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65화 (26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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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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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깨져버렸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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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둘이 뭐하고 있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 목도리를 둘러매고 추위 탓인지 감기 탓인지 그녀의 얼굴은 유난히도 붉었다. 코트로 가려진 몸은 왠지모르게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같았으며 목소리에는 믿음이 깨져버린 듯한. '설마…'라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들어가 있었다.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았다면 필시 우리가 '데이트'하고 있었다는 것을 목격했음이 틀림없다. 걸려버렸다.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이에 그녀가 봐버린 것이다.

'나와 서현누나는 연인관계'임을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지현누나…이건…"

그런데 왜 이런 말 부터 먼저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무의식적으로 하는'변명'.

들켜버린 '도망자'와 같다. 나는 재빨리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무엇을 말해야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와 내가 옷사러 왔다고 말해야할까? 뭐 밥을 같이 먹으러 왔다고 해야할까? 남매사이끼리에는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렇지만..그녀의 눈빛엔 '믿을 수 없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든 변명하려 말을 꺼내는 사이에 옆에 있던 서현누나가 팔을 뻗어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지현아"

서현누나는 진지하게 말하였다. 아직도 우리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며.

"집에서. 너에게 말해야 할 것이 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였다.

'진실'을 말해주기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세 명이서 평행선을 유지하면서 걸었다. 아무런 말 없이.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서현누나의 말에 지현누나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워졌다.

서현누나와 난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손을 잡지도 않았다. 지금만큼 지현누나를 건드려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아. 오빠. 지현언니. 서현언니"

집 안에 있던 민정이가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아무런 말 없이. 침묵을 유지하면서.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차례대로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서 모두 거실에 모였다.

"…일단 옷부터 벗고"

추운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걸쳤기에 잠시 방으로 들어가 옷걸이에 옷을 걸어두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민정이 너에게도 꼭 해야할 말이 있어"

서현누나는 가족 모두에게 알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상처만 늘어갈 뿐. 더군다나 들켜버렸다. 변명은 필요없다. 그저 진실을 말해야 되는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주하기 싫었다. 바로 도망쳐버리고 싶은 심정. 이 답답한 순간에서 설령 한시적인 시간일 지라도 피해버리고 싶었다.

"모두 앉아"

서현누나의 주도아래 우리는 오랜만에 모두 거실에 앉았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서 뭔가 두런두런 즐거운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옳았겠지만...

"서현언니. 왜?"

아직도 모르는 눈치의 민정이와 어두운 표정의 지현누나. 이 때 지현누나가 겨우 닫혔던 입을 열었다.

"정말…정말 서현언니는…"

"맞아"

"…!!"

지현누나의 눈이 올라갔다. 아직 '설마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진실임을 알았다.

"민정아"

"응?"

"솔직하게 말할게"

"??"

"나는 정우를 사랑하고 있어. '이성으로써'"

"에…?"

느닷없는 서현누나의 말에 순간 멍해져버린 민정이. 큰 쇼크에 할 말 조차도 잃어버리고 민정이는 그저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아"

"…"

"보시다시피. 우리는 '연인관계'야"

"서현언니…대체 그게 무슨 말…"

민정이에겐 청천벽력과도 다름없는 소식이었겠지...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현누나가 말하는 것을 잠자코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와 정우는 서로 사랑해서 사귀고 있어"

거두절미하고 직설적인 말. 간접적으로 돌리다가는 더 서로에게 안 좋은 관계에 처해질 것을 서현누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귀고 있다니…오빠랑 언니랑…왜…?"

"정우에게 고백했어. 그 날 병원에서 새벽에. 네가 잠자는 사이에 몰래…"

"거짓말…"

민정이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연신 '거짓말…'이라고만 말하고 있었다.

"사실이야. 나는 정우에게 널 사랑한다고 말했고. 정우 역시 날 받아들여줬어"

냉정하면서도. 확실하게 말하는 서현누나다. 이럴 때에는 맺고 끊음이 확실해야 한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민정이에게 못지않게…나는 정우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잠시동안이었고 그녀의 표정은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정이의 마음을 알았던 서현누나였기에. 민정이에게 갖는 죄책감은 클 것일 것이었다.

"거짓말…거짓말이야 서현언니…지금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농담하는 거 아냐. 우리는 이미…"

"거짓말!!!!!"

결국 민정이는 큰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거짓말!! 거짓말!! 전부 다 거짓말이잖아!! 오빠가 그럴 리가 없잖아!!!"

현실이라 믿고 싶지 않은 듯. 민정이는 자꾸만 거짓말이라며 그럴 리가 없다며 결국에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 행복이란 절대로 오래 유지되지 않을 것임을.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민정이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난 괴로움으로. 죄책감으로....

"오빠…얘기해줘…거짓말…거짓말맞지…그렇지?"

지금이라도 거짓말이라고 얘기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듯. 민정이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렇지만 난 그녀에게 또다시 비수를 박아넣어야만 하였다.

"나는…서현누나를 사랑하고 있어"

"…!!!!"

민정이도. 지현누나도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어. 서현누나가 돌아온 이후로, 나는 정말 행복했어. 어렸을 때부터 날 아껴준 서현누나가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난 그 모습에 반해버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 민정이. 네가 고백했을 때에도 난 내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너와 난 이루어져서는 안됨을 알았기에 난 너에게 말했어"

"…"

솔직하게. 나와 서현누나는 사귀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이들 앞에 말하였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서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지금까지 잘 유지해오던 우리들의 관계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해버린 거야 서현누나에게. 난 그것에 힘들어했지. 솔직히 말해서 내가 떠나려고 한 이유도 그 이유였어. 나는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이 마음 끝까지 숨기려고…정말로 괴로운 가슴을 부여잡고 버텼어. 무너질 것만 같았지만…참을 수 있었어. 그런데 서현누나가 병원에서 나에게 고백한 날에…나 역시 무너져버리고 말았어. 서현누나 역시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금기'를 저버리더라도 나는 누나에게 말하고 싶었어. 나는 서현누나를 사랑해라고"

"…"

진실을 말한다. 내가 여태까지 숨겨왔었던 이면을. 민정이도 지현누나도 나의 말에 충격을 금치 못하였다. 나는 여태까지 그들을 '배신'하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그들이 알게 된 것이었으니까.

"민정아. 지현누나. 여태까지 말하지 못하였던 거 정말로 미안해. 우리도 말할 준비가 필요했어. 특히나 민정이 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되는 것이 좋을까하고 정말 고민 많이 해봤어. 그런데…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어. 미안해라고 말하여도 네가 받아주지않을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나와 서현누나는…"

"싫어…싫다구…"

"민정아…"

"싫단 말이야…"

눈물을 뚝뚝 흐르는 민정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물만 흘리는 그녀였다.

"왜…어째서…서현언니를 사랑하는 거야? 왜 나는…안 되는 거야?"

"민정아…"

"나…오빠 아직도 사랑해…오빠가 거절하였지만…난 여전히 오빠 사랑하고 있어서…어떻게하면 좋을까하고…어떻게하면 오빠의 마음 돌릴 수 있을까하고…"

"…"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고해도…오빠에 대한 마음 지우려고해도…안 되는 걸…? 나는 절대로 지울 수 없었는 걸…?"

"민정아…"

"오빠는 거짓말쟁이야…내가 가족만 아니었다면 사랑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면서…? 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면서…? 그런데…그런데…"

"…"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민정이의 이러한 절규를 묵묵히 들을 수 밖에 없었던 나다. 민정이의 이렇게 슬퍼하는 표정. 그 이후로 두 번째. 나는 차마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다.

"흑…흑…흐아아아앙!!!"

결국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녀는 방으로 뛰어들어가버렸다. 서현누나가 '민정아!'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지현누나…"

그 자리에 남아있던 지현누나는...

울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우"

"어…지현누나"

"…들어갈게"

그녀는 그 말 한마디만 하고 민정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거실에는 현재 나와 서현누나 둘이서만 남게 되었다.

"후우…"

끝나버렸다. 모두에게 말해버렸다.

"정우야"

"…응"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음과 동시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충격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급박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그들은 날 증오할 것이다. 특히나 민정이가.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고. 나와 이들사이의 관계는 이미 끊어져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예전처럼. 냉랭했던 관계보다도 더 악화된 관계가 되어버렸다.

"후회…하고있는 거야?"

각오를 했었음에도. 이제와서야 친해진 관계이건만...10년 동안의 관계를 모두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려했건만...

그녀의 말대로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후회'라기보다는 '죄책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후회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이렇게 했으면...'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었지만 난 그럴수도 없었으니까. 아니 그러한 후회를 할 가치조차 없었다.

단지 한 없이 '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 뿐.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그들을..나는 배신으로서 갚고 있는 것일 뿐.

"정말…후회하고 있어?"

"아니"

"그러면?"

"나…정말로 쓸모없는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자괴감'이랄까. 난 정말로 쓰레기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쓰레기다. 먼지보다 더 쓸모 없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놈이었다.

"그렇지않아"

"…?"

"나에게만큼은…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야…"

서현누나의 위로에도 왜 난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이 허무함이. 이 씁쓸함이.

"그리고 난 후회하지않아…후회하지 않기로 맹세했어. 이미 이럴 것임을 알고서도 난 너에게 사랑한다고 얘기했으니까. 그러니 후회는 없어. 아니 후회는 하지 않을 거야. 후회를 한다면 너에 대한 이 마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되니까…"

"서현누나"

"나야 말로 최악이니까…나야 말로 쓰레기니까…"

"…"

서현누나 역시 눈물을 흘린다.

아아...차라리 사라져버렸어야 했을 것을...

나는 그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 때에서야 난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서현누나가 눈물 흘린 지금.

나는..사랑 받을 자격 없는 놈이다. 이렇게 가족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해버리는 나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음을 알면서도..이렇게 모순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였으니까.

뭐가 애정결핍이고. 뭐가 외로움이란 말인가.

나는 그러한 것을 받아 마땅할 인간인데..

지금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눈물 흘리고 있음에도..눈물 한 방울 닦아줄 자격이 없는 놈인데...

'사랑해'라는 말을...'애정'을...난 받을 자격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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