 그녀도 위로받고 싶었겠지. 그래. 위로. 누군가가 안아줘야했기에. 누군가가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야했기에.

그리고 그녀는 내 품 안에서 그제서야 흐느낀다. 펑펑 울면서.

마치 아이처럼. 그녀는 그렇게 울었다.

"미안해…이렇게 울어버려서…"

얼마나 울었을까. 나의 품에서 끊임없이 울던 그녀가 울음을 멈추고 품 안에서 빠져나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고마워…이렇게 위로해줘서…"

"내가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이러한 도움이라도 있어야했다. 나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선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 잠들어있었기때문에. 그나마 이러한 도움이 있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자기합리화를 시킬 수 있기에.

그녀는 그네에서 일어나 멀지않은 거리에 있던 벤치로 향한다. 나를 향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나는 그녀의 손짓을 따라 벤치에 함께 앉았다.

노을도 저물어가는 저녁시간. 달이 서서히 뜨려고하는 암청색의 하늘.

"정우군…시간없으면 가도 돼. 그렇지만 혹시라도 시간이 있다면…조금만…아주 조금만 함께 있어줄래?"

나는 그녀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봤자 잉여인생. 할 것도 없고할 짓도 없었다. 나란 존재에게 널린 것은 시간 뿐이니까.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한 벤치에 앉아서 둘이서 바라본다. 그녀의 말대로 우린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친구? 친구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그녀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 그렇다고 연인?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않았다.

결국엔 이도저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관계였다. 하지만 말이다. 지금만큼은. 단지 지금만큼은 나는 그녀에게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비록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지만..그녀가 행복해졌으면 했다.

그녀를 사랑하지않는 나보다..훨씬 그녀를 사랑해줄 남자를 찾길 바랬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기에...누군가가 그녀를 계속 바라봐주고 지켜봐줘야 했기에..

그녀는 한 없는 애정결핍. 가시를 두르고 있지만 연약한 존재. 너무나도 가시는 아프지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바라봐달라고 끝없이 말하는 그녀라서.

투욱.

한창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그녀가 나의 어깨에 기댄다.

"난 있지…정우군이랑 이러고 싶었던 거 알아?"

나는 모모처럼,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어주기만 하였다. 아무런 말 없이, 아무런 행동도 없이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정우군. 난 여전히……"

"…?"

"너를……너를……"

옆을 돌아보니 그녀의 눈은 감겨있었다. 무척이나 편안해보이는 얼굴이라 난 도저히 그녀를 깨울 수 없었다. 계속 이러고만 있어야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아니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완전히 잠들었기를 기다렸다 그녀를 업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야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완전히 어두워진 도시의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녀가 좋은 꿈을 꾸길 바라였다.

"우웅…아빠…엄마…"

난 어쩌면 그녀의 애정결핍이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원망의 존재이자 좋은 아빠가 아닌 사람때문에...그녀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하고...

난 애초부터 생각을 잘못했던 거일수도 있다. 그녀가 진정으로 바랬던 것은..'이성간의 사랑'이 아닌 '부모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부모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그래서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더욱 더 갈구하고 갈구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 그녀의 초인종을 딩동하고 눌렀다.

"누구세요?"

어느 한 여성의 목소리. 엄마인 듯 싶었다.

"접니다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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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조회수 100만 돌파 감사드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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