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22화 (22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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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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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보여주세요!"

대기실 안의 분위기는 마치 데모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대체 나에게 얼굴을 보여달라는 이유가 뭐야? 자기들의 호기심충족을 위해서 보여달라는 거잖아. 솔직히 난 그다지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듯한 회색빛 눈을 누가 좋아서 보여주고 싶겠는가. 게다가 폐인의 상징인 짙은 다크서클은 보너스.

"에이~"

내가 머뭇거리자 야유까지하고 있다. 걸그룹 멤버들은 물론이고 매니저에. 코디들에.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정말로 보여줘야 됩니까?"

나는 재차 묻는다. 정말로 보여줘야하냐고. 나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네~!!"

참 대답소리하나 우렁차다. 이구동성으로 하나가 된 듯이 '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내 얼굴이 궁금했나보다. 이번 해에 들어서게 되면서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많이 늘었다. 여태까지 시하빼고 내 얼굴을 몰랐었는데..이제는 모두가 내 얼굴을 알게 되었다.

"에휴…"

한숨을 푹 쉰다. 이미 얼굴도 몇몇한테 보여주었다. 뭐 또 보여준다고해서 닳는 것도 아니고..나는 천천히 다시 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시야가 환해지고 보이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눈을 보여주자마자 바로 다시 내려버린다. 그렇다고해서 오랫동안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

당연히 주위 사람들은 '서프라이즈!'겠지. 이런 눈 어디서 보기 희귀한 눈이니까. 아예 눈동자가 없어서 귀신같이 보이기에 어쩌면 나는 기인열전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야 되는 상황인지도 몰랐다.

"꺄아~!!"

뭐지. 왜 코디들이 열광하고 있는 거지. 여자들이 대부분인 코디들이 잠깐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꺄아악하고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꺄아~!!"

어째 걸그룹멤버들도 비명소리를 내지른다. 역시 이런 반응을 할 줄 알았다. 여자들은 귀신을 무서워하니까 이렇게 벌건 대낮에 귀신을 보게 되니 놀랄 만도 할 만 하겠다.

"정우씨 잘생겼어요!!"

엥...?

"꺄아아~!!"

"이런 얼굴 왜 여태까지 숨기고 다녔어요!!"

엥...?

"우리 소속사에 들어올 생각 없어요~?"

엥...?

"매력적이게 생기셨다~"

뭐야 이 반응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매니저하기 정말 아까운 얼굴이구만…"

"그러게 말이야…"

남자들도 뭔가 내 얼굴에 대해서 수군수군. 그런데 이들의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바로 내가 잘 생겼다는 것. 나는 이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 궁금하다. 이런 얼굴이 잘 생겼다고? 진짜로? 무슨 창백한 피부에 귀신같은 눈동자에 게다가 다크서클까지 있는 내 얼굴이 잘생겼다고?

"…저기요…"

"정우씨 머리나 자를까?"

"아예 멋지게 꾸미는 건 어때?"

"저기요…"

"오빠 저랑 친하게 지내요~네~?"

"세희가…반할 만도…"

"…체엣…세희는 이런 친구를 알고 있었단 말이야?"

"세희야. 대체 무슨 수로 저 친구를 꼬신거니~?"

"…"

"저기요…?"

누가 내 말좀 들어줘요...

"정우씨 일로 와봐요!"

"여기여기!"

어째 코디들이 나를 의자에 앉히려고 한다. 그것도 거울 앞에 있는 의자를. '

"…머리 당장에 컷트하고 미남보디가드라는 설정은 어떨까?"

"저 키…게다가 마른 편이라서 슈트차림으로 하면…"

"게다가 회색눈…"

"꺄아~~♡"

뭔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은데...여기가 무슨 미용실도 아니고..게다가 나는 매니저일하고 있고..또 여기는 연예인을 꾸미는 곳이지 매니저를 꾸미는 곳도 아닌데..

"저기요…? 저는 전혀 그러한 것을 바라지 않…"

"문답무용!"

갑자기 내 팔짱을 끼고 있는 오늘 처음으로 만난 세희의 동료멤버인 수아.

"…갑자기 무슨 짓을!"

이상하게 발끈하고 있는 세희.

"부럽구만…부러워…"

시샘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들.

"내가 먼저 하는 거였는데!"

뭔가 놓쳤다라고 아쉬워하는 나머지 멤버들.

어째 나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 하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정우씨 얼른 여기 앉아보라니까요! 금방 잘라요!"

"오빠! 그런 얼굴 계속 안 보여주기예요~!"

"정우씨~"

...할 말이 없다. 여기가 무슨 미용실이냐...내가 여기서 왜 머리를 자르냐고요...그리고 그것도 '강제로'말이지...

"머리…자르는 게 어때?"

세희마저도 머리를 자르란다. 나는 절대로 머리 자르기 싫다. 절대로 싫었다. 이런 얼굴이 드러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내가 이 얼굴을 가리려고 어떻게 기른 머리인데..

다시는 '이방인'취급을 당하기 싫었다. 이 회색빛 눈을 드러내고 있으면 나는 자연스럽게무리들에서 소외되어버리고 마니까. '돌연변이'로 취급되어서 나를 그다지 좋지 않은 눈으로 쳐다볼게 분명하니까.

"…죄송합니다만 전 머리를 자를 생각이…"

"이잇! 자꾸 빼실 거예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강제로 앉히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머리카락이 옷에 묻지 않도록하는 것을 갖고와서 내 몸을 덮고 있었다.

이거..도무지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인데....이 때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

"방송시작 5분 전입니다~어서 준비하세요~"

"살았다…"

방송국 안에 있는 대기실 안에서 머리를 잘릴 뻔한 일이 벌어지기는 하였지만 준비가 채 되지않은 상황에서 방송시작 5분전이라고 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급격하게 빠르게 돌아갔다.

"5분 남았어! 어떡해!"

"빨리!"

"언니! 빗 어디있어요 빗?"

더군다나 여자들인지라 또각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허둥지둥. 여자들이라서 꾸미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나는 어느 새 잊혀진 존재가 되어서 여자멤버들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나야 솔직히 허드렛일만 하고 있었으니까...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기실 안에서 먹고 남은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그리고 목이 마를까해서 음료수를 사 갖고와서 탁자에 얹어놓는 것뿐. 나머지들은 연예인을 꾸며야하는 코디들의 몫이었다.

방송가는 이렇게 바쁘게 돌아간다. 주위를 둘러다보면 무언가를 들고 한시바삐 어디로 향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방송시작 2분 전 입니다~"

이 때 들려오는 재촉의 목소리는 이러한 조급함을 더 가중시키게 만든다. 짧은 시간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있어야한다.

"정우야"

"…응?"

"나 먼저 스튜디오에 들어가있을게. 쉬고 있어"

"응"

"…그리고…고마워"

"…별로"

"아니…많이 고생하고 있는데…내 부탁 들어줘서 정말…"

"…친구사이인데 뭘"

"…"

"왜 그래?"

"그…그렇지…우리는 '친구'지…"

"…??"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면…"

역시 메이크업을 하고 꾸민 상태라서 그런지 그녀의 모습은 더욱 이쁘게 보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각자 다른 의상을 입고. 다른 악세서리는 물론이고 다른 신발까지. 각자의 매력이 물씬 풍겨져나오고 있었다.

"그럼 정우씨 다녀올게요!"

"조금 있다가 봐요~"

세희의 뒤를 이어서 다른 멤버들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방송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었다.

드디어 시작되는 첫 녹화. 세희와 걸그룹멤버들은 다른 게스트들과 어울리면서 방송에 임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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