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70화 (2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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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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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하면, 당신은 무얼 하겠습니까?'

그러한 질문에 사람들은 쉬이 답할 수 없다. 왜냐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막상 제한된 시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기 떄문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 대략 일주일 정도 남아있는 삶 속에서 나 역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채 생명의 불꽃은 꺼져가고 있었다.

지현누나가 들어오지 않은 지 어느 덧 3일. 온 곳을 뒤져보아도 그녀는 찾을 수 없었다.

'사라질 때에는 가족의 웃음을 보고 가야 되지 않겠어?'

꿈의 세계에서, 또다른 자신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에게 웃음을 주지 못하였다. 지현누나에게 웃음을 주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초조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건만..

지현누나는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 내가 사라진 후에 돌아올 지도 몰랐다.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서...

"후우…"

검은동물과 똑같이 그 대상자가 되어버리니까 느낌이 오묘하다. 죽음이 두렵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은 지현누나와 다시 화해를 하는 것이지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야 사라져야 할 존재였으니,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다만 무엇인가 아쉬운 것을 두고 가야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정우야"

"…응?"

"모처럼 데이트하는데…뭔가 기운 없어 보여"

요새 지현누나때문에 어수선해진 가족분위기인지라 그녀와 데이트를 하지 못하였다. 생각해보니 같이 살고 있는데도 데이트를 한 횟수는 극히도 적다. 뭐 비밀때문인지도 몰랐지만은 그것이야 이미 들켜버린 지 오래였고..민정이도 이제 그리 터치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랑도 데이트해야해!'라는 조건을 내걸고 말이지...무슨 양다리 걸치고 있는 기분이다. 그것도 '가족끼리'.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씨익 웃어보이며 괜찮다고 얘기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기운이 없어보이겠지만난 그리 기운이 빠지지는 않았다. 괜찮았다.

"맞아. 오빠는 항상 기운 없어보여"

옆에 있는 민정이가 맞장구를 친다. 지금 난 서현누나. 민정이를 양 팔에 끼고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뭐 이런 거...남자라면 꿈꿀 일이 아닌가? 어차피 죽을 날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확실히 즐기자라는 것이 은근히 솟아올라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부우!! 정우는 이런 예쁜 두 여자를 끼고서도 이렇게 힘 없게 굴 거야!"

"부우!!!"

이거 아주 둘이서 잘 맞네...같이 볼을 부풀리며 내 팔을 꽉 잡는다.

"알았어. 알았다고"

"헤헷♡"

승리의 미소를 짓는 두 명의 자매. 내 두 팔을 서로 나눠가지며 데이트를 하는 내내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의 시선? 이제 그러한 것은 안중에도 없다. 나는 여기저기 이 두 여자들에게 끌려다니며(심지어 여자들의 속옷가게까지 들어가야했다) 행복하다라고 하면 행복한 데이트 일 수도 있는 시간을 보내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 세 남매. 확실히 저녁까지 먹었겠다. 그냥 빈둥빈둥 tv만 보고 있는 중이다. 아니 지현누나는 생각 안 하냐고? 가출 한 지 벌써 3일 째거든...?

"저기…민정아"

"응?"

"지현누나…안 찾아?"

"…그건 오빠가 찾아야 될 일이야"

엥...?

"너는?"

"나야…뭐…상관없어"

뭐야 이 시큰둥한 반응은..지현누나와 이렇게까지 사이가 안 좋아진 거냐...

"바보 정우"

게다가 서현누나는 바보라고 놀린다.

"여태까지 우리 셋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고서 언제까지 아프게 할 거야?"

"…하아?"

이건 또 뭐다냐...대체 다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정우는 바보라고"

"초둔감왕바보오타쿠오빠"

"…?"

"됐어. 더 이상 얘기 안 할래. 얘기해봤자 입만 아프니까"

"나도 더 얘기 안 할 거야"

그러고서 다시 tv보느라 열중하는 그녀들. 나는 도무지 모를 상황이다. 지현누나가 안 온다는데 왜 이리 무관심하냐했더니 나 보러 바보랜다. 이거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내가 왜 바보인 건지..(뭐 여태까지 바보라고 쭈욱 놀림받긴 했었지만)

어쩐지 나만 왕따된 기분이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크리스마스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거의 마무리단계에 올라가서 작업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태다.

오늘도 나는 3학년 A반을 기웃거렸다. 혹시나 지현누나가 왔으려나해봤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어라? 동생군이잖아"

"안녕하세요"

"또 무슨 일이야?"

"지현누나 찾으려고…"

'지현누나를 보러 왔다'라고 하면 항상 이 사람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지현누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고 왠지 이 사람이 지현누나의 소식을 알 것만도 같은데..

"…지현이 오늘도 안 왔어"

"하아…"

"대체 무슨 일인데 지현이가 3일이나 학교에 안 와? 뭐 수능도 다 봤겠다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었지만…3일 연속으로 지현이 안 왔냐고 하면 나 역시 걱정이 되잖아.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난 이 사람에게 '지현누나가 가출했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나...

"지현누나가 가출해서…"

"…동생군"

"예?"

"한 마디만 말할게. 네가 진정으로 지현이를 아끼고 있다면, 지현이를 조금 내버려두었으면 해"

"그게 무슨…"

"지현이에게 지금은…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거니까…"

"설마…"

"그럼 난 간다"

역시나...알고 있었다. 지현누나의 행방을. 하지만 그녀에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그러니 내버려두어라...

'나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잠깐만요!!"

"…왜?"

"지현누나에게…크리스마스파티 꼭 오라고 전해주세요"

"…알았어"

만약에 안 온다면..나는 영영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고...만약에 온다면..그것이 그녀를 만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고..모든 것이 그녀에게 달려있다.

나는.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파티 날, 혹시 공연할 사람 있어?"

담임의 수업시간에 수업하지 않고 크리스마스파티 얘기만 쭈욱 나누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공연할 사람이 있냐 물어본다.

"역시나 없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담임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마지막 날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순간 나의 변덕이었을 지 몰라도..

"제가 할게요"

나는 손을 들고야 말았다.

"에?"

모두가 놀라한다. 당연하지..존재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이러한 행사에 관심따위 주지않는 내가 스스로 하겠다고 자원하니..

'난 이 곳에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난 마지막으로..이 사회. 이 세상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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