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09화 (20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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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꾸 연재주기는 길어지고..내용도 질질 끌고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고3 수능생이다보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재를 빼먹게 되는 군요..

그러니 독자님들께서 넓은 바다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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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피로는 말이 아니었다. 세 자매에게 괴롭힘이라면 괴롭힘을 새벽내내 당해온 터라 피로도는 평소보다 훨씬 더 높았다.(왠지 이 세 자매들이 '일부러' 나를 새벽에 괴롭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있었다)

"우웅…정우야…"

서현누나는 민정이를 나로 착각하고는 껴안고 있었고 지현누나는 서현누나의 다리에 눌려서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노무 자매들은 아침 해도 다 떴는데 언제 일어날 생각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학교를 가야하는 지현누나같은 경우에는 말이지..(민정이야 등교시간이 우리보다 늦으니 그렇다쳐도..)

서현누나는 어른이니 그냥 넘겨도 되고..알바도 아침 늦게 가는 것 같으니..

그렇다해도 나는 지금 깨울 힘이 전혀 없었다. 그냥 눈을 게슴츠레 뜨고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장막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시야도 안경을 써야만 할 것 같이 희미했다.

한 마디로 나는 졸린 상태다.

이러다가 학교나 갈수 있을런지..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고자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푸하푸하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벗고 샤워도 하고 평상시와 같은 패턴을 유지하려 애를 써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 정신을 차리고보면 나는 꾸벅꾸벅 자연스레 눈이 감겨지고 있었다.

"…졸려"

그냥 콱 침대에 누워서 자 버릴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세 자매랑 같이 자는 것도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로서는 아주 꿈이요 이상향이요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른 남자들이 본다면 이것은 염장질이라고 나를 아주 죽이려 들 것이라고 나는 확실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곧 떠나야 할 사람인데 정을 붙여서는 안될 노릇이다.

"그럼…가 볼까나"

지현누나도 뭐 알아서 일어나겠지..라고 무책임하게 식탁에 아침식사만을 챙겨두고 현관문을 나서버렸다.

깨울까도 했었지만 그들의 사랑스럽게 잠든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그냥 자게 내버려두자..

끼익!!!!!!

"야이 새꺄! 정신 똑바로 안 차리고 다녀!!"

"아…죄송합니다…"

역시 피로도가 극심하다.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나는 초록불인줄 알고 착각했다가 하마터면 바로 지옥으로 갈 뻔하였다. 더불어서 운전하고 있던 인간의 상큼한 욕도 먹어줘야했고.

으..내가 미쳤지 미쳤어..그들과 왜 한 방에서 잤지? 행복한 일이 벌어졌다고하면 엄청나게 벌어졌지만...그래도..

나는 정신이 화들짝놀라서 운전자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학교를 향해 길을 걸었다.

"맞다…오늘 운동회였지…"

왜 하필이면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운동회를 시작하냐. 무슨 학교행사가 뭐 이리 빡빡하게 진행이 되는 건지..피로도도 극심하던 이 때에 운동회를 한단다. 게다가 운동회니 뭐니 그러한 이유로 나도 참가해야 하잖아?

학교건물 안에 들어가니 무언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문화제때 보다는 사람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평상시와는 다르게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것 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2-c반 안으로 들어갔다. 내 자리로 바로 가서 책가방을 놓고서 바로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려고 했는데...

시끌시끌시끌.

왜 이렇게 시끄럽다냐...원래 아침에는 조용하고 모두 잠을 자고 있어야했는데 유난히도 시끄럽다. 이래서는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다.

"오늘 운동회 뭐하냐?"

"내가 아냐?"

"뭐 줄다리기나…농구랑 축구…"

"계주도 할 것 같고…"

"기마전 할 것 같지않냐?"

"기마전?"

"여자를 등에 태우고…"

"오오??!!!"

"작년에는 안하지 않았었나?"

"이번년도에도 안할 것 같은데?"

"3학년도 운동회하나?"

"그럴 껄? 학교에서 수능도 잠시 제쳐두고 운동회를 하라고 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신님도 한다는…"

지현누나..?

"여신님의 체육복이라…"

"오오오오오오오!!!!!!!!!!!!!!!!!!!!!!!!!!"

지현누나의 체육복차림을 상상하고 있었는 듯 남자애들이 행복한 망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함성을 지르고 난리를 부렸다. 역시 광신도야 광신도..

"남자들이란…"

"세희 왔어?"

"응…그런데 왜 이렇게 들떠있어?"

"오늘 운동회하잖아"

"그거는 아는데…남자애들이 유난히…"

"아…저 녀석들은 지금 바보짓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바보짓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바보인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여자애들이 어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냐?"

"정우야"

"…응?"

"운동회. 할 꺼야?"

"뭘?"

"운동회에 참여할 거냐고"

"아니"

"왜 안하는데?"

"어차피 내가 할 일도 없잖아"

그렇다. 여러 종목에 참여하는 사람들 빼고는 다른 나머지 모두는 잉여였고 이런 행사와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도 마찬가지로 잉여였다. 그런데 내가 참가할 이유가 있을까? 전혀 없었다. 차라리 남들 운동회 구경하는 동안 나는 교실이나 옥상에서 잠이나 자려고 했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박정우"

"…엉?"

"시체!! 네가 빠지면 어떻게한다는 얘기냐!!!"

"…얼래?"

"너…모르는 가 보구나"

"뭐…가…?"

"너도 운동회 한다고"

"내가 왜 운동회를 해?"

"달리기"

"…엥?"

"너 달리기잘하잖아. 그래서 애들이 만장일치로 2인3각 달리기와 계주에 너 집어넣었는데?"

대체 언제 집어넣은거냐!! 그것도 내 허락도 없이!!!

"…박정우는 자고 있었잖아 그 때"

"아하…"

"난 패스"

네 녀석들이 언제부터 나한테 이런 행사를 권했었는지 몰라도 나는 이런 거 안하련다. 2학년이 다 끝나가면서 서로서로 많이 친해지게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왕따와 다름이 없는 취급이었는데다가 그런데 너네들이 왜 지들 멋대로 넣은거야?

"…그냥 하지그래?"

"별로…"

"이미 명단에 집어넣었다구"

"그런데 왜 나를 넣은건데?"

"수련회 때"

"…수련회?"

"수련회때 장애물달리기의 마지막주자. 너였잖아. 너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고"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 지들끼리 자축한 주제에.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 때 네가 혼자서 다 제쳐버리고 이겼잖아. 달리기 잘하니까 넣은거지"

"어이어이…"

그래도 이런 건 나한테 미리 얘기를 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아무말도 없었다가 갑자기 와서 '너 달리기 좀 하니까 계주나 뛰어'라니.

"부탁해 시체. 달리기 좀 해줘"

"…나 지금 몸이 아픈데"

정확하게는 졸려서 뛸 힘이 없는 거겠지만.

"애들 다 명단 짜놓았단 말이야. 하기 싫다는 애들도 강제로 붙잡아서 했고…그리고 네가계주 마지막 주자야. 이번에 또 우승상품도 좋다고?"

'결국에는 그거였냐…'

"부탁해 정우야. 뛰어줘"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을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이거 어쩐다냐...

"…나 말고도 다른 애들 얼마든지 뛸 수 있잖아. 꼭 나여야 할 필요가 있어?"

"네가 제일 잘한다니까 그러네…"

"그거는 모르는 거잖아. 나보다 더 잘뛰는 애들이 있을 지도 모르고…"

의도는 나를 '이용'한다는 거다. 그냥 내가 쓸모없을 때에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않고 무시하고 왕따취급하다가 이제서야 되니까 친한 척을 한다는 거냐?

단순히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에게 이용가치가 생겨났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역할이 끝날 경우에는..또 나는 버려지고...

그래..'인형'처럼. 재미가 없어지면 내동댕이쳐지고 창고에 처박히는 인형처럼.

"…미안하다"

"시체?"

"정우야…?"

"다른 애들 찾아봐…몸이 아파서…"

그러고서 나는 바로 책상에 엎드렸다. 아니 저절로 쓰러졌다는 것이 옳았다. 너무나도 피곤한 탓에.

아니...

그냥 이용당하기 싫어서..더 이상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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