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80화 (2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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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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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여름.

8월. 후덥지근한 날씨. 가끔가다가 비로 이 땅을 식히고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시원함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비가 내리는 것이 더 짜증날 뿐이니까. 식혀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습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 비라는 놈이었다.

악몽에 대한 공포덕에 잠을 자지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이 '비'라는 것은 정말이지 짜증나고도 짜증나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옷마저도 모두 벗어던져버린다.

"후우…"

상처투성이의 몸. 어디 하나 성한 곳이 단 한군 데도 없었다. 수 많은 칼자국과 흉터. 양 손목엔 동맥을 끊어 자살하려고 한 깊은 흔적들이 있다. 흉부와 복부역시 칼자국들이 무성하다. 스스로 찌른 것들. 수 많은 자살시도의 증거들이었다.

"…무…무무무무무…"

"…엉?"

내 몸을 보고서 한숨만 내쉬고 있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난 고개를 돌려보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민정이가 얼굴 새빨개진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그랬었지..분명히 난 지금 '벗은' 상태였지..물론, 하체를 벗은 건 아니지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그녀. 이미 볼 건 다 본 주제에 왜 이제와서 가리는 척 호들갑이야. 그리고 어이 민정양? 왜 눈 부위는 손으로 가리지않은 건가요?

"빨랑 옷 입어! 빨리!"

"네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몸을 보고 있는 민정양이었다.

"내가 재…재워주려고 여기에 오고보니까…"

날 재워주겠다고 말한 것을 지키기위해 내 방에 들어온 거고, 그 때 빌어먹게도 타이밍이 맞아서 내가 옷을 벗은 광경과 마주하게 되었다...라고 변명아닌 변명을 줄줄 늘여놓고 있는 민정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정작 보여버린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이 녀석이 더 호들갑이어서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그렇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이 녀석의 벗은 모습을 보면 아주 큰 일이겠지만, 이 녀석이 내가 벗은 모습을 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말이다.

"그…그거야…!!"

"뭐?"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보게되니까 나도 모르게…"

"뭐? 똑바로 말해"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니까 답답했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말하지않으니 답답할 노릇.

"어…어찌되었든 아무 것도 아니야! 그…그렇다고 착각하지마! 난 따…딱히 오빠 몸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그저 재…재워주려고 온 거 뿐이니까!"

"그래서? 날 어떻게 재워주려고?"

"…안아서…"

"엉?"

"안…안아서 재워준다고!"

순간 침묵. 나는 할 말이 급(急) 없어져버렸다. 왜냐고? 아주 크리티컬을 제대로 얻어맞았기때문이었다. 그리고 민정이는 자기가 말해놓고서 창피한 건지 화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있었다.

"그러니까! 어서 누워!"

"…"

"누우라니까!"

"어…어…"

민정이의 강압으로 얼떨결에 난 침대에 누웠고, 민정이는 그렇게 나에게 윽박지르고나서정작 자신은 쭈뼛쭈뼛 있다가 고개를 두리번두리번하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며 침대주변에서 맴돌았다. 그럴 거면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말든가...

그런데 그러다가.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재빨리 내 옆에 누워버리는 민정이였다.

"…"

"…"

서로 침묵. 심지어는 전등도 끄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딸칵. 불이 꺼졌다. 민정이가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전등을 끈 것이었다. 그러고서 다시 바로 내 옆에 누웠다.

"…"

고개를 돌려서, 내 얼굴을 바라보는 민정이. face to face의 가까운 거리라, 나도 급당황하게 되었다. 엄청나게 짧은 간격. 연인이었다면 당장에라도 키스가 가능한 간격이었다.

민정이의 표정이 묘하였다. 전등이 꺼져있는지라 그녀의 얼굴이 정말로 어떠하였는지는 몰랐어도, 그래도 달빛이 비춰서 어느 정도는 보였던 것이다. 힐긋 눈으로 쳐다보면 그녀가 몸을 내가 있는 방향으로 옆으로 눕고서 날 쳐다보고 있었음이 보였다.

"…오빠. 자?"

"…아니"

"역시, 잠이 안 오는거야?"

"…응"

난 눈을 감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 매일 꾸는 악몽 덕이다. 매일 꾸는 악몽 덕에 난 이렇게 폐인이 되었다. 그 악몽에서 나는, '항상 죽으니까'. 어떠한 스토리였던지 간에,(사실 그것이 어떠한 스토리였는지도 모르지만)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내가 죽는 것. 그것만 기억이 난다.

수 많은 자살시도에도 죽지않던 내가, 꿈 속에서는 항상 죽는다. 그런 일상을 지내다보면 뭐랄까..기분이 야리꾸리해지고, 텐션은 도무지 좋아지지가 않으며 무기력하였다. 게다가꿈이 너무나도 리얼해, 깨어나고보면 비오듯 땀이 쏟아진다.

그래서 애초에 그런 꿈을 꾸지않으려고 잠조차도 자지않는 것이다. 인간이 해야할 가장 당연한 생활인 잠을 말이다. 물론, 잠을 자긴한다. 하지만 그 잠을 자는 시간이 거꾸로다.낮과 밤이 뒤바뀐 채,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이렇게해도 잠이 오지않는 거야?"

"그게 무슨…?"

내 몸이 어디론가 이끌린다 싶더니, 곧장 그녀의 품에 안긴다. 그녀의 감촉. 지현누나처럼폭신폭신(....)한 느낌이 안 나고 약간은 딱딱하지만 무척이나 아늑하였다. 생각해보니 참웃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 어린 소녀의 가슴에 안겨있다는 것이 말이다.

"…편히 자. 내가 지켜줄게. 어떠한 악몽도, 두려움도…느끼지않게 해줄게. 그러니까…내 품 안에서…편히 잠들어 오빠…"

"…민정아…"

"그…그렇다고 내가 오빠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 단지 여동생으로서…오빠가 안쓰러워 그런 것일 뿐이니까!"

그녀의 가슴에 안겨서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어떠하였는지 대충 상상이 간다. 분명히, 얼굴이 붉어졌고.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말을 더듬거리는 것을 보면…분명히 창피패하고 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저으며, 어찌할 줄 몰라하는 민정이의 얼굴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움직이지마! 그러면 가슴이…"

"…?"

"…"

말을 못하는 민정이. 뭐...상관없나. 민정이의 품에 안긴 한심한 오빠다. 오히려, 그녀를 이렇게 껴안아줬어야되는 건데..하는 생각이 유달리 든다. 그런데 바보같게도, 이상하게 졸움이 쏟아지는 것이다.

졸리다. 감겨오는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결국 나는 눈을 감는다. 항상 악몽을 꾸던 내가, 이렇게까지 '자고 싶다'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덥고, 후덥지근한 가운데서. 몸이 밀착된 채로, 잠든 우리들.

"내…내꿈 꿔…오빠…"하는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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