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47화 (24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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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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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죽은 사람'이야…"

그녀의 말이 나의 가슴에 박힌다.

모든 의문이 풀린 것 같다. 내가 그토록 자살시도를 했는데 왜 안 죽었는지. 왜 회색빛 눈으로 바뀌었는 지. 답은 간단했다. 나는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뭐랄까 허망한 기분이다. 내가 그 동안 무엇때문에 살아왔는지 모든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시체'다. 나의 심장은 한번 완전히 멈추었었고 다시 살아난 댓가로 난 회색빛 눈을 갖게 되었다.

"너한테만은 알리고 싶지 않았어…계속 숨기려고 했었어…"

그 이후로 그녀의 푸념은 계속되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나에게는 정말로 숨기고 싶었던 과거. 하지만 난 이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먹었다기보다는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역시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니까…"

그녀는 다리의 힘이 풀려버렸는지 일어나질 못하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우야 미안해…이 미안해라는 말도 너무 늦어버렸지만…정말로 미안해…모두 나 때문이야…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서현누나가 왜 그토록 나에게 상냥하게 대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죄책감'이었다. 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는 다시 살아난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것이다. 그녀 역시 나를 싫어하였다. 아주 싫어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만큼 나를..

그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땅바닥을 적셔갔다.

사실은 이 정도면 충분히 댓가를 치르지 않았을까 생각하였다. 그녀는 내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더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 뻔하니까. 나를 싫어하는데..죄책감으로..후회로..

"…서현누나…"

"이렇게 너에게 죄만 지었으니…나는 이제 더 이상…"

"…?"

"너의 곁에 있을 수 없는 거겠지…?"

"…그게 무슨…"

"정우야"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눈물방울이 떨어졌지만 활짝 웃고있었다.

그 미소는 서글퍼서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바로 동정심이 일었을만큼 슬픈 표정.

"날 용서하지마"

그러고서 그녀는 그 슬픈표정과 함께. 천천히 돌아섰다.

"아…"

내가 사랑하는 그녀. 나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그치만 멀게만 느껴졌다. 그녀와의 거리는.

항상 가까이 있어서 몰랐는데..어느샌가 나와 그녀와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

이것이 나와 그녀의 마음의 거리. 평행선을 걷고 있는 듯 하다.

용서하지말라니..내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사랑해서 당신의 곁을 떠나려고 하는데...

나는 그녀가 들어간 그녀의 방의 문을 두드렸다.

"서현누나"

똑똑하고 두드려도. 반응을 일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없다는 듯이 스스로를 가둔 그녀.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있는 문은 두꺼웠다.

나는 '단절감'을 느낀다.

그녀와의 '인연의 사슬'은 자꾸만 얇아지려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날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한번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바로 날 외면하였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나의 얼굴만 보아도 고개를 푹 숙이고 죄를 지은 사람과도 같이 행동하였다.

그녀의 손을 붙잡으려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피하고 나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부우~'하고 귀엽게 볼을 부풀리던 그녀.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어주던 그녀.

그녀가 이제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않는다.

"…"

나는 그녀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안타까운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리 나에게 죄를 지었다고 할 지라도..나는 얼마든지 그녀를 받아줄 자신이 있었다.

'만약에 내가 너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할 지라도…나를 계속 좋아해줄거야…?'

그녀가 이런 말을 한 이유도 그 이유였다. 그녀는 두려웠던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기도 두려웠고. 또 드러내었을 때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을까하고 두려워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이것이 진실된 사랑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러했다. 한 번 멈추었었던 심장도 그녀를 보면 심하게 요동쳤다.

그렇지만 나는 죽은 사람이다. 그녀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또하나의 이유가 늘었다. 이렇게 아무리 걷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인간으로써의 행동을 하고 있지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서현누나…"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고뇌한다.

"오빠…"

"…어?"

"서현언니랑 혹시…싸웠어?"

"아니"

나는 애써 웃었다.

"그렇지만 서현언니가 요새 이상해…"

"…"

"왠지 보면 자꾸 오빠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알바갔을 때 빼고는 밥도 안 먹고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도 않고…밥은 제대로 먹기는 하는 건지…"

"…"

민정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녀의 상태는 심각하였다. 나는 더 두고볼수도 없이 그녀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서현누나 있어?"

"서현누나"

그녀를 계속 불러보아도 도통 응답이 없었다. 날 확실히 피하려고 하고 있었다.

"언니…안 나와?"

"…"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무능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는데..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였고 또 나 때문에 그녀가 아파하고 있었다.

'날 용서하지마'

그녀의 이 말 한마디가 나를 찢어지게 아프도록 만든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대한 앙금은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큰 죄라고 생각하기에 그녀는 날 피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돌이키려고해도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

그녀는 나와 똑같았다. '과거'를 붙잡고 그 과거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그녀와 할머니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할머니가 사라진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들러붙다시피 하였다. 죽기 전이나 그 이후에나 나는 그녀에 의지를 하며..

그녀는 웃어주었다. 내가 방황을 할 때에도 그녀는 나를 안으며 좋은 길로 인도하려 노력하였다. 그 웃음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래도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얼마나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는지 모른다.

그녀는 내 삶의 원동력이었고. 쉼터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철저히 나를 피하려 하고 있는데..어떻게..?

그래도 용기를 내야만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 때문에 아파하는 것은 원치않는다.비록 나에게 죄를 지었다고하지만은..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있었다.

단순히 사랑하기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그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동안 충분하게 나에게 상냥히 대해왔다. 그것이 후회로 점철되어진 행동이었다하여도 나는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행동은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녀라도 없었으면..나는 도무지 살아갈 여력이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삶'을 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감정'을 주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해준 은인이다.

그래서 난...

다음날. 그녀가 일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요새 밥을 안 먹고 있는 것 같다는 민정이의 제보에 따라서 도시락도 바리바리 싸들고 그녀가 일하고 있을 카페 앞에 섰다.

딸랑.

문을 열고 와보니 여러 명의 웨이트리스가 하나같이 '어서오세요!'라고 외치며 반겨주었다.

나는 아무데나 자리에 앉았고. 그녀를 찾으려하였다. 유난히도 북적북적한 카페. 나도 한 30분정도 기다리고나서야 이 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때 웨이트리스복장을 한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 그녀를 보려고 남자들이 고개를 쭈욱 내밀며 그녀를 바라보려고 애를 쓴다.

"정말 이쁘다~"

"그렇지? 난 저 사람보려고 매일 온다니까?"

"남자친구 있을까?"

"당연히 있지않겠어?"

"핸드폰번호 따려고 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모두 거절했대나봐"

"도도하네"

"도도하다기보다는…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말이야. 게다가 저 사람 항상 웃으며 손님 맞아주니까…오해하는 것일수도?"

"그런데 알바야?"

"그런 것 같은데?"

"저 사람때문에 이 가게 매출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소문이…"

"외모랑 몸매 아주 작살이잖아. 그러니까 그러는 거지. 특히나 남자손님들이"

"우리도 그 중 한 부류고?"

"그렇지 뭐"

나는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역시나 그녀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쁘고 상냥하고 완벽하다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녀니까.

아차차..난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지..?

"…정우야?"

"…아하하…"

드디어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뭣이?!!!'라며 깜짝놀라하는 사람들은 일단 내버려두고..

"여기에…무엇하러…"

"이거"

나는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그 때 또 사람들이 뭐라뭐라 한 것 같지만은 그냥 흘려들었다.

"…밥 요새 잘 안먹고 있는 것 같아서"

"…"

그녀는 내 도시락을 물끄러미보다가...

"미안"

바로 나에게서 도망치듯이 벗어났다.

"서현누나…!!"

"미안. 일이 좀 바빠. 그리고 나…정우한테 이런 거 받을 자격없어"

"그렇지만…"

"미안"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주문받으러 향했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 결국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언제까지고...

그녀가 나에게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내버려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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