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52화 (25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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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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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짓된 사랑을 하였다.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몰랐고.

사랑을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대리만족을 느꼈을 뿐이다.

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달래주기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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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현재 나는 카페에 앉아서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이 남자와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샌가 이 곳에 오게 된 것이다.

"여기…한국인이 참 없죠?"

"그렇네요. 여기에 동양인이라고 해보았자 일본인이나 중국. 아니면 대만쪽이니까요"

그러고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부딪혀서 서로 죄송하다고 얘기를 하다가 한국인을 만났다는 반가움이었을까. 이 카페에 오게 된 이유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았다. 하지만만난 지도 별로 안되었고 또 대화를 이어나가기에는 나나 그의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그냥 커피만 홀짝 마시며 앉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정말로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급하게 가다보니…"

"아니요. 그러실 수도 있죠"

"…예…"

"여기에 같은 한국인을 만난 것도 반가운데 통성명이나 할까요? 전 송한규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통성명까지 나누게 되었다. 정말로 한국인이 없어서 우리끼리라도 뭉쳐야 될 것같은 기분.

"박서현이라고 해요"

"하하 서현씨입니까…? 아무튼 반갑습니다. 얼굴에 걸맞게 이름도 예쁘시네요"

"칭찬 고마워요"

통성명을 나누게 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다. 서로의 취미라든가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 서로가 가진 이야기들. 그것들을 교환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게 된 이남자. 어떻게보면 이것이 나의 첫 남자와의 데이트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 데이트라고 보기에는 조금 그렇긴하지만은...

"서현씨도 이 곳 대학교이셨군요…"

"예…"

"전공은 어디를?"

"저는 외교계열…"

"아! 외교계열이셨구나! 저랑 같네요!"

"예?"

"전 정치외교쪽인데…서현씨는…?"

"저도 정치외교…"

"전공까지 똑같네요! 이야 이런 우연이!"

"…??"

"사실 이 대학교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어서 살짝 외로웠었는데…이 곳에 한국인이 한 명더 있었다니…정말 게다가 같은 전공이고…"

"…예?"

"이거!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

"하하 좀 오바했네…아무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말들만 하는 그. 그 이후로 40분 정도 대화를 더 나누다가 문득 이런 얘기가 오고 갔다.

"저기 서현씨…"

"예?"

"다음에도 만날 수 있습니까?"

"같은 전공이고…그러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헤어짐의 인사를 건네준 뒤에 바로 갔다. 이거 뭐지..?

나한테..관심있다는 뜻인가..?

"당연하고 말고! 남자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당연히 관심 엄청 있다는 걸 말해 이 바보야!"

나는 숙소로 돌아가서 유카리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그래서 바로 튀어나온 말이 이 말이었다.

"이야~드디어 우리 서현에게 봄날이 찾아오는 구나~"

"설레발치지마. 겨우 한 번만났을 뿐인걸?"

"그게 계속되다보면 사귀게 되는 거야. 그게 당연한 연애의 법칙이지. 뭐 네 취향이 아니라면 그것은 바로 깨져버리겠지만. 어때 상대방은? 잘 생겼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에게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는 유카리. 그렇게도 궁금한가? 그렇게도 관심있으면 지금 있는 남자친구를 차버리고 이 남자에게 가든가.

"잘 생긴건 아니고…"

"에이. 그럼 패스"

"그래도 못 생긴건 아니야"

"호오~? 그래~?"

다시 눈을 빛낸다.

"뭣하면 네가 대시하지 그래?"

"내가 그럴 리가 있겠어? 나는 단지 구경꾼이라구~남의 청춘사업 구경하는~"

"그거 설레발이라니까?"

"아니 왠지 너랑 그 남자랑 자꾸 사귈 것만 같아서…잘 됐네! 못 생긴것도 아니겠다 성격 좋기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남자겠네"

"성격봐서는…그리 나쁜 성격은 아닌 것 같아"

"그거야 차차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

"뭔가 말끝이 이상한데?"

"후후후. 그렇게 들렸을까나~?"

이걸로 나를 계속 놀려먹으려는 듯. 유카리는 자꾸 낄낄거렸다.

"왜 그렇게 웃어?"

"만약에 연애하게 되면 이 언니한테 맡겨둬! 내가 아낌없이 도와줄 테니까!"

가슴을 탕탕치며 자신한테 맡기라는 듯이 말하는 그녀.

"하아~?"

"알아봐. 너라고 해서 나쁠 것은 없잖아?"

"뭐가?"

"만약에 이 남자 괜찮겠다 싶으면 계속 사귀면 되는거고…에이 아니다 싶으면 차버리면 그만 아냐?"

"내가 언제부터 이 남자랑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

"네 대화내용 들어보면 꼭 사귄 지 얼마 안된 커플들이 하는 말로 들려"

"…"

"그러고보니 안됐네…우리 학교에 있는 남자들"

"우리학교에 있는 남자들이 왜?"

"너도 참 둔감하다…어째 너한테 은근히 남자들이 대시를 하고 있는데도 왜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냐?"

"몇몇이 귀찮게 치근덕거리기는 하지만…"

"그건 네가 다 잘나서 그런 거야. 즐겨"

"별로…"

"그런데 임자생겨버리면 너만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은 어떻게하라구?"

"왜 자꾸 나를 걸고 넘어져?"

"내가 얘기했잖아. 너 때문에 나만 귀찮게 되었다고. 남자들이 하도 너에 대해서 알려달라길래 떼어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야 하냐구?"

"그건 미안"

"차라리 잘 됐어. 확 그 남자랑 사귀어버려! 같은 한국인이고! 좋네!"

"…"

"서현. 그런 연애경험은 살아가면서 당연한거고 또 필수적인 거야. 거부할 필요는 없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그렇게 딱딱하게 살아간다면 평생 솔로다?"

"그렇기야 하지만…아직은 생각 없는 걸…"

"그런 건 다 바뀌게 되어있어. 일단은 만나봐"

유카리의 말 없이도 우리는 자주 마주쳤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었는데 도서관 이후로는 어째 그와 자주 만나는 것 같았다.

"이야~또 만났네요 서현씨?"

"예 안녕하세요"

학교에 있던 남자들이 사실은 나한테 종종 다가오면서 노골적으로 내 몸을 만지고 치근덕거리는 것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 사람은 양반. 나는 살짝 귀찮긴 하였지만은 인사도 받아주면서 도서관에서 같이 책을 보게 되었다.

"지금 뭔가 찾고 있는 것 같은데…무얼 찾으세요?"

"…이거요"

나는 살짝 책을 내밀어 내용을 보여주었다.

"서현씨…이런 것은 왜…"

"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내 동생. 정우의 회색빛 눈을 원래대로 돌리는 방법. 검정색 렌즈를 맞춰도 거울만 보기만하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그의 눈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왜 죽음을 통해서 이런 눈이 생겨난 건지 원인도 찾아야만했다.

"죽음이라…꽤나 오컬트적인 자료네요"

"예…"

"그러고보니 오늘 강의실에서 서현씨 봤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강의 듣는 걸 봤어요"

"그러세요…?"

"하하…전 뒷자리에 앉아서 서현씨가 못 보실 수도 있겠네요. 생각해보면 서현씨랑 저랑 전공이 같다보니까 강의실도 똑같을 수 밖에 없는데 저는 뒷자리에 앉고 서현씨는 앞자리에 앉느라 그 동안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것은 당연한 거겠네요"

"…저도 한규씨를 별로 보지 못했어요"

"하하…앞으로는 자주 보기로 해요. 같은 한국인끼리인데"

"예…"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를 주로 하는 쪽은 그였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공감가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처음에 왔을 때 음식이 안 맞아서 김치나밥 라면같은 걸 그리워한다거나 고향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거나...뭐 그러한 얘기들.

"혹시 김치 없으세요?"

"네…"

"사실 엄마가 가끔 김치 보내오기는 하는데. 서현씨도 드릴까요?"

"정말요?"

"그럼요.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그래주신다면야 고맙죠"

"그럼. 다음에 김치 드릴께요"

"예…"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와 만나는 횟수는 잦아졌다.(그것때문에 숙소에 돌아올 때마다 유카리가 후후후하고 음흉하게 웃는다) 그러다보니 서로 터놓는 것도 많아졌고. 동갑이라 서로 말을 놓기도하였다.

하지만 난 그에게 모든 것을 밝히지 않았다.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이유. 나의 과거. 나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을 때 그가 왜 이러한 것을 찾냐고 계속 물어오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난 그것을 웃어넘기며 애써 대답을 회피하고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더 이상 물으려고 하질 않았으며 계속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먹을 것이라던가 자료 찾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었고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는 다독거려주기도 하였다.

난 처음으로 남에게 의지를 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새벽에 왠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허름한 숙소. 낡은 창문.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세상. 그렇지만 유카리가 있어주었기에 이 공간이 따뜻했다.

사진을 만지작 거린다. 나의 보물. 별로 남지 않은 그의 예전사진.

"정우야…"

내가 그 남자에 대해서 의지를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왠지모르게 난 한동안 조금옅어졌었던 그에 대한 그리움이 불쑥 솟아올랐다.

차라리 그 남자가 그였으면 좋겠어.

"정우야…"

그의 이름을 부른다. 반대편에 있는 그. 만날 수 없는 그.

절대로 그에게 닿지 않을 목소리.

그리워.

그가 그리워.

하지만 난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였다. 나 때문에 죽었고. 또 나 때문에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그. 나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껴안아주고 싶은데...세상사람들 모두가 그를외면할 지라도 나만은..나만은 그에게 빛이 되어주고 싶은데..

사진을 안는다. 매일매일 습관이 되어 그의 사진을 껴안고 이 사진을 그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대리만족. 이렇게라도 해야 이 그리움이 사라질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그리움은 나의 마음을 옥죄여왔다. 그를 그리워하면 그리워 할 수록. 나는 그에게 죄인이다라는 생각이 가슴 깊이 박히기 때문이다. 난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고 난 지금 속죄를 하고 있다. 사실 난 그를 그리워하는 가치조차도 없었다.

나는 분명 그에게 애정을 받기를 희망한다.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나를 향해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그 회색빛 눈과 얼굴에는 허망한 웃음을 짓고 있을 지라도...희미한 웃음일지라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었으면 한다.

이기적이다. 나. 이 그리움이 커지면 커질 수록 나의 마음은 약해진다.

그가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내 옆에 없다는 것. 마음의 빈 자리는 크기만 하였다.

그가 아닐지라도..누군가가 그것을 채워주었으면 하였다.

이 그리움을.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대신할...

"정우야…"

닿지 못할 이름을 부르며. 난 새벽을 지새운다.

매일. 매일. 그렇게 매일.

이 그리움을..어찌할 수 없었으니까...

"사귀자"

"에…?"

아침에 그와 학교에서 만나서 그가 '저녁에 할 말이 있어'라고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 그는 급작스럽게 나에게 고백을 하였다.

"계속 이 말을 하겠다고 결심했었어. 나는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아니 처음본 것은 아닐수도 있겠지만 널 도서관에서 만난 순간부터 나는 널 좋아하게 되었어"

"한규…"

"나랑…사귀어줘"

이런 고백에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하였다.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나한테 관심이있다는 것을. 그가 행동하는 것은 모두 나를 배려하는 행동이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으니까.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너무나 급작스러웠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난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 것일까.

"갑작스러울지 몰라. 하지만 난 계속 기다려왔어. 너한테 고백하는 이 순간을"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닭살스럽다. 이런 고백을 듣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중학교때부터 있어왔다. 그런데 유난히도 부끄러웠다.

그가 의지가 많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샌가 난 그와 만나는 것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관계가 많이 진전도 되었다. 그리고 난 새벽마다 그리움에 지쳐서..난 어쩌면 이 그리움을 없애버리기위해서 그와 만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끄덕.

난 받아들였다. ok라고. 괜찮다고. 나랑 사귀어도 괜찮다고 얘기하였다.

그렇게 연인사이가 된 나와 그. 그와 키스도 해보고 손도 잡아보고 같이 영화도 함께보고 연인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은 모두 다 하였다.

그렇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그가 그리워진다. 그리움을 없애려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였는데. 어째서 이 그리움이 나날이 커져만 가는 것일까.

"넌 왜 그런 자료들을 여태까지 찾았던 거야?"

"…"

"후우…아직까지도 얘기해주지 않는거냐…"

"미안해. 하지만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일이야"

유카리와 달리 난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점이었다. 무엇인가를 숨기려한다는 점.

"서현. 우리는 연인사이야. 내 여자친구가 매일 도서관에서 죽음과 관련된 오컬트자료를 찾고있는데 어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것때문에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줄고. 난 그런 것이 싫어"

"난 그것에 관해선 미안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

"말해. 대체 무엇때문이야? 대체 무엇때문에 널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동생에 관련된 일이야"

결국 나는 '동생'과 관련된 일이라고만 얘기를 해주었다.

"친동생?"

"응"

"네 지갑에 그렇게 소중하게 보관되어있는 사진의 주인공…?"

"응"

"그렇구나…서현. 혹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 내가 힘껏 도와줄테니까"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그렇지만 한규가 그렇게 신경쓸 필요는 없어"

"신경 안 쓸리가 있냐. 여자친구 일인데"

"…"

"아무튼 갈게. 내일 보자"

"응"

그와 만났던 것은 대략 3개월. 사귀었던 적은 1개월. 내가 동생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그는 나를 열심히 도와주려고 했었지만..나는 그것을 끝끝내 거부하였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동생인 얘기만 나오면 어느새부터인가 그는 민감하게 반응을 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도 갔다온거야 도서관?"

"응"

"서현"

"응?"

"네 동생일이 그렇게 소중하면…나한테도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지않을까?"

"…"

"매일매일 동생동생만 찾는 네가 사실 좀 서운하기는 해. 왜 남자친구인 나보다 지금 멀리 떨어져있는 동생만 찾는 것인지"

"미안해 그렇지만…"

"그렇게 자꾸 사과만 할 거야? 지금에와서 하는 얘기인데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

"얘기해"

"너는…나보다 네 동생이 더 소중한 거니?"

"…"

나는 쉽사리 대답을 못 하였다.

"왜 쉽게 대답을 못해? 이것이 하잘 것 없는 질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진지한 태도로말하는 거야"

"나는 네가 더…"

"그렇다면! 왜 나랑 자꾸 못 만나주겠다는 건데!"

"…!!!"

"네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도서관에서 동생에 관련된 일을 찾는 것인지 몰라. 당연히 네가안 알려주니까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난 너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고 그런데…넌 얘기하기를 피하려는 것만 같아"

"…"

"너랑 만날 시간이 없어. 너는 도서관에 있지. 그나마 만날 수 있는데도 레포트제출해야 하느라 그 시간마저도 없어져가! 우리도 곧 있으면 졸업인데! 그러면 더욱 바빠질텐데!"

"…"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되잖아. 나는 너랑 계속 만났으면 좋겠어. 한국에 가서 더 만나다가 결혼하자고 얘기까지 하려고 마음 먹었어!"

"…한규"

"너는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해. 옆에 내가 있으면서도. 마음이 허전해서 항상 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찾아"

"…"

"나는 그저 대리만족이었던 거냐? 그저 날 자신마음의 위안을 위해서 그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대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새벽에 전화를 하면 넌 항상 울먹이면서 받아. 맨날 울어. 나는 언젠가는 그것이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했는데 도무지 나아지질 않아. 3주나 지나가고 있는데도!"

"…"

"이럴 거면…헤어지자"

"…!!!"

"너는 날…대용으로 생각하지 진심으로 사랑하질 않으려는 것 같아. 아니…"

"…"

"날 사랑하지 않아. 그저 누군가로 착각하고 있을 뿐"

"…"

"나는 그런 것을 받아줄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너를 독점하려 하지. 하지만 난이런 감정없는 사랑따위는 하고 싶지않아. 그러니까. 헤어지자. 이렇게 계속 만나봐야 아프기만 할 것 같으니까"

"…"

"나는 더 이상 너와 만나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너도…날 가끔가다 마주쳐도 모른 척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한규…하지만 난…"

"사랑하는 게 진심이었다고? 그건 착각이야"

"…"

"만난 지 거의 한달 정도 되었으니까…섹스도 하려 했었는데 네가 피하더라? 그러지말자고. 나를 밀쳐내면서"

"…"

"그것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너의 눈빛에서는…완전히 거부하려는 것처럼 보였어.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이 사람에게 안길 수 없다고"

"…"

"나는 깨달았어. '이 녀석은 날 진심으로 사랑하질 않는구나…'하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

"한 쪽만이 다른 한쪽만을 바라보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야. 짝사랑이지. 가장 가슴을 도려내는 것만 같이 아프기만 한 사랑을 말이야"

"…"

"너는 날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헤어지려는 거야"

"한규…"

"그래도 너한테 반했었는데…진심으로 사랑했었는데…네가 그러하니 어쩌겠냐"

"미안해…미안해 한규…"

"그 미안해라는 말을 들으려고 너의 연인이 된 것이 아니야. 그러고보니 한번도 듣질 못했어. 네가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을"

"…"

"그래도 이 한달. 꽤나 즐거웠어. 그리고 나의 연인이 되어줘서 고마웠어"

"한규…"

"그럼 잘 가라. 되도록이면…마주치지 말자"

그것과 함께 짧았던 한달의 연애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난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유카리의품에 안겨서 펑펑 울었다.

나는 나쁜 년이다. 정말로 나쁘기만 했다.

유카리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날 애써 위로해주고 있지만 실상을 놓고보자면 모두 내 잘못이었다. 그랬다. 난 그저 그를 대리만족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이 그리움을 대신 채워줄 누군가. 실질적으로 나를 보듬어줬으면 하는 누군가가 필요해서그를 대신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를 향한 그리움.

난 아직까지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리움'이라고 치부해버렸다. 그 그리움이 '사랑'으로 변질된 것임을 난 몰랐다.

대학생활이 끝날 때까지 난 그를 보지 못하였다. 또 유카리는 어쩌다보니 대학동기였던 남자친구와 계속 잘 되어서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학졸업을 하자마자 그녀는 바로 남자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갔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라고. 부모님의 허락만 받으면 일본에서 집을 구해서 살게 될 것이라고 그녀는 기쁜 듯이 얘기하였다.

나는 잘 되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남자는 찾아보았어?"

"얘도 참. 또 그 소리 하는 거야?"

"그 한달동안 밖에 사귀고나서 너의 연애생활은 완전히 끝이잖아"

"그거야 그렇지"

"나도 곧 있으면 일본으로 돌아가고…이제는 너랑 헤어지는데…더블데이트도 못해보구"

"…유카리"

졸업식이 끝나고 그녀와 난 계속 서로를 얼싸안고 울었다. 그녀는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야되는 상황. 난 짐과 자료를 정리하고 떠나야했기에 이 곳에 남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끝이 아니지? 그렇지 서현?"

"응…이게 끝이 아니야"

"꼭…연락하고…꼭 시간 되면…일본 찾아와"

"응. 꼭 그럴게. 넌 소중한 친구인걸? 결혼생활 잘 하구. 내가 일본갔을 때는 넌 애엄마가 되어있겠네?"

"그럴 지도?"

"그래서? 남자친구랑 아이계획은 새워보았어?"

"이미 자라고 있는 걸?"

"벌써부터…?"

"응. 4주째래"

"그런데 왜 그걸 여태까지 얘기 안 했어!"

"미안. 나도 늦게 깨달았거든"

"후유…남자친구가 너한테 엄청 잘해줘야겠네"

"잘 해주고 있어. 남자친구 어쩌면 공처가 일지도?"

"부럽다 야"

"결국에는…실패했네 그거"

"…응"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어 서현. 그냥 마음 놓고 돌아가"

"조금만 더 찾아보게. 조금만 더…"

"네 근성은 정말로 알아줘야겠네. 그렇게도 중요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

"성과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아무 것도 없었으니…"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아. 난 이렇게라도 해야하니까"

"…어?"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비행기시간늦겠다. 돌아가. 남자친구도 기다리고 있잖아 "

"서현…"

"보고싶을 거야. 유카리"

"서현!"

"유카리!"

또 공항에서 부둥켜안았다. 유카리는 차마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내며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려하였고 난 웃으며 출국장에서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그녀 생각이 나면 연락을 하고 있다. 애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고 하고. 무척이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 왔어"

"정우야!!!"

나 역시 집에 돌아왔다. 한국에. 그가 있는 곳에 돌아왔다.

"정우야~"

예전처럼 그가 나에게 달려와 안아왔듯이 난 똑같이 그에게 달려와 안겼다.

무척이나 따뜻한 그의 품.

"…서현누나"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쁘다. 미묘한 감정. '친동생'이라는 한계와 '이성'이라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나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그의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이제 그를 향한 그리움이 필요없다. 언제든지 곁에 있으니까.

그렇지만 언제까지나..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던 나였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진실이 언젠가 밝혀져 그가 나에 대해 실망하게 될 지도 몰랐지만..

이제서야 깨달았어. 너무나도 늦게 깨닫고 말았어.

나는 그를 친동생으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좋아하고 있음을.

'나는…그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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