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71화 (27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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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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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수진(지현의 친구)의 집. 지현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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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낮과 밤이 반복되는 이 시간 속에서. 난 방 구석에 처박혀 침대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 날. 그에게서 도망친 이후로, 난 집을 떠나왔다.

도망치고 싶어서. 단지 그 때만큼은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이 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몇 일 째 이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곳은 '남의 집'이다. '우리 집'이 아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절친한 친구인 수진이에게는 항상 폐만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난 수진이의 방에만있었다.(그래서 수진이의 부모님조차도 내가 이 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현아…"

이 몇일 간 잠도 오지 않는다. 거울을 보니까 내가 봐도 정말 폐인같이 보인다. 초췌함과 창백함으로 이루어진 얼굴과 눈가에는 살짝 다크서클도 생겼다.

수진이는 그러한 내가 안쓰러운 듯 쳐다본다. 그녀는 내가 이 곳에 있는 동안 편하게 지내도 된다고 수 없이 얘기하였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 산책이라도 할까?"

"…괜찮아"

"하지만 너…몇일 째…"

"미안…미안해 수진아"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거니?"

"…"

'마음의 정리'...?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순전히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이 곳에 오게 된 것일 뿐. 마음의 정리를 가지려고 가출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정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난 이 혼란스러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이 혼란스러움을 정리하지 않으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망스럽다. 그가 원망스럽다.

고작 '나'를 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에게 내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만 해도 마음아픈데, 그 상대가 서현언니였다. 내가 가장 질투하는 사람과 연인관계가 되었다. 그것도 금지된 관계. 근친끼리 비밀스러운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정말로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이렇게 마음이 아파도 참을 수 있었다. 나야 이 마음..끝까지 숨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의 태도에 난 실망감을느꼈다.

날 좋아한다면서...

"…동생군. 너 계속 찾아다녔어"

"…"

"오늘도 동생군이랑 얘기하였는데…나 말했어"

"…무엇을?"

"너랑 연락이 된다는 거. 어디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어. 난 보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용서해줘도 되지 않아?"

"…"

"내일. 크리스마스파티야. 알고 있지?"

"…응"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바로 그의 생일.

"동생군이. 너한테 얘기하랬어. 크리스마스파티 꼭 왔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응"

그냥 '연인'인 서현언니와 함께 즐기면 되는데..왜 나를 부르는 거야...이럴 때 나는 걸림돌아냐..?

"…지현이 너도 집으로 돌아가야 될 때가 아닌가하고 생각해…어차피 동생군 빼고는 모두 연락이 되는데다가 동생군도 너 찾느라 고생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내버려두라고 하지 그랬어…?"

이런 나 따위..찾지 말라고 하지 그랬어..?

"소중한 가족이니 걱정하는 게 당연하고…게다가 지현이랑 동생군이랑 많이 친해졌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래?"

"있지…수진아"

"응?"

"나…정말 멍청이고…바보고…쓰레기야"

"어째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사실 나…그냥 '질투'하고 있는 거야…"

"질투…?"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그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서…"

"그의 관심? 혹시 동생군 말하는 거야?"

이 마음을 어찌 말해야 좋을까. 이렇게 그와 서현언니가 사귀는 사이가 되었어도. 나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난 이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서현언니이기에 더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니까.

그 마음을 어렸을 때부터 고이고이 간직해왔었으니까. 하지만...하지만...그 마음이 산산조각나버려 생긴 상실감에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사랑하는데..사랑하고 있는데...그가 날 바라봐주고 있는 동안에 난 정말 행복했는데..그에게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 내가 옆에 항상 있어주었는데...!!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난 이럴 수 밖에 없었어.

변명일지라도. 난..이럴 수 밖에 없었단 말야.

자꾸 울컥울컥해서 결국에는 눈물이 나와. 그것도 친한 친구 앞에서 울어. 창피하게.

"지현아…울어?"

"정말 잘못된 인간이야…나…"

"왜 그리 비하하는 거야…"

"나 있지…정우를 사랑해"

"…뭐?"

"정우를 사랑하고 있단 말야…"

"당연히 가족끼리 사랑할 수도 있는 건데…설마 너…!!"

나는 울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못들은 거 아니겠지? 진짜로 동생군을…'이성'으로써 사랑하고 있어? 정말?"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현아…대체 언제부터…"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하아…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까 말이 도무지 안 나오네. 지현아. 네가 말하는 거. 너 자신도 의미를 잘 알 거 아니야. 진짜. 정말로. 동생군을 사랑하고 있냐고"

"…응"

"그래서…? 그 동생군을 사랑하고 있는데, 왜 동생군을 피하는 건데…?"

"정우에게…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그래서 나는…"

"…"

"나…정말 인간말종이지? 미친년이지? 어떻게 친동생을 10년 넘게 사랑할 수 있어…? 게다가 그 친동생한테 연인이 생겼다고 이렇게 질투하고 있어…나는 친누나라고 몇 번이나 자신을 억누르면서 이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데…하지만 이제 참을 수가 없어서…"

"하아…지현이가 브라콤인 것은 알았다만은…이 정도일 줄이야…"

그녀는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게 보이는 거겠지.

"나 어떻게 하면 좋아…? 정우에게 연인이 생겨서…포기해야하는데…"

"…"

"이 마음은 그러지 못하겠다고 말해. 그를 사랑하는 이 마음이 도무지 멈춰지지가 않아"

"…내가 뭐라 말해야 되나…"

"수진아. 얘기해줘. 나…어쩌면 좋아?"

"고백은…했어?"

"아니. 전혀"

"사실 너한테 당장 멈추라고 얘기하고 싶다만은, 네가 이리도 간절하니…"

"…?"

"넌 포기 못하겠다는 거잖아. 한번만이라도 고백하는 것은 어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유차릴 필요는 없잖아. 너는 10년넘게 동생군을 짝사랑해왔다고 얘기했지? 그것은 동생군에 대한 너의 사랑이 확고하다는 얘기잖아. 연인이 있다고 해서. 금지된사랑이라고 해서. 네가 더 이상 회피할 이유는 없다고 봐. 내 입장으로서는 반대였지만난 어디까지나 너의 친구이니까.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은 볼 수가 없으니…이렇게라도 용기를 북돋아줘야지"

"수진아…"

"내가 그만두라고 얘기해서. 네가 그만둘 것은 아니잖아. 마음은 쉽게 말로 움직여지지 않는 법이니까"

"…"

"그러니까. 이렇게 도망치지만 말고. 확실하게 얘기하란 말야. 동생군에게"

"…나는…"

"언제까지 바라만보고 살 거야? 그냥 가슴앓이만 하면서 살아갈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내일 크리스마스이브고 잘 되었네. 얘기해. 만약 이것이 동생군에게 전해지지 않더라도, 너는 확실히 그 마음을 얘기하였으니까. 10년동안의 보상을 받아야되지 않겠어?"

"…"

"마침 크리스마스파티이기도 하고…고백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잖아?"

"…응"

"그러니 힘 내 지현아. 난 언제나 네 편이야"

"고마워. 정말로…"

12월 24일. 그의 생일.

난...크리스마스파티에 나가기로 하였다.

생일선물과 함께. 난 그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10년 전에 전해주지 못한 생일선물. 어긋나버린 그와의 관계.

난 이 모든 것에..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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