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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Whereabouts of Mind(마음의 행방)
역시 연재주기가 들쭉날쭉하다보니..인기가 점점 없어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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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후. 민정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거실에서 뒹굴뒹굴 구르고 있던 나를 불렀다.
"응?"
"오빠, 내일 운동회한다면서?"
"하아? 대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건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 운동회라니..? 그리고 나는 왜 그러한 것도 못 들었던 거지..? 운동회를 한다는 것은 들었는데..그것도 내일에 한다고? 종례때에는 아무말도 안했던 것 같은데..?
"내 친구가 그러던데? 오빠네 학교 내일 가을운동회 한다고"
그런 건 또 어디서 알아내는 거지..?
"누가 그래? 나 못 들었는데?"
"정우야. 내일 운동회 해?"
"모른대두…"
"설마 오빠. 학교에 있는 누구한테든 못 들은 건 아니겠지? 그것도 '자고 있느라'"
"에이 설마…"
그런데 민정이는 어떻게 내가 학교에서 자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지..?
"자고 있던 거 맞지?"
"네가 그걸…"
"오빠. 중학교 때에도 그랬잖아"
"…인정"
"아직도 못 고쳤어?"
"하하…그게…"
"잠 좀 줄여. 이러다가 정말 대학 못 간다구?"
"그걸 왜 네가 걱정…"
퍼억!!!!
"크윽!"
느닷없이 날아오는 민정이의 스크류펀치에 나는 맞은 부위를 감싸고 고통을 호소하였다.
"내…내가 걱정해주면 안돼? 나도 가족이고 여동생이고 그리고…그리고…난…오빠를 매일같이 걱정하는데…"
민정이는 '내 걱정따위는 정말로 필요없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나를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부우! 이번엔 정우가 정말 잘못했네!"
옆에 있던 서현누나는 볼을 부풀리며 내가 잘못했다며 타박을 하고 있었고...
"미안해"
이럴 때는 사과를 재빨리 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민정이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실수를 하였다. 아 또 괜시리 민정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네...
"별…별로 오빠가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내가 계속 오빠를 생각해주고 있다고…그렇게 여겨주고…조금 더 나에게 상냥하게 굴어주면 돼…"
"…후웅…"
"서현누나?"
"포기하지않은 것 같네"
"응?"
"맞지? 민정아?"
"…응"
"정우는 다른 면에서는 다 좋은데 이런 면에서는 여전히 둔감하기 짝이 없네…대체 누구랑 결혼하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정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꼭 살필 것"
자꾸만 서현누나는 짧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말만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는 나는 전혀 몰랐다. 주변의 눈치를 꼭 살피라..어떤 의미일까?
"…언니 말에 절대동감"
민정이는 서현누나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절대동감'이라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이거 어째 나만 따당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인데..?
"정우야"
"응?"
"운동회 내일 한다는 거 정말로 몰랐어?"
"응"
"이런 건 꼭 기억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야 당연히 내가 관심이 없으니 말이지..연극도 사실 등 떠밀려서 하는 거고..수련회는 강제로 당하는 거고..심지어 중간고사가 언제 보는 지 조차도 모르는 나였다. 아니 애초에이런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관심' 그 자체를 끊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운동회라…"
어차피 나 같은 경우에는 선수로 나가거나 이런 대회에 참가한 경력도 없었다. 초등학교 이후로부터 가을운동회는 쭉 경험하고 있었던 나였지만은 정작 한 것도 없었다. 그저 빈둥빈둥 교실에 있다가 아니면 같은 반 아이들 무리에서 존재감없이 있다가 '아~드디어 끝났구나' 싶으면 바로 집으로 조용히 가버렸으니까. (역대 담임선생들은 그 사실을 여태까지 눈치챈 적이 없었다)
"에휴. 정우한테 묻는 것보다 지현이한테 묻는 것이 더 낫겠네"
"지현언니 공부 중이야?"
"아마도. 그런데 고3인데…운동회 하려나?"
"학교에서 하는 거니까 그래도 하지않을까?"
"그렇겠지?"
"그리고 시험도 끝났는데…지현언니는 매일매일 독서실…"
"오늘은 일찍 오라고 하자"
"문자 할까?"
"응"
민정이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들어서 틱틱 버튼을 누르며 문자전송을 하였다.
"정우야"
"응?"
"정우…핸드폰 없지?"
"당연히 없지"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참 별종이다. 컴퓨터나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등은 사용해보았어도 핸드폰이나 전화기조차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나다. 게다가 '친구'라는 것도 없었으니 있어봤자 되려 거추장스러웠다.
"그럼 정우 핸드폰이나 사줄까?"
"…응?"
"어때?"
"별로…어차피 나는 집에만 있어서…"
"부우!! 정우는 별로 나랑 연락하고 싶지 않나보지?"
"아니 그건…"
"나도 오빠랑 연락할 길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잘 되었네…오늘 시험도 일찍 끝났으니 오빠 핸드폰이나 알아보러가자"
"찬성!"
"저기요…저의 의향은 전혀…"
"정우(오빠)는 말할 가치도 없어!"
어째 이럴 때에는 한 입으로 말하듯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냐고요...
내가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잠시 후. 지현누나가 민정이의 문자메시지를 받아서그런지 집에 일찍 들어왔다.
"어서와 지현아"
"지현언니"
"…응. 그런데 나는 왜…"
"요새 지현이가 공부만 하는 것 같아서…중간고사도 끝났겠다 겸사겸사 쉴까 해서…"
"괜찮아 언니…게다가 조금 빠듯해서…"
"언니"
"응…?"
"그러면 그냥 다시 독서실로 돌아갈 거야?"
"…"
"지현누나"
"…정우"
나도 사실 지현누나가 이렇게 공부에 치여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오늘은 푹 쉬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그녀에게있어서도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쉬도록 해"
"…정우…"
"민정이나 서현누나 말대로. 요새 쉴 틈없이 해왔잖아. 그러다가 몸만 망가지니까. 오늘은 그냥 집에서 푹 쉬어"
"정우…"
"가족이 다같이 부탁하는데. 이러기야?"
"…응…정우…"
"지현이가 정우 말을 잘 듣네…"
"…언니야…나랑 똑같으니까…"
"민정아?"
"그러니까…이해가 가…"
"??"
"지현누나"
"응…"
"내일 운동회라는 거. 사실이야?"
"운동회…? 학교에서 하는 거?"
"응. 나는 못 들어서…아니 까먹은 건가…"
"분명히. 내일 하기로 되어있어"
"헤에…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지현아"
"언니. 왜?"
"이번기회에 정우한테 핸드폰이나 하나 사줄까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핸드폰…?"
"응 지현언니. 우리들은 다 핸드폰있는데…오빠한테만 핸드폰이 없잖아…자기가 무슨 구세대사람도 아닌데…"
"윽…"
"…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그렇지? 정우한테 연락이 안되서 얼마나 답답했는데!"
"서현누나?"
"정우는 맨날 집전화 받지 않으니까 말이야! 나 알바 갔을 때마다 시간있으면 틈틈히 정우한테 전화하려고 집에 전화를 걸어도 도무지 연락을 받질않으니까…"
"…미안"
"부우!! 정우는 당장 반성하도록 해!"
"넵…그런데 말이야…나는 딱히 핸드폰이 필요 없는데…"
"오빠. 왜?"
"그냥…친구도 없어서 연락할 사람도 없는데 전화요금만 빠져나가니까…돈 아까…"
"우리는?"
"응?"
"우리랑 연락하면 되잖아"
"…나랑 연락해서 뭘 한다고…"
"정우"
"…지현누나?"
"우리랑…연락하면서 살기 싫어…?"
"아니…그건 아니지만…"
"이렇게 모여있는 시간도 별로 없고…대부분 다 서로 떨어져지내며 있잖아…그런데 우리야 문자로 얼마든지 연락이 되지만…정우는 핸드폰도 없고…난 정우랑 떨어져있을 때에도 연락하고 싶은데…"
"…언니…"
"지현아…"
"정우가 원하지 않다면…사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
"오빠. 정말로 사고 싶지 않은 거야?"
"정우야. 얘기해"
"…후…나야 떨어져있을 때에도 연락하면 좋지. 그렇지만 나는 누나나 민정이한테 귀찮은 존재가 되기가 싫은 것 뿐이야"
"전혀 아니야!"
"정우야…가족사이에 '귀찮음'이 왜 존재하는 건데?"
"아직도 오빠는 부정적인 생각…"
"나야 항상…"
"민폐만 되는 존재라고?"
"…그렇지…"
"그…그…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
"…!!"
"서현언니?"
"언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만 하며 살 거야? 항상 민폐라고. 자신은 항상 이런 존재라며…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깎아 내리고! 그렇게 해야 자기의 마음이 편해져? 행복해?"
"누나…"
"우리는 정우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민정이도. 지현이도. 그리고 나도 그래. 옛날에는 조금 그랬지만…지금은 화목하잖아? 이대로 계속 과거에 연연하면서 살아갈 거야? 변해야한다는 건 자기 스스로도 알고 있으면서…"
"…"
"언니 말이…100% 맞아…"
"정우…"
"대체 언제 자기 자신을 용서할 거야? 너는 아직도…과거의 망령에 얽매여서 전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있어! 네가 귀찮은 존재? 천만에! 얘기했었잖아. 너는 소중한 존재야. 절대로 빠져서는 안될 가족의 소중한 구성원이야. 그런데도…자기 스스로…"
"…"
"아직까지도 외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
침묵이 돌았다. 나도 얘기하지않고 잠자코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떻게든 변명이라든가 어떤 말을 하려고 했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정아. 지현아. 너희들은…정우가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오빠는…내 '구세주'인 걸?"
"맞아…정우는…소중한 존재야…"
"이제 어떻게 말할 거야? 이런데도 외톨이라고 얘기할 거야?"
"…"
"정우야"
그녀는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나를 안았다.
"사람은…자기 스스로 살아가지 못해…아니…그게 아니라…너는 지금 '거부'하고 있어. 섣불리 먼저 다가서려 하질 않아. 어떠한 '두려움'에. '공포'에. '체념'에. 너는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어. 정우에게는 아직도 우리는…'믿지 못하는'존재일까…?"
"…그것이 아니야…나는 어디까지나…"
"그런데 왜 선을 그으려 하고 있는 거야?"
"선…?"
"자기보러 '가족한테는 더 없이 귀찮은 존재'라면서? 그것이 가족과 정우 너 사이를 그어버리는 '선'이 아니야?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깝지만…더 이상 가까워지려하질 않고 있어. 나도 너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정우는…우리들이 끊임없이 위로의 말을 하고…북돋워주는 말을 해도…전혀 듣질 않잖아…"
"…"
"우리를 믿어줘 정우. 우리들이 정우를 믿듯이. 정우도 우리들을 믿어줘. 민정이를. 지현이를. 나를 믿어줘. 서로 믿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족'인 거잖아. 그러니까…"
"…"
"우리들한테 손을 뻗어주면 안 될까? 우리들만 짝사랑을 하듯 다가서려하면…이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고…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제대로 만들어지질 않아. 정우야. 먼저 손을 내밀어줘. 먼저 말을 걸어줘. 먼저 웃어주면서 우리를 대해줘. 그러면서 정우가과거따위는 생각하지말고…오로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뒤를 돌아보지 말고어떠한 '과거'도 신경쓰지않고…그러면서 '변화'를 천천히 하면 되는거야…"
"정우…"
"오빠…"
"…"
"이렇게 말해도…안되는 걸까? 이렇게 말해도 너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고마워"
"…에?"
"정우…?"
"오빠…"
"그저 고마워…고맙고 고마워…이렇게 따끔하게 말해줘서…"
그렇지만...그러면 그럴 수록...
나는 다가서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죄인'이니까.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난 지금 배신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나의 회색빛 눈에서는.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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