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33화 (23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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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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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이별.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힌 나. 그래서 내 스스로를 저주하기에 이 이별을 택한다.

아니. 원래부터 정해져있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이라는 노트에 적힌대로 실행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별의 시작은 '소홀함'에서 시작되어 사이가 막막해지면서 교류가 끊겨지고. 인연의 사슬이 엷어진다.

그러고서 엷어진 사슬이 끊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이별을 맞이하였다고 본다.

나는 일부러 그들에게 소홀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이 '인연의 사슬'이..끊기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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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혼자 맞게 된 새벽은 고요하다. 조금 추워서 그랬을까. 더워서 항상 열어두던 창문도 모두 닫아두고 소파에 앉아서 이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일상이다. 불면증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새벽을 이렇게 보내었다. 달라진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둡고 거무튀튀한 방에서 벗어난 정도일까.

눈썹과도 같은 초승달이 저 위에 떠있었다. 하지만 구름에 가려서 그 환한 빛을 제대로 비출 수 없었다.

무슨 달구경도 아니고..참 나도 할 것이 없었나보다. 그래봤자 다른 할 일이 딱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달의 광기에 유혹당한 듯 몽환적이게 그 달을 바라볼 뿐.

"그러고보니까 서현누나의 표정…"

그녀의 표정을 다시 상기시켜보았다. 그녀와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실망감을 그대로 나에게 표출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았을 때 내가 느낀 이 슬프고도 허전한 감정.

이렇게 나를 미워하게 되어서 나는 기뻐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도 슬퍼졌다. 원래는 이런 것이 아니라고..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변명을 하려고하여도 나는 바로 멈춰서야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그 잘못된 사랑이. 그 잘못된 나의 마음을 지워버리기위해서 참아가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이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가 않는다. '나와 그녀는 친남매'다라고 내 마음을 부정하려해도 어느샌가 나의 시선은 그녀만을 향해갔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두근거리고 웃게되었다. '부우~'하고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운 그녀.

어렸을 때 그녀는 가족 중에서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왜 그녀는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주었던 것일까. 가족 모두가 외면했는데..오직 서현누나만이..

'더 이상 떠나려고도 죽으려고도 하지마'.

그 약속을 한 이후.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켜왔다. 그녀가 없는 동안 난 자살시도도 하지않았고 가출도 하지 않았다. 화해하기 전까지. 외면을 받아왔어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꾹꾹 참아왔다.

약속을 하였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고는 나를 안으면서 이런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나의 8살 이전'의 과거를 알고 있다. 민정이와 지현누나가 모르고 또 나조차도 모르는 나의 과거. 그 때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아이들과 어울리지못하고 집에서만 처박혀서 혼자있었다는 점밖에 없었다. 외톨이이자 왕따여서 줄곧 아이들의 무시를 받고 게다가 몸이 약해서 매일매일 얻어터져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단지 그 뿐. 그녀는 더 무엇을 알고 있을까.

"과거라…"

줄곧 궁금했다. 이 회색빛의 눈을 얻게 된 이전의 시간은 '기억의 소실'이라도 된 듯이 거의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인지. 어째서 나는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바보네 나는…"

어차피 떠나야 될 사람인데 뭣하러 알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은 그저 이 꿈의 시간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어느 한 정신병자에 불과한 것을..

"…야…"

어느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무엇인가'를 보면서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펑펑 눈물만을 쏟아내었다.

"미안해…미안해…"

자꾸만 '미안해'라고만 말을 하는 소녀. 대체 무엇을 미안해하고 있는 것일까.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오열한다.

"흐…흑…미안해…미안해…"

적막한 거실 안에서 소녀는 눈물을 흘린다. 절망과 슬픔에 빠진 그 소녀는 한 동안 그 자리에서...울고만 있었다.

"…뭐지?"

눈을 떠보니 아침 해였다. 꿈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 꿈을..저번에도 꾼 것 같았는데..

내 꿈 속에서 자꾸만 나타나는 소녀는 누구였을까.

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슬프게 울고있었던 것일까.

꿈이란 것은 금방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는데 왜 이렇게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우웅…"

"…!!!!"

"우웅…정우야 그렇게 하면…"

"…뭐냐?"

지금 내 침대 옆에는 서현누나가 잠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잠꼬대를 하는지 자꾸만 야릇한 신음소리만을 내지르고 있었다.

나를 안고서 꼬물꼬물 더 나를 가까이 있게하려고 자신의 몸을 붙이는 그녀.

"서현누나"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만 같은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조용히 그녀를 불러일으켰다.

"…우웅…"

"서현누나. 일어나"

"정우…그렇게 자꾸 말하면 혼내줄거얏…"

"서현누나"

"이렇게 자꾸 약속을 깨버리면…내가 때찌할거얏…"

"…"

"따뜻해~"

나를 꼬옥하니 안으면서 해맑은 미소를 짓는 그녀.

"후우…"

"다시는 그 때처럼 되지 않을 거니까…정우를…"

"어?"

"두번 다시는…그러지 않을 테니까…"

"서현누나?"

"헤헷~"

뭐야..잠꼬대인가..난 또 나한테 말하는 줄 알았네..그런데 이제 어쩐다? 이렇게 깨워보아도 일어날 것 같지가 않으니.

그녀가 이러면 이럴 수록..나는 마음이 흔들릴 게 당연하다.

미련을 자꾸 두게 된다. 되먹지도 못하는 미련을..정을 붙여나간다.

냉정하게 대해야 되는데...그래야 내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데...

이 박정우바보자식아. 너는 왜 이렇게 바보인거냐. 너의 이러한 약해빠진 마음가짐때문에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는지는 너도 잘 알지 않은가. 그런데 또 약해지다니 너는 정말 최악이 아닌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죄스러워서 떠나는 것이 아니었나 박정우?

너의 각오는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었나?

"…서현누나"

나는 다시 그녀를 흔들어깨웠다.

"하웅 정우야…"

"일어나. 나 학교가야 해"

"히잉…5분만 더…정우품이 너무 좋아서…"

"서현누나!!"

"후엥?"

나는 결국에 빽 소리를 내질렀다.

"자려면 방에 들어가서 자. 나 지금 학교가야해 늦었어"

"후엥…그래두…"

"누난 언제 내 방에 들어온 거야?"

"그건…정우가 잠들었을 때 몰래 들어왔지♡"

"…"

"웅? 왜 그래?"

"서현누나"

"웅?"

"다시는 이런 짓하지마"

"…에?"

"다시는 이렇게 사람 난처하게 하지 말라고"

나는 최대한 차갑게 말했다. 마음 속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차가운 음성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정우야…"

"미안해. 내가 요새 예민해서 그런가봐. 그러니까 당분간은…혼자 내버려둬"

"히잉…"

"자꾸만 어리광부릴거야?"

"그렇지만 정우 품이 너무나도 좋아서…"

"하지마"

"…정우야…"

"이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게. 미안해 서현누나. 나 먼저 나갈게"

"정우 잠깐…"

나는 애써 그녀를 무시하고 교복을 가지고 방문을 나갔다. 방문을 나가자마자 도망치듯이빠르게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매고서 학교에 나가버렸다.

"후우…"

한숨을 내지른다. 자조적인 한숨. 앞으로도 계속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자꾸만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원하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그렇지만 계속해야만했다. 내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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