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56화 (25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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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Part. 꿈의 끝

last part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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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

"정…우…야…"

"으응…"

무엇인가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벅차오를 정도로 계속 듣고만 싶은 목소리.

"부우!! 잠만 잔다 이거지!!!"

얼래..? 그 목소리에 나는 자꾸만 감겨지는 눈꺼풀을 어떻게든 떠보려고 노력하였지만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대로 잠이 든다면 그녀가 온전히 삐져버릴 것만같아 난 머리를 여러번 왔다갔다 고개를 부르르하고 흔들며 잠을 깨웠다.

"부우!!"

가려진 시야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볼을 부풀리는 표정.

"아…"

나의 그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난 아마 그녀의 침대 옆에서 깜빡 잠이 들었었고 지금은 아침이었다.

"부우!!"

이거이거..삐졌구만..

"으…미안…서현누나"

나는 피곤한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당연하지않은가 일어나나자마자 사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치잇! 잠만 자고!"

"아하하…화났어?"

"딱히 화난 것은 아니지만…잠든 모습도 귀여웠지만 그래두…"

아아..그녀가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는 대충 알았다. 그녀는 자길 챙겨주지않고 무책임하게 늦은 아침까지 병원에서 잠만 퍼자고 있던 나에게 조금 서운했었나보다.

"정우야"

"응…?"

"꿈…아니지?"

"…"

"새벽에 우리…"

"…"

"이제 우리…'연인'인거지? 새벽에 있었던 일…정말로 꿈이 아니지?"

새벽에 나와 그녀는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또 연인임을 증명하는 키스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꿈이 아니라 현실. 그녀와 나누었던 키스가 떠오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황홀하였던...이제 단순히 사회의 윤리에 부딪혀 갈등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친남매라는 묶여진 족쇄를 풀고서 이 '금지된 사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꿈이 아니야"

나는 미소지었다. 그렇게 마음먹었기에.

"그럼…"

내가 그러한 말을 하자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듯 머뭇거리는 그녀.

"모닝키스…해줄래?"

"…!!"

크리티컬데미지.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빛에 난 제대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꼭 해보고 싶었어…연인이 생기면…"

참고로 여기는 아직 응급실이다. 급한 환자들이 누워있는 곳. 여기저기서 바쁜 움직임들이 있는 곳이어서 사람은 많고 더군다나 민정이까지 있었다.

"후우…"

"안 돼…?"

그녀의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에 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난 사람들이 볼 새라 재빨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오히려 빠져들것만 같아서 금방 자제하고 키스를 멈추었다. 정말 부끄럽기는 하지만 잘했다고 느꼈다. 애정표현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우면서도 꼭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녀는 얼떨떨해 있었다. 설마 진짜로 키스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 그러나 머지않아서 한가득 기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라고 해맑게 말하며..

이젠 정말로 사귀는 관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랄까..내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좋게만 보이고 그녀가 옆에 있음으로 인해서 내내 기분이 좋을 것만 같은 느낌? 그녀에게 반해도 너무 반해버린 것일까? 아무튼 그랬다. 게다가 오늘은 수능일. 학교는 쉬는 날이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오늘 하루종일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일어났어 언니?"

"…!!"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민정이가 일어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오빠도 일어났네…잘 잤어?"

"응 그래 민정아…"

민정이를 보면서 그 동안 느끼지 못하였던 죄책감이 밀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장에라도 민정이를 피하고 싶었다. 난 그녀의 마음을 차버리고 서현누나에게 고백을 해버렸으니까. 민정이의 그 필사적이었던 마음이 내가 서현누나에게 고백하였을 때와 같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나였다. 게다가..

"언니. 몸은 괜찮아졌어?"

"으…응. 민정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린 '가족'인걸? 신경쓰지 않아도 돼"

'가족'이라는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꾸만 걸려왔다. 민정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은것일까? 나와 서현누나는 연인관계가 되었다. 그 진실을 밝히려고 해도 난 말할 수가 없었다. 미안함에. 죄책감에. 불안함에. 빨리 말해야 상처가 더 깊게 생기지 않을 것이 뻔한데도..난 두려워하고 있다.

"서현언니. 표정이 왜 그래?"

"…으응…"

나와 심정이 같아서였을까. 서현누나도 안색이 어두웠다. 우린 둘 다 그녀에게 죄를 짓고있는 것 같았다. 소중한 가족에게.

"의사선생님 얘기로는 하루 더 있어야 된대. 아직 쌓인 피로가 있으니까 무리해서도 안되구"

"…"

"난 잠깐 화장실에 갖다올게. 아침밥도 먹어야 되니까 겸사겸사 사올건데…언니한테는 죽이면 괜찮으려나? 오빠는 뭐 먹고 싶어?"

"딱히…먹고 싶은 건…"

"그럼 나와 같은 거 사면 되겠다. 그럼 갖다올게"

"응…갖다와"

민정이가 나가자 나와 그녀는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서현누나. 난…"

"정우야"

"…?"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러니 걱정하지마"

"그건…"

아니다. 나와 그녀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책임을 짊어지려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잘못한 건 나야. 내가…"

"서현누나…"

"그렇지만…후회는 하지 않아…후회는…후회는…"

"…"

"절대로 후회는…"

잠시 후, 우리는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셋이서 밥을 먹었다. 차라리 끝까지 숨겼어야함이 옳은 것일까? 아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검은 양은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보살핌'이 필요했으니까. 그녀가 모든 것을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여린 여자였기에 오히려 따뜻하게 그녀를 보살펴줘야 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건만 이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많아 힘겹다. 서로의 마음을 알은 지 별로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나와 그녀를 가로막는 것들이 있어서..그렇지만 알고 있었다.내가 그녀를 받아주었을 때, 이러한 것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해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그녀를 사랑하니까. 친누나여도 진심으로 내 마음을 받아준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난..마음먹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늦은 저녁에 퇴원하고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도중. 민정이는 지쳐서 곤히 자동차 창문을 기대며 잠이 들었고 서현누나는 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조심스럽게 기대었다.

어두운 밤과 화려한 불빛. 사람들과 건물들을 스치며.

앞으로.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있지…"

"응 서현누나"

"우리…잘못된 것일까?"

약하게만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의 눈 역시 침잠히 가라앉았다.

"새벽에 너와 이루어지고나서…나의 바램이 정말로 현실이 된 것 같아 꿈만 같았는데…나도 모르게 그만 현실을 잊어버린 것 같아…깨닫지 못했었던 것 같아…"

"…서현누나"

"정우야…"

"얘기해"

"이러한 날…계속 사랑해줄 수 있어?"

조용하면서도 낮은 어조와 슬픔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 그녀는 약했다. 그러기에 그녀를 받쳐줄 누군가의 등이. 혹은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했다.

"응"

각오했다. 그녀를 지켜주기로. 떠나지않기로 마음먹었다. 회피하지도 않고..그저..그녀의옆에 있고 싶다.

"정말…이야?"

"난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테니까…"

"정우야…"

"그러니까. 지금은 편히 자도록 해"

"기뻐…"

그녀는 내 어깨에 더 기대어왔다. 그리고 나의 손도 더욱 더 움켜지는 그녀의 손.

"정우야…사랑해…사랑해…"

말 없이 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며. 우린 집으로 향했다.

딸칵.

"다녀왔습니다"

피곤해하는 목소리로 민정이가 말하였다. 서현누나는 너무 깊이 잠들어 내가 등에 그녀를업고 문 안으로 들어오고보니 집 안에 있는 모든 불들이 꺼져있었다. 아직 지현누나가 들어오지 않은 것일까..? 사실 그 전에 서현누나가 쓰러지고나서 지현이에게는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했다. 공부에만 신경쓰라고. 게다가 수능일이었으니까.

"…돌아왔어?"

거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현언니?"

거실의 불을 키자 거실에서 지현누나가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예쁜 원피스 차림의 한껏꾸민 듯한 모습. 어디론가 외출을 한 것 같은데...무슨 일이라도 있나?

"지현…언니?"

"…아무것도 아니야"

손으로 얼굴에 무엇인가를 닦으며 그녀는 도망치듯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에게는 아무런 인사도 아는 척도 없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왜 그러지…?'

그 때 왜 나는 몰랐을까.

그녀는 울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녀가 운 이유는 모두 나 때문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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