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68화 (26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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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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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겁다.

요새 어째서인지 몸이 무거웠다. 몸무게가 늘어난 것도 아니건만, 몸이 무슨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 그지없었다.

12월 셋째 주. 크리스마스파티준비가 한창 진행될 무렵, 급작스럽게 그 때 그 이후로 집으로 오지 않는 지현누나에 서현누나는 전전긍긍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가 걱정되어 몇 일동안 찾아다녔건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나네 반에 가서 있을까하고 기다려보아도 역시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이미 깨져버린 것만 같다. 각자가 남남인 듯이 대해버리고 급기야지현누나는 가출해버렸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임을 안다. 내가 이 소중한 가족이라는 유대를 끊어버렸다.

절망한다. 자책한다. 나 자신에 대해 분노한다.

나야 원래 이런 놈이라고..이런 놈이었다고 생각하면 할 수록 비참해져만갔다.

"나를 대체 왜 다시 살아나게 한 거야…"

그러다가 나를 왜 다시 태어나게했냐고. 아니 왜 나라는 존재를 태어나게했냐고 욕한다.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각자 역할이 주어지면서 태어난다고 하지만 나의 역할은 대체 무엇인가. '가족'을 깨버리는 패륜아같은 역할? 그런 역할을 주려고 태어나게 만든 것일까?

겨울바람이 매서운 이 하늘을 바라보며, 나라는 존재를 원망한다. 나 자신을 극도로 증오한다. 겨우 난 이런 놈이었다고...이 1년간의 끝에는 이런 결과를 찾아오게끔 만든 놈이라고..

'사랑'을 주었어도..나는 그것에 보답하지 못했다고..

"그만두자"

그만두자. 더 이상 자책할 거리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일이라고는 이 무너져버린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뿐. 그 이상 존재가치는 없다.

사람은 고귀한 존재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것은 '상대성'의 차이. 사람에게는 고귀한 존재가 있고 나처럼 먼지보다 못한 존재도 있다.

끝없는 자기비하. 결국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그만두자. 모든 것을 손에 놓아버리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황혼을 의미하는 노을이 있는 시간.

'넌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어'

꿈에서 나타났던 소년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 '꿈'이라..'꿈'...

그래. 모든 것이 '꿈'. 내가 이루었던 잠시동안의 행복도 '꿈'. 그것을 깨닫는다.

12월 겨울 어느 날.

난 이 시간이 '꿈의 끝'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딩동하고 벨을 누르자, 민정이가 말 없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안녕'이라는 그 흔한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말 없이 돌아서서 거실로 들어가 tv를 본다.

"방학…했어?"

"…응"

내가 말을 꺼내어도 무표정하게 대답하는 그녀. 역시나 철저히 미움받는구나...

"그래…"

난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민정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래서였을까. 차라리 내 얼굴을 더 보여주지 않는 것이 민정이에게는 이로울 것이다.

"…오빠"

"…?"

"왜…언니를 선택한 거야? 지현언니도 나도 아닌 서현언니를?"

"…"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서? 자신을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바라봐줘서? 그런 거라면 나도얼마든지 할 수 있어…서현언니만 오빠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나도 지현언니도…마찬가지야. 오빠를 사랑하고 있어"

"지현누나…도라니?"

"설마…몰랐어?"

"응…?"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민정아"

"응"

"…나를 원망하지?"

"…"

"얼마든지 싫어해도 괜찮아. 얼마든지 욕해도 괜찮아. 나는…너에게있어선 한 없이 죄인에 불과하니까…"

"…"

"지현누나도 마찬가지야. 난 모두에게 죄가 있어. 나라는 존재가 왜 여기에 있을까?하고 의구심마저 들도록"

"…"

"나는…필요없으니까. 더 이상 존재하는 것은 무의미…라고해야할까"

"오빠…설마 또 집을 나가려는 건…"

"아마도…겠지?"

짜악!!!!

"…!!!"

그 때 민정이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

"오빤 정말 쓰레기야"

"…"

그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의 말이 100% 옳았으니까.

"도망치는 거잖아 결국에. 오빠는 항상 도망치려고만 하지 정작 맞서싸운 적은 있었어?"

"…"

"한 번도 없었잖아. 왜 그렇게 약하게만 구는 건데?"

"…나는…"

"죄인이라서? 왕따라서? 외톨이라서? 결국엔 모두 변명거리일 뿐이야. 도망치는 것 뿐이야.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은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

"겁쟁이지. 오빠는. 늘 겁에만 질려서 누군가에게 들러붙으려 해. 자신을 사랑해줘. 바라봐줘라고 늘 뒤에 숨어서 자신은 '저는 불쌍한 존재예요'라고만 말해. 왜. 어째서? 그런 삶을 항상 살아왔으면서도 왜 바꾸려는 생각을 안 해?"

"…"

"외톨이라고 말하지마. 그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해. 자신은 외톨이라고 늘 자신을 감옥속에 가두고서 자신을 자학하지. '어차피 난 이런존재야'라고. 내 말이 틀렸어?"

"…그래…"

"왜 항상 오빠는 마음을 열어두지 않는 건데…왜 자신을 원망하라고. 자신은 쓰레기라고 끝없이 자기비하를 하면서!!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아니야! 오빠는 항상 자기만을 생각했을 뿐이야! 가족을 정작 생각했다면…'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보다 더 친근하고 상냥하게 굴었어야 했어…처음에는 물론 위선적인 행동이라 된통 욕을 먹겠지만…아무렇지않게.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가족'이잖아? 그냥 사실대로 '도와줘'라고 말하면 되잖아? 그런데…미워하라고? 오빠를? 솔직히 말해서 오빠가 원망스러워. 왜 내 마음을 받아주지않았는지. 사실 두 번째라도 상관없었어. 오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그런 것쯤이야 난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단 말이야! 그런데…그런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민정이.

"오빠는 맨 처음부터 마음을 열지 않았던 거야. 가족을 소중히 생각한다면서…결국에는 자기만족에 불과했던 거야. 자신이 이 가족에서 쓸모있어야 삶의 이유가 있어지게 되는 거니까 "

그랬다. 민정이의 말대로 난 '가족'에서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 하였다.

"가족에게 쓸모있는 것이 오빠의 '존재이유'라고? 그게 아니야…오빠는 그저…"

"…"

"그저…우리들에게.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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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외로웠다. 정말로 외로웠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는 생을 살아가면서, 난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가족에게 쓸모가 있게 된다면. 난 그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서현누나에게. 지현누나에게. 민정이에게. 그리고..부모님에게.

혼자서 맞이하는 8살의 생일. 서현누나에게 거절당했던 그 날.

이제야 기억해버린 내가 자살했던, 그 날의 기억.

그 때의 난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에헤헤…난 쓸모가 없구나…가족에게 난…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어…"

혼자서 자신에 대한 것을 곱씹으면서, 그나마 웃어보려고. 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에 나는 절망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사라지면.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거겠지…?"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본다. 너무나 허망한 웃음을 난 끝없이 짓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면…난 가족들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거겠지…?"

눈물과 함께 짓는 미소.

조용히 달빛무리에 환하게 반사되는 날카로운 빛을 손아귀에 들었다.

"그 동안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웃었다.

죽음을 결심하였는데도,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려워…죽고싶지않아…"

무서움. 죽음에 대한 공포.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외로움. 공허함. 슬픔.

"그렇지만…난…어쩔 수 없으니까…"

그것과 함께. 난 눈을 감고서 스스로의 몸에 칼을 찔렀다.

푸욱!!

아팠다. 정말 더럽게 아팠다. 내 몸안에는 날카로운 칼이 박혀있었으니까.

"쿨럭…!!"

내 몸안에서 피가 흐르고. 서서히 내 몸이 무너져내렸다.

사라져가는 감각.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지나간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이것이 주마등이라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나…'사랑한다'라는 말 한 마디조차 듣지 못했었구나…"

그 때 나는 소원을 빌었다. 눈이 서서히 감겨지고.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있는데도.

마지막 소원. 내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던 소망을.

만약에..아주 만약에 있지요..?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단 한번 만이라도…단 한번 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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