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62화 (26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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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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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마…정우"

"지현누나…"

"가지마…가지마…가지…콜록! 콜록!"

"지현누나!"

그녀는 몸이 아픈데도 나의 손을 붙들어매며 가지말라고. 계속함께있어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가지않을게. 누나가 원한다면"

"거짓말…거짓말…정우는 거짓말쟁이잖아…"

그녀는 울먹이고 있었다. 물기가 고인 눈으로 날 끊임없이 거짓말쟁이라며. 내가 함께있다는 것을 믿지못하겠다며..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함께 있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왜 자꾸만 거짓말이라 말하는 것일까. 내가 그리도 믿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기라도 한 것일까.

"함께 있어주겠다면서…약속 지키겠다면서 정우는…정우는…"

결국 그녀는 눈물마저 쏟아낸다.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영문이 가지않았다. 내가 한 순간이라도 없으면 안된다는 듯이 그녀는 나를 붙잡는다.

왜..그녀는 이리도 필사적인 것일까.

"있어줄게. 누나가 편히 잠들 때까지 있어줄 테니까"

"싫어"

어쩐지 나에게 땡깡부리는 것 같았다. 지금의 그녀는 여태까지 보여주던 말이 없지만 상냥하고 착하고 또 도도한 박지현이 아니었다. 한 없이 어리기만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내가 눈 떴을 때…정우가 없는 게 싫어…떠나지 말아줘. 함께 있어줘 정우…"

"…"

나는 그녀를 천천히 말 없이 침대에 눕혔다. 끊임없이 기침하는 그녀에게 기침하느라 목이 아플까해서 양호실에 있는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떠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마셔. 조금 목이 괜찮아질 거야"

"정우…"

나는 떠온 물을 그녀의 입에 대고 천천히 마시게하였다. 지난 번. 내가 쓰러졌을 때 그녀가 간호해주었던 것처럼 이번에 내가 그녀를 도와줄 차례였다. 그녀가 그랬듯이 나 역시 물을 먹인 후, 다시 그녀를 눕히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 잡고 있어줄테니까 편히 자. 아니면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응…불러줘…"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번엔 무슨 노래를 불러줄까. 뭐 외운 가사라고 해보았자 몇 개 되지도 않았지만은...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Stuck in reverse…When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나지막이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조용하게. 그녀만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있을 만큼만.

"Lights will guide you home…And ignite your bones…And I will try to fix you…"

나는 이런 노래밖에 알지 못하니까...노래를 더 외워야하나?

다행히도 그녀는 편히 잠들었다. 숨소리만이 들리고 기침은 그쳐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편안하게 잠든 그녀의 얼굴. 나는 그것을 보며 안심하였다. 교실로 가는 것은 이미 늦어버렸고 그런 것 생각하기에는 그녀의 일이 더 우선시였기때문에..난 그녀의 머리를 쓸어주며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또 여기네"

비가 쏟아지는 이 세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회색빛의 하늘. '생명'이란 것이 존재하지않는 이 세계에 난 또다시 오게 되었다.

대체 여기는 어디인것인가. 나는 왜 또 오게되었는가.

나는 걸어간다. '그 소년'을 보기 위해서.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소년을 만나기 위해 다 죽어가는 고목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옷이 축축히 젖고. 발걸음은 더욱 더 무거워지고. 이 길을 걸을 때면 난 그저 비로 흐려져있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적막하고 또 슬프다고 느껴지고 있다.

'슬픔'. 난 이 곳에 오게 될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여도. 그냥 걷기만하여도. 참고 참아도 흘러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억지로라도 참아가며 난 고목나무를 향해서 걸어간다.

고목나무에 도달하였다. 나는 바로 고목나무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안녕. 여기에 또 오게 되었네"

"아아…이젠 매일이야"

"나는 좋은데. 넌 싫어?"

여기에 도착할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남자아이의 목소리.

"넌 대체 누구야? 왜 목소리만 보내고 나오질 않는 건데?"

"나는 사실 너와 만나고 싶지 않아"

내가 이 세계에 왔다는 것이 좋다면서..이건 또 무슨소리인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되어있어"

"그 때가 대체…"

"시간. 얼마남지 않았어"

"…!!!"

의식이 흐려진다. 나는 또다시...

"너의 소…어진 날…너…될 거야…"

제대로 들려지지 않는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나는 이 꿈에서 깨어난다.

"…우…"

"으으…"

"정…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보니 양호실 안. 옆에는 지현누나가 있다. 나는 잠들어버려서 또 그 꿈을 꾼 것인가...

"아아…또 잠들어버렸네…"

"함께 있어주었구나…정우…"

"응. 지현누나"

"…다행이야…나는…"

행여나 내가 떠나지 않았을까하고 알게모르게 걱정을 했었나보다. 나는 그러한 그녀가 귀여워 쓱쓱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우…정우…"

"지현누나. 함께었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렇게 날 못 믿겠어"

"응…못 믿겠어"

"윽…"

난 이리도 신뢰도가 없었는가..세상 헛 살았어...

"정우…약속깨버렸으니까"

"약속…?"

약속..?

약속..?

...................................이런 망할......

"기억…했어?"

어쩌지..? 난 분명히 지현누나의 수능일날. 그녀와 저녁을 함께먹기로 선약이 잡혀있었는데 그 때 부득이하게도 서현누나가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에 있느라 그 약속을 지금까지. 몇 주나 지나버린 지금까지 아주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난 순간 붕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지현누나가 잊지말라고 그렇게 약속을 하였는데도 나는 그것을 잊어먹어버렸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녀가 왜 여태까지 날 피하려했는지. 서운해했는지. 역시나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그녀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미안. 정말로 미안해 지현누나"

할 줄아는 것은 사과 뿐. 이미 늦어버린 사과에 그녀의 마음이 풀어질 리 절대로 없었다.

"괜찮아…민정이에게 들었어. 그 날. 서현언니가 쓰러졌다면서?"

"…"

그녀는 싱긋 미소지었다.

"나 그거 뒤늦게 들었어. 민정이랑 너랑 서현언니 간호하고 있었다고. 과로로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갔었다고"

"…어"

"그래서 그 때 정우랑 민정이랑 외박하고 다음 날 늦게 서현언니랑 같이 들어온 거고. 서현언니는 자신이 내가 수능 보는 것에 대해 방해가 될 까봐 일부러 말하지도 않은 거도 알고 있어"

"…"

"그러니까 정우가 그다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정우가 사과함으로 마음이 풀렸어. 나…아직까지도 정우에게 서운해서 조금 나답지 못한 짓을 해버렸어. 멋대로 삐져버리고…오히려 내가 미안해"

"…아니. 누나가 사과하진 마. 내가 잘못한 거니까"

"정우…"

"미안해. 정말…"

"…그만사과해도 돼"

"…"

"정우에게는 항상 일순위는…서현언니니까…"

어...?

"어렸을 때부터 봐왔는 걸? 정우는 항상 서현언니만 졸졸 따라다니고…서현언니에게만 막 달려가서 안기고…서현언니만을 바라보고…그러니까…이해해"

"지현누나…"

"나는 항상 서현언니보다…"

나는 지현누나의 미소 속에서.

웃고는 있었지만...

왠지모르게 그녀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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