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61화 (2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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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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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날씨가 추웠다. 눈이 내리는 것도 아니었건만 찬 바람이 쌩쌩부는 날이라 체감온도는 이미 영하였다. 다행히도 나는 감기에 걸리지않았지만 이럴 때에 감기 걸리는 일은 쉽사리 일어났다.

내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와 그녀는 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12월 10일. 이제 이 1년이 끝나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려하고 있었다.

"따뜻해~"

그녀는 추운날씨와 찬바람에도 활짝 웃으며 코트 안에서 내 손을 꼬옥하니 부여잡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연인관계. 조심스러운 데이트. 숨기는 것이 많아 우리가 이렇게 데이트를 하는 시간도 적었다. 함께 있는 시간들이야 많았지만은..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인으로서가 아니었다.

"누나는 안 추워?"

"부우!!! 서현이!!!"

그녀에게는 나와 5살 연상이라는 것이 좀 나이가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데이트를 할 때면 그녀는 서현이라고 부르라고 몇 번이나 얘기를 하였다. 그런데 '누나'라는호칭이 입에 붙은 걸 어떡하라고...

나에게서 이 때만큼은 누나가 아닌, 이성. 여자친구로 보이고 싶은 마음때문일 것이다. 아니 데이트를 할 때에 우리가 친남매라는 것을 애초에 잊어버리자는 그런 목적도 숨겨져있었다.

친남매가 연인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나나 그녀에게나 조금 어색한 일이니까. 자기암시를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그녀의 어깨를 두르고. 뽀뽀도 하고 키스도 해보았다. 이미 연인관계 이전부터 그런 행동을 했었기에 연애진도는 빨랐다.

"정우야"

"응?"

"우리…언제까지고 함께인 거지?"

갑자기 그녀가 그런 소리를 해오니 의아스럽다. 뭔가 진지한 분위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으응. 문득…두려움이 들어서"

"두려움?"

"그냥…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언제까지나 함께였으면하고…"

"…"

"늙어 호호백발이 되어도…언제까지나…"

그녀는 앞에 있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가 연인관계가 되었어도 방해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나이를 먹어가면 갈 수록 나와 그녀사이를 방해하는 요인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녀는 나와 영원히 함께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결혼'과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는 거니까. 애초에 법적으로도 하지말라고 수천년 전부터 행해져왔다.

우리는 그 룰을 깨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러한 것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우야"

"…말해"

"우리…단 둘이서 도망칠래…?"

"도망…?"

"응…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단 둘이 살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민정이와 지현이가 있으니까. 우리는 가족이니까…"

"…서현아"

"우리…변치말고 함께 있자"

무엇인가 다짐을 한 듯. 그녀는 날 확고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 민정이. 나. 정우. 넷이서 정말 행복하게 잘 살자"

"…"

"그렇지만 그 전에…이 비밀을 말해야 되겠지…"

나와 그녀는 사귀고 있다. 이 사실을 알면 민정이와 지현누나는 우리를 더럽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나 민정이에게는…"

더욱이 민정이는 나에게 차인 상태. 이 비밀이 밝혀졌다가는 그녀와 날 어떻게 볼까. 다시는 우리들의 얼굴을 쳐다보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우야"

"응"

"나는…후회하지 않아. 너에게 고백한 거. 너와 연인이 된 거. 나는 민정이에게 죄를 지었지만…민정이의 마음을 알고서도 너에게…그렇지만 널 정말 사랑하고 있으니까…숨길 수 없을 만큼 깊이 널…"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 벌어질 일은 예상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있었다. 단지 이 '관계'가 깨지기 싫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은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동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관계에 안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몰래 비밀데이트를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언젠가 걸리게 되어있다. 들켜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리 말하는 것이 옳음에도..

아직도 두려웠다.

민정이에게는 '배신'이었다. 그 결과물은 바로 민정이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지현누나 역시..가족관계끼리 그런다는 것에 대한..

"말할거야…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내가 벌여놓은 일. 내가 끝맺어야 해…"

어째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아직 나를 돌봐야한다는 책임감이 남아있는 것일까? 이 모든 일이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나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 나 역시 책임이 있다.

"서현아"

나는 아직 익숙치 않은 반말을 사용하며 그녀를 안았다.

"…정우야?"

"더 이상 혼자 책임지려하지마. 내가 곁에 있잖아. 못 미더울지 모르지만…내가 옆에 있잖아? 그러니 혼자 끙끙댈 필요는 없잖아"

"정우야…"

"나 역시 준비가 되어있지않아. 이 비밀이 언젠가 밝혀지리라는 것도 무엇보다도 잘 알고있고. 나도 두려워. 이 관계가 깨지는 것이. 이렇게 계속 비밀로 하고 화목했으면 좋겠는데…그러기에는 우린 이미 늦어버렸어. 돌이킬 수가 없어. 이미 우린…연인이잖아"

"그래서 내가…!!"

"나 역시 책임이 있어"

"…!!"

"그러니까…잘 말해보자. 어떻게든"

어떻게든...분노와 배신감을 그나마 덜어낼 수 있도록...우리는 잘 말해보자고 약속했다. 이 진실을 알리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안다.

우리도 확실하게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콜록! 콜록!"

삐르릉하고 6시에 정확히 타이머가 울리자 일어났다. 오늘도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에 몰래 데이트를 끝마치고나서 우리는 따로 각자의 방에서 잤다.

문을 열고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데 기침을 하면서 지현누나가 나를 지나치고 있었다.

"…지현누나?"

"정우…"

요새 그다지 나와 그녀는 말을 나누지 않았다. 지현누나는 나와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감기…걸렸어?"

"괜찮아…그냥 기침이 조금 나…콜록! 콜록!"

기침이 잦았다. 독감이라도 걸린 것일까. 유난히 그녀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어보였다.

나는 곧장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정말로 뜨거운 그녀의 이마. 상당한 고열이었다.

"학교.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12시면 학교에 하교하는 고3 막바지의 그녀였다.

"괜찮아. 갈 수 있어…"

"그래도…"

나의 호의를 애써 거부하며 그녀는 교복을 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나는 걱정이 되었다.

결국에는 그녀는 나와 같이 학교에 등교하였다. 그녀는 나와 등굣길 내내 기침을 심하게하였고, 하아..하아..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인데 독감에 걸렸으면 이 날씨는 증상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지현누나. 방에서 쉬면…"

"괜찮다니까!!"

"…!!"

"학교에…등교할 수 있어…콜록! 콜록!"

내가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하여도 그녀는끝끝내 모두 거부하고 교문에 들어섰다.

이 등굣길 내내 나와 그녀의 거리는..한 없이 벌려져서..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감은 멀게만 느껴진다.

나를 정말로 다시 싫어하게 된 것일까..지현누나.

풀석!

"…!!"

모두가 등교하고 있는 가운데서. 그녀는 쓰러졌다.

"지현누나!"

"으…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모두가 놀라하는데 난 정신을 차려 그녀를 업고 재빨리 양호실로 향했다. 모두가 아무런 반응도 안 하는 사이에서..

"정우…잠시 다리 힘이 풀려서 그래…"

나에게 업히는 내내 그녀는 괜찮다고 내려놓으라고 하고 있었음에도..나는 그녀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어째서인지 그녀의 손은 내 어깨를 꽈악하고 잡고 있었다.

마치..날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급히 양호실에 들어온 나는 양호선생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착한동생이네…"

지현누나는 괜찮냐며 물어보는 나의 말에 착한동생이라며 이상한 대답만을 해놓고는 전자온도계를 가지고와서 그녀의 귀에 대었다.

"39.3도…엄청난 고열이잖아…집에서 쉬지 그랬어?"

"…괜찮아요…"

"지금 괜찮다는 표정이 전혀 아닌데?"

"…"

"해열제를 먹였으니까 열은 조금 가라앉을 거야. 가라앉지않는다면 바로 병원에 가야되겠지. 일단 푹 쉬고 있어. 너는 젖은 수건을 가지고 와서 지현이 이마에 놓아줘"

"예"

나는 양호선생이 건네준 수건을 세면대에서 적신 뒤. 물기를 빼고서 양호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이마에 대주었다.

"그러니까 왜 고집을 부려서…"

지현누나 고집이야 워낙 알아주었지만은..이건 아니잖아..

"콜록! 콜록! 하아…하아…"

정말로 아픈 듯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가 안쓰럽게 보였다.

"등교시간 늦겠다…그럼 지현누나. 잘 쉬고 있어"

나는 의자에 일어나서 교실로 가려했었는데 그러고보니 워낙 급하게 그녀를 업느라 학교 정문 앞에서 가방을 버리고 왔다. 다시 찾으러 가야겠네...

덥석.

"…지현누나?"

"정우…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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