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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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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허탕이네…"
도서관에서 여전히 책에 파묻혀지내는 나였지만 몇 년째 성과는 없었다. 그에 대한 것. 그가 죽음 뒤에 얻은 회색빛 눈에 대해서 알아가기위해서 책을 읽고 또 읽던 나였지만은 그 진실은 자꾸만 멀어져가고 있었다.
"나 왔어"
"어서와. 또 도서관 갔다온 거야?"
"응"
숙소에서는 침대에 누워있어서 책을 읽고 있는 유카리가 있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인 그녀. 그녀덕분에 이 미국생활을 잘 적응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쉬엄쉬엄 좀 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
"응…"
"설마 초저녁쯤에 샌드위치나 핫도그같은 걸로 때운 건 아니겠지?"
"…미안"
"에휴…오늘 남자친구랑 피자먹고 왔는데 남은 피자 포장해왔는데, 먹을래?"
"내일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상관없어. 그런데 이거라도 먹고 자는 게 훨씬 더 낫지 않겠어?"
"그럼 잘 먹을게"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식은 것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어도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제 배고프지는 않지?"
"고마워 유카리"
"아무리 동생에 대해서 걱정이 되어도…자기가 하고 싶은 건 꼭 하도록 해. 이렇게 동생에 대해서만 매달리다간 유학생활 제대로 즐길 수도 없고. 꼭 알아내야만 하는 일이라고하지만 너는 지금 너무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보여?"
"응. 이런 거 '집착'이라고 봐도 될 만큼"
"…"
"내가 전에도 얘기했었잖아. 책임감을 무리하게 가질필요는 없다구. 그렇게 계속가다가는 몸만 망쳐놓을 뿐이라구. 어느 정도 자기의 시간은 꼭 가지라니까?"
"하지만 난…"
"남자친구라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남자친구?"
남자친구라...나는 이런저런 일로 그런 생각따위는 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있었지만 어쩌면 내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피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응. 이렇게 힘들 때 기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너에겐 필요하잖아?"
"네가 있잖아"
"내가 있다고는 해도…너. 누구와 사귀어본 적은 있어?"
"아니"
"이런이런. 처음이야?"
"…"
"정말 범생이야. 어떻게 공부만 하고 사는 지 이해가 안 가. 아니면 동생에 대해서 조사하기만 하고"
"나는 그래야만 하는 걸"
"뭣하면 내가 좋은 남자 소개시켜줄까?"
"…괜찮아"
"에이에이. 사양하지말구 친구 부탁 들어준다 생각해~"
내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은 있기나 한 것일까..? 나는 '속죄'와 '도망'으로 이 곳에 온 것이었다. 내가 뿌린 씨는 거두어놓아야하는 법. 나는 이것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만하였다. 하지만 지쳐만 갔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그런데 어째서 바로 그가 떠오르는 것일까. 그 소년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례식날. 너무나도 힘들고 지쳐서 그 작은 어깨에 기대었다. 내가 상처입히고 또 내가 지켜줘야할 상대한테 기대게되었다.
말 없이 그는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었다. 실컷 울으라는 듯이.
'이렇게 힘들 때 기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너에겐 필요하잖아?'
이럴 때 나는 왜 그에 대해서 생각한 것일까. 매일을 그리워했다. 처음엔 언제까지 함께해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미안함에 자꾸만 생각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가 없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 내가 죽였지만. 나는 그에게 무엇인가를 더 바란다. 이것이 그를 두 번 죽이는 거고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무엇일까 이 감정.
"서현?"
"아…"
"무슨 생각해?"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어?"
"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
"…!!!"
"어래래~? 표정이 갑자기 빨개지는 것 같은데?"
"농…농담하지마…"
그래..내가 그런 감정을 품을 리 없잖아...말 그대로 농담이야. 한 순간의 알 수 없는 느낌일 뿐이야.
"그래서~? 누구일까나~"
"뭐가?"
"누가 우리 서현의 마음을 빼앗아간 것일까나~"
"아무도 없어"
"에이~"
"정말로 없어"
"체엣…재미없게"
"유카리. 난…별로 그런 거 생각한 적도 없구. 힘든 건 네 말대로 사실일지도 몰라…그렇지만…"
"서현"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까 전에 보여주던 웃음도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유카리?"
"내가 딱히 강요한 적은 없어. 하지만 필요할 뿐이야 너에게"
"필요하다니?"
"너. 정말 지쳐보여. 대체 언제까지 자신의 책임감에 구속되어 살 거야?"
"…"
"그 책임감을 저버리라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야. 하지만 그런 것도 한번 쯤은 생각해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에서 말한 거야. 네가 정말로 필요없다면 내가 이렇게 오지랖을 떨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보여서 내가 얘기한 거니까 나의 말 그렇게 새겨둘 필요는 없어"
"유카리"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서현.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뿐이니까"
"유카리!"
나는 이러한 그녀를 달려가 껴안았다. 정말로 그녀가 고마웠다. 내가 아무리 어리광을 부려도 다 받아주는 그녀가 나에게는 너무나 고마웠다.
"서현…?"
"유카리…네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
"새삼스럽게 왜 그래?"
"이렇게 나 생각해주는 사람…너 밖에는 없는 걸?"
"…이런 친구 두는 거. 감사하게 생각하라구"
"그래. 감사해. 이런 친구가 나한테 있다는 것이 고맙고 고마워"
"…서현. 난 참고로 노멀이야"
"후훗. 나도 그런 취향은 없어"
"그러면 빨리 만나라니까? 이렇게 외로워하지말구?"
"그래…시간되면 만나보지 뭐…"
"지금 그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걸로 보이는데?"
"그런 말 아니야. 시간있으면 남자 볼 기회를 만들겠다는 거야"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네. 우리 서현이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뭐야? 그러면 난 남자에 무감각하다는 걸로 보였단 말이야?"
"애초에 그런 취향도 아닌 줄 알았지"
"유카리!"
"농담이야 농담. 얘는 뭐 농담을 받아주는 그런 것도 없어? 다른 여자들은 모두 하나 씩은남자 만나면서 노는데. 그런 예쁜 얼굴에 몸매를 가진 네가 전혀 남자를 만나지 않으니까 이상하다…했었지"
"나도 얼마든지 남자에 관심은…"
"알았어알았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언젠가 같이 더블데이트라도 하자"
"알았다니까"
"강요하는 걸로 받아들이지는 말구"
"지금 강요하는 거 아니야?"
"NO~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말한 것 뿐"
"후훗. 그러면 난 네 남자친구보다 훨씬 더 멋진 남자를 만나면 되지"
"어라라~? 나 그 남자 가져가 버릴 지도~"
"역시 너한테는 안돼…"
"서현이는 놀리는 맛이 있어서 좋다니까~"
"유카리~~~!!!!"
"으앗!!!! 항복! 항복! 잘못했어!"
밤은 깊어만 갔다. 새벽까지 그렇게 난 그녀와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 유카리. 너 지금 뭐 읽고 있던 중이었어?"
"냉정과 열정사이"
"그게 뭐야?"
"읽어볼래? 나름 재밌어"
"여태까지 네가 보여주었던 책들은 거의 다 재밌었으니까…"
"로맨스소설이니까 지금 서현이에게는 필요할 지도…?"
"흠…"
"뭐. 그렇지만 이별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니까 안 맞을지도 모르겠네"
"이별?"
"헤어지고 난 연인이 이탈리아에서 다시 만나서 각자의 시선으로 쓴 책이야"
"…그래?"
"시간나면 읽어봐. 한권 여기에 둘 테니까"
"지금 읽을까?"
"안돼. 우리 자야되잖아.게다가 넌 지쳐있었고"
"우웅…"
"우리 착한 서현어린이는 자야할 시간이에요~"
"치잇…그렇게 어린이취급할 거야?"
"미안미안. 지금 서현이가 보여준 표정이 귀여워서 나도모르게…"
"알았어. 자지 뭐. 얘기하느라 피곤하기도 하였고"
"잘 자 서현. 불 끌게"
"응. 잘 자 유카리"
오늘도 난 수업을 모두 듣고나서. 도서관으로 직행하였다. 내가 매일같이 도서관을 들어오니 도서관을 관리하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예쁜 아가씨 또 오셨구만!"
"예. 그런데 부탁한 거…"
"아 맞다! 여기에 따로 모아두었네"
나는 도서관관장아저씨에게 오컬트와 관련된 자료들을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사실 이 곳에 있었던 자료들은 그 동안 왔다갔다하느라 모두 보았기때문에 자료가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런데 아가씨. 내가 이제와서 궁금해하는 건데 왜 이런 걸 여태까지 계속 보는 것인가?"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도 당연하였다. 매일 도서관에 와서 죽음과 관련된 여러 기현상들을찾아보고 있는 나였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요"
"…꽤나 심각한 일이겠구만?"
"예…"
"더 이상은 개인사생활이니 묻지않도록 하고. 또 부탁할 자료 있으면 얼마든지 부탁하도록하게. 내가 최대한 가져와줄테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뭘. 우리 단골손님한테 이러는 것은 당연한 거지"
도서관관장아저씨의 인정에 나는 또다시 감사를 드리면서 내가 매일같이 앉는 곳으로 자료들을 들고가던 와중이었다. 아저씨가 정말로 많이도 가져와주어서 상당히 무거워서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퍼억!!!
가다가 그만 부딪혀서 그 자료들을 모두 바닥에 흩트려놓았다. 그렇지만 부딪힌 사람이 책들에 부딪혀서 괜찮을까해서 나는 바로 그 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괜찮아요?"
아차...나 또 한국어 얘기했네. 나는 어느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말 할때 꼭 한국어로 얘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유카리와 처음 만났을 때에도 한국어로 얘기해서 유카리가 이해를 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을만큼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부딪힌 사람은 동양인 남자.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려나...
"어…? 혹시 한국인이십니까?"
"…!!!!"
나는 그 때. 그곳에서 처음으로 한국인남자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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