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69화 (26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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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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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았구나"

배경이 바뀌면서, 난 '그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 소년. 썩을 대로 썩어버린 고목나무와 메마른 황무지가있는 '꿈'의 세계. 난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그 소년이 어디있는지 찾아내려하고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 소년의 모습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안녕?"

그러다가 투명한 막이 생겨나면서 서서히 인간의 형상이 드러났다. 조그만 키에 어린 남자이의 모습으로.

"…!!!"

다름아닌, 어린 나의 모습이었다.

"넌…"

설마 '나'인건가..?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

"그런 건 아니니까 괜한 생각하지마. 뭐 '또다른 너'일 수도 있겠지만은…"

확실히. 사진으로만 봐오던 나의 옛 모습이다. 그런데 난 왜 갑자기 이 곳에 오게 된 것일까. 아...그렇지...

나...깨달아버렸지...

"너의 소망.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그 소망은 이루어졌으니까 말이야"

소년은 웃으면서 얘기하였다.

"…그러게"

확실히 이 1년간, 난 행복을 누렸고 또 내가 죽기 전에 빌었던 소망을 이루었다. 그렇지만그런 소망은 단순히 헛된 '꿈'이지 않은가? 그냥 나는 죽기 전에 그 소원을 빌었을 뿐이고이루어질 가능성은 제로였다. 그런데...

"미련이니까. '삶의 미련'"

그 소년은 독심술이라도 깨우친 듯,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궁금했던 부분에 답을 내려주고 있었다.

"억울함. 너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죽기 전에 '왜 나는 죽어야하는거지?' '왜 나는 '행복'이란 것을 겪지 못하는 거지?'하고 급작스럽게 억울함이 생겨난거야. 체념했는데도…갑자기 '죽기 싫다'라는 무의식적인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본능'이 살아난 거지"

"겨우 그런 것 때문에…내가 다시 살아났다고…?"

"너는 우습게 보는 구나. '삶의 미련'이 얼마나 크나큰 것인지를"

"그 '삶의 미련'에 난 다시 살아났고, 그리고 이렇게 멀쩡히 심장이 뛴다고…? 한 번 완전히 멈추었는데…?"

"너의 '사념'. 즉 너의 '의지'야. '살고 싶다'. '행복을 누리고 싶다'. 나는 '가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그러한 너의 소원들이 이루어진 거지"

"…그래서?"

"얘기했잖아. 너의 소망은 이루어졌다고"

"…"

"'연금술사'. 읽어보았어? 그 곳에서 이런 구절이 나와. '자네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소망한다면, 온 별들이 자네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네'. 정말로. 무엇인가를 간절히바란다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너의 소망이 이루어지게끔 도와준다는거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실제로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현상'이기도 해. 물론 그게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지. 하지만, 그 때가 어느 때이건 짧든지 늦든지 간절히 바란다면 이루어져. 너도 똑같이 그 '현상'이 이루어진 하나의 '케이스'이지 특별한 것은 아냐"

"그럼 회색눈은…? 왜 나는 회색빛 눈이…"

"이미 영혼이 빠져나가버렸는데 어떡하라고? 알다시피 넌 죽었잖아. 그저 네 육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소망'을 이루고 싶다는 너의 간절한 '의지'덕분이지, 영혼때문에 생각을하고 행동을하고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니야. 기억을 거의 모두 다 잃어버린 것은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그 쇼크이기도 하고"

"이해 못하겠어…"

"너에게 이해를 바라라고 내가 말해준 것이 아니야. 나는 너의 남아있는 '사념'. 뭐랄까..너의 찌꺼기와 같은 존재랄까..? '또다른 너'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기도 해. 실제로 또다른 너를 의미하는 것은 따로 있으니까"

소년은 툭툭 고목나무를 건드렸다. '또다른 나'라는 것이..이 고목나무..?

"너의 생명은 이미 없어. 이 고목나무처럼. 그저 뿌리가 땅에 내려서 지탱하고 있을 뿐, 산 것이 산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 이 고목나무는 서서히 무너져내려가고 있으니까"

"…'소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래. 너에게 더 이상의 '미련'은 없어. 지현누나에게. 민정이에게. 서현누나에게. 세희에게. 시하에게. 혜연선생에게. 너는 '사랑'을 받았으니까. 너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자'.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만물의 이치'야"

"후후후…"

"왜 웃어?"

뭔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죽는다고 하니..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요새 몸이 무거워지고 가끔씩 눈의 초점이 없어질 뿐만아니라 생각을 전혀 하질 않고 몇 시간이나 멍 때리는 것이 많아졌는데다가 손과 다리를 비롯한 몸의 감각도 무뎌져가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사라져가고 있다'라는 것의 증거가 아니고서는 무엇이겠는가. 그 소년. 아니 나의 '미련'으로 볼 수 있는 그에게 난 모든 것을 들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 그리고..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말해봐"

"왜 나에게 '검은동물'이 보였던 거야?

"…너는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으니까"

"감정을…알고 싶다니…?"

"너의 회색빛 눈은 영혼이 빠져나가서 생겨버린 눈이야. 그에 따라서 다시 살아난 후에 몇 일간은 그저 멍하니. 인형처럼 살아가야했지. 하지만 너의 '의지'. '소망'이 이루어지기위해서는 넌 '무엇인가를 느껴야한다'라는 필요성을 알게 된거야. 그게 뭐겠어? 사람의 감정이야. 넌 그 감정을 죽으면서 잃어버렸어. 느끼지 못하게 된 거지. 그래서 그 감정이란 것을 다시 알아나가기 위한 일련의 '배움'으로도 볼 수 있겠어. 그러면서 넌 '후회'가 무엇인지, '위선'이 무엇인지, '집착. 질투. 소유욕'. 그리고 '그리움'. '방황. 모순' 등 여러가지 감정을 깨달아갔잖아. 비록 사람들의 어두운 면만을 보는 것이긴 하여도…넌 그 어둠의 감정도 알아가야 했으니까"

"'사랑'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알아가지 않으면 넌 완전히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절대로 너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 '검은동물'이 생긴 것이 전부…'나'때문인 거야? 사람들이 고작 그런 것으로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존재'마저도 지워버리는 거지?"

"감정은 있지…너도 알다시피 지나치면 '독'이 되어버리잖아. 감정이 너무나 지나쳐버려서 결국에는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잖아.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그 충격이 너무나 커서 방황하는 사람들이나, 도박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되어서 결국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들이나, 여러가지 감정의 지나침으로 인해서…사람들은 끝을 맞이하게 되는 게 부지기수야. 인간은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들이니까. 그런 것이야 당연했겠지만은…"

"그래서 '사라졌다'…이거야…?"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지. 검은 동물이 되어서. 끝을 맞이한 사람들의 존재는 잊혀진것이나 다름이 없어. 사회란 것은 냉정하니까. 그런 사람들은 져버리는 거지"

"…"

"넌 구원자가 아니야. 그런 것을 본다고 해서, 그 동물들을 없애버렸다고해서 구원하는 자니 뭐니 그러한 것은 절대로 없어. 너 역시 인간이니까. 너 역시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넌 구해냈어. 그 어둠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낸 거지. 그리고 알아갔던 거야. 사람의 감정을"

"…"

"…사람의 인생은 여행에 비유해. 너는 그 종착지에 서게 된 거야. 여행의 끝에서. 삶의 끝에서 무엇인가를 알아간 뒤에…사람의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니까 여행이 즉 배움이야.그리고 끝에서는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해나간뒤에 끝을 맺는 거지"

"그렇다면 이제…나의 생명은 얼마 남았지…?"

"네가 죽은 날은 너의 생일이기도 하니까. 똑같겠지"

"세계의 법칙인 것인가…?"

"너는 10년 전. 12월 24일 너의 생일에 '죽었으니까'. 똑같이 이 다가오는 12월 24일에 넌 사라지는 거야"

"잔인하군. 사형선고나 다름없잖아"

"너의 그 '소망'이 생과 사. 즉 인간의 '굴레'마저도 초월했잖아. 그것으로 된 거 아니야?"

"그래…그럴 수도 있겠지…"

"…또다시 미련을 두고 있는 거야?"

"모르겠어…"

정말로 모르겠어...난 죽어야 된다. 사라져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세계는 있지…항상 비가 쏟아져. 네가 '슬픔'을 느끼면 느낄 수록 비는 거세지기만 해. 그리고 지금도…비가 한 없이 내리고 있어. 넌 대체 무엇때문에 슬퍼하고 있는거야? 행복하다고 했잖아. 소망을 이루었잖아. 대체 또 무엇이 슬픈건데?"

"…"

"갈 때는…웃으면서 가야 되지 않겠어?"

"…응"

"이제 이 세계와도 헤어질 시간이야 나랑도 이제 이별이겠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말할게 박정우"

"응"

"적어도 떠날 때에는. 가족 모두가 웃는 것을 보고 떠나. 그래야 '미련'은 완전히 없어질테니까. 네 가족이 울고 있다면…너는…"

"그럴게. 나 역시 가족이 웃는 것을 보고 싶으니까"

"그럼 잘 가. 더 이상 이 '꿈'은 나타나지 않을 테니 이게 마지막 인사야"

"그래…안녕"

그 소년은 한 없이 나에게 웃어보였다. 나 역시 그 소년을 웃으며 바라본다. 그러고서 나의 의식이 서서히 흐려져가면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하였다

'안녕. 또다른 나'

"…빠…오빠…정신차려…"

"…끄응…"

"오빠…죽으면 안돼…오빠…"

"민…정?"

"응…오빠…"

그 소년과 헤어지고 나서 눈을 뜬 내가 보인 것은 바로 민정이가 울먹이는 모습이었다.

"왜…울고 있는거야?"

"그야 오빠가 갑자기 쓰러져버렸으니까…내가 흔들어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미안…잠깐 '꿈'을 꿨어"

"그게 할 소리야?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난 피식 웃으며 흐르고있는 민정이의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정말로 미안해 민정아. 네 걱정 끼치게 만들어서"

"…오빠…"

나는 그녀를 껴안아주었다.

"걱정하지마. 보시다시피 살아있으니까"

이 살아있는 시간이...얼마 남지 않았지만은..

"오빠…"

"더 이상 약한 소리 하지 않을게. 자기비하도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웃어줬으면 해. 난 항상 가족의 웃음을 보고 싶은 사람이니까"

"…"

나의 말에 어리둥절했던 민정이였지만 조금있다가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응!"

나는 그러한 웃음에 안심하고 있었다.

"오빠 학교에서 크리스마스파티하지?"

"응. 그런데?"

"언제해?"

"12월…24일.크리스마스는 쉬는 날이니까"

"그럼…나도 그 날 올까하는데…"

"꼭 와. 우리 학교축제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거니까"

"…지현언니는…"

"…걱정하지마. 지현누나는 돌아오니까"

"응…그렇겠지…? 그야 지현언니는 오빠에게…"

"나에게…뭘…?"

"으응. 언니에게 직접 들었으면 해. 내가 미리 얘기하면 재미없으니까"

"뭐야 그거?"

"초둔감오타쿠오빠는 직접 들어야 눈치를 채니까…"

"엉…?"

"바보"

"…??"

민정이는 그러면서 옅은 웃음을 지었다. 서현누나와 연인관계라고 말한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민정이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민정이의 웃음 역시...

'크리스마스 파티…'

난 그러면서 크리스마스파티를 생각하였다.

12월 24일. 내가 사라지는 날.

'최소한…'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불태워보자.

회광반조.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불타오르다가 사라지는...

마지막...축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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