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42화 (24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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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Gray

우앙..선작수 1000...

제 작품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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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영차~"

"…지금 뭐하고 있어?"

"아! 서현누나!"

쪼르르 달려와서 안겨오는 그. 하지만 난 달려오는 그를 피하고 그것때문에 중심을 잃은 그는 '아코!'하고 철퍼덕 땅바닥에 넘어졌다.

"에헤헤…"

그래도 바보같은 웃음을 짓는다. 내가 뭐가 좋다고 이 녀석은...

그 때 나는 한창 민감해진 시기였다. 13살. 부모님의 말을 점점 안 듣기 시작하는 사춘기.게다가 이런 동생들을 책임져야한다는 압박감에 나는 스트레스를 갈 수록 얻어가고 있었다.

"지금 뭐하고 있냐니까?"

그러다보니 말투도 날카로워지고 차가워졌다. 변해가는 나를 민정이가 '언니 무서워…'라고 말할 만큼. 나는 모든 것이 달라져있었다.

"에헤헤…밥 하고 있었어!"

"밥?"

그의 손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요리책이 들려져있었고 주방은 난장판이었다. 탄 것은 물론이고 이것이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운 것들이 접시에 채워져있었다.

"응! 내가 열심히 요리해서 만든 거야!"

가슴을 탕탕치며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그. 나는 또 이것들을 치워야된다는 생각에 골치가아파왔다.

"네가 만든거야?"

"응!"

헤헤하고 밝게 웃는 그. 그의 웃음을 보면 자꾸만 떠오른다. 그래서 그 웃음을 보지않으려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피하고 나는 화가 난 어조로 그에게 쏘아붙였다.

"치워"

"…응?"

"이런 거 절대 못 먹으니까 치우라고"

"그치만…"

"내 말 안들려!! 치우라고 얘기했지!!"

결국에 소리지르는 나.

"…우응…알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 채 주방으로 돌아가 싱크대에 자신이 만든 것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막 접시들을 넣다보니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접시에 금이 가 버렸다.

나는 그것때문에 성질이 더 뻗쳐올랐다. 그래서 그를 화악 밀쳐버리고 이것들 뒤처리를 하려 고무장갑을 손에 껴입었다.

"방으로 가"

"나도 도울게…"

자신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그가 말했다.

"당장 방으로 꺼져!!!"

하지만 난 그러한 그의 성의도 차 버렸다.

"응…미안 서현누나…에헤헤…"

끝에 희미한 웃음을 짓고 그는 방에 돌아갔다. 나는 그 웃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짜증나하며 속으로 그를 욕하고 저주했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어!'

도무지 도움이 되는 일이 없었다. 방 청소. 요리 등 여러 가사일은 물론이고 그는 항상 자신이 해야 할 숙제같은 것들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나는 성질을 북북 내며 결국엔 숙제까지 도와줘야 되는 상황이었다.

"3x2는?"

"7!"

심지어 난 그의 교육까지 도맡아야했다. 유치원에 다니지도 않았고 그리고 가출을 일삼는그였는지라 당연히 학업도 제대로 이루어 질리 없었다. 내 공부도 하기 바쁜데 얼굴도 보기 싫은 그의 교육을 해야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지현이도 민정이도 다 각자 알아서 하는데. 이 녀석은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에헤헤…"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지 말란 말야.

"틀렸어. 너. 정말 공부 한 거 맞긴 맞는거야?"

"응!"

"이렇게 다 틀렸는데도?"

"에헤헤…"

무식하기까지하다. 할 말도 없다. 이 녀석은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나는 학습지들을책상에 패대기를 치고서.

"다시 해"

그렇게말하고 방을 나가버렸다. '이 녀석 가르치는 거 따위는 다신 안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날밤 새워야 되나…"

여러가지 해야 되는 일 때문에 학원숙제를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난 또 새벽까지 이것을다 끝마쳐야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말까?"

짜증이 확 솟구쳐서 문제지들을 내동댕이쳐놓고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이렇게 바쁘고 힘들어죽겠는데 일거리는 도무지 사라지지않고 내 등을 가볍게 해주지 않는다.

"다 그 녀석때문이야…"

박정우. 내가 아주 싫어하고 이제는 증오하기까지하는 동생.

광기에 휩싸인 미친놈. 정신병자. 어른들의 평가가 딱 맞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아무리 내 동생이라지만 이런 심한 말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그가 정말로 미웠다.

그가 학교에서 맞고 다녀도. 외톨이로 애들한테 따돌림을 받더라도 나는 그를 외면하였다. 골목길에서 어김없이 '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맞고다녀도 당장에 피해버렸다.

'나는 서현누나가 정말로 좋아!'

'나는 커서 누나랑 결혼할래!'

이렇게 나는 너를 외면하는데..너는 항상 이런 말을 하며 왜 나한테 붙어? 왜 그렇게 집착하는거야?

왜 이렇게..나를 좋아해주는 거야...?

사각사각사각...

"…무슨소리지?"

새벽이었다. 부모님도 없는 늦은 밤. 거실로 나가보니 어느 방문의 불빛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지현이나 민정이의 방이 아닌..아버지의 서재에서 불이 켜져있었다.

지현이와 민정이가 아니라면 필시 그였다.

"왜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하고 있는 거야?"

나는 궁금함과 짜증남에 방문을 열어보았다.

사각사각사각...

방문을 조심히 열어보니 그가 책상에서 열심히 문제지를 풀고있었다. 설마 이 시간까지 계속...분명히 낮에 내가 '다시 해'라고 얘기해놓고서 안 찾아갔었는데..내가 올 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이 시간까지 계속...

"다 맞으면…서현누나가 기뻐해줄까? 기뻐해준다면…에헤헤…"

나를 기다리며. 이렇게까지 해왔던거야?

난 그의 바보스러움에 동정과 미안함보다는 화가 났다. 정말 짜증날 정도였다.

"야 박정우"

"누나?"

"어서 들어가서 자기나해"

"그치만 나 다 틀렸으니까…"

"자기나 해!"

그러고서 불을 끄고 문을 닫고나서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나였다.

나는 질려버렸다. 제발 이 녀석이 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이런 무섭고 미친동생을 두고서 나는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 나를 좋아한다며 달라붙고는 나한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그가 싫고 싫어서..

'죽어버려'

라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겨울이었다.

12월. 그 때의 겨울은 이번 년의 겨울처럼 무척이나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은 장기출장 중. 여전히 우리 남매는 넷이서 살아가고 있었다.

"서현누나"

"왜?"

나는 그를 대하는 태도가 항상 차가웠다.

"있잖아 오늘…"

뭔가 우물쭈물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그.

"뭐 나한테 말하고 싶은 거 있어?"

"그러니까 오늘 밤에…"

"나 바쁘니까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고 있어"

그의 말을 단칼에 잘라버리고서 그의 시선을 바로 외면하였다.

"에헤헤…그럼 조금 있다가 시험 봐주러 올 거야?"

"별로"

"그치만 나 열심히 공부했는걸? 누나가 쳐주는 시험 잘 볼 자신있어"

"나는 너한테 시험쳐주기도 싫으니까 당장 방으로 꺼져"

"그치만…"

싫다. 이렇게 귀찮게 구는 그가.

이런 표정을 짓고서 잘도 그런 '사건'을 일으켰다. 이런 얼빠진 표정을 하고서.

두렵다. 그가 두렵고 무섭다. 이렇게 나한테만큼은 미소짓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

나는 결국에...

"너는 대체 어디까지 날 힘들게 할 셈이야?"

"어…?"

나는 결국에 폭발하여 참고있던 말들을 내뱉었다.

"맨날 놀아달라고 칭얼거리기나하고! 나 좋아한다며? 그런데 날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청소도 안 되지. 요리도 안 되지. 그렇다고 공부도 안 되지. 대체 네가 할 줄 아는게 뭐가 있어!"

"서현누나…"

"너 따윈…너 따윈…"

"…서현누나?"

"나한테 필요없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

"차라리 없어져버려!!! 너 따윈 당장에 죽어버렸음 좋겠어!!"

나는 폭언을 일삼으며 그를 내쫓았다.

"…"

"어서 꺼지기나해"

"…"

"꺼지라니까!!"

"…그렇구나…"

"…?"

"나는…'쓸모 없었구나'…서현누나한테까지…"

"뭐…?"

"맨날 사고나 치지…도움이 되지 못할 망정…"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그. '에헤헤'하고 바보같은 웃음이 아닌.

씁쓸한 웃음.

"뭐야 너…"

"나는 정말 도움도 안 되고…그래…사람들이 얘기한대로 쓰레기 같은 놈인걸? 그치만…난 서현누나를 정말로 좋아해서…서현누나가 아무리 날 싫어한다고 해도…모든 사람들이날 싫어한다고 해도…서현누나한테만큼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정우야…"

"미안. 정말로 미안해 서현누나. '그 동안' 정말로 미안했어"

"어…?"

"나는 정말로…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누군가가 날 좋아해주었으면 했는데…"

"…?"

"역시나 안되는 구나…나는 안되는 사람이었구나…"

"대체…무슨…"

"그럼 들어갈게…"

'에헤헤'하고 웃으며 그는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보여주었던 웃음은...

'정말로 슬프게만 보였다'

딸칵.

싱숭생숭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늦은 오후였다.

"우리 왔다"

"엄마~아빠~"

"아이구 우리 민정이~"

달려오는 민정이를 껴안으며 오랜만에 모처럼 부모님이 돌아왔다. 거의 2개월 만인가?

"오셨어요 엄마. 아빠"

"그래 서현아. 집에 별 일 없었지?"

"예"

"지현이는?"

"지현이는 도장에 있을 거예요"

"그렇군…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아버지.

"정우는…"

"여전해요"

나는 여전히 그가 가출하고 있다고 얘기하였다. 이것이 '평상시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정우가 집에 있었다. 알 수 없는 말들을 내게 얘기한 채. 그 이후로는 방에 꼼짝도 안하고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아빠 보고싶었어 민정아?"

"응!"

"얼만큼?"

"이~만큼!"

"하하하하. 나도 민정이가 정말로 보고 싶었어"

"헤헷…"

"서현아. 그 동안 수고 많이 해줬어. 우리 없는 동안 고생 많이 했지?"

"뭘요. 별로 고생이라고는 안했지만"

나는 귀찮은 듯 툭툭 내뱉었다.

"지현이 돌아오면 오랜만에 외식이나 할까?"

"응! 나는 피자먹고 싶어!"

"그래. 민정이가 피자 먹고 싶다고 하니까 피자 먹으러 가야겠구나"

잠시 후. 합기도장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온 지현이가 돌아오고나자 우리는 자연스레 '다섯'이서 외식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화기애애한 가족분위기. 그의 존재는 마치 '없기라도 하는 듯'이 잊혀져갔다.

그 날은 12월 23일. 정우의 생일 전날이었다.

"우리 민정이는 크리스마스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한테 뭘 받고 싶어?"

"우웅…곰인형!"

"곰인형?"

"응! 무척이나 복실복실한 하얀곰인형!"

"그럼 그 선물을 받기를 빌어야겠네?"

"응! 그럴 거야!"

순수한 민정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 부모님.

"지현이는 뭘 받고싶어?"

"나는…정우랑…"

"뭐?"

"저는…그냥……만 있으면 되요…"

"똑바로 얘기해 지현아"

"…"

부끄러운 듯 얘기하기를 꺼려하는 지현이. 무척이나 잘 웃고 예의바른 데다가 똑바르기까지한 아이였지만 숫기가 없었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부모님과도 자주 만나지 못해서였을까 유독 부모님에게한테만큼은 더 부끄러워하였다.

"그럼 나중에 얘기해줘"

"…네…"

"그럼 마지막으로 서현이는?"

"딱히…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렇게 얘기하지 말구. 뭘 얻었으면 해?"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부모님이 선물을 주신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막상 받고 싶은 선물을 떠오르자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그냥…저한테 '하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루?"

모든 것을 다 잊고 놀 수 있는 하루가 나에게 필요했다. 이런저런 일로 치이는 나날에 지쳐만 갔기에 정말로 쉬고 싶다는 일념하나였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어차피 절대로 이루어 질 리 없는 소망이었지만.

"주문하신 피자나왔습니다"

"와아~"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민정아. 천천히 먹어야지"

정말로 오랜만에 우리가족이 모여서 함께하는 외식. 그 때만큼은 정말로 행복하였다. 나도 잠시 부모님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잊어두고서..따뜻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방에서 끝없는 외로움에 슬퍼하는 그를 잊고서.

그가 나에게 했던 말도 잊고서.

"그럼 안녕히주무세요 엄마. 아빠"

저녁식사도 다 먹고. 함께 tv를 시청하는 등 저녁시간을 보내다 이제는 잠을 잘 시간이었다.

"엄마 아빠 잘 자~"

"그래 우리 공주님도 잘 자구"

"헤헷~"

"안녕히주무세요…"

"지현이도 잘 자렴"

"…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고. 지현이와 민정이도 방에 들어갔다. 난 침대에 누워서 자야했는데 이상하게도 유난히 잠이 오질 않았다.

뭔가 불안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미안. 정말로 미안해 서현누나. '그 동안' 정말로 미안했어'

"…"

그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이라니...이러면...

'떠나가는 사람'같이 보이잖아...

그리고 그가 했던 말들.

'나는 정말로…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누군가가 날 좋아해줬으면 했는데…'

'역시나 안되는 구나…나는 안되는 사람이었구나…'

게다가...내가 그를 싫어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어...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나한테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주고. 좋아한다고 얘기했단 말이야..?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까지...

듣고 싶었다. 그의 진심을.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것인지. 내가 이렇게까지 미워하는데..왜 그는 날 좋아해주는 것인지.

나는 방을 나가 그가 있는 서재로 향하였다.

그런데 서재에 없었다.

"뭐야…설마…"

내가 사라지라고 얘기해서...떠난 거야...?

"나는 대체 얼마나 심한 말을 한 거야…"

그러다가. 달빛이 비추는 거실에서 그를 보았다.

나는 순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정우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아…"

환한 달빛. 그 은빛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였다.

"꺄아아아악!!!!!"

그 곳에선. 피를 진하게 적시며.

가슴에 칼이 박힌 채.

쓰러져있는 그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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