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44화 (24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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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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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웃음을…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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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음에서 살아난 지 일주일이 흘렀다. 새로운 해가 되었고. 이제 정우의 나이는 9살이 되어가려하는 시점이었다.

"정우야…"

그는 나와 다시 만났을 때, '서현누나?'라고 말한 것을 제외하고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않았다. 그저 움직임이 없는 사람의 형체를 한 로봇과도 같이. 아니 '인형'과도 같이 그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조잘조잘 옆에서 말을 걸어주어도. 간호사가 어떻게든 말을 꺼내게끔 유도하여도 그는 묵묵부답.

완벽하게 달라졌다.

예전의 그와 전혀 달랐다. 그 때 그는 아무리 힘들었어도 웃음을 보여주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지쳐버렸는지 표정은 늘 음울하였고 밤마다 잠을 잘 수가 없는 지 그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새로 생겨났다.

그의 회색빛 눈을 볼 때면. 마치 누군가가 '세뇌'라던가 '최면'을 건 것처럼 보이는 눈이었다. 생기가 다 빠져버리고 그래..'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눈.

그의 일상은 이렇게 흘러만갔다. 병실에 틀어박혀서. 차창에 있던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고목나무와 눈이 내리는 도시를 바라보며.

나는 그의 곁에 있어주었다. 물론 이것이 '속죄'라는 것도 알았고 이제와서 뒤늦게 하는 행동이었던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반드시 해야할 행동이라는 '책임감'에그리고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나이기에...

학교에서 끝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튀어나갔다. 부모님조차도 이 아이가 진짜로 우리 아이인가하고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듯. 또 그를 귀신처럼 대하여서 병실에 같이 있지도 않았다. 나 몰라라 하였다. 자식의 자살에 대해서 '책임회피'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 아이를 '남'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어째서 다시 살아났는데. 이렇게 기회가 다시 주어졌는데 그는 예전보다 더 외면을 받아야하는 것일까.

"…"

그가 밤에 자지못하고 낮에 이르러서야 잠에 들자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의자를 놓아두고 앉아서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안쓰러웠다. 이 아이는 이렇게 또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에 대해서. 안 그래도 회색빛 눈으로 변화한 그에 대해서 수군수군하는 눈치들도 많았고 '이방인'처럼 보는 시선들도 많아지고 있었는데.

사실 나도 두려웠다. 아직도 이 아이가 '진짜'로 살아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내 스스로 묻고있었다. 아니면 '살아있는 귀신'이 아닐까하고..

"죽었잖아…"

죽었다. 그는 확실하게 '죽었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간혹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슴에 칼이 박혀 완전히 심장이 멈추었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일까?

'기적'? 기적은 맞다. 죽음에서 살아났으니까.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는 '기적'이라느니 뭐니 그런 것은 없다. 오직 절망뿐이었다.

차라리..이대로 죽는 것이 더 나았을 만큼...

"으아아아!!!"

오늘도 발작이 시작되었다. 늦은 새벽. 그는 병원 안에 울려퍼지도록 엄청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간호사도 그 소리에 화들짝놀라 새벽에 이 병실에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 되고 있었다.

"오늘도야?"

"그러게 말이야…언제 퇴원한담? 새벽에 잠을 자는데 시끄러워 죽겠어…"

"그러고보니까 저 아이 심장이 완전히 멈추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데 왜 버젓이 살아있는 거야?"

"그러게나말이야. 저 회색 눈을 볼 때마다 소름끼쳐 죽겠어…"

그는 악몽을 꾸었다. 잠을 잘 수 없다는 고통. 한창 성장해야 할 아이인데 잠을 잘 수 없었다. 그것때문에 난 새벽에도 그의 곁에 있었다. 악몽을 꾸면 누군가가 함께 있어줘야 했다. 그래야 이 지독한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여기 내가 있잖아…그러니까 힘들어하지마 정우야…"

꿈에서 깨어나 식은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그의 손을 잡는다.

"편히 자. 떠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이제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로 너에게 잘해줄 테니까.

이번엔 내 차례야. 내가 나로 인해 닫혀진 너의 마음을 열어줄 거야.

그가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은 편해진 듯 숨소리만이 이 조용한 병실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 아이는 누구보다도 관심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님에게서조차도 애정을 받지못하는 아이. 그렇지만 누군가가 손만이라도 잡아준다면 그는 이렇게 편안해하는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 퇴원날이 되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시간.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현이와 민정이는 그를 잘 대해준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지현이는 이 아이를 무척이나 귀여워한다. 그래서 이 아이가 알았으면 하였다. 너를 아껴주는 사람들은 여기에 얼마든지 있다고.

그러니까 외로워하지말고...웃었으면 하였다.

"예…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우의 방이 옮겨져있었다. 먼지냄새로 역력한 창고로 그의 침대와 그의 짐들이 옮겨져있었던 것이다. 금방 병원으로 돌아온 나와 그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니까 방을 옮겼다. 여기로"

"여기는 방이 아니라 창고잖아요!!"

"서현아…"

"대체 언제까지 정우에게 냉정하게 굴 거예요? 이제 굴만큼도 굴었잖아요!! 게다가 이 아이는 다시 살아났는데…계속 예전처럼 외면만 할 거예요?"

"…그것때문에 거리를 두려고 하는거란다"

"…!!"

"나는…이 아이가 여전히 무섭다…"

"…"

"솔직하게 말해서…난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단다…"

"잘해주면되잖아요…따뜻하게 보살피면 되잖아요…"

"그러기에는…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

부모님은 아는 것일까. 그 때의 그가 '기억'을 거의 잃어버렸다는 것을? 예전의 추억도.웃음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을?

"정우야…"

어두컴컴한 방에서. 그는 구석에서 쪼그려앉아있었다. 나는 이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와 그를 안아주었다.

"괜찮아…다 잘 될거야…"

기약없는 희망. 언젠가 부모님도. 사람들도 그를 잘 대해줄 것이다라는 그런 믿음.

나는 그를 더욱 꼬옥 안았다.

그리고..그도 나의 등에 손을 대고 안겨왔다.

"함께…있어줄 거야…?"

"…!!!"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그가...

"서현누나…함께 있어줄거야…?"

나는 울음이 북받쳐올랐다. 드디어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연 것에 대한 기쁨이었을까.나는 포옹을 잠시 풀고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응…그러고말고…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줄게…"

"정말…?"

가련한 눈빛. 이 회색의 눈동자에서 간절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응! 정말이고말고…"

"그런데 왜 누난 지금 울고있는거야?"

"응? 이건 말야…"

그는 나의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정우야?"

"울지마"

"정우야…"

"나 때문에 울지마 서현누나"

"…응. 울지않을게"

그러고서 난 다시 껴안았다.

아아...이 아이는 아무리 죽었어도...기억을 잃어버렸어도...

여전히..나를 좋아해주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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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y'편은 아마 1~2편이면 끝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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