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77화 (27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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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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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아…?"

뒤에서 민정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민정이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들 세 명이 있었다. 민정이도 그들을 보면서 살짝 놀라는 눈치를 보이고 있긴 한데...그렇다면 친구들인 것일까.

"아…"

"민정이가 왜 여기에…"

"…그리고 옆의 있는 사람은…?"

세 명의 소녀들이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흐흐흐'하고 무엇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왜 나를 보면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거지?

"후후후…민정아?"

"우리, 아주 기나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뭐야 이 상황은..음흉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며 민정이에게 말하고 있는 소녀들과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정이. 뭐, 걸리지 말아야할 상황에 걸려서 당황해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시켜줘야 되지 않겠어? 이 잘생긴 남자분을 말이야"

잘생겼다..? 요새 여자들의 '잘 생겼다'는 기준이 아주 많이 하향된 건가. 누가 이런 다크서클에 회색빛 눈을 가진 사람을 '잘 생겼다'라고 말할까. 그냥 예의 상으로 하는 말이겠구나하고 넘기는 나였다. 그리고..확실히 이 소녀들은 민정이의 친구들로 보인다. 딱히 자기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민정이의 친구들이었기에 나는 이 녀석의 친오빠라고 말하려고 하였다.

"이 녀석의 친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민정이의 손이 나의 입을 막았다. 게다가...

"내 남자친구. 정우오빠야"

"…!!!!"

크나큰 망언을, 민정이가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민정이랑 사귄 지 어느 정도 됬어요?"

'하아…'

어쩌다보니 이 세 명의 소녀들과 동행하게 된 나와 민정이. 그리고 그와 함께 나에게 셀 수 없는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민정이의 충격발언으로 나의 정신이 꽤나 어질어질했는데이 소녀들의 질문공세에 두통마저 밀려왔다.

한숨을 쉬면서 민정이에게 '네가 어떻게든 해봐라'하고 눈치를 줘도, 민정이는 '말하기나 해!'하고 나의 옆구리를 은밀히 쿡쿡 찌른다. 커피숍 안에서, 나와 민정이가 나란히 앉아있고 그 앞에 세 명의 소녀들이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왜 날 남자친구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냐고요. '그냥 사실은 친오빠입니다'라고 말하려고하여도 민정이가 찌릿.하고 쳐다보는 바람에 도무지 말할 엄두가 안 난다. 친오빠라고 얘기했다가는 어떻게 될 지..후유..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장단에 맞춰줘야되었다.

"…한 3주 되었나"

"꺄아!!"

그냥 적당히 말했을 뿐인데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지르는 소녀들. 민정이는 그 말을 말한순간 또 얼굴이 묘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빠 몇 살이세요?'라던가 '취미가 뭐예요?'라던가 나의 신상을 캐내려는 질문이 연이어 쏟아졌다. 몇 살이냐는 물음에 자신의 실제나이를 말하였고 한국고 학생이라 대답하였다. 뭐 취미는..'미연시'라고 말하려하였다가 또 민정이가 눈치를 주는 바람에 '스쿼시'라고 대답하였다. 실제로, 스쿼시를 치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제는 짜증이 밀려올 지경이다. 그만 질문해줬으면 좋겠다. 애당초 나와 민정이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다. 심지어는 친남매사이다. 그런데 이 장단에 맞춰줘야 된다는 것이 나는이해가 되지않는다. 그리고..이 소녀들 보라고 민정이는 나의 손을 잡으며 '연인'들이 누구나하는 '서로 손 잡기'스킬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에, 또다시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말이다.

"으…손발이 오글거려…"

"민정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이었을 줄은…"

"민정이는 연애라던가 그런 것에 관심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들보다…"

젠장 빌어먹을. 이제는 이 녀석들의 머릿 속에서 나는 '민정이의 남자친구'로 완전히 인식되어버렸다. 그리고, 민정이에게 따져야되었다. 왜 날 친오빠가 아닌 남자친구로 소개시켜줬냐면서.

"잠시 좀 민정이와 할 얘기가 있어서…"

나는 민정이의 손을 잡아이끌면서 소녀들에게 양해를 구하였다.

"다녀오세요~"

나는 민정이를 강제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끌고갔다.

"박민정"

"…"

여전히 나의 손과 민정이의 손은 이어져있었다.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민정이는 고개를 숙이고 나와 이어진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 왜 날 친오빠라 말하지않고 남자친구라고…"

"…언니한테는 질 수 없어"

"뭐?"

언니한테 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여. 언니라면...지현누나? 지현누나한테 뭐가 질 수 없다는 거야. 왜 날 남자친구라고 소개시켜줬냐는 물음에 언니한테 질 수 없다는 동문서답.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아무 것도 아니야. 그리고 나…해보고 싶었어"

"…뭘 해보고 싶어?"

"이렇게 남…남자랑 손 잡는 거. 해보고 싶었다고"

"…하아? 너 인기 많잖아. 얼마든지 사귀자고 고백할 사람도 많은데, 왜 굳이 나를?"

"…!!!"

그 말에 당황스러워하는 민정이. 그렇다. 그녀 역시 인기인 중의 인기인이다. 한 마디로 중학생계의 지현누나라고 해야할까. 고등학생에 지현누나가 있다면, 중학생에는 그녀가 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면 될 것이지, 왜 나와 손 잡고 있는 거냐고. 게다가. 왜 날 친오빠가 아닌 남자친구라고 말했어?"

"…정말로 몰라?"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그녀. 정말로 모르니까 이런 소리하고 있는 거지.

"모르니까 묻고 있는 거 아냐?"

"…"

민정이는 한 동안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몸을 들석들석하면서, 얼굴을 부르르떨고 있었다. 뭐랄까. 화난 듯 보였다.

"이…이…이 바보오타쿠야!!"

그리고 한껏 화난 어투로 소리를 지르는 민정이.

"…엉?"

"바보바보바보!! 왜 모르는 거야 왜!!!! 이 초둔감왕바보오타쿠!!!"

"…??"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대체 무얼 민정이가 알아주었으면 한 건지. 민정이는 씩씩 분노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됐어. 조금이라도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러다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서 천천히 돌아섰다.

"오타쿠"

"…왜?"

"일단 오타쿠를 내 남자친구라고 소개했으니까, 내 친구들이랑 있는 동안에는 남자친구답게 굴어"

"…내가 왜?"

"알.았.지.?"

민정이의 몸에서 흉흉한 살기가 풍겨져나온다. 이 연극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살기. 확실히, 진심이다. 나는 그것에 한껏 두려움을 느끼며, 민정이가 하자는 대로 해야만 하였다.

어쩌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나는 민정이의 뒤를 따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하고~머리를 자르고~멋진 여자로~태어날 거야~♩"

계속 이 녀석들과 돌아다니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헤어지고 싶은 나의 심정이었으나, 나의 심정을 까맣게 모르고서 민정이와 친구들은 한껏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게다가 민정이에게 연신 '오빠~!'소리를 들으며 옆구리에 팔짱을 끼는 것과 같은 스킨쉽을 해야만하였다.

오늘만큼은 민정이의 남자친구라는 역할을 해야해서 얼떨결에 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은...그리고 민정이는 기분이 업되어있는지 나와 함께 있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아까 전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살기는 어디로가고서, 지금은 귀엽고(?!) 애교있는(?!) '여자친구'의 민정이였다.

친동생이 여친이라니..참 웃기지도 않을 상황이구만..물론 연극에 불과하지만...기분이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이 녀석들과 노래방에 있다. 민정이는 뭐가 그리 신났다고 친구들과 함께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냥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녀석들이 노래하는 것을 그저 듣고, 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민정이의 친구녀석 중 한 명이 나에게 마이크를 불쑥 들이밀고는..

"오빠노래 듣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민정이를 쳐다보며 계속 'help!!'의 눈빛을 보내었지만, 그녀도 내가 한 곡 부르길 바라는 눈치였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정말로 안 부를거야?'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남자친구역할이라지만은..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나는 손을 내저으며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이 녀석들은 '에이~빼시기는~'하면서 막무가내로 마이크를 들이밀고 심지어는 나를 화면 앞에 있는 한가운데 장소에 들이밀기까지하였다.

어쩌다보니 난 이 노래방의 무대에 오르게 된 것. 어느 새 녀석들은 소파에 앉고서 박수를치며 내가 노래부르길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안하겠다고 하였는데, 이 녀석들은 막무가내다. 하아..정말로 해야되나..?

나는 다시 민정이와 눈빛을 보내었다. '정말로 해야돼?'하고 보내는 나와, '어서 불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민정아~너도 가야지~"

"어?"

그리고 그녀도 친구들의 떠밀림에 내 옆에 있게되었다. 방 한가운데에서, 둘이 있게되면서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는데, 그녀의 친구들은 한껏 기대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에…그러니까…"

"사랑하는 민정이 앞에서 불러보세요!"

"꺄아!!"

"…"

도무지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말에 민정이는 부끄러워하고 있었고...이거, 그냥 안하겠다고하였다가는 애들이 실망할 것 같고..더 이상 뺄 수도 없고...민정이도 부끄러워하고 있지만...이 녀석도 은근히 나를 힐긋힐긋 쳐다보며 기대하고 있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으니..

"노래 잘 못 부르니까, 부르고나서 괜한 말이나 하지마라"

"에이~저희가 그럴 리가 있겠어요?"

후우..어쩔 수 없다. 나는 그녀의 친구들이 건네준 선곡책을 뒤적거렸다. 한국노래야 잘 모르니까..이거..부를까나..나는 버튼을 하나하나 누르고 마이크소리가 잘 나오는지 '아. 아'하고 소리를 내본다.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친구들이 '꺄아!'하고 소리를 지른다. 민정이가 기대하고 있다는 눈빛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난, 노래방 화면에 보이는 가사를 읊기 시작했다.

"Oh her eyes, her eyes, Make the stars look like they're not shining. Her hair, her hair, Falls perfectly without her trying. She's so beautiful, And I tell her every day"

고작 첫 소절을 불렀을 뿐인데, 친구들은 '오빠 잘 불러요!' '멋있어요!'하고 말하고 있었다. 이거 하나 불렀다고 멋있나..? 참 이상한 녀석들이다.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불렀을 때, 녀석들의 열광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When I see your face, There's not a thing that I would change. Cause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And when you smile, The whole world stops and stares for awhile. Cause girl you'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

모처럼 밝은 노래를 부르는 나. 사실 이 노래는 아주 우연히 듣게 된 것이었다. 멜로디에 상당히 이끌려서 듣게 되었는데, 상당히 좋다. 가사는 꽤나 오글거리지만...그래도 사랑하는 그녀가 있을 때에 부를 수 있는 좋은 노래인 것 같아서 이 노래를 부른다.

민정이도 상당히 놀란 눈치로 나를 쳐다보다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Just the Way you are…"

난 그녀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친구들은 애정행각으로 생각하였는지 계속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민정이는 얼굴을 붉힌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말이다.

노래가 끝나고나서, 박수소리가 계속해서 터져나온다. '오빠 엄청나게 잘 불러요!'라던가 멋있다하는 소리만 몇 십번 듣는 것 같았다. 대체 뭐가 멋있다는 건지..일단 한 곡을 불렀으니 이제 더 이상 노래를 부르라는 떠밀림은 없겠..

"앵콜!"

"한 곡 더 불러주세요!"

내가 말을 말자...

노래는 결국 부르지않았다. 이제 되지않았는가. 나는 더 이상 창피를 당하기는 싫었고, 친구들은 '체엣'하는 소리만하며 실망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민정이의 차례였다.

왠일로 친구들과 같이 부르다가, 혼자 쭈뼛쭈뼛 가운데에 서서,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다가, 그리고 버튼을 천천히 누른다.

가운데에 서서, 마이크를 두 손 모아 꼭 잡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에선 왠지모르게 이슬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하아'하는 숨소리와 함께, 노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도 넌 혼잔거니 물어보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있어요"

왠지모르게, 아주 왠지모르게, 그녀가 부르는 가사 하나 하나에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은것 같았다. 아까 전까지만해도, 어린아이와 같이 친구들과 신나게 부르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한 없이 허망하고. 아련한 미소.

나는 그저 민정이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옅고 희미한 미소에서, 가련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대는 내가 안쓰러운 건가봐. 좋은 사람있다며 한 번 만나보라 말하죠.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녀는 계속해서 나에게 미소짓는다. 이 미소의 의미는...대체 무엇일까.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꺼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그대'라는 대목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랄까 이 노래는..짝사랑노래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민정이의 눈가엔 어느샌가 물방울이 고여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녀의 마음을 담아서였을까...

"그 사람, 그대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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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의 현재시점은 고2, 8월 여름입니다. 그러니까..part 9시점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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