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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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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환한 가로등과 그림자의 가로수. 어떤 풍경보다도 쓸쓸함이 담긴 광경.
바람이 사아하고 불어온다. 그녀는 그 바람을 느끼며 허공을 바라본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무엇때문에 아파하고 이렇게 쌓아두는 것일까.
나는 그 고통을..덜어낼 수 없는 것일까..?
함께해 줄 수..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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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안에 있는 동물을 본 순간. 세상이 멈추어짐을 느꼈다.
그녀의 안에 있는 검은 양은 돌아다니고 있었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듯이.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른다는 듯이 이리저리 좁은 구석을 돌아다니며 길을 찾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저 방황만 할 뿐.
"서현누나…"
"…정우?"
"여기에는 왜…"
"너야말로 이 곳에는 왜…"
나를 만난 것이 의외인 듯. 아니 그리 만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는지 그녀는 어둡기만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자괴감에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내가 더 이상 그런 과거는 생각하지말라고 얘기를 해보아도 듣지를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시한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란 처참하다. 이 마음 전할 수 없어서 그리 고민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 마음도 전해질 틈도 없이 그녀가 사라진댄다. 나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그녀가 존재했다는 흔적이 모두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사라져버린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하였다. 상당한 쇼크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 나는 애써마음을 추스린다. 그렇지만 이 놈의 마음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를 않았다.
"…"
서로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있어봤자 그녀의 건강만 안 좋아질 것 같아서 겨우겨우 말을 꺼내었다.
"같이 돌아갈…까?"
혹시나 같이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말이었다. 어떻게든 말을 하였지만 난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하다.
"…응"
다행히도 그녀가 조그맣게 승낙의 의사를 밝히자 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밤거리를 함께 걷는다.
하지만 거리는...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절대로 가까워 질 수 없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그러한 거리를 벌리고서...
그녀와 대화를 이끌어내려하였던 나였지만 결국 집에 돌아가면서까지 그녀와 한번도 얘기를 나누지 못하였다. 모처럼 그녀의 얼굴을 보는 거였고 게다가 단 둘이서 대화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이게 바로 '줘도 못 먹는다'는 것인가.
"오히려 그러한 비유가 조금 이상할 지도…"
나는 머잖아 떠나려고 했었다. 가족들과의 이별을 통해서 가족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졌으면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이러면서 헤어지는 것은 싫었다. 그들에겐 오로지 웃음만이 존재해야했다. 다른 어떠한 슬픔도. 어두운 모습도 필요치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대체 얼마까지 쓰레기여야하는 것일까. 나로 인해 그녀가 죽게 된다. 그것도 '검은 동물'로 인해서 자신이 살아왔었던 증거와 흔적들이 모두 없어진다. 나 때문에. 먼지보다도 못할 존재일지도 모르는 나라는 존재때문에.
이 시간에도 그녀의 생명은 조금씩 사그라져간다. 이 검은 동물은 카운트다운. 죽음으로부터의 확실한 선고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선고를 받게되어서..이대로만 간다면 그녀는 사라져버린다. '죽는 것'도 아닌 '사라진다'.
나는 그 죽음을 두 번이나 막지 못하였다. 하나는 할머니. 하나는 선생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세 번째로 신이라는 놈은 나에게서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가려한다.
내가 더 비참한 기분을 느껴버리게끔. 아예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그녀를...
사실 '신 때문에'라는 것은 하잘 것 없는 변명이다. 죄다 나 때문에 나에게 마음을 주었던 이들. 존재의 가치가 있었던 이들이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져서는 안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녀를 살릴 수 있을까.
어째서 난 이러한 검은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유일한존재인데..왜 이렇게 무기력한존재일까. 나는 모두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였다.
나는 죽은 자. 존재의 가치가 이미 없어져버린 자. 그렇지만 이 세상에 남아서 '살아가고있는 것'인지 그러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은 '존재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에 누군가가 너는 지금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른다. 나는 지금 인간인 것일까. 애초에 나는 이 세상의 규칙에 위배된 존재. 즉 인간이 아니라 이레귤러가 아닐까.
그러니까 보이는 것이다. 이레귤러이기에 보통사람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나는 그러한존재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자였다. 애초에 보통 '인간'이었으면 보이지 않을 것들을 난아무렇지않게 보고 있다.
그러한 죽은 자이기에..더더욱 그녀를 사랑해선 안되었다. 친누나이기 이전에. 난 죽은 사람이었다.
'차라리 혼자가 나았어'.
차라리 모두가 날 외면했으면 좋았어. 차라리 모두가 날 안 보았으면 나았어.
그랬으면..모두가 행복했을 거야. 모두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거야.
나는 '빛'을 갈망했지만..난 결코 '빛' 그 비슷한 부류조차도 되지 못했어.
갈망하면 갈망할 수록. 그렇지만 갖지못하면 못할 수록. 인간의 마음은 부서지기 쉬웠다.
'서현누나'라는 존재를 갈망하고 집착했지만..가질 수 없다는 것에..난 절망한다.
그러한 것을 알고서 떠나고자했던 것인데..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어서 떠나려고하는 것인데..
구하자. 그녀를 반드시 이 존재가 사리질 지 모르는 위기에서 구해내자.
그러고서 나는 떠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갔으니 이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은 사라져야하는 것이 옳다.
체념하고 체념하자. 나는 이러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자.
그저 난 그림자. 절대로 무대 위의 배우가 될 수 없음을 알자.
그녀는 행복을 얻고 웃음을 얻으면 된다. 모든 업은 내가 짊어지고 가니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으로써의 웃음을. 어쩌면...
새벽. 난 창문 밖을 바라보며 고민에 휩싸였다. 그녀를 구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검은 양…이라…"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어린 양. 그녀의 안에는 그러한 존재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이 양을 올바른 길로 데려다줘야 된다는 것.
그녀의 마음을...어디론가 인도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마음의…방향…"
어떤 길을 선택해야 그녀의 마음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그녀가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의 인도라니...이것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후우…"
한숨을 늘여세워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나는 무엇인가 위안을 얻고자 한숨을 내쉰다.
아직 새벽은 길다. 그러니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렇지만...
너무 늦어버리지는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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