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57화 (25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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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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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수능 전날. 지현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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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약속을 잡았다. 내일 수능을 보고나서 얻어온 커플식사권으로 저녁을 먹고 데이트하기로.

난 내일 그에게 고백하려한다. 그 동안 숨겨두었던 내 마음을 그에게 말하고자 한다. 친동생이지만..난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기대 반. 두근거림 반. 난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 지 고민에 빠졌다. 어떤 말을 해야 좀 더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을 보여야 그가 알아줄까. 온통 그러한 생각들 뿐. 내일 당장에 닥쳐오는 수능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그러한 것 걱정하고 고민해보아도 오히려 성적을 안 좋게 할 수도 있기에 무의식적으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한다. 그저 '내일 보는구나'. 딱 그 정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보니 그와 민정이. 모두 없었다. 오후 7시를 넘겨서 돌아왔는데둘 다 없었으니 이상하기도 하였다. 혹시 둘이 어디론가 간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정이 역시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사실 나나 민정이나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사회의 분위기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그에게로 향하고 있으니 그걸 억지로라도 억누르려하질않고 보여주고 있었다. 사회에 대한 시선보다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컸으니까.

그렇다면 그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와 민정이. 둘이 모두 좋아하는데 선택하라하면 누굴 선택할까. 아니면 나나 민정이 모두 가족으로만 보고 있지 실상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럴 때 가족이라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와 가까이있어서 좋았지만 이 가족이라는 것에 제대로 구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와 민정이. 그에게는 여자로 보이고 싶은데..

엇나간 가족관계. 특별하다라고도 할 수 있는 관계였다.

'설마 민정이를 받아들이는 건...?'

그런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설령 가족이라도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그러한 것 따윈 상관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었다. 가능성이었다. 그를 사랑하고있으면, 그도 날 사랑하게 만들면 된다. 비밀스럽겠지만, 그와 연인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민정이 역시 그를 사랑한다. 말하자면 라이벌. 나에게 당당한 목소리로 그를 사랑한다고 얘기한 그녀였다.

그렇게해서 민정이와는 소원하게 되었다. 얘기를 나누어도 무엇인가 걸렸고 서로에게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렇게따지고보면 다양한 고민들이 있었다. 가족끼리 연인이 되었을 때, 다른사람이 그것을 본다. 얘를 들어서 그와 민정이가 서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을 때, 내가 그들을 바라본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런 것.

반면에 나와 그가 사귀는 사이가 되었을 때, 민정이가 바라본다면..?

그것도 뭔가 꺼림칙하였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사랑하고 있건 말건 간에 서로를 아껴주고 보듬어줘야 할 가족. 그런데 그러한 미묘한 관계가 되어버린다면 가족간의 인연도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고백을 한다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그러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내 마음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은 나였지만은 그런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난 그에게 말할 것이다. 그 동안의 묵혔던 감정은 모두 털어버리고 그에게. 어렸을 때부터 줄곧 널 사랑했다라고 말하며..

수능이 끝이 났다. 다행히도 그럭저럭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열심히 했으니 후회는 하지않겠다고는 하였지만 뭔가 아쉬운 구석도 있었다. '좀 더 열심히 할 걸..'이라는 후회. 그래도 이미 지나간 일이니 신경쓰지 않기로 하였다.

하지만 수능을 치면서 내내 불안했던 것이 있었다. 그가 들어오지 않았다. 민정이도 마찬가지. 둘 모두 외박을 한 것이었다.

'불안해'

아침에 그의 방에 들어가보니 휑하였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초조해져갔다.

혹시 내가 수능을 보는 사이에 들어왔을까하고 빨리 집에 들어왔는데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약속…그가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내가 그렇게 불안해하여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면 오늘 약속때문이었다. 그가 전에 까먹기는 하였지만 내가 누차 말하였으니 잊을 리가 있겠냐면서 그가 들어올 것이다라고 희망을가졌다.

방에 들어가서 옷장을 뒤적이고 거울 앞에 몇 번이고 서 본다. 한껏 꾸미려고. 그에게는 예쁜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기쁘고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슴에 안고서 난 이 옷이 맞을까? 저 옷이 맞을까?하고 데이트에 어울릴 만한 옷을 고른다. 화장도 살짝 옅게하면 괜찮아보이려나?

그에겐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 그래야 고백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가 돌아올 시간을 고대하며 난 기다렸다. 째깍째깍하고 시계바늘이 돌아가여도 난 '그가 올 거야'라고 믿었다.

그렇게하기를 수 시간. 그는 여전히 돌아오질 않는다.

'잊었을까?'

나와의 약속을? 정말로?

밤 7시가 되었는데도 그는 집에 없다. 그래도 기다리자.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그렇지만불안함은 차차 오르고 있었다.

밤 9시.

그는 결국 오지 않았다.

밤 11시.

"잊었구나"

잊었다. 그는 나와의 약속을 잊어먹었다.

난 정말 기대하고 기다렸는데..오질 않았다.

이렇게 꾸미고 기다렸는데도..오질 않았다.

아아..난 대체 뭐하고 있었던 것일까..그냥 내가 너무 앞서가서..멋대로 기대하고..멋대로 기다리고...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약속이..그에게는 그다지 담아둘 만한 약속이 아닌 것이었다.

"겨우 그 정도…"

나와의 약속은 이 정도였구나. 그는 별로 나에게 신경을 쓰질 않아.

그가 나에게 손을 잡아주고. 데이트도 하고. 더군다나 몇 번이나 키스까지 해버려서...?

그것때문에 나와 그는 이미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해버렸던 거야..?

그가 나에게 키스를 할 때마다 난 정말로 이게 꿈은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입술의 감촉을 느낄 때면 난 기뻤다. 그가 나에게 키스를 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특히 그 때. 새벽에 그는 스스로 나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꿈이 아니었다. 날 여자로 봐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불은 꺼져있고 집 안은 어둡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이 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서운한 마음. 슬픈 마음을 모두 담아, 얼굴 위를 타고 떨어져내려가는 눈물들이 나에게는 서러웠다.

울고 있는 내 자신이 서러웠다.

그렇게 울다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서야..겨우 이제서야...

"…돌아왔어?"

"지현언니?"

민정이. 그리고 그가 드디어 들어왔다. 이럴 때 기뻐해야했는데...그래도 와주었다는 것에대해 고마워했어야 하는 거였는데...어째서인지 서현언니가 그에게 업혀있다는 것을 본 순간. 난 그러한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지현…언니?"

피하고 싶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난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으로 얼굴을 닦고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게다가 문을 걸어잠그고 문에 기대어서..

"흑…흑…"

흐느꼈다.

무엇때문에? 대체 무엇때문에 난 또 울고 있어?

서현언니때문에..? 아니면 같이 그와 들어온 민정이때문에..?

아니면...대체...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아무런 말 없이. 야속한 그가 미워서. 난 그를 외면하였다.

미워. 미워. 미워.

"멍청이…바보…"

자꾸 그러한 말을 되뇌였다. 그것도 울면서.

하지만...

그러한 말들은 모두..나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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