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36화 (23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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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엔딩 최대한 빨리 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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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날 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찢어지도록 아팠다.

당장에라도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그의 등이. 이토록 멀게만 느껴진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면서 날 봐주었으면...나의 손을 잡아주었으면..이라고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외쳐보아도 그는 돌아봐주지않는다.

나는 정말로 그의 마음에 닿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마음을 고백하여도...닿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 난 상관하지않는다.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확실하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후회하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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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가지 말아줘…"

서현누나의 간절한 목소리가 나를 뒤흔들어놓는다. 곧 있으면 떠나려고하는 나의 이 굳은 심지를 확실하게 꺾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이렇게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서...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새벽. 기나긴 밤. 아직 그녀와 함께 있을 수있는 시간은 많았다.

유난히도 그녀의 몸이 작아보였다. 우리 남매를 혼자서 책임지고 가장노릇을 했던 이 사람의 몸이 오늘따라 약하게만 보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에게 기댔던 날이 생각났다. 부모님의 관이 묘에 안장되고나서펑펑울던 그녀. 사실 그 동안 부모님이 없는 동안 우리를 책임져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들마저 사라져버렸으니 그녀의 책임감은 더 막중했을 것이다.

"정우야…"

그녀의 사슴같은 눈망울이 나를 바라본다. 애처롭고 연약한 그 눈빛.

이러한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차라리 이 마음을 계속 숨기고…집에 계속 있을까?'

수 없이 다가오는 유혹. 하지만 그러한 유혹을 받아내는 나는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고 부정함으로써 미망들을 떨쳐버린다. 그래야 내가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것. 나 때문에 약해진 그녀를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것 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나를 지켜주던 그녀를..이제는 쉬어도 된다라고..

이봐 신. 너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그녀를 지켜줘. 그 동안 강한 척을 해오고 무리만해오던 그녀를 이제는 보듬어주고 안아줘. 앞으로 수 없이 닥쳐올 고통을 막아줘.

나를 이렇게 조롱하여도..그녀만은 그러지말고 나야 어떻게든 되어도 좋으니까.

지켜주고 싶어도..그럴 수 없는 나를..

새벽에 떠있는 달은 빛난다. 불도 없이 이 달을 전등삼아 이러한 어두운 방에서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부둥켜안고 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얼마만에 단 둘이 있게 된 것일까. 어렸을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출하고 나서 부모님한테 혼나고 혼자 독방에 갇혀있었을 때였지 아마도. 그 독방에 서현누나가 몰래 찾아와서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회색빛 눈을 얻게 된 지 별로 지나지 않아서 시작된 가출. 자살시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오던 사람들의 시선.

"나는 왜 이리 된 것일까…"

이 회색빛 눈이 싫었다. 거울도 보기가 싫어서 일부러 거울도 치워버렸다. 거울로 내 모습을 보면 거울로 보이는 나를 죽이고 싶어서. 자괴감에 힘들어하던 나를..그녀는 안아주었다.

그 품이 따뜻해서..나도 모르게 새근새근 잠이 들었었지..

"미안해 정우야…"

날 안아주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을 했었다.

"모두 나 때문이야…나 때문에 정우가 이렇게…"

스스로 자책하는 그녀.

"미안해…미안해…"

그녀는 끝없이 나에게 '미안해'라고만 얘기하고 있었다.

새벽을 그렇게 보내었다. 아침까지 그렇게 서로를 안고있다가 6시가 되고나자 꿈에서 깨인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이불을 그녀에게 제대로 덮어주고서 방을 나섰다.

6시가 되었어도 밝았던 하늘은 11월에 들어와서는 어두워졌다. 겨울이 머지않아서였을까. 나는 최대한 정성스럽게 아침밥을 준비해나갔다.

딸칵.

화장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우?"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가며 지현누나가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지현누나"

"잘 잤어?"

"잘 잤어"

어색한 대화. 나는 그 동안 그녀를 피해왔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서조차도 그녀를 피하려하고 있었다.

"학교…"

"응?"

애써 밝게.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처럼 대하듯이 말하는 나.

"같이 가자"

"…"

순간 '미안해'라고 말할 뻔했다. 사실 먼저가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의심만 받을것이 뻔하기에 이번엔 순순히 허락을 했다.

젓가락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오는 아침식사. 지현누나와 둘이서 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우"

"얘기해"

식사를 하고 있던 도중에 그녀가 잠시 젓가락을 놓고 얘기하였다.

"수능일에 있잖아…"

그러고보니 수능이 이번주였지...

"응"

"수능 끝나고…같이 데이트할래?"

멈칫.

'데이트'라는 말에 당황하였다. 그녀의 입에서 아무렇지않게 나와 데이트하자고 얘기를 하였으니 놀란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고보니까…우리 안 썼잖아"

"뭘?"

"야구장에서…"

멈칫.

또 멈칫한다. 야구장에서 키스한 것이 떠올랐기때문이었다.

"그 때 우리…"

키스했었죠. 친남매끼리.

"커플식사권…얻었었잖아"

"아…"

야구장에서 키스하고 나서 얻은 커플식사권. 야구가 끝나고 나서 이벤트주최하는 곳에서 받아오기는 하였지만...나는 지금 그녀가 말하기 전까지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그래서 이거…쓸까하고…"

"둘이서?"

"응…둘이서"

"…"

"혹시 그 때 약속있어…?"

나는 거절의 의사를 밝혀야했다. 하지만 이렇게 간절한 '필살! 초롱초롱눈빛'을 하면 절대거절할 수 없었던 나였다.

그래..'이벤트'다. 마지막이니까..그저 마지막이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막연하게 자기합리화를 시켜버린다. 아니 잠깐만...?

"지현누나"

"…응?"

"혹시…사랑하는 사람한테 고백은 했어?"

"…!!"

이에 화들짝 놀라는 그녀. 그렇게 화들짝 놀라면 내가 더 말하기 창피해지잖아.

"그러니까 이거…그 사람이랑 보내는 게 어떨까 싶어서…"

"…"

부끄러운건가? 그녀의 얼굴이 붉어져가고 있었다.

"…바보"

엥..? 뭔가 지현누나한테 바보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 때…너랑 같이 가고 싶어"

"…??"

"너랑 같이 가고 싶어"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하는 그녀. 그녀의 뜻이 이렇게 완고해서야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않을 것 같다.

"정말로 그 때 같이 못가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은…"

의외라서 말이지...

"그럼 약속"

느닷없이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녀.

"약속깨지않고 반드시 나랑…"

왜 이렇게 간절히 나랑 같이가고 싶은 것인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저입니다만은...

상관없겠지...

'마지막 이벤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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