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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Gray
회상편. 서현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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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서울 00병원]
"와아…"
삐빅..삐빅..
나는 당시 5살이었다.
삐빅..삐빅..
"아빠. 쟤가 내 두번째 동생이야?"
나는 창문너머로 유리관에 갇혀있는 한 아이를 보았다. 너무나도 작고 작은 태어난 지 별로 되지 않은 아이를.
"그렇단다"
"그런데 왜 저런 곳에 들어가있어?"
"그건 말이지…"
그 때 당시 아버지는 아무런 얘기를 하지 못하였다. 아니 아무런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렸기 때문이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란다"
"준비?"
"그렇단다…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래…"
"우웅…모르겠어"
아버지는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금만 기다리자꾸나…조금만…"
정우는 무척이나 위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바로 인큐베이터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였다. 언제 심장이 멈출 지 모르는 상태.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나 초조한 심정으로 불안해하였을지 대충 상상이 갔다.
"기도하자.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응!"
아무 것도 모르는 나. 나는 그저 하루빨리 그 아이와 함께 하기를 눈 꼭 감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정우의 건강은 회복이 되었다. 이것은 '기적' 그 자체라고 의사선생님들이 한 모아서 얘기를 할 정도로 그 아이의 상세는 위중했었다.
건강이 회복되고나서야 드디어 정우가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지?'하는 눈빛으로 집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아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꼬물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서현아. 만져보겠니?"
"응! 만져볼래!"
"그렇다고 머리는 만지지마렴"
"왜에?"
"아이한테 머리는 위험한 부위니까"
"우우…"
"얼굴은 괜찮단다"
나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아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내가 자기를 만지자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아이.
"정우야. 누나란다"
볼의 감촉이 좋았다. 부드럽고 연해서 자꾸만 만지고 싶어졌다.
"헤헤~정우야~"
나에게 동생이 생겼다. 가족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아이는 내가 웃자.
"어머. 정우도 누나가 좋은가보네"
활짝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지나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은 흘러만갔다. 민정이가 태어나고 정우가 3살. 지현이가 4살 난 8살이었다.
"아앗~!!!"
오늘도 정우가 내가 평소에 소중히 아끼던 인형을 망가뜨려놓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나에게 원한이라도 진 듯 그 아이는 내가 아끼는 것들을 부셔놓거나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방글방글 웃고 있으면 얼마나 얄미운지 모른다.
딱콩!
그러다가 한 대 때리면 바로 '우에에엥!!'하고 울어버리질 않나. 지금의 나라면 어린 애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하겠지만은 당시의 나로써는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서현아! 왜 또 정우를 울렸어!"
"그치만 또 인형을 망가뜨려서…"
"아직 어리잖니!"
"그치만…"
어머니가 오면 울고 있다가 바로 눈물 뚝 그치고서는 '헤헤'하고 해맑은 웃음을 짓는 그. 그러다가 나를 동정하는 듯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면 오히려 화가 났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그것을 표출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분만 삭여야했다.
내가 첫째라서. 내가 맏이라서 겪는 불리함은 컸다. 그래서 불만이 자연스레 쌓여만 갔다.
게다가 부모님도 없는 날이고 더군다나 우리를 길러주던 유모아주머니도 없는 날이면 나 혼자서 이 아이들을 책임져야했다.
지현이야 워낙 착하고 얌전했으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저귀차는 법은 물론이고 여러 가사활동을 책임져야했다.
나도 어리광부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맏이이기때문에..그럴 수도 없었다.
오로지 '책임감'만 강요하던 나날.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것은 더욱 더 날 압박하였다. 어리기만 했던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숙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지현이가 나이를 먹어가자 나를 차차 도와줌으로써 조금은 해소가 되어가기는 하였지만은..문제는 바로..
"아코!"
"…"
이제는 말도 안나온다. 하필이면 넘어지다가 물통을 쏟아버려서 그림을 새로 그려야할 판이었다. 게다가 밤이었고 완성도 눈앞이었는데..게다가 내일까지 제출해야하는 숙제였는데..
"에헤헤…미안 서현누나…"
물에 젖은 그림에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서현누나?"
싫다.
그가 너무나도 싫었다.
고의는 아니었다지만은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에게 그는 정말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동생이라지만은..미웠다. 정말 밉고 미워서 확 저 아이가 없어져버렸으면 하였다.
저 천진난만한 웃음. 저 녀석은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꺼져…"
"응?"
"당장 꺼지라고!!"
화를 내었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그에게 화를 내는 적은.
"서현누나…난…"
그에게 자그마한 물컵이 들려져있었다.
"꺼져!!"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소리만 빽 질렀다.
"…응. 미안…"
그리고 그는 '헤헤'하고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물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서현누나~놀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쿵쾅쿵쾅 바닥을 뛰면서 나에게 달려오는 그. 그의 두 손에는 장난감 두 개가 걸려져있었다. 매일이다. 매일 그는 나에게 놀자고. 나에게 끊임없이 달라붙어서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충분히 그와 놀 시간은 있었다. 그렇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지현이와 놀아"
귀찮다는 듯이 그를 내쫓아보냈다. '지현누나는 집에 없는데…'라고 떠나질 않는 그를 무시한채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몇 시간 뒤. 방에 다시 나와보니 그가 없었다. 어딘가 놀러나갔겠지...라며 집 안을 청소하려하고 있었다.
"축축해…"
땅바닥에 물기가 있었다. 물기가 너무 많아서 걷기도 불편할 정도. 그리고 거실에는 진공청소기가 놓여져있었다.
"…?"
왜 이것이 여기에...?
"정우가 이렇게…"
지현이가 이랬을 리는 없다. 지현이는 유치원에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정우. 또 사람을 힘들게 만들어놓고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것을 치우는 사람도 생각도 안 해주고 그 녀석은...!!!
"후우…"
성질이 나오기 전에 한숨이 나왔다.
"이거 또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잠시 후. 딸칵 문을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한창 놀고왔을 그가 집에 들어왔다.
"서현누나~"
"박정우!!!"
"어?"
"너 자꾸 거실에서 이렇게 어질러놓고 집에…!!"
나는 순간 말을 멈추었다.
"너…"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옷은 먼지로 완전히 더럽혀져있었다. 다리에는 여기저기 긁힌 흉터. 그것이 수십개를 헤아렸다.
"응? 왜 그래 누나?"
"너 왜 이렇게 다쳐가지고는…"
"에헤헤…운동장에서 뛰놀다가 그만…"
머리를 긁적거리며 또 웃음만 짓는 그. 사고만 치고 다니고!!
"일로 와"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바로 화장실로 끌고나가서 더러워진 옷은 빨래통에 집어넣었다.
"그 상처…"
몸에는 문신이라도 새긴 듯이 자잘한 상처들이 많이 있었다.
"에헤헤…"
"조심조심해서 안 놀래!!"
나는 아까 전에 치워논 것때문에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
"씻을 수 있지? 씻고 와. 내가 조금있다가 연고발라줄테니까"
'동생이다..'라며 마음을 추스리고 일단 나는 '부모'로써의 역할을 다하고자..
"응!"
이 녀석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왜 이리 싱글벙글인것인지.
"아얏!"
나는 연고를 발라줄 때마다 아파하는 그의 다리를 찰싹 때렸다.
"가만히 있어 좀!"
"으…그치만…"
얼굴과 다리에 연고를 바르고 있는데 상처가 얼마나 많은 지...나는 투덜거리며 그에게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에헤헤…"
"왜 이렇게 웃어?"
"그냥…좋아서"
"뭐가?"
상처가 많이 있는데 뭐가 좋다는 거야.
"서현누나가"
"내가 뭐?"
"서현누나가 엄청 좋아서!"
"…"
내가 좋다면 이렇게 나 힘들게 하지 말란 말야...
"헤헤…조금 부끄럽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그.
"…약속해"
"응?"
"이렇게 다치며 집에 돌아오지 않기로. 조심히 놀기로"
"응! 약속할게!"
가족이라서 그랬을까. 이렇게 다쳐서 돌아온 그를 보면 안쓰러웠다. 나는 그가 싫었는데..그의 모습을 보면 동정심이 먼저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는 놀다가 다친 것이 아님을.
그는...외톨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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