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색빛 세계와 검은 동물들-207화 (20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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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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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 줄기 물방울 선이 흘러내렸다. 난 그 동안 어째서 내가 지금 울고있는 것인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쳐서? 감동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에'

그것을 몸소 깨달아서 슬퍼서 울었을 뿐이다. 남자주제에 나는 맨날 질질 짜는 것만 같아.내가 절대로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더군다나 가족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절대로 보여주기 싫었는데.

"오빠…"

그나마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려서 가족들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울고 있으면. 그들은 덩달아 슬퍼할 테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입모양을 씨익하고 애써 웃어보며 내가 울고 있었던 사실을 숨긴다.

나는..그들에게 항상 웃음만 주고 싶다.

그래서..이렇게 아파와도..웃는다. 나는 그들에게 '죄'를 지은 인간이다. 사실 그들에게 용서받을 가치도 없었다. 어차피 나는 언젠가 사라져야 할 사람.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사람이다.

난 민정이와의 약속도 지키지 않으려 하는 배신자이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상냥히 굴지 말아달라고. 오히려 미워해달라고. 그래야 그 때가 되면 내가 웃으며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잘 떠났다'라며 할 것이다. 그들이 슬퍼하지않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보도록 하자…"

생각했었잖아? '그 때'가 될 때까지 이런시간들을 즐기도록 하자고. 가족들에게 걱정이나민폐는 절대로 끼치지않고..

"…서현누나"

"응…"

"나 잠깐 방에 있을게"

"왜?"

"그냥…조금 피곤하다…"

"아까 전에도 잤으면서…"

"미안. 이 얘기는 다음에 하자"

"그렇지만!"

"괜찮아. 더 이상 그런 말 하지 않을테니까"

"정우야…"

"지현누나"

"…왜 그래?"

"미안해. 나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잘게. 그 동안 서현누나랑 민정이랑 있거나 잘 쉬고 있어"

"…정우…"

"오빠…"

난 마음과는 다르게 멋대로 도망쳐버렸다.

틱..틱..

문을 닫고 아무런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웠다. 초침이 틱..틱..하고 조금씩 움직인다.

끝없는 고뇌와 갈등과 혼란. 나는 지쳤다. 인간이 겪는 '감정' 중에서 안 좋은 감정들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모순 그 자체. 나의 마음은 완벽한 모순이었다.

'떠나야 해. 하지만 떠나고 싶지않아'.

이것이 단 한 마디로 표현한 내 마음이었다. '미련'이라는 놈은 내가 다 없어졌다고 판단했을 때에도 내 발목을 붙잡는다. 그들과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을 부추기듯 내가 한 결심도 균열이 가게 만들고 결국에는 무너트릴 것만 같다.

나는 그다지 심지가 굳은 놈이 아닌가보다. 이렇게 결심을 한 것들 모두 흔들리고 쓰러져간다. 작심삼일하는 어느 의지력이 없는 놈이었나보다.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고 하여도 그녀들을 볼 때마다 연약해지기만 한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

쏴아...쏴아...

비가 내린다.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나기.

"여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먼 곳도 오직 땅 밖에 없는 황무지였다.이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걷는다. 걷다보면 무엇이 나오기나 할 것인지 확신조차도 갖지 않았는데 걷는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비가 내 몸을 적셔갔다. 하늘은 밝은 태양빛이 비춰주지않고 회색빛의 어두운 구름들이 잔뜩 끼어있을 뿐이었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무엇인가 보였다.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하기만 한 이 장소에서 있는 나뭇잎 하나 없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같이 위태위태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나무를 쳐다보았다. 이 고목은 나뭇가지조차도 별로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단지 나무를 보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눈물이 나온다.

"안녕"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누구?"

모습이 보이지않는다. 그에 따라서 이 세계도 서서히 보이지가 않는다.

"…너랑 줄곧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너는 대체 누구야?"

"아직은…아닌가보네…"

옅어져가는 목소리와 함께 세계가 무너지고 의식도 흐려져만간다.

그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어느 한 꼬마 남자아이를 보게 되었다.

"뭐지…"

'꿈'이었나..이런 꿈은 생전 처음이다..보통 꿈을 꾸게 된다면 내가 무조건 '죽는' 꿈이었는데. 처음으로 이런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일어났어…?"

"오빠 일어났어 언니"

"정우야!"

"…으…무거워…"

"아…미안!"

세 자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겁게 짓눌리던 무게도 사라졌다.

"민정이…지현누나…서현누나?"

"응 정우야…"

"대체…왜…"

"밤이 되어서도 일어나지 않길래…혹시 또…"

"응…?"

"어쨌든 네가 너무 오래 자서 그런 거잖아!! 부우!!"

"나도 오빠가 거…걱정되서…"

"정우…또 악몽 꾼 거야?"

"악몽은 안 꾸었어…그저…"

"그저…"

"그냥…이상한 꿈이었어"

"이상한 꿈이라니?"

"뭐라고해야할까. 그냥 얘기할 수 없는 꿈이랄까"

"…??"

"조금은…아련한 꿈이었어"

꿈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아쉬움'과 '허망함'.

그리고 '아련함'이었다.

"정우야"

"응?"

"정우도 일어났으니까 일단 오붓하게 저녁이나 먹자"

"저녁…?"

"부우!! 정우가 하도 잠을 자서 배가 고프다구!!"

"미안…"

"그럼 뭐 먹을까. 언니? 뭐 먹고 싶어?"

"전에…고기 함께 구워먹자고…"

"아 맞다!! 지현이랑 고기 구워먹기로 했었지!"

그 때에는 지현누나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하느라 바빠서 그런 기회가 없었다. 뭐 이번 기회에 넷이서 먹는 것도 괜찮으려나..

"좋아! 그러면 한우나 구워먹으러 가볼까나!"

"언니. 갑자기 왜 한우?"

"돈도 많은데 뭐! 한우나 구워먹으러 가자!"

"언니…"

"히잉…안 돼?"

"한우는 좀…"

"…난 찬성"

"에…? 정우…?"

"…오빠?"

민정이랑 지현누나는 한우먹으러 가자는 서현누나의 의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찬성을 하였다. 사실 삼겹살이라거나 한우라거나 고기의 종류는 상관없었다. 그렇다하더라도 난 아무쪼록 넷이서 고기 구워먹으러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히힛~ 정우가 찬성했네!"

"오…오빠가 그렇게 얘기한다면야…나도…"

"…정우의 말을 따를래"

"그럼 더 이상 이견은 없지? 그럼 빨리 가자!"

지글..지글...

"맛있겠다…"

입맛을 다시며 서현누나는 고기가 빨리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정이는 물론이고 지현누나도 은근히 빨리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서로 빼앗으려는 것은 아닐런지 걱정이 되었다.

넷이서 처음으로 함께 저녁에 외출을 하였는데 시선집중이 되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고기집에 가는데도 길 가는 사람들 모두 미인 세자매의 미모를 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살기도 잊지 않았지만.

특히 미인 세 명이다 보니 나에 대한 살기는 한층 농도가 짙어져만 갔다. '저런 죽일 놈..감히 저런 미인 세 명과 함께..?'라는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박정우다"

"박정우? 어라…?"

"지현언니랑도 함께 있네…"

"여동생으로 보이는 사람도 같이…"

"그런데 저런 성숙한 언니은 누구?"

"지현언니랑 비슷하게 생겼네…"

"하여튼! 박정우…"

"하나같이 미인들이니…"

하필이면 같은 반 연세희의 친구들인 여자애들과 마주쳤다.

"안녕! 박정우!"

"…어…어 응…"

나는 당황스러워서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하였다.

"가족들이랑 어디 가는 거야?"

"어…외식하러…"

"흐음…그럼 내일 운동회 때 봐!"

"응…"

학교가 아닌 바깥에서 이렇게 만나서 얘기하는 적은 처음이었다. 자기들도 시험 끝나고 어디 놀러가는 모양이었는지 서로 희희낙락 즐겁게 떠들며 우리들과 헤어졌다.

"정우야?"

"…응?"

"저 여자애들은 누구?"

뭔가 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현누나. 이런 모습을 보면 불안해 죽겠다고!

"아…같은 반 여자애들"

"…흐흥…?"

"그냥…같은 반 여자애들이라니까"

"…다행이네"

"어…?"

"정우에게도…스스럼없이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 같아서. 우리들 말고도"

"…"

"오빠…아직도 친구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야…정우…"

그렇게 주위의 시선을 받으며 고깃집에 도착해서...

"아주머니! 주문이요!"

힘차게 말하는 서현누나에 조금 당황도 하였고...

"어라라~? 저 남자애는 아주 행복하겠네~저런 예쁜 여자친구'들'도 있고~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명씩이나~"

"밤에 꽤나 힘좀 많이 써야할 것 같은데~?"

라는 짓궃은 일하고 계시는 아주머니들의 말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도 하면서..

지글지글....

고기는 익어만 갔다.

한우는 삼겹살보다 빨리 익혀지는 것 같았다. 서현누나는 오랜 외국유학생활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고기를 뒤집고 있었고 민정이랑 지현누나도 밑반찬들을 깨작깨작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먹자~"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언니"

"여기! 정우야!"

"…응?"

"앙~♡"

전에 둘이 삼겹살 구워먹었을 때처럼 먼저 쌈을 싼 것을 건네주는 서현누나. 이것을 정말로 받아먹어야 되나 말아야되나 심각히 고민해야했다.

화르르륵...

주위에 있던 손님들의 분노와 살기가 있었고..

화르르륵...

어째 지현누나와 민정이도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앙~♡"

이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한테 쌈을 건네주고 있을 뿐이었고..그렇지만 받아먹지 않았다가는 '부우!!!'하고 볼을 부풀리며 삐진 서현누나를 달래줘야했기에 받아먹었다. 받아먹으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지만..조금 갈등이 일어났었다.

다 씹어먹고나서 나는 밑반찬을 먹고 있었을 때...

"…정우"

"응…?"

"여기…"

지현누나도 쌈을 건네주고 있다.

"아하하…"

이거 정말 행복한 상황인지 원...

"부우!! 지현이 반칙이야!!"

"여기…아…♡"

"…??"

뭐지..순간 뒤에 붙은 하트를 본 듯한 느낌은..?

"…으…응"

나도 입을 벌려서 지현누나가 건네준 쌈을 받아먹었다. 자매들에게서 이렇게 받아먹으니참..엄청나게 행복하기도 하고..살인의 위협을 받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맛…있어?"

끄덕끄덕.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고 얘기하였다. 그러자 지현누나의 얼굴에 화색이 돈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때. 민정이가 무엇인가를 건넸다.

"자!"

"…우…웁?"

"여기…먹…먹으면 되니까…"

심지어 민정이마저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 쌈을 건넸다.

"오…오빠에게 딱히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긁적긁적.

"그러니까…"

나는 민정이가 건네준 쌈을 바로 받아먹었다.

"아…오빠…"

입 터지겠다...너무 많아...순간 쏟을 뻔했다....

"잘 먹었어 언니"

"여기 한우 맛있었어"

"잘 먹었어 서현누나"

"히힛~♬"

한우라서 돈이 많이 지출이 된 것 같습니다만..지현누나도 민정이도 서현누나도 나도 모두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던 저녁식사였다. 게다가 넷이서 이렇게 외식을 먹으니..그렇지만 나는 배가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세 자매끼리 무슨 경쟁심리라도 있냐고요..왜 나한테만 쌈을 건네주고...자기들은 안 먹고...게다가..

"정우가 쌈 싸서 먹여줘!"

"나도…"

"오빠…"

세 자매의 간절한 눈빛 덕분에 나는 손을 재빨리 움직여가며 어린 아이에게 밥을 먹이듯 쌈을 자매들에게 건네주어야했다.

"정우야~"

다 먹고나서 넷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팔짱을 끼는 서현누나.

"언니!"

"…서현누나?"

"헤헤~♡"

정말로 미워할 수 없단 말이야...이 누나는...

"언니!"

엉...?

"부우!! 민정이가 내 자리 뺏었어!!"

"헤헹~"

"부우!! 이렇게 나간다 이거지!!"

서현누나랑 민정이는 어째 내 왼팔을 가지고 싸우는 것 같았다. 그냥 떨어져서 가면 될 것가지고 왜 그렇게 싸운다냐...

"…정우"

"어…?"

조용하게 걷고 있던 지현누나마저도 내 오른팔에 팔짱을 꼈다. 감촉이...젠장...

"이러고 걷자…정우"

"…아하하…"

나는 그냥 웃음만 짓고 있어야 했다. 아주 허탈한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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