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66화 (26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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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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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본격적인 크리스마스파티를 위한 준비가 한창인 학교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새벽에 침대에 앉아서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내고나서 지현누나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무리. 지현누나는 내가 학교를 나설 때까지 방 안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것 같았다.

서현누나 역시 마찬가지심정이었을까. 그녀 역시 새벽을 꼬박 새우고나서 결국 피로에 지쳐 잠이 든 모양이다.

"아 여기여기!"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크리스마스파티에 필요한 기자재들을 드는데 엄청 무거운 것은 여러 남학생이 들러붙어서 옮겨가고 있는데도 힘들다. 게다가 여느 때처럼 강당에 대형크리스마스트리를 갖고와서 각종 왕별과 조명기구들을 이용해 꾸밀예정인데다가 기타 다른 것까지 준비할 것도 많아서 여러 손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이 박정우! 이것 좀 옮겨봐!"

큰 나무널빤지를 나에게 떠넘기고는 도망가버리는 한 같은 반 놈들. 내가 그리도 어숙해보였는 지 그냥 아무런 거리낌없이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기야..계속 의자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었으니까...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그러니 벌써부터 준비하지..하지만 나는 이 즐거운 크리스마스파티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러한 크리스마스. 작년만 하더라도 구석진 방에서 미연시하느라 크리스마스임을 깜빡했었지..

마음은 온통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오직 이 관계가 무너져버림에 대한 상실감이랄까.

마음 속에서는 이 상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줄곧 예감했던대로, 내 주변에서 하나씩 하나씩 멀어져만 간다. 지현누나와 민정이. 가족들마저 내 곁에서 사라져갔다.

이것이 정녕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되도록 자초한 것도 바로 나였다.

"하아…"

한숨을 쉬고. 한탄해도 이미 늦은 일. 자괴감이 또 밀려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 인연의 끈들은 왜 이리 짧은 건지.

이제서야 내가 '사회'에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어째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 아니 더더욱 사회로부터 격리된 세계로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수업이 끝나고(수업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냥 무슨 역마살이라도 생긴 양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강당. 체육관. 아직 공사 중인 수영장. 급식실. 화학실. 컴퓨터실 등등..

갈피를 못 잡고 비틀비틀. 나는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방황'이랄까. 아마도 그런 모양이다. 참 내가 봐도 병신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에서 쉬고 싶다. 그저 그 욕망에 정처없이 학교 안을 돌아다녔다.

끼이익...

그러다가 도착한 곳은 옥상. 열쇠로 잠겨진 옥상문을 열고 이 트여진 공간에 철퍼덕하니 누워버렸다.

바닥은 엄청 차가웠다. 얼음 위에 누운 느낌.

유난히도 찬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차갑게 만들어갔다. 너무나도 추웠던 날씨. 계속 눕고있다보니 손의 감각이 없다. 붉어진 손. 얼굴에는 열기가 피어오르고 하아하고 입을 벌리면 하얀연기가 몽실몽실 나와서 바람에 휘날리다 사라진다.

'나는 왜 존재하지?'

이미 무너져버린 내 존재에 대한 '신뢰성'. 이렇게 가족에게 상처를 줄 거면서 왜 나는 다시 살아난 것일까.

나는 죽었어야했다. 죽었어야했는데..왜 나는...

어두운 곳에서. 환한 달빛만이 그 곳을 밝게 비춘다.

"생일 축하합니다…생일 축하합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헤헷…생일선물 받고 싶다…"

하지만 누가 생일선물을 줄 리는 없었다.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저 어둠만이 가득했을 뿐.

"노래불렀으니 이제 먹어도 되겠지…"

케익이이라고 해보았자 테이블 위에 초라하게 쌓아올려진 초코파이였지만 그래도 먹고자손을 뻗었는데. 그 뻗은 손을 갑자기 멈추었다.

"어…?"

눈이 흐려지면서 물방울이 주르륵하고 흘러내린다.

"흑…흑…흐흑…"

흐느낌을 최대한 죽였다. 아무도 들리지 않게. 오직 자신만이 들리도록.

그저 운다. 얼굴을 부여잡고서.

그렇게..한참을 울었다.

"…"

잠깐동안이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고 나니 차가운 바람만이 부는 옥상. 허전하고 텅 빈 공간에 있었다.

내가 꾸었던 그 잠시동안의 꿈이 무엇인지 다시 떠오르려하여도 기억은 전혀 안 났다. 꿈이라는 것은 막연한 것일뿐이니까.

이 곳에 더 이상 있을 필요는 없다. 난 오들오들 떨며 옥상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나는 추운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옥상에 간 것일까. 내가 봐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또라이짓했구나...잠깐 동안 미쳐버렸구나...

계단을 내려오고나서 난 교실로 돌아갔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서 선생이 없었기에 나는 안심하고 드르륵하고 교실 문을 열고나서 바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물론 누구도 내가 들어왔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라는 존재야 여기에서 투명인간이니까.

그런데 막연히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 그것은 어느 때보다도 더 잔혹하게 다가와 날 괴롭히고 있다.

누구라도 봐주길 원하는 것일까? 위로라도 받고 싶어서? 동정이라도 누군가가 베풀어줄까해서?

"미쳤구나…"

미쳤지. 그런 거. 절대 꿈꿀 수 없는 거잖아.

학교에 있는 내내 난 멍하니 있었다. 다른 애들은 크리스마스파티준비니 자신은 고백할 거니 자신은 여자친구랑 크리스마스날 데이트하겠다니 뭐니 여러 이유로 들떠하고 있었는데 말이지...난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서..꼼짝도 하지않고..

그러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벌써 다가온 하교시간. 가방을 싸고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우연히 지현누나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하지만 지현누나는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바로 휙하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뭐 어쩔 수 없지..내가 자초한 거니까..

학교건물을 빠져나와 교문을 나선다. 빠져나가는 많은 학생무리 중에 혼자 외로이 걸어가고 있는 나.

그런데 갑자기 덥석하고 누군가가 손을 잡았다.

"…??"

손을 보니 유난히 새하얗고 고운 손. 그리고 위를 바라보니...

"정우"

지현누나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어색하기만한 하굣길. 평행선으로 우리는 걷고 있었다.

"…지현누나"

"…응"

"많이…놀랬지?"

나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어제의 급작스러운 폭탄선언으로 지현누나도 많이 당황했을 것임이 틀림없었기에..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우"

그러기를 몇 분. 아무런 말 없이 걷다가 지현누나가 조심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얘기해"

"…서현언니…"

"…"

"많이…사랑해…?"

떨리는 목소리의 지현누나.

"…응"

"그래…그렇구나…"

지현누나는 내 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나한테 욕하는 것이 더 옳았다. 왜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냐면서.

"그럼…우리는…?"

"어?"

"민정이랑 나도…많이 사랑해?"

"그건…"

"'가족으로서' 말이야"

그 말이 유난히도 슬프게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응. 염치없지만…나는…민정이도. 누나도 많이 좋아하고 있어"

"…"

"…지현누나?"

"그러면…왜 이렇게 상처를 주는 건데…좋아한다면서…"

"어…?"

"미안. 나…너랑 같이 못 가겠어.그럼…"

"잠깐…!!"

지현누나는 돌아서서 저만치 뛰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

난 지현누나를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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