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40화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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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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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킥…"

"쟤가 '그거'야?"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나를 험담하고 뒤에서 욕하는 듯한 그러한 느낌. 그러다가 내가 이상해하며 저들을 바라보며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 애써 나의 시선을 외면하려하였다. 분명히 나에게 캥기는 것이 있었는데..

등하굣길. 쨍쩅한 햇빛이 내리쬐이는 어느 여름날.

"…"

나는 교문을 나서다 학교운동장 놀이기구에서 내가 잘 아는 사람이 혼자 이리저리 놀고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정우?"

이런 이른 시간에 왜 이렇게 놀고 있는 거지..? 나는 궁금해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정우야?"

"서현누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는 나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서현누나~"

나에게로 안기며 얼굴을 내 품에 비비고 있는 어린아이.

"혹시 나 기다린거야?"

"응!"

"왜 기다렸어?"

"누나 보고 싶어서!"

"…"

나는 딱히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를 미워하는 감정은 계속 남아있었기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 감정이 누그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유달리 나와 그를 쳐다보는 시선이 이상했다.

"쟤가 박서현 동생이야?"

"그러니까…"

왜 내 또래애들이 그를 알고 있는 것일까. 고학년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1학년이나 나와 같은 2학년 일부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서현누나~빨리 집에 가자!"

"응? 으응…"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휴우…무겁다…"

오후에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여러가지 식재료들을 사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골목길은 항상 지나게 되는데. 집 인근에 있는 골목들이 많아 아이들도 많이 뛰놀았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이 곳에서 놀았다. 놀이터전이라고 해야할까..아무튼 그런 곳이었다.

"너 따위가 왜 이곳에 와!"

"어서 꺼져!"

"제대로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퍽! 퍼퍽! 퍼퍽!!

어린아이들끼리 싸움이 붙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싸움하는 것이 다른 싸움보다 틀렸다. 그러니까 여러 아이들이 한 아이만을 구타하는 모습.

퍼퍽! 퍽!

나는 아이들이 에워싼 형태로 누군가를 구타하는 모습이 보기가 안 좋았지만은 내버려두었다. 왠지 모르게 맞는 아이가 상당히 불쌍하였기도 했지만 동정의 손길을 내밀수는 없었다. 길도 바쁘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서 오렴"

모처럼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하루. 그렇지만 언제 또 어디론가 가실 지 몰랐다.

"다녀왔어요"

"그래. 내가 부탁한 것들 사놓았니?"

"예"

"그런데 여보. 정우 혹시 어디갔는지 못 보셨어요?"

"정우? 글쎄…"

"서현아. 정우 못 봤니?"

"몰라요"

그가 학교에서 날 마중나온 이후에 같이 놀자고 떼 쓰는 것을 뿌리치고는 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였다. 나는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사실 귀찮게 구는 그가 없다면 나는 오히려 좋았다. 맨날 같이 있을 때마다 심심하다고. 같이 놀자고 그러는 그가 싫었으니까.

나에게 피해만 입히고서 자기 멋대로만 구는 이 철부지동생이 싫었으니까.

"이상하네…정우가 이 시간대에는 들어오는데…"

딸칵.

"정우왔나보네"

"서현누나~있어~?"

"요 녀석이 서현누나만 찾고는…정우야!!!"

"에?"

"너 그 상처들…"

"엄마. 아빠"

"정우야…혹시 어디서 맞고 온 거니?"

"에헤헤…아니예요. 그냥 운동장에서 굴렀어요"

저 녀석은 맨날 운동장에서 굴러서 이렇게 피투성이로 온다. 다시는 상처입지 않겠다고 나와 그렇게 약속을 하였는데도 나와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듯이 무참히 깨버리는그였다. 내가 모처럼 그를 위해서 이렇게 걱정까지 해주었는데도..나와의 약속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서현누나. 왔어?"

"…"

나는 바로 그를 외면하였다. 이제 실망할 겨를도 없었다.

"정우야!! 이렇게 다쳐서 오면 어떡하니!!"

무척이나 걱정하시는 부모님. 나야 매일매일 이렇게 그가 다치는 것을 봐왔으니 상관이 없었지만은 부모님은 오랜기간 해외에 출타하고 있느라 그의 상태를 전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헤…"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 이 바보같은 웃음조차도 내가 그를 더욱 싫도록 만들었다.

"맙소사!"

정우의 다리에 있는 상처를 보고 경악하는 부모님. 이번에 생긴 상처는 허벅지부터 정강이까지 길게 베인 상처였다.

"어떻게 다쳤으면 이렇게까지!!"

"에헤헤…죄송해요…"

어째서인지 그는 울지않았다. 이런 심한 상처였으면 우는 것이 당연하건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그는 웃음만 짓고 있었다.

"바보누나래요~"

"바보누나래요~"

나는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하였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그리고 2학년 아이들과 1학년인 나보다 한 살 어린애들에게조차도 '바보누나'라고 불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그토록 당부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바보누나'라고 불리는 나는 울기도 자주 울었다. 그런 별명이 너무나 서러워서.

"바보동생을 둔 바보누나래요~"

이유는 단 하나. 그 때문이었다. '그'라는 존재는 이미 이 동네에 전부 알고 있었다. 아니 어린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 되었다. 맨날 맞고 질질 짠다고. 할 줄 아는 것도 아무 것도 없으면서 그저 '에헤헤'하고 바보같은 웃음만 짓는다고. 그런 그의 누나가 나라며 놀렸다.

"…"

그 때문에 난 이런 별명까지 받아가면서 놀림거리가 되어야했다.

그가 더욱 더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다며..? 내가 그렇게도 좋으면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될 거 아니야..?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상처를 줘..? 아무 상관도 없는 나한테..!!!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지못하고 맨날 맞고다닌다는 사실을.

그는 외톨이였고. 어느 아이들도 그를 좋아해주지않았음을.

퍼퍼퍽!! 퍼퍽!!

나는 처음보았다. 그가 맞는 광경을.

"대체 이런 녀석이 왜 이 동네에 있는 거야!"

"너따위는 필요없어! 어서꺼져!"

10명도 넘는 아이들이 그를 구타하였다. 대체 왜 이렇게 때리는 것일까? 대체 그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왜 매일을 이렇게 맞아가면서도 '운동장을 굴렀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바보같은 웃음만 지어야했던 것일까.

퍼퍽! 퍼퍼퍽!

그의 옷이 더러워지고. 그의 온 몸에서 피가 흘렀다.

"그만해!!"

결국 참다참다 나는 그것에 뛰어들었다.

"앗! 바보누나다!"

"바보누나래요~이런 바보동생을 둔 바보누나래요~"

"그만하라니까! 대체 얘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맨날 우리 노는데 끼어들어가지고는 같이놀자고 하는데 놀이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녀석이 이렇게 방해만 하니까 그렇지!"

"방해야 방해! 게다가 온 동네를 떠돌아다니면서 애들한테 같이 놀자고 한다니까!"

"바보동생은 그냥 집에가서 바보누나랑 놀아!"

"와하하하하!!"

"우리 형이 그랬어! 저 녀석이랑은 절대 놀지말래!"

"그러니까! 몸만 약해빠지고는 허구한 날 질질 짜고!"

"…"

'운동장에서 굴렀어…에헤헤…'

정말 바보다. 이 녀석은. 화도 낼 줄 알아야 하는데 화도 전혀 내지않고 묵묵히 맞아주기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부모님한테는 울었다는 사실조차도 숨기고 매일같이 웃음만 지어주었다.

하지만 난 너무나 어렸다. 그것도 알지 못하고 맨날 맞기만 하고 또 그것때문에 나까지 욕을 먹어서 그가 너무나도 미워서...

"우린 다른 데 가서 놀자~"

"그러자~"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여러 명이서 무리지어서 이 자리를 벗어났다.

"서현누나…에헤헤…"

짜악!!!

나는 화가 나 그의 뺨을 때렸다.

"서현누나…?"

"맨날 이렇게 아이들한테 맞아가면서 살 거야! 너 때문에 동네방네 소문나서…나까지 놀림받고…"

"서현누나…"

나는 어렸다. 어렸기에 나는 어리석었다. 어리석었기에 이렇게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의 마음따위는 신경쓰지도 않고...

나는 아무 말 없이 휙하니 그에게 돌아섰다. 성큼성큼 그가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그는 '서현누나!'라면서 외치며 나를 어떻게든 쫓아와보려 애쓰지만 상처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모든 원인은 나였다. 나의 삐뚤어진 이기심에. 어리석음에.

그는 상처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사건은 터졌다.

"여보세요! 예…맞습니다만…예??!!!!"

오후에 느닷없이 걸려오는 전화. 아버지는 그것을 받으면서 경악과 황당함에 찬 표정으로수화기를 받아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더군다나 몸도 약한 아이인데…"

대체 무슨 내용일까.

"지금 그 자리에 있다구요? 게다가 한 두 아이들이 아니라구요?"

"…"

침묵을 감추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도 '무슨 일이예요?'라고 묻고있었지만 아버지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예…예…알겠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외출준비를 하였다. 어머니도 무슨 일인가 했지만 워낙 급하게 나가는 아버지이기에 무슨 일인가하고 어머니역시 허둥지둥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궁금함을 감추지못한 나 역시 따라나섰다.

그렇게 셋이 달려나간 곳은 우리 집 근방에 있는 동네골목길이었다. 웅성웅성. 시끄러운 사람들의 분위기.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니까 이 새끼가 글쎄…"

"정우가…무슨…"

"흐흑…우태가…우리 우태가…"

침통과 경악과 놀라움으로 휩싸인 현장.

그리고 그 곳에는 그가 서 있었다.

"에헤헤…"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피 묻은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그.

그리고 그 뒤에는..

'잔혹하게' 널부러진 아이들이 있었다.

"에헤헤…서현누나. 나…혼내줬어…누나 놀리는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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