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32화 (23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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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3.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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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겨울이 시작되었다. 아니 늦가을이라고 해야 옳은 말이려나.

생명의 빛을 서서히 잃어가는 계절. 초록빛의 생물들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사람들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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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이 있었다. 멍하니 공항이 이륙하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저 비행기 안에 그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행여나 입국장에서 그녀가 돌아오지는 않을까하고 기웃거려도 말짱 헛수고였다.

의자에 앉아서. 시간은 흘러만갔다. 학교에 가방을 두고 온 것도 상관없었다. 지금이 수업중이라는 것도 상관없었다. 끝없는 마음의 공허함에 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별'이란 참 가슴아픈 일이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을 하였는데도..그 마음의 공허함은 도무지 사라지지않는다. 이별을 겪으면 겪을 수록 그 구멍은 커져만갔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서 환하게 비춘다. 제대로 눈을 뜰 새도 없이 눈부시기만한 햇빛. 낮시간이라 그런지 그 빛은 강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걸까. 이제는 일어나야 될 텐데.

몸이 움직여지지않는다. 충격이 너무 큰 탓이었을까. 친구. 아니 나를 사랑해준 사람과 이별한 것이 너무나도 컸던 탓이었을까.

공항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게유일하게 나의 발걸음은 멈춰져있었다.

'혼자'.

그런 느낌. 나는 어떤 외딴세계에서 온 이방인과 같은 기분을 받아야했다. 아닌가..나는 이미 '이방인'이었지...이런 세계에 살아갈 수 없는...

돌아가자. 이제는 없는 사람. 나의 곁에 없는 사람이니 나도 돌아가야지.

"하하…"

실없는 웃음을 흘려보내며. 나는 또 하나의 이별을 감당한다.

이렇게 아픈데...나는 앞으로 또다른 이별을 맞이할 때 어떻게 버티면서 살아갈 것인가.

"가족…"

이제는 없다. 가족들 밖에 나의 곁에 남지 않았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은..가족들 뿐이다. 그런 가족들조차와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나의 잘못된 욕망에 그들이 희생당할 수는 없었기에. 이런 미쳐버린 놈을 사랑해줘봤자..오히려 그들이 상처받을 것이 분명하기때문에. 나는 떠나려고 한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자기 스스로. 나의 의지대로. 나는 그들의 곁에서 떠난다.

서현누나를 사랑해버려서?

지현누나를 그저 대리만족으로 여겼기때문에?

민정이를 상처줘버려서?

그런 이유도 있다. 나는 가족들한테 상처입혔기때문이다. 그리고 억제하고 억제하려고해도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욕망'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들과 함께하기엔..나는 '악'이었다. 쓸모없는 존재다.

하지만...나는 그런 이유보다도 '나는 이 곳에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고 내 자신을 그렇게 정의내렸기때문이었다. '괴리'. 이 꿈과 같은 세계에 나는 괴리감을 느낀다.

애초에..누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줄리가 없잖아..이런 찌질한 놈을...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하지만 그 꿈을 깨야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흐하하하…"

광소를 내지르고. 스스로 이 미쳐버린 인간을...

저주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공항버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좌석에 앉아서 차창을 통해 보이는 논밭과 도로들을 바라본다.

"…"

사람들은 웃고 떠드는데 나 혼자 웃을 수 없었다. 모두가 피로에 지쳐서 잠이 드는데 나 혼자 잠을 잘 수 없었다. 인형과도 같이 그 자세에서 멈춰서..

나의 미래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는 정말로 고민해야 할 때였다. 떠나간 이후에. 나의 인생을. 그렇지만 그 인생도...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사라진다. '검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지고. 내가 존재했던 시간도 지워져간다.

사람이란 그러지 않은가. 시대 속에서 살다가 묻혀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나는 그게 조금 더 빠른 것일뿐.

'자살결심?'

그건 아니었다. 자살해봤자 도무지 죽지를 않으니 할 의욕도 없었다. 그냥...그저 그냥 부유하려는 것이려나...

집으로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어째 집이 점점 더 멀어져가는 기분이었다.

가기가 두렵다. 이런 마음. 사라지지나 않을까하고. 또다시 이런 꿈에 빠져버려서..망각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그런 상냥함을..더 원하고 원해서..

'애정결핍'이라는 것때문에. 나의 곁에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가니까 외로움을 더 잘 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예전처럼..줄곧 혼자였을 때가 편했는데..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따윈 몰랐다면...더 편하게 떠났을 텐데...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정말 수천 수만 아니 무한의 욕을 쏟아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고. 왜 나를 회색의 눈을 갖게 만들고 이렇게 사람의 인생을 빌어먹게 만드는 것이냐고 원망의 말을 쏟고 쏟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 신이라는 놈은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나에게 사람 하나씩 하나씩 붙여주다가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뺏어가버린다. 결국에는 또다시 나를 외톨이로 만들어버린다.

이제는...'변화'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 스스로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바보같은 짓. 수 많은 원망을 하여도. 욕을 하여도 변하지가 않는다. 그저 헛소리였고 분풀이에 불과하였다. 마음을 가라앉히자. 냉정해지자.

이제는 가족들에게 냉정해져야했다. 그래야 그들이 나를 싫어하게 될 테니까. 그래야 내가 떠나도 아파하지 않을테니까. 나는 '악'. 어차피 사라져야 될 인간. 이제는 용도가 다 되어서 폐기처분 되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잠시동안이라도 나에게..'행복'을 줘서. '사랑'을 줘서 그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지만 난 바보였다. 그런 사랑에 우쭐해져가지고는...그들에게 되려 상처를 준다. 이런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나는 떠나고자 한다. 떠나지말라는 가족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심을 한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해줘?'라고. 나는..사랑을 받지 말아야할 놈인데..왜 이런 큰 사랑을 주냐고...

"후우…"

머리가 아프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머리는 아파왔다.

벌써 어두워져간다. 밤이 되고. 세상은 검은 하늘아래서 묻혀져갔다.

그 검은 하늘아래에서 환하게 빛나는 지상의 빛들.

의식이 몽롱해져갔다. 어쩌면...이 세계 자체가. 이 나란 조금은 특이한 놈이 살고 있는 이세계가...

'꿈'일 지도 모른다고...생각하고 있었다.

"추워라…"

집과 그나마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 맞다..학교에서 가방을 가져오지 않았었구나..학교..문 열렸으려나..?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가 있는 역을 향했다.

다행히도 학교가 야간자율학습 중이라 문이 열려있었다. 그래서 바로 난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가져오고 다시 교문 밖을 나섰다.

춥다. 11월 초. 분명히 가을날씨여야하는데 이상기온 탓인지 춥기만 하였다.

지현누나도 얼마남지 않았구나..오늘도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을까..? 아니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가치가 없는 놈이려나 나는...

자신을 더욱 더 부정한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쓰레기나 먼지보다도 가치가 없는 놈이라면서...

집 앞에 선 순간 나는 멈칫하였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하고 '얼마남지 않았으니까…'라고 자기합리화하며 문을 열었다.

끼익...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이 말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어서와!'라는 말도...이제는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

"정우…?"

"오빠…"

"정우야…"

가족들이 모두 나와서 나를 맞아주었다. 그런데..지현누나는 분명히 독서실에 있을 시간인데..왜 있는 것이지?

"어디…갔다왔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

"방과후에 네 교실 가 봤는데…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아침에 등교한 것을 봤는데 여자애와 무슨 '어떤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뛰쳐나갔다고…"

"…설명해줘.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정우야"

서현누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실망하고. 화를 내는 듯한 눈빛. 이렇게 걱정끼치게 만들지않겠다고 하는 약속을 멋대로 깨버린 나를 제대로 실망해하는 것 같았다.

"…"

민정이와 지현누나도 마찬가지. 화를 내고 실망해하는 것 같았다.

'후후…'

조금은 쓰게 웃었다. 이런 미움을 받아서 다행이라 여겼지만..한편으로는 아팠다. 앞으로 이런 미움받을 짓을 계속하려면..가족들도 완전히 나를 미워하게 되겠지...예전처럼..냉정하게..

이제는 '정'도 떼어내야 되었기에. 나는 일부러 냉정하게 말했다.

"…별로. 아무런 일 없었어"

"아무런 일 없었는데…저녁 10시쯤 되어서야 들어온 거야?"

"아무런 일 없었어"

"…정우야"

"얘기하기 싫은 거야…?"

"오빠…"

"아무런 일 없었다니까"

"…나는 네가 얼마나…"

"미안. 걱정끼치기게해서. 하지만 고작 10시잖아? 10시쯤 된 것이 얼마나 늦은 거라고…"

"박정우!!"

서현누나가 소리를 질렀다.

"아침에. 왜 그렇게 바쁘다는 듯이 뛰쳐나간 거야? 학교 수업도 안 듣고?"

"…별로…"

"네가 학교 안 가는 대신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묻지않을게…하지만…우리에게조차 숨기고 있고…가뜩이나 연락처도 없어서 네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우리는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데…게다가 다시는 늦지않겠다고 약속까지 했잖아! 그러고서 너는…"

"내가 외박을 하지는 않았잖아"

"…그렇지만…"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알아서 들어오니까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어. 외박도 이제는 할 일도 없을테고 어떤 이유로 늦던 집 안에는 들어올테니까"

"정우…"

"…오늘 늦게 들어온 건 사과할게. 그렇지만 더 이상 걱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정우야…"

"나 먼저 방에 들어갈게"

나는 방에 들어갔다. 이게 무슨 사춘기의 반항도 아니고..참 나도 구차하다.

교복을 평상시의 옷으로 갈아입고나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서 잠깐 눈을 감고서 씁쓸하게 웃고 있는 동안에..

똑똑.

"…누구?"

"정우…"

"지현누나?"

"응…"

"들어와도 돼"

문을 열고 지현누나가 들어왔다. 잠옷차림의 그녀.

"오늘도 여기…"

"미안 지현누나. 안되겠다"

"…정우?"

"미안해. 사실 같이 자는 게 항상 버거웠어. 그리고 이렇게 다 큰 사람끼리 아무리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보기는 안 좋아"

"그렇지만 난…"

"누나도 같이자면 불편하잖아? 오히려 이러면 불편해하느라 잠이 오지 않을테니까. 게다가 누나는 잠이 필수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불편하게 자는 것보다 혼자서 편하게 자는 것이 누나한테는 좋은 일이니까"

"아니야…!! 나는 너랑…"

"미안해"

"…!!!"

"앞으로는…그러지말자"

"…"

그녀는 슬픈 듯이. 나를 쳐다본다.

"무슨 일…있었던 거야?"

"아니…"

"응…알았어…그 동안 미안했어 정우…"

"…잘 자"

"너두…"

그녀는 딸칵하고 문을 닫았다.

"…"

말과는 다르게 그녀를 붙잡아보고자 손을 내밀고 있었지만..체념하고 손을 다시 내렸다.

"계속 이러면 되겠지…?"

이러면..그녀들도..나를 예전처럼 냉정하게 굴겠지..? 미움받는 거야..항상 늘 그래왔듯이받으면 되니까..내가 떠나는 날까지..

계속 이러면..그녀들은 내가 떠나도 아파하지 않겠지.

내가 떠나도..슬퍼하지 않겠지. 오히려 잘 떠났다라고 말하겠지..?

웃는다. 체념의 미소를 지으며. 이러한 나를 스스로 비웃으며.

유난히도 침대가 허전해보였다. 맨날 넷이서 같이 자는 이 침대가..너무나도 허전해보였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외로움.

"후후…"

이 견딜수 없는 외로움을 애써 참아낸다.

나는 그렇게 이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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