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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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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후우…"
입김을 불어가며 학교에 등교한다. 11월 초인데도 유난히 춥다. 아직 춘추복기간이라 춘추복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이 날씨라면 당장에라도 동복을 입어야 될 판이었다.
"이제 한 5일정도 남았나…"
지현누나의 수능일까지 5일. 그리고 내가 이 집에 남아있는 시간. 무엇때문에 지현누나가수능을 보는 이후로 떠나가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은..아마도 내가 떠나는 날은 그렇게될 것 같았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 이 시간을 되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이 1년은 꽤나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니..내가 '행복'을 느끼게 해준 1년이었다.
웃는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면 즐거운 일을 생각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이 꿈과도 같았던 시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 시간. 너무나도 허무히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
슬픈시간도 있었지만..사실 따지고보면 내 업보였지..
이 등굣길도 그 이후로는 다시는 걸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등굣길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려고 노력한다. 학교의 교실도. 학교의 교실도. 학교의 같은 반 아이들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슬픔? 아쉬움? 체념? 나 자신조차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난 '웃고 있었다'. 이 이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인지는 모르겠어도 나는..웃음을 지었다.
그래...덧 없고 화사한 웃음을..나 나름대로...
"아아. 생활지도부에서 알려드립니다. 날씨가 유난히 추워짐에 따라서 내일부터 동복과 춘추복을 혼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11월이네…"
"그러니까…3학년들은 수능 얼마남지도 않았잖아?"
"크헉…여신님이…"
"크흑…여신님…"
"여신님이 이 학교를 곧 있으면 떠난다는 사실이 슬프다!"
"어이 박정우"
"…응?"
"너. 어제 어디갔다왔냐? 갑자기 느닷없이 밖으로 뛰쳐나가고는…"
"떠나보냈어…"
"어?"
"그냥. 누구 만나러 갔을 뿐이야"
"그런 이유때문에 학교를 빠지냐?"
"그러게 말이다…"
나는 어느샌가 체념적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희의 친구가 나를 유난히도 응시한 것이 눈에 보였다.
왁자지껄한 교실의 분위기.
창문을 바라보면 초록잎이 시들고 서서히 잎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찬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너무나도 차가운 바람.
유난히 요새 감상적으로 변한 나였다. 이런 풍경도 유심히 깊게 살피고 있었다. 나에게 이러한 풍경조차도 소중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던 탓이었다.
내가 떠나고나면 이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분명히 미쳤다라고 말하거나 그 미친놈 결국에는 떠났다고 잘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모두의 외면을 받은 채 떠나가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설마 떠나지말라고 붙잡아주는 이러한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쳤구나…'
내 주제에 그러한 것을 어떻게 기대하고 있겠는가.
단지 마음 속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미련이...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도 빨리 흘러서 방과 후.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하게 학교를 나서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교실 뒷문에서 유난히 눈에 익은 인영이 서 있었다.
"지현누나…"
"정우"
싱긋 웃어주며 날 맞이하는 그녀.
"여기에는 왜 왔어?"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제 '정'을 더 붙여서는 안 되었기에 당장에라도 '이렇게라도 와줘서 고맙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참아내고서 애써 냉정하게 말했다.
"그냥…같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서…"
"…"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그렇지만..
"미안. 누나 먼저 가"
라고 말해야만 했다.
"…혹시 어디 갈 곳 있어?"
"응. 조금…"
"…그렇구나…"
아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를 슬프게 바라보는 그녀.
"미안해 지현누나. 먼저 집에 가 있어. 늦지않게 돌아갈게"
"응…좀 있다가 봐…"
그녀는 뒤로 돌아서서 먼저 가고 있었지만 그 발걸음은 너무나도 느렸을 뿐더러 나의 곁에서 멀어지는 내내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뭘 기대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지현누나와 헤어졌는데 뭐한다냐..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는데...그냥 공원가서 궁상이나 피워볼까..나는 천천히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낮에 보는 공원은 여태까지 보았던 밤과 새벽의 공원과는 느낌이 달랐다. 운동기구에 다가가서 이리저리 있다가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나는 지금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냐.
살랑살랑.
약한 바람이 불어오자 잎이 조금씩조금씩 움직였다. 여기에 있는 몇몇 나무의 잎들은 이미 갈색잎으로 변한 것도 있었다.
머지않아 단풍이 들겠네. 보고 싶지만..못 보겠지?
나는 떠돌았다. 시간때우기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걸어갔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서현누나의 일터에 오게 되었다. 웨이트리스복장으로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녀.
나는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서서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역시 서현누나는 이쁘다. 당연하게도 이 곳에 오는 손님들은 많았다. 왠지 전부 서현누나를 보려고 한 듯이 손님들도 전부 서현누나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몇 십분. 나는 그녀가 일하는 곳을 구경하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민정이가 '어서와'라고 말하며 반겨주었다.
"조금 늦었네"
"…어"
"오빠. 배고프지?"
"어?"
오랫동안 걸어서였을까. 허기도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밥 해줄게!"
"…엉?"
"뭐야 그런 반응은…"
'피이~'하고 삐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민정이. 민정이의 평소 요리실력을 알고있었던 나였는지라 당황하기도 하였고..그리고 왠지모르게..기뻤다. 나는 놀란 듯한 것을 가라앉히고 살짝 웃으며..
"고마워 민정아"
"…에?"
"요리 기대해도…될까?"
"…"
"…??"
"으…응!!"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다. 기대하고 있으라는 듯이 팔을 내걷어보이며 바로 주방으로 달려나갔다. 그녀가 만약에 정말로 맛없는 요리를 하였어도..왠지 나는 억지로라도 다 먹을 것만 같았다.
냉정하게 대하자는 이러한 마음도 어느샌가 온데간데 없었다.
"흐흥~♩~"
즐거운 듯이 노래를 부르며 분주히 주방에서 움직이는 그녀.
나는 교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방에 들어가서 저녁이 다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 먹어 오빠!"
잠시 후. 앞치마차림으로 내 방에 들어온 그녀가 밥 먹자고 얘기하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민정이를 따라서 주방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꽤나 그럴 듯하게 차려진 밥상.
"처…처음이지만…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었어…"
"응. 알아"
긴장된 목소리의 그녀. 나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들어서 집어먹었다.
"어…어때?"
사실 조금 짰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차마 짜다라고 얘기할 순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정…정말?"
끄덕끄덕. 나는 고개를 두 어번 끄덕거렸다. 그러자 정말로 기뻐하는 듯이 웃는 그녀.
나는 다시 저녁을 먹기 시작하였다. 정말로 고맙다 민정아.
나는 민정이가 만든 저녁을 모두 비워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야 서현누나가 들어왔다. 민정이가 '어서 와!'라고 반겨주고 나 역시 그녀를 맞아주었다.
"…"
어색해졌다. 아침에서의 일때문이었는지 그녀는 나를 보더니 볼을 '부우'하고 부풀리고나서 나와 얘기를 하지도 않고 바로 방에 들어갔다.
"혹시 서현언니랑 싸웠어?"
"아니…"
"그런데 오빠를 보더니 저렇게 볼을 부풀리고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씁쓸히 웃고는 민정이에게 '밥 잘먹었어'라고 말해준 뒤, 방에 들어가서 소파에 바로 누워버렸다.
역시..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외면받으면...
어차피 허무히 사라질 짝사랑이었다. 보여줄 수도 없었고 또 보여줘서도 안 되었다.
"…하아…"
마음은 착잡했다. 사실 나도...집에 계속 남고 싶다. 너무나도 간절하고 간절했다. 이 가족들에게 무릎꿇고 부탁을 해서라도 계속 이 집에 남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이기심. 고작 이런 하찮은 이기심때문에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 상처받아서는 안되었기에..
이렇게 미움 받는 짓을 하면서까지..떠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나에게는 꿈꿀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그래서...
"정우야…"
"…?"
얼래...? 나 설마...잠들었나...? 아니면...꿈인가...?
"정우야…"
나는 눈을 떠보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서현누나의 미소짓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일어났네…"
"…"
꿈이라고는 하기에는 생생해서..나는 눈만 끔뻑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에 보이는 것은 내 방의 풍경. 그리고 내가 방금 전까지 누운 소파의 감촉이 느껴졌다.
"헤헷♡ 내가 멋대로 깨워버렸는지도~"
"…몇 시…"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새벽 2시야"
"누나가 어째서 내 방에…"
"정우야"
"…어?"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어서 여기에 왔어"
"…"
웃음기있던 그녀의 얼굴은 서서히 진지하게 변해갔다.
"나를…왜 피해?"
"…?"
"피하고 있잖아"
"…"
"아까 전에. 내가 일하는 곳에 왔었지?"
"…그건…"
"혹시나 이 쪽으로 오지는 않을까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끝까지 안오다가 결국엔 가 버리고…그냥 인사라도 하면 되는데…"
"…"
"게다가 왠지 요새…정우가 날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서현누나…"
"얘기해줘. 왜 나한테서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거야? 내가 혹시…싫어진 거야?"
"아니야…"
"그런데?"
"…"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떠난다'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도 없었다.
"말해줘. 말해주기 전까지는 여기 안 나갈거야"
"…서현누나"
"응"
"만약에…자신의 '욕망'때문에…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어…?"
"가지지 말아야할 '감정'을 가져버려서…그것을 제어할 수가 없다면…어떻게 할 거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랑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어쩔 거야?"
"사랑하지…말아야할 사람…?"
"응"
"…정우야…"
어쩐지 고백의 분위기로 가버린 것 같았다.
'당신을 사랑해서 난 지금 이렇게 당신한테서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고'.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정우야?"
"서현누나. 누나가 싫어진 거 아니야. 난 서현누나를 정말 좋아하고 있는 걸? 그리고…거리두려고 한 적 없어"
"…정말?"
"응"
나는 거짓말을 한다. 항상 가족들에게는 거짓말만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도...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정말이지 정우야?"
"응"
"헤헷~♡ 나는 또 뭐라구~"
그러면서 나를 꼬옥하니 안는 그녀.
"정우야"
"…응?"
"이렇게 안고 있으면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
"…"
"사실 이런 행동이…'속죄'일지 몰라도…"
"…뭐?"
"그리고 이런 느낌을 받았어…?"
"…"
"옛날처럼 나의 곁을 떠날 것만 같아서…왠지 이번에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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